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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노예와 노예감독관?
알바는 노예, 암행으로 감독한다?
 
이명옥   기사입력  2004/03/26 [23:14]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철폐를 주장하고 그 주장이 현실화되려는 시점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인권은 전폭적으로 무시되고 일방적으로 침해당하고 있다.

아다시피 현재 대한민국에는 4종류의 무가지 신문이 나와 있다.

앞으로도 H일보를 비롯 두 서너 곳에서 무가지 발행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가지 신문은 지하철 역사를 중심으로 이동식 가판대를 설치하고 출근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배포되도록 도우미를 통해 배포를 돕고 있다.

▲무료신문 배표모습     ©이명옥

도우미들은 신문을 가판대에 설치하고  독자들이 가져가기 쉽도록 접어놓아야 하며, 동네에서 재활용센터에 팔기위해 무더기로 가져가는 노인들과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벌여야 한다. 도우미 수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지하철 역사의 출구 중 감시가 소홀한 곳에서 신문을 잃어버리는 것은 당연히 감내해야  한다.

만일 절대로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면 각 지하철 역사마다 도우미들을 배치하고 일일이 감시를 하면 된다. 그러나 인건비를 줄이려는 사람들인지라 그런 일은 꿈도 꾸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한 사람이 서너 사람 몫을 감당해야 하는 도우미들은 이래저래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무가지를 발행하는 측에서는 그런 도우미들을 감시하기 위해 암행 비슷한 형태로 또 다른 사람들을 고용하여 순찰을 돌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분이 밝혀지면 커밍아웃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몰래 일하는 모습이나 설치 형태를 사진을 촬영하거나 숨어서 혹시 저질러질(?) 비리를 감시한다.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격적인 대우나 신뢰마저 무시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발견되었을 때 신분을 본격적으로 확인하려 들어야만 본사에서 나왔노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 전부이다.

본사는 참으로 할 일이 없는 사람들만 모였나 보다.

그렇게 불안하면 도우미의 수를 현실화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일인 몇 역을 담당시키고 게다가 감시까지 당해야 하면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들은 현대판 노예에 다름이 아니란 말인가?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한다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어느 곳에서는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이 배부된 모자를 착용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몰래 사진 찍어 가서 그 사람을 해고시켰다고 들었다.

이 얼마나 비인격적인 처사인가? 적어도 당사자에게는 이런저런 이유로 조사를 나왔노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모 무가지를 돌리고 있는 나는  전철역의 양 옆 토스트 아주머니들께 각 무가지를 5부씩 나누어 드리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나서는 왜 그분들께 신문을 5부씩이나 나누어 주느냐고 따지는 것이다.

난 미장원을 비롯 근처 가계나 은행에 신문을 넉넉하게 돌리라고 시킨적이 있고 심지어 전화번호까지 적어 오라고 하던 것을 상기시키며 그들에게 신문을 주면 서로 나누어 본다고 하였더니 그래도 근무 시간 중에 나눠 주었으니 도로 회수해 오라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 신문을 도로 회수해 오고 신분을 물었더니 모 무가지 본사서 나왔단다.

아마 그들도 아르바이트 형태의 비정규직 신분이 아닌가 싶다. 토스트 팔기에 바빠서 신문을 가지러 나올 사이도 없는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신문을 나누어 주는 것이 무슨 큰 범죄라도 된다는 이야기인가?

물론 신문을 무단으로 폐기하거나 무더기로 가져가도록 내버려 둔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지 않은가?  대화를 통해 상대방이  상황을 납득을 하고 사과를 하긴 했지만 이미  난 인격적으로 상당한 침해를 당한 뒤였다.

대부분 그렇게 나오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등산복 차림이거나 평상복 차림으로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며 감시를 하다가 사라지거나  좀 떨어진 곳에서 몰래 사진을 찍고는 가 버린다.

자신의 모습이 발각되고 상대방이 경계태세를 갖추면 그때서야 신분을 밝히거나, 다음번에 와서도 온 이유를 밝힌다.

시간당 몇 푼의 아르바이트들에게 이런 비인격적인 처사를 아무런 양심에 거리낌 없이 해대는 무가지 사들은 자신들의 소행을 돌이켜 볼 일이다.

신문에 투자하는 만큼 아르바이트들에게도 제대로 투자를 한다면 그런 비열한 사고로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노예감독관 같은 암행 도우미를  두지 말고  배포 도우미 수를 늘리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안임은 누가 봐도 명백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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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3/26 [23:1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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