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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20대와 '이태백'들은 정치를 '소외'시킬 것인가
[기자수첩]인터넷은 '정치과잉', 20대는 '정치부재의 시대'?
 
홍성관   기사입력  2004/04/14 [14:58]

M에게

요며칠 날씨가 초여름의 기세로 사람들의 겉옷을 거추장스럽게 만들고있다. 캠퍼스에 흩날리는 벚꽃을 보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은 특별히 블렉데이라고, 너와 자장면을 먹었지.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굳이 너와 자장면을 먹는 것은 순전히 네가 가엾어서, 라고 농담삼아 말했지만, 사실 간만에 네 얼굴도 볼 겸 싶어서였다.

며칠 전 우리 모임 게시판에 올라온 너의 절규에 가까운 글을 보고 근시일내에 술 한잔 해야겠다 마음먹었지만, 고시 준비에 여념이 없는 네게 혹 방해될까봐 이렇게 밥 먹는 자리라도 마련하고 싶었던 게지.

안다. 네가 얼마나 공부하느라 힘들어 하고 지쳐 있는지. 사람들은 한결같이 출세를 위해 고시를 본다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 알고 있다.

선진국들이나 겪는다는 '고용없는 성장'이 왜 우리에게 주어졌는지 명백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고용없는 성장'이 우리 주변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는 명백하게 절감하고 있지.

이태백, 사오정, 오륙도라는 자괴적인 신조어들이 별 감흥도 주지 못할만큼 무뎌진 사회. 곧 사회로 뛰쳐나갈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참 피말리는 말인데 말이지.

불안한 미래로 인해 캠퍼스는 활기차 보이는 한편으로 짙은 우울함이 감추어져 있는 것만 같다.

언젠가 네가 말했지. 도서관에 앉아있는 새내기를 보면 뒤통수를 때려주고 싶다고! 난 그 말이 학교 성적이 아니어도 그 맘 때 겪어봐야 하고, 또 겪어보고 싶은 것들이 참 많을텐데, 그런 소중한 기회들을 모두 놓치고 사는 그들에 대한 아쉬움을 토한 것임을 안다.

너는 자장면을 먹는 와중에 머리 위로 지나던 헬기를 보면서 우리가 새내기였던 90년대 말의 봄을 상기시켰지. 학교로 밀려들어온 노동자들이 경찰과 대치해 있을 때, 무엇이 옳은지는 잘 몰라도, 무엇이 그른지는 잘 알 수 있다며 뛰쳐나갔던 우리였지. 헬기가 시위대를 분산시키기 위해 바람을 일으키며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땐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듯 묘한 기분을 느끼며 '치기어림'을 발산하기도 했던 그 때. 두 번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지만, 당시에 새겨진 기억들은 여전히 가슴속에 남아있다.

그런 경험은 우리를 어떻게 달라지게 했을까. 지금의 새내기들이 도서관에서 지식만 쌓는 것과 특별히 다른 것이 있었을까. 그래, 우리는 선동렬 방어율이 자랑스럽다고 수업째기 경쟁을 벌였지만, 지금에 와서 한편으론 좀 수업도 열심히 들어보고, 이런저런 책들도 더 많이 보았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녀석들이 결코 갖지 못할 것들을 우리는 누렸다고 생각하는데 너는 동의하는지... 그것은 바로 노동자들과 맞부딪힌 소주잔이다. 농민들이 따라주던 막걸리잔이다. 양심수 어머니들이 해주시던 떡볶이, 순대, 제육볶음이다. 그리고 아스팔트 위에서 맡았던 너의 땀냄새이다.

M, 우리 90년대 말미에 대학에 들어온 세대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386도 아니고, 왠지 N세대라는 호칭도 어색하다. 그 중간에 참으로 어정쩡하게 끼어있는 우리가 아닌가 싶어.

그러나 M,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사회에 곧잘 순응해가는 우리의 지향점은 무엇인가를 따지기 전에 우선 우리가 겪었던 것들, 배웠던 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해보기로 하자. 그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부터 하자.

내일이 총선이란다. 생애 첫 투표는 군에서 했고, 대통령선거에 이어 세 번째 투표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오히려 50대 이상의 투표율은 전보다 웃돌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반면, 20대의 투표율은 추세대로 떨어지고, 더구나 황금연휴까지 끼어 어느 때보다 저조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는 아예 빨간색으로 요일을 칠한 제목의 기사까지 내면서 젊은이들의 투표불참을 조장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논객 진중권은 작금을 '정치과잉의 시대'라고 칭했다. 그런데 오히려 20대는 정치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아니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다. 우리 20대에게 지금은 '정치부재의 시대'다.

