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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하우스'가 '옥탑방'을 뛰어넘지 않으면 안되나
동일작가의 '자기복제' 비판보다는 드라마의 원초적 한계에 관대해져야
 
이태준   기사입력  2004/08/13 [14:09]
KBS 2TV 수목드라마 민효정 극본, 표민수 연출, 송혜교/비 주연의 <풀 하우스>라는 드라마가 있다. 갈수록 상승하는 인기(시청률)때문인지 언론에서도 곧잘 이 드라마를 다룬다.
 
스포츠서울 2004년 8월 12일자 최효안 기자의 <'풀 하우스' 옥탑방 뛰어넘길>이란 기사를 읽고 쓴다. 처음 이 기사를 접했을 때 내 느낌은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최 기자의 드라마에 대한 애정과 풀하우스에 대한 애정. 다른 하나는, 선의와는 다르게 전달될 수 있는 글쓰기 기법의 아쉬움이다.

▲인기드라마 '풀 하우스'의 한 장면     © KBS 2TV

최 기자는 <풀 하우스>와 <옥탑방>의 공통점, 이를테면 '선 동거, 후 열애' '중증 왕자병에 걸린 남자 주인공들(김래원, 비)' '말투나 행동거지, 인생관이 일치하며, 돈벌이가 마땅치 않은 백조이자, 유독 집에 집착하는 여자 주인공들(정다빈, 송혜교)' 등등 몇가지 팩트들을 나열하며 <풀 하우스>가 <옥탑방>과 흡사하다는 지적을 한다. 차이가 있다면, '집의 차이 정도'라는 말과 함께.

특히 <풀 하우스>의 작가가 <옥탑방>의 작가인 민효정씨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동일작가의 '자기복제' 현상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반론의 여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민효정  작가의 장점과 <풀 하우스>에 대한 매력까지 섞어 놓았으니, 최 기자의 비판은 애정이 담긴 선의의 비평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아쉽게 생각하는 건, (본문글에 등장하지 않은) 일종의 '드라마의 숙명'(?)에 대한 배려가 빠져있다는 점이다.  
 
최 기자의 비판은 분명 합당하고 객관적인 것이지만, 그런 류의 잣대를 전 드라마에 대입시켰을 때, 살아남을 드라마가 과연 몇편이나 될까.  '선 동거' '후 열애'가 유사점의 소스로써 비판의 대상이라면, 다른 드라마의 흔해빠진 삼각관계 역시 관용을 베풀어선 안될 것이다. 주연배우의 역할을 환기시키는 양념같은 조연들의 역할 또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공통분모로써의 시비의 대상이 된다.

부부간의 불화, 남편에게 버림받고 복수의 칼을 가는 아내, 외도 그것도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가장, 출생의 비밀, 한 여자 한 남자를 놓고 숨바꼭질을 하는 네명의 두남자, 두여자, 우유부단한 남자, 터프한 남자, 청순가련형의 여자, 자기주관 강하고 추진력있는 여자.....등등 한 특정의 드라마를  타 드라마와 비교했을 때 찾을 수 있는 공통분모들은 수없이 많다.
 
소재와 컨셉이 비슷할 수밖에 없는 건,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사가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드라마는 연극이나 영화, 소설과는 달리 소재와 컨셉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국민을 상대로 하는 다시말해, 누가 브라운관 앞에 앉아 있을지 모르는 완전개방형의 운명을 안고 있기 때문에, 대사와 행위, 소재 등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랑'이란 소재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유도 그게 가장 보편적이고 무난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차이를 발견한다면, 아침 시간대는 주부들을 상대로 한 주부용 드라마(여자의 일생 등 미혼 또는 결혼 후 인생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옴), 저녁 8시 20분대는 가족간의 식사시간대를 고려해 만드는 가족 드라마, 저녁 9시 50분대는 비교적 젊은층들을 겨냥하는 젊은 멜로형 드라마 정도이다.
 
기사에서 최 기자가 지적한 민효정 작가의 '자기복제' 관련 부분도 고민을 요구하는 대목이다. 최 기자는 민 작가의 전작과 흡사한 극작 스타일의 한계를 지적한 것 같은데, 이는 달리 볼 수도 있는 문제이다. 
 
한 작가의 여러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문체는 매너리즘이나 식상함 등의 잣대로 비판할 수 있지만, 역으로 작가만의 개성이자 특징으로 인정해줄 수 있는 양면성이 있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대한민국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김수현의 역사는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김수현만큼 자기복제를 탁월하게 남용한 작가가 또 어디 있는가?
 
