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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사각지대 놓인 사람들 이야기 ‘나의 올드 오크’
[임순혜의 영화나들이] 켄 로치 감독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람들의 연대 다뤄
 
임순혜   기사입력  2024/01/19 [18:27]

영화 ‘나의 올드 오크’는 켄 로치 감독의 4년 만의 신작으로 켄 로치 감독의 15번째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 제76회 칸영화제에서 상영 후 뜨거운 기립 박수를 받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영화다.

 

▲ 영화 ‘나의 올드 오크’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나의 올드 오크’는 소외된 두 공동체의 이야기를 담으며 ‘함께’의 중요성을 환기시킨 작품으로, 칸영화제 상영 직후 켄 로치 감독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계속 싸우다 보면 결국은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해 참석자들을 감동시켰다. 

 

BBC의 TV 드라마 연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켄 로치 감독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관료주의 시스템과 홈리스 문제를 꼬집은 ‘캐시 컴 홈’(1966)으로 영국 사회를 강타하며 대중들에게 자신을 이름을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이후 영화 ‘불쌍한 암소’(1967)로 첫 장편 데뷔를 치른 그는 줄곧 노동, 빈곤 등 우리 사회의 사각 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중앙에 가져다 놓는 시도를 주저하지 않은 감독이다.

 

▲ 영화 ‘나의 올드 오크’의 한 장면  © (주) 영화사 진진

 

켄 로치 감독은 노동자 소년과 매의 우정을 통해 현실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계급의 한계를 그린 ‘케스’(1969)가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된 것을 시작으로, ‘아일랜드 독립’이라는 역사의 광풍 앞에 놓인 두 형제의 이야기를 그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과 영국 내 복지 시스템의 허점을 비판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 수상한 전 세계에서 단 9명의 감독 중 하나로,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는 굳건한 작품관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나의 올드 오크’는 그의 칸영화제 18번째 상영작이자 15번째 경쟁 초청작으로, 역대 감독 중 최다를 기록하며 명실상부 ‘칸이 사랑한 거장’임을 입증한 작품이다.

 

▲ 켄 로치 감독과의 화상 간담회 , 2024년 1월5일 오후, 용산 CGV  © 임순혜


켄 로치 감독은 영국의 역사적 과오가 남아있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그리고 기회의 땅 미국과 혁명의 불씨를 꿈꾸는 남미 등 전 세계를 배경으로 다양한 삶의 형태를 포착해왔다. 

 

그는 과거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직격으로 맞닥뜨린 영국 북동부 지역에 집중, 성실한 목수의 이야기를 통해 약자를 배제한 복지 제도의 모순을 이야기하거나 평범한 행복을 꿈꾸는 가족의 삶을 바탕으로 불평등 계약 앞에 놓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날카롭게 묘사했다. 

 

‘나의 올드 오크’는 영국 사회 내 뿌리 깊은 빈곤과 차별에 집중해온 켄 로치 감독과 폴 래버티 작가의 주제의식이 영국을 넘어 국제 사회로까지 확장된 것을 보여 준다.

 

▲ 영화 ‘나의 올드 오크’의 한 장면     ©임순혜

 

1984년, 당시 영국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는 비효율성을 이유로 국영 탄광을 폐쇄하고 약 2만 명에 이르는 광산 노동자들을 해고한다. 이에 수많은 광부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2년여에 걸쳐 대규모 파업을 진행하지만, 결국 국가의 승리로 돌아가며 많은 이들은 생계를 잃는다. 

 

‘나의 올드 오크’는 지역 사회를 지탱하던 산업의 몰락 이후 사회로부터 단절된 마을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곳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 영화 ‘나의 올드 오크’의 한 장면  © (주) 영화사 진진


‘나의 올드 오크’는 영국 북동부 더럼 주를 배경으로 실제 광산 마을이었던 머튼 (Murton)과 호덴(Horden), 이징턴(Easington) 등에서 촬영을 진행했는데, 당시 난민들이 겪었던 경험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표현하기 위해 실제 더럼 지역에 사는 시리아 가족들과의 많은 만남을 가지고, 방치된 지역 사회를 배경으로 트라우마를 지닌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영국 북동부의 폐광촌에서 오래된 펍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데이브 터너)는 어느 날 마을로 들어선 낯선 버스에서 사진작가가 꿈인 소녀 야라(에블라 마리)를 만난다. 마을 주민들은 불쑥 찾아온 야라네 가족과 다른 사람들을 반기지 않지만 TJ와 야라는 올드 오크에서 특별한 우정을 만들어 간다.

