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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영남의 죽은 박정희가 호남의 산 김대중을 이겼나
4.15 총선에서 나타난 지역주의의 교훈
 
소환   기사입력  2004/04/17 [23:02]

벼랑 끝에서 건져 올린 반쪽의 승리

4.15총선이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승리라 부를 수 없을 만큼의 힘겨운 승리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노 대통령의 꿈이자 염원이었던 지역주의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한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이번 총선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청와대 핵심측근을 비롯한 장.차관 인사들이 총선에 대거 투입되었다. 영남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 출마한 후보들은 무난히 승리를 거둘 수 있었지만 대구, 경북과 영남에서 출마한 후보들은 예상과는 달리 대부분 낙선하고 말았다. 더욱이 지역주의 종식의 목표로 출마한 김두관 전장관마저 낙선한 사실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정동영의장이 선대위원장과 비례대표의석을 포기하는 자기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당은 과반의석확보 실패는 물론이고 박빙의 차이로 승리를 거둔 많은 수도권의석을 대부분 넘겨주어 한나라당에게 1당의 자리마저 빼앗기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당의 위기론을 엄살론이라고 치부하며 비난했던 족벌언론들과 그들의 논조에 동조했던 일부 진보성향의 인터넷신문들은 자신들의 경솔함을 한번쯤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대다수의 언론들은 열린우리당을 선거막판에 위기로 몰아넣었던 주원인을 지역주의를 불러일으켰던 ‘박근혜 바람’과 거기에 기름을 부은 정동영의장의 ‘노인폄하발언’에서 찾고 있다. 총선후에 공개된 각 언론사의 총선기간 여론변화추이를 봐도 그러한 분석은 매우 타당성 있는 해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왜 그렇게 사그라져 가고 있던 지역주의투표성향이 놀랍도록 위력을 발휘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이번 4.15총선에서 나타난 지역주의투표성향이 우리가 흔히 이해하고 있는 단순한 지역주의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왜 그토록 황당한 일이 발생해야만 했는지 조금은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주의를 활용한 선거전략의 변화

한국정치사에서 지역주의의 역사는 제 3공화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16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대통령선거에서 야당 후보인 김대중 후보를 맞아 지역주의와 색깔론을 이용한 선거전략을 구사했다. 그리고 정략적으로 만들어진 지역주의 투표성향은 오랜 기간에 걸쳐 해소되기보다는 계속 반복되며 악용되는 쪽으로 유지되어왔었다. 물론 이러한 지역주의 투표성향을 부추겼던 것은 정권뿐만 아니라 정권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왔던 족벌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족벌신문사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유지를 위해 정권을 도와 지역주의 투표성향을 부추겨왔다. 이번 4.15총선에서도 이들 족벌신문사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띄우기 위해 적극 나섰으며 그 이면에는 이념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지역주의 활용이라는 계산된 선거전략이 숨어있었다.

한라나라당과 족벌언론 이번에 사용한 지역주의는 단순한 인물중심의 패권적, 경쟁적 지역주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현재 나타나고 있는 지역주의의 모습이 후보자의 출신지를 중심으로 지역의 패권을 위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이 보여주고 있는 지역주의 투표성향은 이념을 기반으로 형성된 가치판단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주의라는 딱지표와 호남이 민주당을 버린 이유

