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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에 일제강점기의 역사 흔적 남겼어요"
[사람] 인천 중구 관동갤러리 도다 이쿠코 관장, 일제침략 진실 알려
 
김철관   기사입력  2015/09/16 [21:42]
▲ 도다 관동갤러리 관장     © 인기협


1883년 개항이후인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20여년을 사용했고, 해방이후 70년 동안 조선인들이 사용했던 일식목조주택을 전시장으로 개보수해 사용하고 있는 갤러리가 눈길을 끈다. 

일본인 사학자 도다 이쿠코씨가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 31번길 38번지에 있는 90년 된 일본식 목조주택을 구입•개조해 지난 1월부터 인천관동갤러리(Incheon Gwandong Gallery)로 사용하고 있다. 


지난 9월 11일부터 ‘일본 건축의 어제와 오늘’ 이란 주제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인천 옛일본 조계지 재생계획 및 현대 일본건축가 주택 연구의 일환으로 한양대 건축학과 학생들의 전시이다. 바로 이전인 8월 14일부터 30일까지 이곳 전시장에서는 광복 70년을 기념해 ‘자료로 본 일제 침략사’전이 열렸다. 이 전시는 징병, 징집, 공출자료 등을 전시해 일제 침략의 진실을 알리기도 했다. 

관동갤러리는 1년여 간의 개보수를 거쳐 지난 1월 말 완공했다. 중국 만주지역사, 조선족역사 등 근대사를 주로 연구한 도다 이쿠코 관장은 청학동 사진과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찾아 촬영한 <잊혀진 흔적>사진집의 저자 류은규 사진작가의 부인이기도 하다. 

 

▲ 기자와 인터뷰 중인 도다 관장     © 인기협

그는 남편과 함께 중국에서 근대 역사를 연구하며 8년간 생활하기도 했다. 지난 13일 오후 관동갤러리 도다 이쿠코 관장을 만나 전시장과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 

먼저 도다 이쿠코 관장은 “노후화 된 일식주택을 어떻게 하면 지금 우리 정서에 맞게 활용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이곳에 갤러리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그 의문에 대답은 뭘까. 

“관동갤러리는 기억을 남긴 집이다. 일본인이 20년 정도 살았고, 그 후 70년 동안 많은 한국인들이 살면서 수리와 증축을 거듭했을 것이다. 벽을 떼어보면 갑자기 나타나는 지난날의 생활의 흔적이 생각난다. 어릴 적 이런 일본 집에서 살았다. 이곳에 와보니 갑자기 생각이 났다. 몸에 각인된 주거의 기억이 쉽게 살아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 관동갤러리 2층     © 인기협

이곳은 현재 신주소로 바뀌었지만 바뀌기 전까지는 인천 중구 관동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 일본인 조계지(주거지)로, 주로 관리들의 관사로 이용한 지역이다. 조계지란 1883년 개항직후 개항장에 들어온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거주하고, 생활할 수 있는 땅을 말한다. 이 지역 외국인들에게는 치외법권과 합법적 상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 등을 부여했다. 

그는 30년 전 한국에 유학 와 일제시대 역사를 공부했다. 남편은 오랫동안 중국 조선족 사진을 수집•정리했다. 부부의 공통점은 역사의 향기가 있는 곳에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고, 우리 부부만의 생활이 시작됐다. 근대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 살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2013년 1월초 인천에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해 2월 개항이후 일본의 조계지로 시용했던 한 집에 들어서자마자 직감으로 이곳에 살고 싶다고 느꼈다. 매매 수속 건물대장에 ‘1939년 신축’이라는 글귀를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해방이후 일본인이 떠나고 70년 동안 한국인들이 살았던 집이었다. 실은 일본에서 어릴 적 이런 집에 살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 가슴 속에 즐겁고 정다운 기억이 남아 있었다.” 

관동갤러리는 여섯 가옥이 나란히 붙어있는 나가야 형태의 집이다. 나가야는 한 지붕 아래 이웃집과 벽을 공유하는 서민주택을 말하며, 공동 정원을 사용했다. 

도다 관장은 이곳 지명에 대해서도 설명을 이어갔다. 

“2013년 도로명 주소로 바뀌었다. 이전 이곳을 관동으로 불렀다. 일제 강점기에는 나카마치라고 했다. 관공서와 관사가 있는 주택지였기 때문이다. 이곳 중구청은 85년까지 인천시청이었다. 1910년 한일볍합 이후 이곳에 인천부청(현 중구청)있었고, 인천부청 앞거리는 혼마치라고 하는 변화가여서 은행,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혼마치에서 한줄 뒤에 있던 나카마치는 주택가를 일컫는다. 일제 인천부청에 근무한 관리들의 관사로 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이곳에서 2만 여명의 일본인들이 살았다고 알려지고 있다.” 

 

▲ 관동갤러리 1층     © 인기협

도다 관장이 구입한 현 갤러리는 지난 2014년 1월 일식주택 전문가인 한양대 건축학부 도미이 마사노리 객원교수의 도움으로 1년 여 개보수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도미이 교수는 옛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것도 중요하지만 현대인의 감각에 맞는 집을 재탄생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는 것. 

“도미이 교수는 학생들을 데리고 보수를 위해 구조와 자재를 점검했다. 먼저 마치야 구조인 집 천정 해체 작업을 했다. 마치야란 얇고 곧은 목재로 만들어진 골조에 대나무와 흙을 섞어 벽을 만드는 구조를 말한다. 90여 년의 세월을 버텨온 나가야 천정에서 굵은 나무 대들보가 위엄을 자랑하며 살림집과 이웃집으로 이어졌다. 대들보는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였다. 갤러리를 짓는 건물대장에는 ‘1941년 신축’이라고 쓰여 있었다. 바로 옆 살림집은 ‘1939년 신축’이라고 돼있는데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같은 시기에 지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갤러리가 재탄생할 때까지는 일식주택 전문가인 도미이 마사노리 교수의 헌신이 없었더라면 절대 지금의 상태로 복원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도다 관장은 인근 한국근대문학관으로 인도해 근대문학의 발자취를 엿보게 해 줬다. 

 

▲ 밖에서 본 관동갤러리     © 인기협

한편 관동갤러리는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문을 연다. 도다 관장은 월요일부터 목요일은 남편과 함께 생업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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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9/16 [21:4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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