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수구세력이 계속 국가보안법 폐지와 관련하여 본질적인 문제점을 비켜가고 있다. 이 페이스에 말려든 열린우리당의 원칙없는 자세도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 국가보안법 폐지는 민주주의 對 독재(군사독재,북한독재)의 문제이다. 이의 논의를 위해서는 우선 민주주의의 핵심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모든 인간의 권리는 동일하며 침해받을 수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민주주의의 핵심을 부정하려는 것은 가장 중요한 규제 대상이 된다.
“1차적인 권리”1차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선택된 것(예컨대 흑인, 동양인,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부당한 공격은 반드시 규제해야 할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우리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돌팔매질을 당하고 폭언을 듣는다면 이건 민주주의 체제라고 할 수 없다. “2차적인 권리”2차적으로는 자신의 의지에 의해 선택한 것(예컨대, 생각, 사상, 표현)에 대해서도 공격받거나 처벌받지 않을 권리가 모든 개개인에게 있다. 여기에는 세가지 예외가 존재한다. 그 첫 번째 예외는 사상, 표현의 자유가 위에 말한 1차적인 권리를 침범할 때 적용된다. 예컨대 인종차별 -- 물론 인종이란 말자체가 틀린 개념이라는 주장도 있다 -- 등을 침범할 때 표현의 자유는 규제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주의가 필요하며 사상의 자유는 침범할 수 없다. 독일의 신나찌가 규제되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두 번째 예외는 “명백한 무장력”으로 국가권력을 탈취하려는 것에 대한 규제이다. 15세기도 아닌 지금 총, 수류탄, 박격포 등의 (중)화기가 없는 무장력은 사실상 무장력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자.
세 번째 예외는 국가적 기밀에 해당하는 사안에 대해 스파이 행위를 한 것에 대한 규제이다. 우리로서는 반대입장일 수 있지만, 원론적 의미에서 로버트 김 사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세 가지 예외를 제외한 학문, 사상, 표현의 자유가 규제/억압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민주주의 체제와 독재 체제가 명백하게 구별된다. 유럽 국가들을 보면, 극좌파로 분류되는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트로츠키주의 등이 사회주의 좌파 계열, 우파 계열, 극우파와 함께 백가쟁명 식으로 경쟁하고 있다. 극단적인 정치세력은 규제하고 보는 게 독재체제의 특성이라면, 오히려 합법적인 공간에서 그처럼 경쟁하게 함으로써 비현실적인 정치세력을 5% 미만의 지지율에 머물게 하여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사실상 용해시키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의 특성이다. 이것이 민주주의 체제의 장점이자 효율성이다.
“박정희 독재자”, “전두환 나쁜자식”이라는 표현으로 경찰, 정보기관 끌려가서 고문과 구타를 당하는 것을 민주주의 체제라 생각할 수 없듯이 여타의 다른 생각, 표현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탄압을 받는 것은 한마디로 독재체제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와 김일성, 김정일 독재체제는 독재체제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는 사실상 허용했더라도 영향력이 미미했을 사회주의 세력을 탄압함으로써 정권을 유지했다. 사회주의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사회주의를 탄압함으로써 민주주의 세력, 반정부 세력도 탄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학자나 정치세력이 사회주의에 대해 말하는 것이 별 것 아닌 일로 되었다. 군사독재가 걱정했듯이 사회주의에 대해 말한다고 해서 갑자기 사회주의자가 벌떼처럼 느는 건 아니라는 점이 입증되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은 북한찬양 사이트가 전세계에 널렸고 일부 내용이 국내 게시판에 1년 동안이나 게재되었다고 개탄했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느슨한” 상황이 국가안보를 해친 것도 국내 친북세력을 급격하게 늘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조선,동아가 열심히 광고해주고 있을 뿐이다.
즉, 국가보안법은 이미 무력화되었고, 사회주의든, 친북세력이든 민주주의의 용광로는 한데 섞어서 녹여버리기 시작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이처럼 이미 사문화되어가는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런 점에서 수구세력이 인공기를 흔드는 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하는 질문에 “다른 법으로 처벌하면 된다”고 답하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대답이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예외가 아닌 한 모든 사상,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라고 해야 정답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질에서 벗어난 대답을 하기 때문에 조선일보 등이 그 모순점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다른 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면 왜 국가보안법을 없애려고 하느냐는 질문이 그것이다.
실제로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을 닮은” 대체입법이나 형법보완을 추진해서는 조선일보식의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 결국 정도를 걸어야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북한을 위한 간첩행위를 처벌할 수 있게 형법을 고치는 정도의 보완이면 족하다.
조선일보 등 수구세력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에 대한 몰이해이다.
이런 사회를 상정해보자. 이 사회의 “살인방지법”은 모든 사람은 한시간에 한번씩 자기가 한 일, 간 곳을 보고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을 폐지하려고 하자, 조선일보 같은 신문이 나서서 "그것은 유영철 같은 살인범을 양성하자는 것 아니냐"고 고함을 친다.
사실 이런 “살인방지법”이 있으면 유영철 같은 이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법을 옹호하는 것은 개개인의 소중한 권리를 무시하는 독재적 발상에서나 나올 수 있는 것이다.
4천만 인구 중에 김일성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김일성이 항일운동을 한 것 등은 평가할 수 있을지언정 맹목적인 김일성 찬양은 많은 한국인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위의 살인방지법 같은 식의 법률로 이를 규제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다. 그것을 법률로 규제하려는 순간 우리는 독재체제에 주파를 던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어떤 정치세력이 김일성, 김정일을 공개 찬양하면 그 영향력은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조선일보가 우려하는 일은 이미 정치적으로 규제가 가능하다. 이렇게 민주주의라는 용광로에서 극단적인 세력은 그냥 녹여버리면 될 일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에서는 노동당 규약을 변경하지도 않는데 우리는 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는냐는 주장은 스스로 우리체제가 아직도 독재체제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독재체제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고백한 것에 다름아니다. 이것이야 말로 북한추종주의가 아닐 수 없다. 북한과 우리의 정치체제가 다른 본질적인 이유는 그것인 독재식이냐 민주주의 식이냐에 있지 자본주의자를 규제하느냐 사회주의, 친북세력을 규제하느냐에 있지 않다. 그런 규제체제는 뒤집어진 북한체제일 뿐이다. 요컨대, 국가보안법 관련 핵심적 쟁점은 독재냐 민주주의냐인 것이고 국가보안법 폐지는 독재의 마지막 잔존물을 쓰레기통에 넣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수구세력이 국가위기라는 등 친북, 좌파세력이 창궐한다는 둥 호들갑을 떠는 것은 스스로가 독재체제의 쓰레기 잔존물임을 고백하는 일일 따름이다.
수십년간 유지해 온 군사쿠데타 독재세력의 후예가 장악한 의회 권력이 허물어진 올해가 민주주의의 진정한 원년으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