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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노조,'부역언론인1호'에 자사 출신 한나라당 이윤성의원 지목
 
대자보   기사입력  2003/10/21 [14:03]

KBS와 조선·동아·한나라당간의 갈등이 격해지는 가운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KBS 노조가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 '부역언론인' 시리즈를 시작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KBS 노보는 지난 18일 '부역언론인 1호'에 KBS 기자 출신인 한나라당 이윤성 의원을 지목하고 "이 의원이 자신의 경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KBS를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보에서는 지난 85년 5월말 美 문화원 점거 농성 등을 계기로 광주 문제가 본격적인 이슈로 떠오르던 시점에 <특별기획>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은 당시 KBS 부주간 이윤성씨가 광주 시민을 폭도로 규정하고, 계엄군의 행위는 '질서유지를 위한 부득이한 선택' 이라고 미화하면서 정권의 논리를 되풀이하는 독재정권의 '나팔수'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또 이의원이 지난 1985년 8월 〈보도기획-학원안정법〉프로그램에서도 당시의 학생운동에 대해 "문제는 이들의 주의, 주장들이 이미 학원의 차원을 떠나서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이적, 용공 행동으로까지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논평해, 당시 이 보도가 이후 전 국민적인 '시청료 거부운동'을 초래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전했다.

노보는 또 "KBS 9시 뉴스 앵커를 맡고 있던 당시 이윤성씨가 민자당에 입당함으로써 독재 정권에 영합해 왜곡을 일삼아온 권력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스스로 드러내 한번 더 KBS를 욕되게 했다"면서 "국회에 입성한 이윤성 의원이 15대 국회 한때는 '정책개발형 국회의원'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노무현정부 들어 '한나라당의 저격수'로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부역언론인 1호'로 지목된 이의원은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를 미화했다는 KBS 〈귀향-돌아온 망명객들〉와 관련해, 취재 일정과 취재진 명단은 물론이고 〈한국사회를 말한다〉제작진 전원의 고교 이후 학력과 최근 5년간의 경력을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하라고 요구해, 일련의 KBS 논란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노보는 이의원의 이런 활동에 대해 한나라당 내에서도 "쓸데없이 오버하는 탓에 당이 곤혹스럽다, 가급적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부역언론인 1호'로 지목된 한나라당 이윤성 의원은 1970년 KBS 보도국 기자로 입사해 〈보도본부 24시〉앵커, 사회부장, 과학부장, 〈9시뉴스〉앵커 등을 지내 KBS의 간판으로 인식돼 왔으며 이를 발판으로 1995년에 민자당에 입당, 15대와 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 다음은 KBS 노보에 실린 '부역 언론인 시리즈1- 이윤성 한나라당 국회의원' 전문이다.

부역 언론인 시리즈1- 이윤성 한나라당 국회의원

부역 언론인 시리즈 ①
이 윤 성 한나라당 국회의원

KBS앵커출신이라는 점 십분 활용
KBS 공격하는 한나라당 저격수

▲1970년 KBS 보도국 기자로 입사 ▲〈보도본부 24시〉 앵커 ▲사회부장 ▲과학부장 ▲〈9시뉴스〉 앵커 ▲1995년 민자당 입당, 인천 남동갑 지구당 위원장 ▲1996년 제 15대 국회의원 당선 ▲2000년 제 16대 국회의원 당선.

〈KBS 9시 뉴스〉 앵커석에서 걸어나가 여당이 입혀준 국회의원의 옷을 입은 앵커 출신 국회의원.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 그리고 김영삼 정권에 모두 충성을 바쳤다는 비판을 받으며 KBS를 떠나간 KBS의 대표적 메인 앵커 이윤성.
그는 왜 KBS 인들로부터 ‘자랑스러운 선배’라는 칭호를 듣지 못하는가.
“광주사태는 그 자체로 국가적 위기였으며, 이 위기로부터 국가를 보위하는데 군이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었다는 것은 누구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1985년 6월 8일 방송, 〈특별기획-광주사태〉 中)”

1985년 6월 8일, KBS 는 이른바 ‘광주사태 5주년’을 맞아 〈특별기획-광주사태〉 라는 한시간 짜리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85년 5월말 美 문화원 점거 농성 등을 계기로 광주 문제가 본격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국회가 ‘광주사태 진상조사를 위한 국정조사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KBS 가 80년 ‘광주사태’의 전모를 밝히겠다며 특별 기획 프로그램을 방송한 것이다. 하지만 이 〈특별기획〉은 제 나라 국민에게 총칼을 휘둘러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 군사독재정부를 위해 불러제낀 또 한 편의 사모곡에 불과했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바로 이윤성 당시 KBS 부주간. 이윤성 씨는 전두환 정권의 출발점이자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된 광주학살에 대해, “흥분한 시위 군중과 계엄군의 충돌과 오해로 감정이 폭발되었고, 여기에 불순분자들에 의해 조작된 기상천외의 유언비어는 지역감정 마저 자극, 선동해서 군과 시민을 이간시키고, 방화, 파괴, 살상을 유도하면서 끝내는 광주시 일원을 무정부 상태로까지 치몰아갔던 것” 이라고 평하고 있다.

