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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대표의 '운동화'와 추미애위원장의 '하이힐'
영남지역주의의 신데렐라와 몰락한 종가집 맏며느리의 운명과 명암
 
김광선   기사입력  2004/04/19 [19:15]

이번 17대 4·15 총선에서 신은 두 여성정치인의 운명을 모질게 갈라놓았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민주당 추미애 선대본부장.

두 여성 모두 한국적 상황에서 보기 드물게 정당을 대표하여 선거를 지휘하였고, 당의 운명은 물론 개인의 운명까지 '올인'했다. 그러나 한쪽은 승자의 영광과 환호를, 다른 한쪽은 패자의 멍에를 둘러쓴채 한쪽은 탄탄대로를, 다른 한쪽은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제1당의 지위까지 넘보며 당은 물론 개인의 지위까지 반석 위해 올려놓았다. 박 대표 취임 전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침몰직전의 낡은 잠수함 신세였다. 박 대표는 여성 특유의 친화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뼈를 깍고 종아리를 자청해 맞는 환골탈태' 이미지를 극대화 시켜 위기에 빠진 당을 건져내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이 박정희 후광이나 미디어정치 시대의 이미지정치로만 가능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한나라당의 총선 결과를 놓고 '대승' 혹은 '선전'이라고 평한다. 물론 탄핵역풍을 맞아 '참패'나 '50-60석' 운운에서 121석 획득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면면을 들여다 보면 TK와 PK 등 범 영남권의 60 석이 아니었으면 박 대표는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없는 성적이었다. 영남 이외 지역에서 얻은 것은 109석이나 걸린 수도권에서 30여 석과 비례대표 21석, 이외 강원 등 61석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얻은 성적은  영남권의 절대지지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성적이었다.

▲헌신짝 버리듯     ©서태영

어쩌면 박 대표는 영남이라는 든든한 '지역'을 배경으로 '느긋한' 선거를 치뤘는지 모른다. 손쉬운 승리 덕분이었을까? 선거 전 박근혜 대표는 운동화를 들어보이면서 '발로 뛰는 선거'를 강조했다. 그 운동화 뒷굽이 마르고 닿기도 전에 선거는 끝났고 얼핏 봐도 멀쩡한 '새 운동화'는 선거가 끝난 날 쓰레기통에 처박히게 됐고, 이는 본지 서태영 기자에 의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박 대표와 비슷하게 민주당 추미애 선대본부장에게도 든든한 '지역'은 있었다. 박 대표가 선거 기간 '경부선'을 왕복했다면 추 본부장은 '호남선'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개혁공천이 3월 30일 좌절된 후 홀로 광주를 찾은 추 위원장은 3보1배를 통해 '간절'하게 호남의 표심에 호소했다. 선거 기간 내내 DJ의 '적통'을 강조하고, 한민공조에 대한 사과와  '평화개혁세력'으로 이라크 추가파병의 재검토를 언급했다. 그러나 광주 5.18묘역까지 3보1배를 강행한 추 위원장 입에서는 끝내 '탄핵철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호남인들에게 노 대통령의 민주당 '분당'은 먼 일이었지만, '광주항쟁'의 상흔이 깊게 그어져 있는 호남인들에게 민정당의 후신인 한나라당과의 공조는 또다른 '배신'이었다.   

▲추미애의원의 삼보일배 모습     ©브레이크뉴스
선거 기간 동안 장전형 선대위 대변인은 "추위원장의 3보1배할 때 신발높이는 2.5㎝(2.5%) 높이의 흰운동화를 착용했고, 일주일이 지난 후에는 5㎝(5%) 이지슈즈를, 총선 전날 7.5㎝(7.5%)의 하이힐을 신었다. 이를 합한 숫자만큼 지지율이 나오길 바랐는데 하이힐 높이에서 멈춰버렸다"며 추 위원장의 신발높이와 지지율을 비교해 주위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민주당은 텃밭인 광주전남에서도 참패했다. 민주당 당권파가 자랑스럽게 강조한 '탄핵공조' 아닌 '탄핵' 주도에 대한 역풍의 폭과 깊이를 도저히 추 위원장의 치마와 신발이 감당 못한 것이었다.

일부 사람은 추 위원장은 50년 전통의 명문가에 시집온 '대구 며느리'였지만, 시가의 '어른(당권파)'들이 저지른 잘못으로 종가집 맏며느리 역을 못했다는 평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추미애 위원장은 탄핵파동 시 민주당 '탄핵문건'을 기초했다는 설이 있다. 그가 끝내 '탄핵'에 대해 언급을 안한 점은 이같은 설을 더욱 뒷받침 한다. 무엇보다 그가 민주당 만의 고유 브랜드를 강조하면서 내세운 '파병문제'도 불철저 한 것이었다.

추 위원장은 DJ의 평화개혁세력을 복원한다면서 민주노동당 당론인 '파병철회' 아닌 '파병재검토'를 제시했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조순형 대표 등 당권파들이 궁지에 몰려 선대위 구성 및 권한에 전권을 부여하자 후보 등록 하루를 남기고 박상천 김옥두 등 '물갈이' 대상에 대한 전격적인 개혁공천을 단행함에 따라 당권파들의 역습을 불러 일으키는 '악수'를 두었다. 그가 평소에 자랑하던 '바지보다 넓다던 치마폭'의 한계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결정적으로 추 위원장이 한계는 그가 DJ 노선에 얼마나 충실했었냐는 '진정성'이었다. 민주당 분당 이후 그가 보인 것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의 발로였지, 민주당만의 정체성을 찾고 그것을 확대시키는 것에 대한 고민이 적었다는 것이 당 안팍의 일치된 평가이다.

결국 굽이 없다시피한 낮은 운동화를 신고 광주에서 3보1배를 통해 수도권에 올라오면서 하이힐로 바꿔 신었지만, 황색바람 만큼은 따라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선거는 끝났고 야심만만한 두 여성정치인의 명암은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달라졌다. 그러나 이제부터 진짜 진검승부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표는 왜 한나라당이 두 번이나 대선에서 실패했는지를 알면 알수록 더 낮은 굽의 운동화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추미애 위원장 역시 DJ의 상징이 '인동초'인 것을 상기하면 지금의 처절한 패배가 정치적인 거목으로 성장하는데 훌륭한 교훈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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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4/19 [19:1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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