 

▲ 영화 ‘나의 올드 오크’의 한 장면     ©(주)영화사 진진

 

마을에 새로 들어온 야라의 난민이라는 이름표는 그녀를 마을 사람들로부터 멀찌감치 떨어트려 놓는다. 하지만 펍 ‘올드 오크’의 주인 TJ는 그런 야라를 성심성의껏 도와주고, 그들 사이에는 세대와 환경을 뛰어넘은 우정이 생겨난다. 

 

두 사람은 소외되고 굶주린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올드 오크’를 개방한다. 타인을 향한 관심의 중요성을 역설해 온 켄 로치 감독은 ‘TJ’와 ‘야라’의 관계를 통해 희미하지만 빛나는 연대의 가능성을 점차 마을 전체로 확장해 나간다. 

 

▲ 영화 ‘나의 올드 오크’의 한 장면  © (주) 영화사 진진


그들의 연대는 밥을 나누어 먹는 것에서 시작된다. 과거 국가로 인해 고통 받던 사람들이 “함께 나눠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라고 외쳤던 것처럼, 그들의 구호는 오랜 시간이 흘러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곳으로 흘러 들어온 이방인들에게로 뻗어간다. 

 

주인공 ‘TJ’ 역을 맡은 데이브 터너는 은퇴한 더럼 주의 소방관으로 지역의 노조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촬영 당시 친구의 추천으로 다니엘이 이력서를 돌리는 업체의 사장으로 짧게 출연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미안해요, 리키’에서도 리키와 설전을 벌이는 택배 고객으로 짧게 출연, 이후 데이브 터너는 켄 로치 감독의 러브콜을 받아 수차례 오디션 끝에 ‘나의 올드 오크’로 정식 배우로 데뷔하게 되었다.

 

▲ 영화 ‘나의 올드 오크’의 한 장면     ©(주)영화

 

야라 역의 에블라 마리는 시리아 배우를 찾고 있던 켄 로치 프로덕션의 수소문으로 오디션을 치른 뒤 영화에 합류, 그녀는 야라를 표현해 내기 위해 자신이 실제로 보고 들은 시리아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시리아의 혁명과 그 후에 관한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며 공부해 사실감을 구현했다. 

 

‘나의 올드 오크’는 “두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라는 켄 로치 감독의 설명처럼 사람들 사이의 공존에 관해 질문한다. 켄 로치 감독은 서로를 돕는 인물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희망에 관해 말한다.

 

끝내 두 공동체는 서로가 타의에 의해 각자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같은 상황에 처했음을 알게 된 그들은 둘에서 하나가 되는 진정한 연대를 맞이한다.

 

▲ 영화 ‘나의 올드 오크’ 포스터  © (주)영화사 진진

 

‘나의 올드 오크;는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기 위한 힘은 결국 모두가 함께 할 때 생기며, 이 힘은 관객들에게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울림을 던지며 주변의 이웃을 돌아보게 한다.

 

중요한 건 소수를 구별 짓는 것이 아닌 누구나 소수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나의 올드 오크’는 1월17일(수) 개봉해 절찬 상영 중이다.

 

글쓴이는 '미디어운동가'로 현재 미디어기독연대 대표, 언론개혁시민연대 감사,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공동대표/ 운영위원장, '5.18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특별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 심의위원을 지냈으며, 영화와 미디어 평론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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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미디어운동가'로 현재 한신대 외래교수, 미디어기독연대 집행위원장, 경기미디어시민연대 공동대표이며, 영화와 미디어 평론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