이와 함께 광주 시민을 폭도로 규정하고, 계엄군의 행위는 ‘질서유지를 위한 부득이한 선택’ 이라고 미화한다. “특히 이러한 혼란을 틈타서 실제로 인민무력부장이었던 오진우와 총참모장 오극렬이가 남침의 호기를 잡기 위해 개성까지 내려와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이 입증되기도” 했다면서 정권의 논리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
이 씨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것(광주사태)을 다시 되씹고 다시 건드려서 생기는 상처, 그리고 이로 인한 국론 분열, 화합의 장애, 번영의 장벽, 그리고 안보의 위험 등등은 우리를 다시 아프게 하고 다시 위험하게 만드는 요소, 요인을 뿐” 이라고 논평한다. 광주 학살의 피해규모 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 진상을 밝히라는 민주화 세력의 요구는 깡그리 무시한 채, 그저 빨리 잊어버려야 한다며 군사독재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충실히 했던 것이다.

이로부터 두달 뒤인 1985년 8월, 이윤성 씨는 또 한번 정권에 충성하는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30분 짜리 〈보도기획-학원안정법〉. 이른바 ‘학원안정법’은 운동권 학생들을 영장 없이 체포, 구금하고 선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특별법으로, 삼청교육대식 발상에서 나온 5공화국 특유의 음모였다. 이윤성 씨는 이 학원안정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는데 다시 발벗고 나선다.
이 씨는 당시의 학생운동에 대해서, “문제는 이들의 주의, 주장들이 이미 학원의 차원을 떠나서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이적, 용공 행동으로까지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제는 근본적인 대책을, 그것도 파괴와 오염의 진원지를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논평한다.
또한 “정부, 여당이 학원안정법 제정의 결단”을 내려 “좌경사상에 오염된 학생들은 하루 속히 치유를 해서 학원으로 돌아오도록 하고, 또 면학에 여념이 없는 대다수 학생들이 이들로부터 오염되지 않도록 보호되어야 한다. (1985년 8월 6일 방송, 〈보도기획-학원안정법〉 中)” 며, 민주화 운동 앞에 위기를 맞은 정권을 옹호하기 위해 독재 정권의 주장을 한마디의 차이도 없이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이윤성 씨로 대표되는 이 같은 당시 보도 태도는 이후 전 국민적인 ‘시청료 거부운동’을 초래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86년 1월 발족한 KBS TV 시청료 거부 기독교 범국민 운동본부는 시청료를 거부해야 할 중요한 이유로, KBS 가 국회의원 선거보도에 있어서 여당인 민정당의 홍보·선전매체로 전락했다는 점과 함께, 학원문제에 대한 보도에서 왜곡되고 일방적인 보도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KBS 가 국민의 눈과 귀를 현혹하고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비판과 함께 ‘시청료 거부’라는 치욕적인 굴레를 쓰게 된 것이다.

10년 뒤인 1994년 6월은 북한 핵 보유설이 불거지면서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듯한 살벌한 분위기로 다시 한번 공안정국이 조성된 시기였다. 이와 때를 맞춰 이른바 ‘북한 노동당의 지하당 구국전위’ 조직원들을 일망타진했다는 기사까지 가세해 사회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을 즈음, 전국지하철협의회가 파업을 결의한다.
이에 당시 KBS 의 메인 뉴스인 9시 뉴스 앵커였던 이 씨는, 30초라는 긴 시간을 할애해 시민의 반응을 빙자한 자신의 소회를 늘어놓는다. “분명 지금 이 시기는 국민 전체가 냉정을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생사가 걸린 북한 핵문제도 최후까지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데 철도 지하철 파업은 너무도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1994년 6월 16일 방송, 〈9시 뉴스〉 中)”

그에게 파업이라는 수단을 택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대신 전쟁 위기론을 내세워 국내의 민주화 시도를 짓밟으려는, 군사독재 시대로부터 이어 내려온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김영삼 정권에 대한 간드러진 아부의 목소리를 높힌 것이다.