탄핵역풍으로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각각 박근혜 대표와 추미애 선대위원장을 내세워 카메라가 비추는 선거유세 때마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대통령과 정치스승인 김대중 전대통령을 내세우며 지역주의에 호소했다. 마치 제 3공화국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구시대적 선동정치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선거결과에 있어 박정희 전대통령을 내세웠던 한나라당과 김대중 전대통령을 내세웠던 민주당의 명암이 서로 완전히 엇갈렸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우리당의 마지막 승부수가 없었다면 1당까지 차지할 정도로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반면 민주당은 지지자들을 허무하게 만들 정도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호남민심이 탄핵역풍 때문에 이미 민주당을 버리고 햇볕정책을 승계한 우리당을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해석하고 있다. 민주당은 배신론과 영남패권주의를 내세워 열린우리당을 공격했지만 이러한 인물중심의 단순지역주의적 시각으로 우리당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소수의 민주당지지자들을 제외하고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일반인들을 우리당을 자민련과 같은 지역주의 정서를 기반으로 한 단순지역주의 정당으로 보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호남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공유되어지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호남의 유권자들이 김대중 전대통령을 지지했던 주된 이유는 그가 전라도 태생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는 매번 호남편중의 지역주의적 투표행태가 나타났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호남사람 김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권에 저항했던 민주투사 김대중을 지지하는 군사정권 피해자들의 몸부림이었다. 인물중심의 단순지역주의가 아니라 군사정권에 저항한 일종의 정치운동적 성격이 강했다는 해석이 옳을 것이다. 신군부의 집권을 위해 광주학살의 직접적인 피해자였던 호남 유권자들에게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세대가 완전히 바뀔 때까지 군사정권에 뿌리를 둔 정당에는 결코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호남 유권자들은 정치인 노무현에 대해 부산사나이 노무현이 아니라 군사정권과 싸워왔던 민주투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당에 대한 평가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민주당이 자민련과 같은 단순한 지역패권을 위한 정당이 아니었듯이 열린우리당 역시 그렇지 않았다. 다만 열린우리당은 민주당과는 달리 군사정권과 족벌언론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지역주의라는 딱지표를 붙이고 있지 않았다. 노무현은 그것을 원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김대중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지지했던 것도 아니며 호남이라는 지역패권주의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오랜 기간 지속되어왔던 군사정권에 대한 피해의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왜 지역주의와 DJ리즘에 호소했던 민주당을 버리고 그들이 열린우리당을 선택했는지를 가장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주된 이유가 될 것이다.

가공된 지역주의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지역주의

민주당은 자신들이 지역주의 정당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그것은 맞다. 민주당은 지역주의정당이 아니다. 다만 그들이 단순지역주의 정당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군사정권과 족벌언론들은 민주당을 지역주의정당으로 만들어버렸으며 많은 국민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민주당은 지역주의 정당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국 표면적으로는 국민들에게 지역주의정당으로 인식되고 말았다. 바로 그것이 민주당의 한계점이었던 것이다.

군사정권과 족벌언론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가공의 지역주의를 선동하여 그 반발작용으로 새로운 형태의 지역주의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단순한 반발심리에 의존해 지역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경쟁적 지역주의였다.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그러한 단순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탄생하고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두 당은 그들이 목적한 바를 이루어내며 성공적으로 지역주의를 이용해 왔다.

하지만 과거 정치권과 그들의 협력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패권적, 경쟁적 지역주의는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어감에 따라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80년대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386세대가 사회의 전면에 등장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3김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민의식의 성장은 지역주의적 투표행태가 자리잡지 못할 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은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정당의 퇴조를 유발할 수 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지역주의정당이었던 자민련은 벌써 오래 전부터 지지기반을 점차 상실하기 시작했으며 영남에 기반을 둔 한나라당 역시 흔들리기 시작해 대통령 탄핵이 추진되어 통과되었던 순간에는 완전히 붕괴되기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가공의 지역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또 하나의 지역주의는 결코 쉽게 사리지지 않았다.

패권적 지역주의에서 이념적 지역주의로의 부활

탄핵역풍으로 와해 직전까지 몰린 한나라당은 탄핵을 주도했던 지도부를 전격 교체했다. 그들이 선택한 최후의 승부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의원이었다. 박의원은 상대적으로 참신성과 개혁성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상품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한나라당은 총선을 불과 며칠 남겨놓고 박근혜 대표를 새로운 자신들의 얼굴로 내세웠다. 박근혜 대표는 매우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려 애썼으며 가는 곳마다 박정희 전대통령을 언급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잊혀졌던 박정희 향수를 일으키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은 유권자들에게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으며 정동영의장의 노인폄하발언이 나온 시점을 기해서는 폭등하기 시작했다. 탄핵으로 고민하고 있던 보수성향의 부동층이 대거 한나라당으로 이동했으며 우리당을 지지했던 보수층 유권자들의 일부는 부동층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러한 경향은 총선일이 다가올수록 가속화되고 있었고 보수성향이 강한 대구, 경북, 그리고 영남에서 심하게 나타났다.

