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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D-100] 대통령의 몫과 유권자의 몫
 
정희주   기사입력  2004/01/06 [18:16]

 17대 총선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각 당마다 총선 선대위 가동과 더불어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한 셈이다. 묘한 흥분감과 전율이 느껴지는 아침이다. 직업 정치인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생활 정치인’인 우리들이지만, 그래도 ‘D 마이너스 며칠’이라는 군사 작전식의 표현은 늘 이런 긴박감으로 다가온다.

네티즌들 중에는 이번 총선을 두고 객석에서 ‘관전(觀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직접 ‘출정(出征)’하여 최일선에서 싸우는 군사 같은 비장함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총선을 바라보는 이러한 시각차는 인정한다 해도, 모름지기 싸움을 목전에 두고 피끓는 전의에 가슴이 뛰지 않는자, 이 싸움에 나설 자격도 관전할 자격도 없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칼에 수구의 목을 쳐버리고 말겠다는 적개심에 단 한 줌의 인정을 섞어서도 안되며, 개혁을 참칭하고 이미지를 빙자하며 신기득권을 좇는 권력 주변의 사이비들에게 나누어 줄 관용은 애초부터 집에 놓고 나가야 한다.

이제 100일 남았다. 우선 무려 60%가 넘는 사람들이 총선에 관심이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자. 선진국일수록 정치 무관심층이 많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사회가 안정 기조에 접어들어 굳이 정치적 이슈나 충격적 정책의 효용이 사라져 감에 따라 생겨나는 무관심층과, 반칙과 부패와 권력 투쟁에 염증을 느끼고 냉소를 보내는 나머지 냉담층에 편입되는 집단은 전혀 다른 별개 현상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정치 냉담층이 ‘진정한 의미’의 정치 무관심층으로 진화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사회 변혁이다. 그리고 그 변혁의 동인은 어쩔 수 없이 정치 관심층인 우리들이 져야 하는 몫이다. 그래서 성주(城主)가 바뀌건 말건 그저 생업에 종사하는 60%의 백성들을 탓하기 전에 우리가 더 피터지게 싸워야 한다.

오늘날의 이 혼란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한나라당의 흔들기 때문에? 언론의 비협조 탓에? 분당 이후 대통령과 신당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 때문에? 물론 그런 점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 그런 면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양비론적 시각이다. 그런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따져야 한다.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은 전적으로 현 정권이 제공했다. 한나라당이니 조중동이니 하는 것은 전부다 부차적인 문제다. 40%에 달하는 정치 관심층과 또 그 외 상당수의 잠재적 관심층의 정치적 파워와 높은 민도를 철저히 무시하고 유린한 현 정권의 과오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남의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현 정권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원인을 외부에서 찾느라 국력을 모으지 못했고 지금도 여전히 답을 못 찾고 있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대로 대통령이 취임 후 민심을 따르고, 강대국 앞에서도 민족적 자존심을 잃지 않고, 통일 한국의 철학 하에서 특검 수용 등의 문제를 고민하고, 국민의 참여 속에 각종 민생을 챙기고, 한나라당에 대항할 정통민주 정당을 보존하고, 중요 국책사업을 몽둥이로 밀어 부치기 전에 현지 주민들과 더불어 고민했더라면 지금 어찌 되었을까?

그랬는데도 과연 과연 한나라당이 그리 쉽게 발목을 잡을 수 있었을까? 그랬는데도 언론이 지맘대로 써갈길 수 있었을까? 이미 대선 때 무서운 피플 파워를 목격하고 경험한 그들이 감히 대통령에게 그렇게 함부로 할수 있었을까? 그건 곧, 전 국민을 상대로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였을텐데?

