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마이크든채 여의도 뛰어가는 TV피플족들
[기자수첩] 방송을 정치에 발판삼는 사람들, 진지한 검증해야
 
심재석   기사입력  2004/01/13 [10:18]

한 남자가 집에 틀어박혀 있다. 갑자기 일반 사람의 몸집을 그대로 축소한 듯한 기묘한 외양의 'TV 피플'이 집에 들어와서 텔레비전 한 대를 방안에 놓고 사라진다. 남자는 TV와는 담쌓고 사는 사람이지만, 무심코 TV를 켠다. TV화면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고 지지직 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그럼에도 남자는 아무 생각 없이 화면을 가만히 응시한다.

그런데, 남자가 TV를 보기시작한 시점부터 아내와의 관계가 이상해 진다. 아내는 갑자기 사라지고 남자는 혼자 남겨진다.

일본의 유명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TV피플'의 내용이다. 이 소설은 현대인들이 TV에 중독돼 있는 현상을 꼬집은 것으로, 주인공 남자가 아무 생각없이 보고 있는 지지직 거리는 화면과 우리가 보고 있는 TV프로도 다르지 않다고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루키가 지적하듯 현대인들은 무심코 TV를 본다. 때문에 매일 TV에 나오는 인물들은 시청자들에게 굉장히 친근하게 다가온다. 길거리에서 연예인을 만나면 실제로 처음 만나는 사이임에도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반갑게 인사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정치와도 관계 있다. 시청자들에게 이미 얼굴이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친근감을 갖고 있는 ‘TV피플’들은 선거에서 누구보다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시작해 당선확률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많은 ‘TV피플’들은 항상 정치권을 넘보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당선확률이 높기 때문에 TV피플을 선호한다. 지난 주말 열린우리당의 새 의장으로 선출된 정동영 의장도 MBC 앵커출신이고, 얼마전 불출마 선언을 한 한나라당 오세훈 의원도 TV에서 얼굴을 알리던 변호사였다. 강신성일, 맹형규, 박원홍, 변웅전, 이윤성 의원 등 많은 TV피플들이 국회안에 포진해 있다.

▲좌측 이계진씨와 한선교씨    

TV피플들의 금뺏지에 대한 도전은 17대 총선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한선교 정은아의 좋은 아침’을 진행해 주부들에게 인기가 많은 한선교씨는 이미 한나라당으로의 출마를 선언했고, ‘뉴스를 말씀드립니다 딸꾹’으로 유명한 이계진씨도 마찬가지다.

14-16대 총선에서도 영입제의를 받았다는 이계진씨는 "이번에야 말로 정치가 변할 것이라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동참하기 위해 시민의 대표로서 선거에 출마하기로 했다"고 출마요청을 수락한 이유를 밝혔다.

'빠떼루 아저씨’ 김영준씨도 출마를 준비중이고, 천하장사 이만기씨도 열린우리당으로 출마가 점쳐지고 있다. MBC 앵커출신 박영선씨와 KBS기자 출신의 스포츠평론가 최동철씨, 보도본부장 출신의 류근찬씨도 출마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본인들은 계속 고사하고 있음에도 정치권에서 가만히 두지 않는 인물도 있다. MBC 뉴스데스크 앵커 엄기영 이사와 손석희 아나운서 부장은 각 당의 집중적인 러브콜을 받았으나 `정치권에 입문하거나 총선에 출마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거부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TV피플들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러나 정치력이나 노선에 대한 검증없이 친근감과 이미지 하나로 정치권에 입문한 TV피플들이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깨끗하고 참신한 이미지처럼 정치권을 새롭게 바꾸는데 일조했는지, 아니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세비만 타먹고 있는지 진지하게 검토한 후 새로운 TV피플들을 정치권에 보낼 것인지 말 것인지 판단해야 할 것이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4/01/13 [10:18]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