한나라당 선거캠프의 전략은 매우 정확히 들어맞았으며 뜻밖의 우리당 측 실수가 촉매로 작용하면서 폭발적인 상승효과를 나타냈다. 하지만 정의장의 발언이 민주당 쪽의 지지율 상승에는 촉매로서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을 비교해본다면 한나라당 선거전략이 주요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영남에서 호남에서는 거의 먹히지 않았던 노인폄하발언을 그토록 강력한 뇌관으로 작용하도록 했던 것일까?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타난 지역주의의 투표행태와는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한나라당 선거캠프는 의도적으로 지역주의를 이용하려 했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것은 과거 그들이 활용했던 지역패권을 위한 경쟁적 지역주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이념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지역적 특성이었으며 지역주의라기보다는 오히려 이념의 차이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한나라당이 이러한 이념의 차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지역주의를 선거에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현대사의 한 가운데 존재했던 박정희라는 인물의 딸인 박근혜 의원이 정치인으로 현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극단으로 갈리는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평가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나뉘어져 있다. 군인으로서 민주주의를 압살한 독재자로서 혹은 대통령 혹은 경제발전의 아버지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말하는 사람마다 매우 크게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 시각으로는 우리 사회에서는 있어서는 안될 인물이었던 반면 경제적으로나 안보적 차원에서는 불가피한 면이 있어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는 세대별 연령별 지역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그리고 영남지역으로 갈수록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며 나이가 젊고 학력이 높을수록 그리고 호남지역으로 갈수록 그에 대한 평가는 매우 비판적이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연령과 지역별로 정확히 갈려있지는 않다. 그에 대한 평가는 사회의 정치, 경제적 상황에 따라 시대적으로 상당히 유동적으로 바뀌고 있다. 실제 정치가 불안하고 경제가 침체할수록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살아나고 있으며 역사적 평가 역시 집권세력에 따라 크게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이든 보수성향의 국민들이 박정희 전대통령을 통해 혼란스러운 정치상황과 어려움에 처한 경제상황에 대해 비교대상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대표를 통해 불러일으켰던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는 단순한 패권적 지역주의로 치부해버려서는 안된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호남의 대표정치인이라기 보다는 민주개혁세력의 대표였듯이 박정희 전대통령은 영남의 대표정치인이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수구보수세력의 상징에 가깝기 때문이다. 단지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은 오랜 군사정권기간의 차별과 혜택이 정치권에서 만든 경쟁적 지역주의와 융합되면서 이러한 이념적 차이가 아예 지역적 특성으로 고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나라당 선거캠프는 부동층에서 고민하고 있는 보수층 유권자들의 이러한 정서적 특성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박근혜 대표를 이용해 일으킨 박정희 향수가 보수적 이념이 고착된 영남지역의 선거압승을 견인해 주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지역주의를 이용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영남지역의 이념적 특성을 활용한 것이었으며 군사정권에 뿌리를 둔 자신들의 강점과 약점을 최대한 이용한 가장 효과적인 선거전략이었던 셈이다. 다만 정책대결이 아닌 이런 식의 감성을 자극하는 과거회귀적 선거전략은 사라지고 있는 지역주의 투표성향을 부활시키는 부작용을 동반할 수 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비판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이념적 지역주의의 등장은 ‘리더쉽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촉발

4.15총선 기간동안 대구, 경북에서 불기 시작했던 박근혜 바람은 단기간에 영남으로까지 확산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동영 의장의 사퇴선언이 없었다면 수도권경합지역의 상당수가 한나라당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즉 박근혜 바람이 수도권까지 확산되고 있었다는 것은 허풍이나 조작된 위기론이 아니었다. 실제 수도권에서의 참패에 불구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많이 득표했으며 저격수를 자처하며 구태정치를 보여줬던 재선그룹 의원들이 대부분 3선에 성공했다. 그것은 박근혜 대표를 전면에 내세운 한나라당의 선거전략이 부동층에 있던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끌어당겼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렇다면 왜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있는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이 과거회귀적인 선거캠페인에 흔들렸던 것이었을까?

