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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참된 어린이 사랑은 무엇인가?
내 자식만 잘되게 할려는 부모들이 헛똑똑이만 양산
 
이대로   기사입력  2003/05/12 [13:24]
5월 1일은 어린이날, 8일은 어버이날로서 가정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고 가족과 함께 놀이도 가고 정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기념일을 만들고 뜻깊게 보내자는 날이 그 참뜻을 살려 보람차게 보내기 보다 고통스럽고 부담스럽게 지내던가 아니면 무슨 짜증스런 놀자 판이 되기도 해서 씁쓸하다.

지난 일요일에 내 어버이께서 할아버지 산소에 가보고 싶어하시기에 내 고향 충청도 서산에 모시고 갔다. 그런데 산소가 안면도 근처여서 마침 안면도 꽃구경하기 위해 전국에서 몰린 차들 때문에 뜻밖의 고생을 많이 했다. 10분이면 갈 길을 한 시간도 더 걸렸다. 어린이날과 겹친 연휴에다가 어버이날을 앞두고 가족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길이 막히고 북새통이었다. 그래서 지친 어린이와 노인들이 즐겁기 보다 짜증내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여기저기 많이 보였다.

서산 간척지 방조제 둑에 차가 막혀 서있을 때 배고픈 것을 참지 못하는 어린이들 성화에 뙤약볕도 괜찮다고 길옆에서 한 짐 싸온 음식 보따리를 푸는 모습을 보면서 내 어릴 때 어린이날 소풍길이 떠올랐다. 50여 년 전 어린이날에 전교생이 소풍을 가서 보물찾기를 하고 즐겁게 보내던 곳이 바로 그 눈앞에 보이는 바닷가였기 때문에 가슴이 짜릿했다.

나는 1953년 6.25 전쟁 휴전협정이 있기 바로 전에 국민학교에 들어갔다. 그 때 어린이날은 공휴일이 아니라 학교에 갔고 그 날 봄 소풍을 갔다. 날씨도 좋은 봄날 생전 처음 학교에서 간 첫 소풍이라 마음도 설레고 즐거웠다. 십리가 다되는 거리를 전교생이 손잡고 보리밭 사잇길을 지나 솔밭 고개를 넘고 걸으면서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이란 어린이날 노래를 목이 터져라 신나게 부르며 걸었다.

그런데 그 즐거운 날에 속상하는 사건이 있었다.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싸준 쌀밥 점심을 먹지 못했다. 첫 아들인 내가 학교에 처음 들어가서 도시락 통을 미쳐 준비하지 못해 아버지 밥그릇인 놋쇠 그릇에 하얀 쌀밥을 담고 거기에 종지그릇을 넣고 고추장과 장아찌를 넣어 주셨는데 신나게 노래부르면서 그 밥그릇을 빙빙 돌리기까지 했으니 밥이 고추장에 뒤범벅이 되었고 불어터져서 먹을 수가 없었다.

쌀밥을 구경하기도 힘들고 도시락 대신 누룽지 한 덩이를 가지고 오거나 아주 못 싸온 애들도 있던 때라 난 하얀 쌀밥을 자랑스럽게 먹을 생각에 더 신이 났던 게 그 꼴이었으니 몹시 속상하고 어머니께 혼날까봐 걱정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땐 속상했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 가슴에 남아있다. 잠시 차를 세우고 내가 어릴 때 소풍갔던 고향땅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던 내게 맛있는 먹을거리를 싸놓고도 짜증내는 어린이에게 쩔쩔매는 어른들 모습이 방정환 선생이 생각한 어린이날, 어린이를 위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린이날은 일제 시대 1922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아동 보호운동을 하기 위해 만든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방정환은 어린이들을 위해 동화를 짓고 어린이들에게 구수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린이는 한 집안과 겨레의 꿈이고 희망이기에 어린이를 잘 키우는 것은 그 집안과 겨레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믿고 어린이들을 학대하지 말고 잘 키우자고 외쳤다. 애들에게 좋은 옷과 음식 같은 물질 선물보다 사랑과 정신교육으로 튼튼한 몸을 갖게 해주려 힘썼다.

그 때 첫 어린이날 구호는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서로 사랑하며 도와 갑시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 보아주시오. 어린이에게는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게 합시다"였다고 한다. 동요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한 어린이가 되고,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낮에는 뛰놀게 하자는 말이었다.

물질 선물, 몸만 뚱뚱하게 하는 수입 밀가루와 설탕으로 만든 과자와 외국에서 만든 선물꾸러미를 많이 사주면서 해달라고 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는 것이 애들을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동화책을 읽게 하고 동요를 부르게 하고 동무들과 사이좋게 뛰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아이에게만 잘 먹이고 입히며 개인 이기주의만 키우고 있다. 그리고 대낮에도 해를 못 보게 방에 가두고 공부만 시키거나 혼자 방송이나 보게 하니 신체는 뚱뚱하나 정신은 허약하다.

오늘날 부모들은 애들에게 지나치게 잘하고 위한다. 편하게만 해주고 내 자식만 잘 되게 하려한다. 애들을 위한다는 것이 애들을 허약하게 만들고 버려놓고 있다. 애들을 학대하고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 것은 좋지 않지만 해달라고 하는 대로 해주니 자립심이 약하다. 좋은 옷을 입혀야 하고 편하게 해주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잘못해도 혼내지도 않으니 버릇없는 애들이 많다. 돈이 많지 않은 사람도 여러 군데 학원 보내느라 집안 살림에 드는 돈보다 애들 교육비가 더 들고 빚까지 얻어 유학까지 보내지만 헛똑똑이가 많다.

내 경험으로 봐서 애들에게 지나치게 잘 해주면 이기심과 의타심을 키우고 오히려 좋지 않다고 본다. 어려서 잘 사는 집에서 호강하고 고생을 하지 않은 애들이 커서 있는 재산도 지키지 못하고 무기력한 사람으로 살고, 부모에게도 더 불효를 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스스로 삶을 일궈 가려하기 보다 나이 들어서도 부모에게 기대고 또 더 해주길 바란다. 공부만 잘 한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을 나오면 유학 보내달라 하고, 유학 마치면 좋은 집, 좋은 차를 사달라고 하고, 사업자금 달라해서 안 해주면 부모 원망하고 있다.

지금 어둡더라도 애들을 잘 키우면 앞날은 밝다. 오늘날 우리가 애들을 잘 키우고 가르치고 있는 지 반성해 보자. 과연 어떤 것이 애들을 위한 참된 교육이고 어른의 바른 태도인지 지혜를 모으고 이야기해보자. 지금도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사람이 많고 버릇없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다는 말이 있는데 다음엔 더할 것 같아 걱정이 되어 한마디했다.

정치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애들을 잘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영어와 수학을 아무리 잘해도 참된 사람이 되지 못하면 헛일이다. 똑똑하고 잘 낫다는 사람들이 남에게 피해를 주고 가정과 나라까지 더럽히는 것을 많이 보았기에 정신과 육체가 모두 건강한 한국인, 자기만이 아닌 형제와 이웃과 함께 잘 사는 사람이 많은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 본지 고문  

* 필자는 '우리말글살리는 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글인터넷주소추진총연합회 본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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