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일자 <제일기획 부사장 등 언론사 방문...기자들 "법적 대응하겠다">에 따르면, 연예인 개인정보 파일 유출 사건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제일기획측이 20일, 이번 사건에 연루된 기자가 소속된 언론사를 방문해 유감의 뜻을 전달했단다. 제일기획 부사장과 상무는 이날 오전부터 연합뉴스와 일간스포츠, 서울스포츠, 스포츠투데이, 스포츠조선, 한국스포츠 등 언론사를 잇달아 방문해, 해당 언론사 간부들에게 “본의 아니게 언론사와 기자들에게 피해를 입혀서 죄송하다”며 사과하고, “해당 기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언론사를 방문한 삼성그룹 계열사 제일기획 간부들. 이들은 지금 누가 가장 큰 피해자인지를 가리지 못하고, 이 사건마저도 ‘힘 있는 쪽’을 먼저 의식하고 대응하는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기자들이 제1의 피해자가 아님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제1의 피해자는 그 명단에 들어가 있는, 온갖 추문에 휩싸인 연예인이다.
연예인X파일이 사실이든 아니든, 사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며, 이것은 극단적인 인권침해다. 하지만 제일기획은 연예인들에게 먼저 찾아 가 사죄하기보다는 언론사를 먼저 방문해서 사과를 구했다. 개 눈에는 X만 보인다더니, 오로지 언론사만 그들의 눈에 보인 모양이다. 연예인의 인권은 눈앞에 없다는 듯이 말이다.
기자들의 태도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위 기사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 연루된 한 기자는 ‘제일기획은 우리와 약속을 어겼고, 해당 문건 관리에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그는 ‘이번 사태의 책임은 제일기획이 져야한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이번 방문은 어떤 실효성도 없었다’고 일축했다”고 한다.
제일기획에 책임을 전가하며 책임선상에서 발뺌하고자 하는 의도가 뚜렷하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각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언론 현업인 단체인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0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는 성명을 통해 "기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한다 해도 그들은 결과적으로 언론인의 자격으로 취재과정에서 취득한 미공개 정보를 기업에 제공하고, 금전적 이익을 취한 것"이라며 “이들 기자들은 알권리를 위한 언론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취재 내용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기업의 의도를 알고서도, 일종의 거래를 한 것이다. 특히나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하니, 광고기획사의 인터뷰 목적과 대가의 성격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한다.
관련 기자들이 보이는 문제는 ‘공범행위’ 자체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보안유지 실패’의 문제만 부각시키며 광고회사에게 책임을 돌리는 행위다. 기자들의 이런 태도는 그 뿌리가 깊다. 92년 대선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복집사건’, 즉 현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 후보였던 김영삼 전대통령의 선거참모였던 전 법무장관 ‘김기춘’ 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부산지역 언론사 사장 등 유지들을 모아놓고 ‘지역감정’을 선동하라는 주문을 하고 있는 현장이 도청을 통해서 폭로된 사건이다.
당시 YS는 ‘도청’만 문제 삼아 ‘음모론’을 외쳤고, 한국 언론사들은 ‘지역감정선동’과 ‘불법선거운동’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오히려 YS의 의도대로 ‘도청을 누가 했는가’에 지면을 집중 할애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는 바람에 YS의 대선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건이다. 이런 못된 정치적 술수와 속임수가 연예인 X파일 사건에서 관련 기자들의 행위를 통해 또 다시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놓치고 있는 영역이 있다. 제일기획의 사과과정이나 기자들의 본질 흐리기 술수보다 더 심각한 것은 삼성계열사의 일상적인 사찰행위라는 점이다. 이미 이런 삼성식의 사찰행위는 ‘정보수집’이라는 명분으로 그 동안 일상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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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MBC 시사매거진 에서 방영된 삼성기업의 초일류탄압 내용 ©박미경 |
2000년 봄, 성균관대학교 총학생회는 삼성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성균관대학교 모든 교수들의 정치적 성향, 개인적 성향, 삼성에 대한 태도 등으로 분류한 ‘교수 사찰 문건’을 폭로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해 가을 삼성SDI는 이동통신 ‘친구 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노조가입 움직임을 보이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위치추적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또 얼마 전 삼성해고노동자들의 일일주점을 찾은 삼성 직원이 회사로부터 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삼성그룹이 그 동안 자행해 온 사찰, ‘노동자 사찰’ ‘교수 사찰’ 등이 이번 ‘연예인X파일’까지 이어져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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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박사, EBS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언론개혁을 위해서라면 전투적 글쓰기도 마다않는 양문석 정책위원. ©대자보 |
삼성그룹, 그들 간부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누군가에 의해서 감시당한다고 생각해 보라. 당신의 내밀한 사생활이 기업에 의해서 조사되고 기록된다고 생각해 보라. 당신들은 ‘당연한 일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혹여 모르는 간부들에게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범죄행위인지를 알려 주고 싶다. 그리고 인격파괴행위인지도 가르쳐 주고 싶다.
이번 사건으로 ‘관련 연예인들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보라, 그들의 가족들과 친지들이 어떤 상처를 감내하고 있는지를 보라.’ 인생이 파탄 나고 가족이 해체되며 국내외 연예산업이 침몰지경에 이른다면, 이 모든 책임은 삼성이 져야 한다. 그것도 세상에 가장 파렴치하고 비열한 ‘암행사찰’의 결과로 인해. / 논설위원
* 본문은 경향신문 '언바세바'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