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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 폐지 핵심은 민주주의 對 독재
[논단] 인공기 거론 등 한나라-조중동 수구세력 문제제기 말려들면 안돼
 
뒤집기   기사입력  2004/09/12 [17:22]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수구세력이 계속 국가보안법 폐지와 관련하여 본질적인 문제점을 비켜가고 있다. 이 페이스에 말려든 열린우리당의 원칙없는 자세도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 국가보안법 폐지는 민주주의 對 독재(군사독재,북한독재)의 문제이다. 이의 논의를 위해서는 우선 민주주의의 핵심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모든 인간의 권리는 동일하며 침해받을 수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민주주의의 핵심을 부정하려는 것은 가장 중요한 규제 대상이 된다.
 
“1차적인 권리”
1차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선택된 것(예컨대 흑인, 동양인,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부당한 공격은 반드시 규제해야 할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우리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돌팔매질을 당하고 폭언을 듣는다면 이건 민주주의 체제라고 할 수 없다.
 
“2차적인 권리”
2차적으로는 자신의 의지에 의해 선택한 것(예컨대, 생각, 사상, 표현)에 대해서도 공격받거나 처벌받지 않을 권리가 모든 개개인에게 있다. 여기에는 세가지 예외가 존재한다.
 
그 첫 번째 예외는 사상, 표현의 자유가 위에 말한 1차적인 권리를 침범할 때 적용된다. 예컨대 인종차별 -- 물론 인종이란 말자체가 틀린 개념이라는 주장도 있다 -- 등을 침범할 때 표현의 자유는 규제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주의가 필요하며 사상의 자유는 침범할 수 없다. 독일의 신나찌가 규제되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두 번째 예외는 “명백한 무장력”으로 국가권력을 탈취하려는 것에 대한 규제이다. 15세기도 아닌 지금 총, 수류탄, 박격포 등의 (중)화기가 없는 무장력은 사실상 무장력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자.
 
세 번째 예외는 국가적 기밀에 해당하는 사안에 대해 스파이 행위를 한 것에 대한 규제이다. 우리로서는 반대입장일 수 있지만, 원론적 의미에서 로버트 김 사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세 가지 예외를 제외한 학문, 사상, 표현의 자유가 규제/억압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민주주의 체제와 독재 체제가 명백하게 구별된다. 유럽 국가들을 보면, 극좌파로 분류되는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트로츠키주의 등이 사회주의 좌파 계열, 우파 계열, 극우파와 함께 백가쟁명 식으로 경쟁하고 있다. 극단적인 정치세력은 규제하고 보는 게 독재체제의 특성이라면, 오히려 합법적인 공간에서 그처럼 경쟁하게 함으로써 비현실적인 정치세력을 5% 미만의 지지율에 머물게 하여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사실상 용해시키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의 특성이다. 이것이 민주주의 체제의 장점이자 효율성이다.
 
“박정희 독재자”, “전두환 나쁜자식”이라는 표현으로 경찰, 정보기관 끌려가서 고문과 구타를 당하는 것을 민주주의 체제라 생각할 수 없듯이 여타의 다른 생각, 표현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탄압을 받는 것은 한마디로 독재체제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와 김일성, 김정일 독재체제는 독재체제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는 사실상 허용했더라도 영향력이 미미했을 사회주의 세력을 탄압함으로써 정권을 유지했다. 사회주의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사회주의를 탄압함으로써 민주주의 세력, 반정부 세력도 탄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학자나 정치세력이 사회주의에 대해 말하는 것이 별 것 아닌 일로 되었다. 군사독재가 걱정했듯이 사회주의에 대해 말한다고 해서 갑자기 사회주의자가 벌떼처럼 느는 건 아니라는 점이 입증되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은 북한찬양 사이트가 전세계에 널렸고 일부 내용이 국내 게시판에 1년 동안이나 게재되었다고 개탄했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느슨한” 상황이 국가안보를 해친 것도 국내 친북세력을 급격하게 늘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조선,동아가 열심히 광고해주고 있을 뿐이다.
 
즉, 국가보안법은 이미 무력화되었고, 사회주의든, 친북세력이든 민주주의의 용광로는 한데 섞어서 녹여버리기 시작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이처럼 이미 사문화되어가는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런 점에서 수구세력이 인공기를 흔드는 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하는 질문에 “다른 법으로 처벌하면 된다”고 답하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대답이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예외가 아닌 한 모든 사상,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라고 해야 정답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질에서 벗어난 대답을 하기 때문에 조선일보 등이 그 모순점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다른 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면 왜 국가보안법을 없애려고 하느냐는 질문이 그것이다.