선진국에서 투표율이 낮은 것은 당연하단다. 그것은 그만큼 사회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에 대해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에서다. 더구나 우리의 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할 근거는 충분하다. 경제적으로 부모의존도가 높아 왠만큼 풍요로워졌고, 문화, 스포츠 등 징치 이외의 많은 것들에 대한 향유와 소비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간 이전 세대의 정치과잉으로부터 생긴 부작용도 한 몫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결코 안정적이지 못하다. 그 이유는 비단 경제적으로 선진국이 못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청산될 것이 청산되지 못하고, 합쳐져야 할 것이 여전히 갈라져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정치, 경제적 부패와 비리 구조는 아직도 공고히 남아 민중의 삶을 짓누르고 있으며, 분단 반 세기가 지나도록 막힌 철망은 뚫리지 못했다. 이것은 결코 우리 20대들과 상관없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왜 군대를 다녀와야 했고, 너는 왜 연기시킨 입대로 인해 압박을 느껴야 하는지. 경제형편이 어려워 휴학하고 고향으로 내려간 L은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됐는지. 여자로 태어난 게 원망스럽다며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쓴웃음 지으며 시집간 P선배는 왜 그렇게 됐는지.

우리는 '정치부재의 시대'를 거부해야 한다. 학교 다니면서 운동 쪼금 하거나 했다는 소수만 관심갖고, 소리치는 정치가 아니라, 우리 20대 모두가 귀를 기울이고, 시선을 모으고, 입을 열어야 하는 정치시대를 열어야 한다.

"운동, 그런 거 싫어요. 취직하려면 1학년 때부터 열심히 해야 한대요." 라고 말하는 후배 앞에서 정작 졸업을 앞두었다고, 직장 얻어야 한다고 도서관을 들락거리는 내가 어찌나 민망했던지.

M, 나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비록 사회변혁이라는 한 때 가졌던 이상을 제쳐두고 현실에 몸담그고 살고 있지만, 멀쩡한 청년들이 남의 나라가 일으킨 죄악같은 전쟁에 동원되고, 애꿎은 청년들이 백수가 되기 싫어 졸업을 미루는 오늘에 가만히 좌시하고만 있을 수가 없구나.

사실 내가 대단한 무엇이야 할 수 있겠니. 하지만 독재정권의 후광으로 선거판세가 바뀌는 이 판국의 잘잘못에 대한 내 생각을 너에게라도 전해야 하지 않겠니. 공부로 지친 너에게 이런 부담 아닌 부담을 주는 것은 이심전심이라고, 내 마음이 네게 전해지고, 그것이 또 너의 친구에게 전해졌으면 하기 때문이다.

M, 그게 그거인 것 같다며 놀러나 가야겠다던 아까의 말을 취소해주렴. 우리의 선배들이 어떻게 해서 국민의 투표권을 얻어 냈는지 모를리 없는 네가 하기엔 경솔한 말이었다. 알고 있는 선후배, 동기에게 전화라도 걸어서, '이것이 우리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올바르게 행사하는 길'이라고 말하지 못할지언정, 네가 가벼이 그것을 포기하겠다고 농 하는 것은 너의 절친한 친구로서 내버려 둘 수 없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렸다. 우리는 그 수혜자인 동시에 또 후배들을 위해 길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려서는 안되지 않겠나.

M, 재작년 월드컵을 기억한다.

휴가 나와서 너와 함께 붉은 티셔츠를 입고 광화문에 갔던 우리.

그 해 겨울, 촛불을 들고 미선이, 효순이를 추모하고, 불공정한 한미행정협정을 개정하라고 광화문에 갔던 우리.

작년 4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다며 파병을 막으려 여의도에 갔던 우리.

올 봄 억지같은 이유로 민심을 뒤엎고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킨 국회를 탄핵하자고 광화문으로 갔던 우리.

돌아보면 결코 우리도 부끄럽지 않았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선배들이 외려 대견스러워할 후배들과 함께 했다. 이제 진정한 민주와 평화, 통일을 열망하는 20대 청년들의 모습을 '한 표, 한 표'에 담아보자, 친구야.

잘못된 사람들을 심판하고, 이태백 없는 나라, 전쟁을 보이콧하는 나라 만들 사람들을 뽑아주자.

내일이다, M. 우리 멋지게 투표하자!!!

춘곤증이라고 잠만 자지 말고, 부지런히 할 일 하기 바란다. 건강하고, 조만간 또 귀한 자리 만들어 보자.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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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4/14 [14:5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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