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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의 최만리는 조선일보 집단
아무도 기억하지 않은 558돌 한글날, 한글과 한국말을 싫어하는 한국인들?
 
이대로   기사입력  2004/10/18 [02:35]
  올 10월 9일은 한글이 이 땅에 태어난 558돌이 되는 날이다. 한글은 태어난 지 558해가 지났는데도 그 임자인 한국사람들로부터 제 대접을 못 받고 있다. 한글은 태어날 때도 힘들었지만 자라고 살아가는 데도 힘들다. 많이 배우고, 잘사는 사람들이 제나라의 글자인 한글을 싫어하고 못살게 짓밟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남의 나라 사람들이 우리 글자인 한글을 못살게 구는 게 아니고 이 나라 지배층이 그러하다.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아프다.

  나는 이를 안타깝게 여겨 60년 대 학생 때부터 한글이 한국에서 나라 글자로 떳떳하게 쓰이고 한국인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한글문화, 배달겨레의 자주문화가 꽃피는 날을 꿈꾸며 40여 년 동안 국어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자나깨나 불조심이라고 했는데 나는 자나깨나 한글조심, 한자조심, 영어조심이었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란 노랫가락이 있는데 나는 "앉으나 서나 한글 생각"을 했다. 손가락질을 밭으면서까지 바보처럼 한글만 고집했다. 그래서 성과와 보람도 맛보았지만 끈질기게 한글을 싫어하고 못살게 구는 힘센 자들 때문에 화가 나고 가슴이 아팠다.

▲한글날, 앵무새들에게 고함!     ©정화영의 소금밭
 
  누가 한글을 못살게 굴었나? 지난 40여 년 동안 지켜보니 많이 배우고 잘났다는 교수나 교장, 힘이 있다는 국무총리나 장관, 돈이 많다는 큰 회사 사장과 경제단체, 언론인과 신문사였다. 일제시대 공부를 많이 하고 잘 나가던 사람과 미국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 공무원으로서 이 나라 지배층을 이루고 제 나라의 말글이 잘 되는 걸 배 아파하고 가로막았다. 558년 전, 한글이 태어날 때도 잘 나고 힘있는 이들이 그랬듯 말이다. 똑똑하고 잘났다는 집현전 학자 최만리와 힘있는 정치인들, 중국 학문 숭배자들이 세종에게 한글(훈민정음)은 안 된다고 대든 일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558년 전에 집현전 학자 최만리는 중국이 한자를 쓰고, 오래 전부터 한자에 길들여졌으니 한글은 안 된다고 했는데, 오늘날 학술원 권이혁과 서울대 이희승도 일본이 한자를 혼용하고 식민지시대 한자혼용에 길들여졌으니 한글은 안 된다고 하고 있었다. 힘있는 정치인 김종필과 박태준이 한글만 쓰기보다 일본처럼 한자를 섞어 써야 한다고 한 것도 그렇고, 돈 많은 전경련, 경총 같은 경제단체들이 일본과 중국을 내세우며 한자를 섬기는 것도 모자라 강대국 미국말 섬기는 일에 발벗고 나선 일이나 힘있는 신문사 조선일보가 맞장구치는 일이 모두 최만리 시대와 똑 같은 주장이고 논리였다.
 
  다행스럽게도 올 558돌 한글날엔 많은 신문과 방송이 우리말과 한글을 걱정하고 살리려는 모습이 보였고 많은 국민이 우리말을 걱정했다. 이제 우리말과 한글을 살려야 한다는 게 큰 흐름이고 많은 국민의 바람이다. 그러나 한줌도 안 되는 이들이 그걸 못마땅해 하고 있다. 한글이 태어난 돌잔치 축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한 본보기를 보자.
 
   10월 14일 조선일보 만물상에 김태익 논설위원은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이 올 하반기 그룹 공채를 실시하면서 한자 실력 있는 사람에게 가산점을 주고, 사원 한자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LG전자는 올해부터 사내 영어 공용어화 작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입장에선 영어를 모르면 ‘세계의 고아’, 한자를 모르면 ‘아시아의 고아’ 신세를 면할 수 없다. 국가가 내팽개친 한자교육을 뒤늦게나마 되살리고, 영어공용화를 밀어붙이는 것은 민간기업들이다. 그 기업들이 세계경제포럼에서 대한민국 정부보다 훨씬 나은 점수를 얻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조선일보의 한자혼용론의 목적은 한문세대, 즉 보수층의 정서를 붙잡아 둘려는 얄팍한 술책이다. 한자는 제2 외국어로써 영어처럼 체계적인 연구와 학습을 통해 체득해야 한다. 한자혼용론은 한글도 망치고 한자도 망치게 된다.     © 조선일보 10월 15일자 PDF
 
  조선일보는 은근히 한자와 영어, 그리고 이를 떠받드는 기업을 추켜세우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한자를 더 많이 쓰게 한다고 큰소리로 선전하고, 엘지전자가 영어를 공용어로 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자세히 보도하면서 한자와 영어 열병을 부채질하고 있다. 한글과 우리말 짓밟는 일에 재벌기업과 재벌언론의 손발이 척척 맞는 본보기다.
 