실제로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을 닮은” 대체입법이나 형법보완을 추진해서는 조선일보식의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 결국 정도를 걸어야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북한을 위한 간첩행위를 처벌할 수 있게 형법을 고치는 정도의 보완이면 족하다.

조선일보 등 수구세력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에 대한 몰이해이다.
 
이런 사회를 상정해보자. 이 사회의 “살인방지법”은 모든 사람은 한시간에 한번씩 자기가 한 일, 간 곳을 보고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을 폐지하려고 하자, 조선일보 같은 신문이 나서서 "그것은 유영철 같은 살인범을 양성하자는 것 아니냐"고 고함을 친다.
 
사실 이런 “살인방지법”이 있으면 유영철 같은 이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법을 옹호하는 것은 개개인의 소중한 권리를 무시하는 독재적 발상에서나 나올 수 있는 것이다.
 
4천만 인구 중에 김일성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김일성이 항일운동을 한 것 등은 평가할 수 있을지언정 맹목적인 김일성 찬양은 많은 한국인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위의 살인방지법 같은 식의 법률로 이를 규제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다. 그것을 법률로 규제하려는 순간 우리는 독재체제에 주파를 던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어떤 정치세력이 김일성, 김정일을 공개 찬양하면 그 영향력은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조선일보가 우려하는 일은 이미 정치적으로 규제가 가능하다. 이렇게 민주주의라는 용광로에서 극단적인 세력은 그냥 녹여버리면 될 일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에서는 노동당 규약을 변경하지도 않는데 우리는 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는냐는 주장은 스스로 우리체제가 아직도 독재체제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독재체제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고백한 것에 다름아니다. 이것이야 말로 북한추종주의가 아닐 수 없다. 북한과 우리의 정치체제가 다른 본질적인 이유는 그것인 독재식이냐 민주주의 식이냐에 있지 자본주의자를 규제하느냐 사회주의, 친북세력을 규제하느냐에 있지 않다. 그런 규제체제는 뒤집어진 북한체제일 뿐이다.
 
요컨대, 국가보안법 관련 핵심적 쟁점은 독재냐 민주주의냐인 것이고 국가보안법 폐지는 독재의 마지막 잔존물을 쓰레기통에 넣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수구세력이 국가위기라는 등 친북, 좌파세력이 창궐한다는 둥 호들갑을 떠는 것은 스스로가 독재체제의 쓰레기 잔존물임을 고백하는 일일 따름이다.

수십년간 유지해 온 군사쿠데타 독재세력의 후예가 장악한 의회 권력이 허물어진 올해가 민주주의의 진정한 원년으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 객원논설위원

* 필자의 홈페이지 안내 http://www.geocities.com/turnover2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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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9/12 [17:2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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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 2004/09/15 [00:23] 수정 | 삭제
  •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유럽이라는 너무 넓은 말을 사용하는 탓에 서로 다른 현실을 놓고 말했습니다.
    민주주의가 포용이라고 말하지만, 사람은 모든 것을 포용할 능력이 없기에 민주주의는 늘 목표입니다. 수구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주장은 증오하는 사상에도 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포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독재에서 벗어난 지 그래도 꽤 되었습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독재라고 하면, 이는 벌써 독재라는 말을 달리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독재로의 회귀룰 허용하거나 추구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 변했습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
    아주 작은 부분에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우리 사회에 수구 또는 진보가 필요 이상 비대하다는 판단을 누가 하지요? 영향력이 미미할 때만 그 존재가 허용될 수 있다는 생각과 그러한 판단에 이미 독재의 가능성이 자리잡고 있다고 봅니다. 수구의 정치활동을 금지할 방법은 없지만, "수구"라는 부정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이미 그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는 과거 "진보"라는 말에 빨간 칠을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 사상에 대한 부정적 가치평가는, 더우기 그것이 (권력)집단에 의한 것일 때, 그 사상의 자유로운 수용을 억압하게 됩니다.

