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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2만매에 채운 수구언론 전쟁기
지식인조차 조중동 프레임에 갖혀있어, 언론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
 
양문석   기사입력  2004/12/28 [15:49]
2004년을 보내며
 
2002년 벽두부터 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 활동하면서 만 3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뒹굴고 같이 싸우면서 또한 많은 글을 썼다. 지난 3년 동안 A4용지로 무려 3천매, 원고지로 치면 무려 2만매에 가까운 글을 썼으니... 거의 매일같이 메일링리스트에 있는 '독자'들에게 글을 보냈고, 급기야 제발 '스팸메일' 좀 그만 보내라고 항의(?)를 받을 만큼 말 그대로 '양산'해 왔다.
 
하지만 지금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은 이제 3년 동안 써 온 글보다 참신한 글, 더 나은 글을 쓸 수 없다는 절망감에 좌절한다. 한국언론의 보도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지금부터는 사례만 교체해서 똑 같은 분석과 동일한 결론 앙상하게 남기 때문이다.
 
▲전국언론노조, 언론개혁국민행동은 지난 11월 8일부터 언론개혁을 촉구하기 위해 여의도에서 천막을 치고 철야농성, 권역별 집회 등 총력투쟁에 나섰다.     ©대자보

 최소한의 변화가 수반될 때 비평하는 입장에서도 새로운 도전과 새로운 학습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고, 상대적으로 발전된 글쓰기를 할 수 있다. 그래야만 한국언론의 보도태도와 뉴스를 비평하는 이들의 수준도 더불어 향상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변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보다 높은 저널리즘의 원칙을 주장할 수도 없고, 또 그런 글쓰기를 한다고 해도 현실과 괴리된 형이상학적 주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객관성. 한국언론과 비평쪽에서 공히 함께 고민해 왔던 화두다. 이것은 최소한의 언론규범이요, 비평쪽에서는 최소한의 언론규범만이라도 지키라고 비판하고 요구해 온 것이 한국언론사와 함께 한 100년 가까운 세월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실성과 공정성 즉 객관성은 하나의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인 것처럼 광화문 네거리를 유령처럼 떠 돌뿐, 정작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의제에서는 철저히 비사실성과 불공정성이라는 '무시된 객관성'만 난무한다.
 
거짓말, 왜곡, 오보,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태도가 뿌리를 내린 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축구장의 심판처럼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은 심판복을 입은 채 심판의 권력을 그대로 가진 채 '선수'처럼 행동한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팀 선수들과 함께 달리며 패스하고 심지어 상대방 선수의 옷을 잡아  당기고 다리를 건다. 상대방 선수가 항의하거나 파울을 범하면 어김없이 휘슬을 불고, 벌칙을 내린다. '우리 편'이 항의하거나 파울을 범하면 눈을 감고 먼 산을 쳐다본다. 골을 넣지 못하면 '칼럼이나 사설'을 동원해서 '작전명령'을 내린다. 혹여 지고 있으면 이길 때까지 '인저리타임'을 적용한다. 공정성이 생명이어야 할 심판이 오히려 선수로 뛰고 심지어 감독역까지 자임하는 한국언론의 현실에서 '발전' '미래'라는 용어 자체가 허무개그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이런 허무개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소위 말하는 '비판언론'들 즉 수구언론이 가장 열심히 사용하고 있다는 데서 또 다른 허무감을 느낀다. 과거를 제대로 규명 정돈한 이후 오늘과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를 배우고 연구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를 덮자고만 한다. 과거를 들여다보는 행위는 미래를 희생시키는 행위이자 오늘마저 죽이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역사를 배울 이유, 역사를 연구해야 할 이유마저 깡그리 뭉개버린다.
 
더 절망적인 것은 일부 역사학자들마저도 이들 '비판언론'이라 자칭하는 수구언론들의 인터뷰에 나서 '과거'에 발목 잡혀 오늘과 내일을 희생시키지 말라고 답한다.
 
과거사와 역사학자들만의 문제일까. 그 주제와 그 사람들만의 문제라면 이렇게 절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영역의 주제와 거의 모든 지식인들의 문제라는 점에서 국가사회의 발전, 민주주의의 발전에 절망하는 것이다.
 
상당한 한국 사회의 주류들은 확신범이다. 자신의 이익과 수구언론 그리고 수구세력의 이익을 동일시한다. 하지만 그것이 왜 착각인지를 모를까. 결단코 수구세력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행동했지, 국가사회를 고려한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매일같이 현미경으로 뒤진 지난 3년의 보도, 그러면서도 수구언론을 2-30년 전까지의 보도까지 챙기면서 나름대로 숲을 보려했던 3년 동안의 결론은 상황에 따라 정치권력에 따라 끝없이 변신하면서 이윤을 쫓아갔고, 권력을 공유해 왔던 것이 수구언론이었다. 그들이 국가사회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거나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범'의 범주에 수구언론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절망감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이들이 수구언론의 프레임에 갇혀 사는 것이 '무지로부터의 확신'이라는 분석을 해 본다. 바로 이 순간 '절망의 끝은 희망'이라는 위안을 얻는다. 최소한 뉴스비평의 근거를 찾는다. 왜냐하면 확신범들에게 주입된 잘못된 이미지를 하나하나 양파 껍질 벗기듯 벗겨 주면, 그리고 그 내용이 바람 부는 날 길거리에 날리는 신문 쪼가리일지언정 그들에게 도달하면, 그들의 확신에 최소한의 바늘자국은 남겠지 하는 심정으로 또 다시 '진부한' 뉴스비평을 계속해야겠다. 
 
혹여 몰라서 혹시 수구언론의 국가 사회의 파괴적 행위를 몰라서 자신 확신으로 수구언론과 수구세력을 지지하는 것이라면, 동일한 분석과 동일한 결론으로 끊임없이 반복해서 세상에 알려야 하는, 계속해서 또 분석해서 써야 할 이유고, 이런 '종이쪼가리'가 흙바람에 날아다니기를 바라는 이유이다. 
 
▲언론학 박사,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위원이지만, 언론개혁을 위해서라면 전투적 글쓰기도 마다하지 않는 양문석 전문위원     ©대자보
마지막으로, 한 해를 보내면서 기억하고자 한다. 언론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너편 천막촌에서 칼바람에도 끄떡없이 "언론을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자는 현수막을 걸고 언론개혁입법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전국언론노동조합 동지들, 또 인천의 송도에서 직장폐쇄로 인해 자신의 사업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살을 에는 듯한 갯바람과 지배주주 그리고 경영진 그리고 방송위원회와 맞서 싸우고 있는 iTV경인방송의 260명의 조합원, 또 하나의 위장폐업에 고통 받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일어서고자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충청일보 조합원, 해고로 인해 엄청난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당당한 스포츠조선 조합원, 그들의 지난한 투쟁을 2004년은 기억해야 한다.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언론개혁의 대의를 끝없이 훼손하며 정쟁의 대상으로 언론개혁관련 법안을 전락시킨 열린우리당도 2004년을 보내지만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새해는 한국언론에서 모기다리만큼의 진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한 해를 가슴에 고이 접는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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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12/28 [15:4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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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hkdlxld 2004/12/29 [14:01] 수정 | 삭제
  • 화이팅!!

    어제의 요구가 오늘의 논쟁이 내일의 법이 된다.

    언론개혁법 쟁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