  이렇게 대기업과 족벌언론이 한글과 우리말을 싫어하고 빛나지 못하게 찬물을 끼얹는 건 어제오늘만 있었던 게 아니고 오래된 병이다. 한글만 쓰기를 가로막고, 영어 조기교육과 공용어 바람을 일으킨 게 저들이고,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게 하고 국경일로 만들지 못하게 하는 자들도 저들이다. 그래서 저들은 우리말 훼방꾼 정도가 아니라 우리말과 한글 역적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왜 힘있고 돈 많고 똑똑하고 잘났다는 자들이 한글을 싫어할까?  한글이 못나서 일까? 아니다. 한글은 온 누리에서 가장 잘 난 글자다. 그들은 한글이 얼마나 잘 났는지 모르고 있다. 힘있는 나라의 말과 글자만 보이고 우리 말글은 보이지 않는다. 힘있는 나라에 빌붙어 저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에서 한글이 우습게 보였고 걸림돌이었다. 제 나라 말글로 백성들이 똑똑해지고 힘쓰게 되는 걸 겁내는 못난 자들이고 얼빠진 자들이라 제 나라 것은 모두 우습게 보이는 것이다.
 
  한글과 한글날은 하루 놀지 않고 일하는 가치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고 중요한 날이다. 그런데 전경련은 이번 한글날에 언론이 확인하니 휴일이 하루 늘기 때문에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반대한다고 분명히 말하더란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것이다. 한글날은 우리말과 한글을 지켜주는 울타리요 우리 겨레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살려주는 버팀목이다. 우리말을 살리고 빛내기 위해서도, 우리의 문화 경제 정치 과학발전을 위해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우리말과 우리 글자인 한글을 지키고 빛내는 일이다. 남의 말글을 우리 공용어로 하는 문제는 돈벌이 때문에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나라와 겨레의 생존을 뒤바꿀 일로서 매우 신중하게 결정할 일이다.
 
   나도 한자와 영어를 배우고 잘하면 좋다는 걸 안다. 그러나 그 보다 우리말과 한글이 온 국민에겐 더 중요하고 너무 지나치게 한자와 영어를 숭배하니 문제를 삼는 것이다. 한글과 우리말이 물과 공기라면 한자나 영어는 꿀과 향수와 같다. 꿀과 향수가 비싸고 좋은 거지만 지나치게 좋아하고 많이 먹고 쓰면  오히려 몸에 좋지 않다. 물과 공기가 없으면 사람이 살지 못한다. 꿀과 향수가 없어도 살 수 있다. 우리말과 한글이 없으면 우리 겨레는 사라진다. 한자나 영어는 없어도 우린 살 수 있다. 그걸 경제단체와 보수언론과 한자와 영어 숭배 학자들은 깨닫기 바란다.
 
   우리말이 죽으면 우리 겨레도 사라지고 나라도 망할 수 있다. 지금 외국어 열병을 고치지 않으면 큰 불행을 겪게 된다. 벌써 한글과 우리말을 살리는 일은 한글단체나 일부 국민의 힘만으로는 안 될 상황이다. 영어 열병이 너무 심하게 들었고, 국민정신이 너무 풀렸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하고 특별 국가기관을 만들어 정부와 언론과 국민이 힘을 모아 애써도 쉽지 않게 되었다. 정부와 국회는 우리말과 한글을 살리고 빛내는 일에 더 이상 뒷짐지고 있지 말라. 경제단체는 하루 놀고 안 놀 고로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반대하지 말라.
 
  언제까지 겨레와 나라의 근본을 다지는 일을 경제가 어렵다고 미루고 가로막을 것인가? 이 일은 더 미룰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이 바로 우리말을 살리고 빛낼 때다. 이제 굶어 죽는 시대는 아니다. 이제 좀 줏대 있는 나라를 만들고 어깨를 펴고 살 생각을 하고 힘쓸 때다. 중국 일본 미국이 대단한 나라지만 우리도 대단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보자. 우리말과 한글이 살고 빛나면 다 가능한 일이다. / 본지고문
 
* 필자는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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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10/18 [02:3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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