    국보법 논란은 폐지보다는 대체입안 또는 대폭개정이라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습니다. 여하튼 자유와 인권이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 뒤집기 2004/09/13 [05:35] 수정 | 삭제
  • 살인방지법은 예인데요, 다른 나라라면 주민등록번호 등이 예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는 지문날인, 개인일련번호 부여 등에 대해서도 너무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니 좀 극단적인 예를 든 것 뿐이죠. 한달에 한번 주거 신고하는 예는 어떻습니까. 납득할 만한 예가 될까요?


    유럽의 극좌파 활동이 공산권 몰락 이후라는 건 틀린 사실임을 지적해드리고 싶네요. 그 몰락 이전에 정권을 잡은 미테랑 정권만 보더라도 사회당과 공산당이 합쳐서 이룬 정권입니다.

    공산권 몰락 이전까지 유럽이 우리의 국보법이 있듯이 극좌파를 탄압해서 구동구권과 체제경쟁을 했다고 판단하신 것도 사실 무근입니다. 그랬다면 그건 뒤집어진 공산국가였겠죠. 스탈린의 학살을 강도 높게 비판한 유럽 좌,우파의 자세는 사실상 민주주의(유럽)와 독재(구소련)의 대립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5%는 예로 든 것 뿐이고, 실제는 훨씬 미미하겠지요. 사회주의를 공개적으로 내세우는 사회당도 대부분은 그 존재 자체를 모르지 않나요? 물론, 조선일보는 5명이 모여서 친북발언해도 1면에 넣어 광고해주겠지만요. 이런 점에서 조선일보가 더 "간첩스럽다"는 겁니다.

    간첩죄 관련은, 황당한 이야기지만 헌법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 사이에 적용하는 간첩죄가 성립될 수 없으니 "국가가 아닌(?)" 북한을 위한 간첩죄도 처벌할 수 있도로 하자는 의미입니다. 물론 헌법을 고치면 더 논리적이긴 하지요.

    우리 사회가 존재를 보호, 유지하는 핵심은 민주주의라는 포용입니다. 그걸로 녹여버리는 거지요. 미국의 한 판사가 이야기했듯이 사상, 표현의 자유는 우리가 동의하는 사상이 아니라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에 대해서 허용하는 자유입니다.

    언젠가 썼지만 우리 사회의 수구는 필요이상으로 비대합니다. 한 5% 정도의 영향력으로 찌그러지는 것이 한국사회의 건강을 위해 좋을 것이라 봅니다. 수구의 정치활동을 금지할 계획이 없다는 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 세력은 수구에 비해 훨씬 포용적이고 자신감이 있습니다. 지금 현재의 수구는 행정권력을 상실했으니 독재는 아니지만 그 내용적인 측면에서 독재라고 봅니다.
  • 질문 2004/09/13 [00:19] 수정 | 삭제
  • "현실적으로 북한을 위한 간첩행위를 처벌할 수 있게 형법을 고치는 정도의 보완이면 족하다". 그러나 간첩행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그리고 살인방지법 같은 가정은 의미 없는 가정입니다. 현재의 국보법도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보법 문제를 민주주의 대 독재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대단히 유익한 일일 것입니다. 특히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준거로 내세운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러면서도 사족을 붙입니다. 왜냐하면 국보법은 민주주의에서도 불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의 악용을 우리 사회가 감시하고 막아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성숙한 사회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지난 몇 십년간의 민주화 투쟁을 통해 그만한 역량을 갖추었다고 봅니다. 그 법이 사문화되었다면 바로 그것이 그 증거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문화가 곧 불필요하다는 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유럽에 위에서 말한 사상의 자유가 실현된 것은 공산권의 몰락 이후일 것입니다. 체제 경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사라짐으로써 생겨난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전 까진 좌파 사상을 가진 교수는 학교에서 쫒겨나고 좌파 경향의 학교 졸업생은 취직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북과 이남은 현재도 엄연한 경쟁관계에 있습니다. 맑시즘 내지 주체사상은 한국에서 그 매력을 다 잃지 않았습니다. 또 5%의 수가 작다고 보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엔그 숫자면 혁명이 가능한 수였으니까요.그래서 공산권 몰락이후의 유럽과 현재의 한국을 평면비교한다는 것은 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 역시 자본주의와 독재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위에서 간첩죄라고 말한 것이 명칭과 형식에 상관 없이 결국 국보법의 개정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요? 개인이든 국가든 누구에게나 자기의 존재를 보호.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일테니까요.
    "사상의 자유를 허용하는 민주주의"는 수구로 지칭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이른바 수구일지라도 최소한 그들이 독재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다분히 논리적 관점의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