불행하게도 일에는 앞뒤가 있고 본말이 있고 인과관계가 있는 법이다. 대통령이 제대로 갈 길을 가는 모습이었더라면 싸움은 어떤 양상이었을지 짐작이 어렵지 않다. 대통령과 한나라당과의 맞짱 싸움이 아니었을 것이고, 대통령과 조중동 + 온갖 수구 쓰레기들의 연합군 싸움으로 전개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가만이 있어도 우리 국민들이 대신 싸워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대선 때 자신부터도 피플파워와 높은 시민의식 때문에 당선이 되었으면서도, 끊임없이 우리 민중의 힘과 높은 개혁 의지를 철저히 의심하고 무시하고 멸시하고 국민들을 우민 취급하며 등을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대통령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싸움에서 깨지고 터지고 피를 흘린 채 도움을 바라며 뒤를 돌아 볼 때, 대통령을 대신해서 싸워주고 벌레 같은 종자들을 단숨에 쓸어버릴 막강한 힘을 가진 우리 국민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이라는 쇠바퀴가 굴러오는데 그것을 막을 거대한 뚝 (국민)을 제 발로 걷어차 없애 버린 인간, 자기가 무슨 대단한 존재인 독야청청 오만하게 양팔을 치켜든 채 서있는 인간, 지금도 여전히 왜 쇠바퀴가 자기에게만 굴러오느냐고 남 탓만 하다가 필경은 바퀴에 깔리고 말 가련한 사마귀가 바로 우리 대통령인 것이다.

'호가호위(狐假虎威)'란 말이 있다. 여우 뒤를 호랑이가 따르는데, 온갖 짐승이 도망을 갔다. 여우는 그것을 보고 짐승들이 자기를 무서워해서 그런 줄 알고 우쭐해 했다는 얘기다. 노무현은 조중동과 한나라당과 수구 기득권이 자신을 무서워했을 것이라고 믿었고, 열우당은 아직도 대선 승리가 노무현의 승리라고 잠꼬대를 하고있다. 노무현과 열우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우’는 그들 뒤에 서있던 우리 국민들, 즉 무서운 ‘호랑이’가 있었음도 모르고 자신이 왕인 양 겁 없이 우쭐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우의 등 뒤에서 호랑이는 사라지고 없으니, 이제 그 가련한 여우를 누가 무서워할 것인가? 조중동도 물어뜯고 한나라당도 쥐어 패고 부시도 와서 찔러보고, 오만 잡놈들이 다 와서 건드리고 찌르고 때리고 침뱉고 조롱하는 완전히 털 빠진 여우새끼 꼴 아닌가?

그러나 누구를 탓할 것이며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그래도 여전히 남 탓인가? 사라진 호랑이를 찾아가 백배 천배 사죄하고 삭삭 빌어 다시 모실 생각은 안하고, 지금도 여전히 자신이 호랑이인 양 꼴값을 떠는, 한주먹 깜도 안 되는 이 교만한 여우를 어이 할꼬?

민주당도 열우당도 개혁당도 민노당도 무소속도 웃지마라. 그대들도 거기서 거기다. 민심과 거꾸로 가면서 노무현이 여우라고 조롱할 낮짝이 그대들에게 있는가? 도토리 키재기식의 20% 전후의 지지율이지만 여전히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것이 암울한 현실이다. 이 형국에 기댈 것은 무엇인가? 60%의 냉담층을 탓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냉담으로 내몬 자신들이 먼저 자성하고 겸허하게 민의를 따라야 할 것인가? 간도 쓸개도 다 팔아먹고 국민이 뭐라고 외치건 나 몰라라 할만큼 의원직이 그리도 좋은가? 범죄를 저지른 일곱놈 죄다 체포동의안 부결시키고, 어째 남일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닥칠 일이라 이건가? 

어차피 이번 총선을 마지막 과도기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통합이니 뭐니 하는 말도 필요없다. 그런 궤변들은 국민을 두번 죽이는 발상이다. 통합해서 뭐하게? 당선 쉽게되게? 당선 더 많이 시키게? 그래서 뭐하게?

당선만이 지고지순의 선이 아님을 우리는 노무현의 당선을 보고 배웠다. 당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선된 후 초심을 잃지않고 잘한 넘이 진국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당연히 정당을 고려해야 하지만, 철저하게 인물을 보고 판단해서 찍어야 한다. 그래서 비교우위나마 우위인 사람을 찍어야 한다. 나도 지지하는 정당이 있지만, 그리고 이십 초반에는 비슷하면 그냥 솔직히 정당을 보고 찍은 적도 있음을 고백하지만, 이번만은 정당은 두번째 고려사항이다. 지역에 따른 투표? 그런건 개나 물어가라고 줘 버린지 십 수년 되었다.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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