그 이유는 ‘리더쉽에 대한 갈망’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국의 불안과 경제적 위기는 보수층 국민들로 하여금 박정희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했다. 상대적으로 젊은 30, 40대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개발경제를 경험했던 50, 60대에게는 안정된 정치상황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경제개발이 그리웠을 것이다.

참여정부는 대외정책과 노동정책 등 여러 부문에 있어 다소 안정적이지 못한 국정운영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참여정부의 실수에 대해 보수층 유권자들이 많이 접하고 있는 족벌신문들은 실제보다 크게 증폭시켜 불안감을 조성시켜왔다.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한 족벌언론은 현정부와 언론개혁 부분에 있어 서로 충돌할 수 밖에 없는 입장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들은 대선 직후부터 허니문기간도 없이 무조건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들은 노무현 정부를 불안한 정권으로 계속 비춰줬으며 신문의 독자들이나 보수층 국민들은 그런 식의 과장된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정치적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이었으며 경제위기론을 부풀리는 편집과 함께 증폭되어 참여정부의 리더쉽에 큰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혼란상황에 빠져 있는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계속 증가되어갔으며 그것은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단점이기도 하다. 집권정치세력이 다수당이 되지 못했을 때 벌어지는 정치, 사회적 혼란과 갈등은 경제적으로 불확실한 요인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경제적 성장기에 있는 국가에게 있어서는 문제점으로 지적되곤 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점은 안정을 희구하는 국민들에게 해결방법으로 집권정당에게 안정의석을 몰아주는 것이 아니라 집권세력을 불안정성을 과장해 정권교체를 이루어내려는 야당과 족벌언론의 부도덕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최소한 초기 6개월 정도는 정권을 도와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예 처음부터 대통령으로 인정하려 들지도 않았다.

한나라당과 족벌신문들에 의해 만들어진 불안한 대통령에 불안한 정부라는 딱지는 대통령 탄핵의 정당성마저 부여하려 했으며 결국에는 안정된 총리에게 권력을 이양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게 했다. 족벌신문들은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적 혼란, 경제침체의 책임이 불안한 정권에 있다는 ‘사고방식의 프레임’ 속에 독자들을 가두고 안정의석을 여당에 확보해주는 선택보다는 안정적 리더쉽에 대한 갈망을 증폭시켜 '정권교체의 원동력'으로 삼고자 했다. 바로 이 때 이용되었던 ‘안정적 리더쉽에 대한 갈망’은 ‘박정희식 통치형태’로 독자들의 내면에 무의식 중에 형상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총선기간 중에 박근혜라는 상징적 인물을 매개로 겉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따라서 총선에서 지역주의적 투표행태로 표면화되었던 보수층 유권자들의 불만은 현정부의 불안감을 정권투쟁의 상대였던 한나라당과 족벌신문들이 확대생산해 내면서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보수적 성향의 국민들이 갈구하는 ‘안정적 리더쉽에 대한 욕구’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이러한 분석은 총선 이후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표심으로 나타난 보수성향의 국민들의 불만을 현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포용해 낼 수 있는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지역주의 투표행태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우리사회의 이념적 차이의 간격을 좁히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도 말해주고 있다. 추가로 참여정부의 반성과 노력뿐만 아니라 정략적 이유로 우리사회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는 야당과 족벌언론의 이념대립 선동 역시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위기상황이라고 하지만 과거지향적 이념갈등을 통한 지역주의의 부활을 선거전략으로 활용한 것은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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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4/17 [23:0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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