나는 드라마 평론가들이 드라마를 비평할 때 좀더 관용을 베풀어 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가뜩이나 드라마는 연극이나 영화에 비해 하위수준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며, 여자 또는 아줌마들이나 그런 거 보면서 질질 짠다는 식의 비판이 난무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애환과 가장 근접하거나 일치하는 분야가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연극이나 영화에 더 열광하는 건, 비단 재미와 감동 차원에서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신분상승이나 긍정적 의미에서의 문화적 허영, 지금의 나 오늘의 현실보다 더 나은 그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고 싶은 열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결국 우리는 영화나 연극보단, 드라마의 모습처럼 살아가고 있다. 청중이나 비평가들의 좀더 진한 애정과 배려를 바라는 마음이다.     

* 필자는 인물과 사상 독자모임(http://insamo.org) 회원입니다.
 
[참고기사] 최효안기자,  [TV톡톡톡] '풀하우스' 옥탑방 뛰어넘길  (스포츠서울 2004. 8. 12)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는 히트드라마에는 남다른 점이 있다. 방영 한달째를 넘기면서 매주 가파르게 시청률 상승곡선을 그리는 K2TV 수목드라마‘풀하우스’(민효정 극본·표민수 연출)에도 분명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비와 송혜교라는 스타 캐스팅이 회를 거듭할수록 상승효과를 내고 있다. 2003년 MTV ‘옥탑방 고양이’를 통해 생활형 대사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민효정 작가의 극본은 맛깔스럽다. 담아야 할 모든 요소를 빠뜨리지 않으면서도 여백의 미를 보여주는 영상시인 표민수 PD의 연출도 군더더기가 없다.
 
그러나 ‘풀하우스’에 몰입하면 몰입할수록 자꾸만 중첩되면서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다. 다름아닌민효정 작가의 2003년 작품인 MTV 미니시리즈 ‘옥탑방 고양이’(민효정·구선경 극본, 김사현 연출)다.
 
‘풀하우스’와 ‘옥탑방고양이’는 ‘선 동거, 후 열애’라는 기본 설정부터 똑같다. 두 드라마 모두 중증 왕자병에 걸린 남자주인공(김래원, 비)이 여자주인공(정다빈, 송혜교)과 같은 집에서 어쩔 수 없이 함께 계약동거를 시작하며 사랑에 빠진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동거하는 집의 수준 정도다. 2003년 ‘옥탑방 고양이’는 제목 그대로 작고 아담한 ‘옥탑방’이 주요무대였다. 2004년 ‘풀하우스’는 바닷가에 그림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한 호화주택으로 업그레이드됐다.
 
무엇보다 두 드라마는 주인공들이 쌍둥이처럼 꼭 닮았다. ‘옥탑방 고양이’의 정다빈(24)과 ‘풀하우스’의 송혜교(22)는 친자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투나 행동거지, 인생관이 일치한다. 똑똑하고 사리에 밝은 척하지만 알고 보면 눈치 없고 순진하며 어수룩하다.
 
동거에 돌입할 당시 뚜렷한 벌이가 없는 ‘백조’라는 점도 빼닮았다. 결정적으로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주요배경인 ‘집’에 유독 애착을 느끼는 생활력 강한 ‘또순이’들이라는 점도 일치한다.
 
‘옥탑방고양이’의 김래원과 ‘풀하우스’의 비는 길게 비교할 것도 없다. 드라마 초반에는 철부지 왕자였다가 종반으로 갈수록 사랑과 인생을 알게 되며 훌쩍 어른으로 성장한다.
 
여기에 ‘모든 것을 다 갖춘, 그래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퀸카 최정윤(옥탑방 고양이)과 한은정(풀하우스), 그리고 여주인공이 심란해할 때 바람같이 나타나는 키다리 아저씨 이현우(옥탑방 고양이)와 김성수(풀하우스) 역시 기대치를 저버리지 않고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 중이다.
 
‘풀하우스’는 분명 잘 만든 대중드라마다. 그러나 절반을 넘긴 지금까지는 ‘옥탑방 고양이’를 쓴 재능 많은 젊은 작가의 자기복제작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아직 ‘풀하우스’를 그저 그런 아류작이라고 속단하고 싶진 않다. 그러기에는 송혜교와 비의 늘어가는 연기력, 치고 받는 탁월한 ‘재치문답형’ 대화에 깃들인 위트와 소시민의 사소한 살아가는 기쁨이 너무 생생하다.
 
남은 기간에 ‘풀하우스’가 ‘옥탑방 고양이’를 훌쩍 뛰어넘으며 더위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청량제 같은 행복감을 안겨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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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8/13 [14:0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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