이 같은 변함없는 정권 편향적인 보도 태도로 인해 번번이 노사 공정방송위원회의 의제가 됐으며 “공영방송의 위상을 훼손하는 편파 왜곡의 주역”이라는 불명예스런 별칭을 얻게 된 이윤성 씨는, 현직 앵커에서 곧바로 민자당 입당이라는 절정의 ‘말 바꿔 타기’ 기술을 보여준다.
이 씨는 이로써 독재 정권에 영합해 왜곡을 일삼아온 권력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스스로 드러내면서 한번 더 KBS를 욕되게 하며 KBS를 떠나고 만다. 단순히 “극우 보수세력의 나팔수 역할”을 맡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극우 보수세력에 자랑스럽게 편입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국회에 입성한 ‘국회의원 이윤성’ 씨는 과연 어떤 활동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가? 그는 15대 국회에서 한 때 ‘연구하는 방송 앵커 출신 국회의원’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으나,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서는 잠시나마 지켜왔던 ‘정책개발형 국회의원’의 거죽을 벗어 던지고 이른바 ‘한나라당의 저격수’로 변신해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다.

올해 4월 문화관광위에서 벌어진 에피소드 하나. 그는 영화계 출신인 장관에게 “애들 장난하는 거냐”, “영화 같은 얘기하지 마라” 등의 발언을 해 일부 신문에서 “국회의원들이 장관을 상대로 거친 언어를 동원, 인신 공격성 질의를 펼치는 사례가 빈발하면서 장관 길들이기 논란을 낳고 있다.(2003.4.16일자 좬문화일보좭)”는 지적과 함께 “국회 문화관광위에서 (…) 한나라당 저격수로 기자 출신인 이윤성, 고흥길, 이원창 의원 3인방이 적극 나서 눈길을 끌었다. (같은 날,좬국민일보좭)”는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후 KBS 가 남북 교류와 관련해 지출한 비용에 대해 ‘퍼주기식 지급’이라며 공격을 계속하더니, 최근에는 송두율 교수 관련 프로그램을 들어 KBS 에 대한 공격의 선봉임을 자임하고 있다.

이윤성 씨는 지난 2일, “이종수 KBS 이사장이 송두율 씨가 초대 의장을 지냈던 독일 민주사회건설협의회 의장을 지냈다” 고 주장하며 “송씨를 미화하는 데 이 이사장이 개입한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고, 조선과 동아 등 보수 신문들은 이를 일제히 기사화하며 KBS에 대한 붉은 색 덧칠하기에 열을 올렸다.
이씨는 다음날인 3일 기자들을 만나 “송두율 씨가 김일성과 묘향산 별장에서 김일성이 즐겨먹는 언 감자로 만든 국수를 먹었다고 자랑했다”며 송 교수와 관련된 색깔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이어 4일에는 KBS 〈귀향-돌아온 망명객들〉 와 관련된 취재 일정과 취재진 명단은 물론이고, 〈한국사회를 말한다〉 제작진 전원의 고교 이후 학력과 최근 5년간의 경력이 국정감사에 필요하다며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 의원의 이런 행보를 두고 또다시 일부 신문에서 “한나라 4인방 - 정형근, 홍준표, 이윤성 대정부 공세 앞장 속 ”너무 튄다“ 비난 (2003.10.4 좬문화일보좭)” 이라는 지적을 하기에 이른다. 이윤성 씨를 비롯한 이들이 “관련 정보를 최병렬 대표에게 수시로 보고하면서 투쟁 방향과 수위를 조절하는 등 (…) ‘물 만난 고기’ 격으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는 것.
이 신문은 하지만 이들의 활동에 대해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자신들의 경쟁적 공세결과로 송 교수 활동에 관한 일부 내용의 과장 논란을 초래하고 색깔론 공방으로 확대”시키고 있다는 곱지 않은 시선과 함께 “쓸데없이 오버하는 탓에 당이 곤혹스럽다, 이들이 가급적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KBS에 몸담고 있을 당시 왜곡과 편파 일색의 보도를 일삼아 한국방송사를 굴종과 치욕으로 얼룩지게 했던 장본인, 기자 이윤성.

이제 그는 KBS 기자이자 앵커 출신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 당 대변인과 대선 기획단 홍보담당, 그리고 국회 문화관광위원을 거치며 KBS에 대한 공격의 선봉에 자리잡고 있다. 자신의 경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KBS를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씨가 5·6공 시절의 편파 왜곡 보도로 KBS를 욕되게 한 과거를 반성했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부역언론인 시리즈는 다음호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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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0/21 [14:0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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