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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군대와 노무현군대, 전쟁이 남긴 것
[두부독감 23] 방현석의 『랍스터를 먹는 시간』
 
두부   기사입력  2003/12/30 [10:08]

전쟁은 자비가 없다

1970년대 한국은 월남파병, 즉 '월남특수'로 2억 달러의 돈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당시의 금액으로는 엄청난 돈이었고 한국은 '달러를 씻은 국물'을 마시게 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정반대다. 한국군의 이등병 1일 수당은 1달러 대위는 5달러였고, 전쟁으로 인해 부상을 당했거나 죽은 사람들에 대한 피해보상은 전혀 없었다. 지금도 고엽제 피해와 전쟁 후유증으로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한테도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가장 오랜, 또한 실패한 전쟁을 치렀다. 제국주의의 횡포에 작은 나라 베트남은 많은 희생을 겪어야 했다. 미국의 전쟁 야욕은 그래서 참혹하고, 비루하다. 선이라는 가면을 쓰고 달려드는 미국 때문에 세계의 여러 나라는 끝임없이 비명소리를 지르고 있다.

지금 그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이라크다. 한국 정부는 이라크 추가파병을 국민들의 소리를 무시하고 결정했다. 대통령은 자신의 신임을 묻겠다고 국민투표를 재안했지만, 사실 이라크 추가파병을 국민투표로 재안하는 것이 합당하다. 더군다나 청와대에서는 파병을 예정해놓았고, 대통령과 4당 대표만이 그 결정을 내렸다. 대통령이 용렬해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년이면 추가파병이 이루어질 것이고, 다시 한국은 30여 년 전의 베트남파병과 같은 미래의 무거운 짐을 지게 될 것이다.

▲영화 『하얀전쟁』의 한 장면    
베트남과 이라크에 한국 군대가 파병되는 것은 맥을 같이한다. 둘다 미국이 일으킨 침략전쟁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동맹관계를 이유로 파병을 한다고 하지만, 그러한 논리로 국민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하다. 언제까지 한국은 미국이라는 동맹국 핑계만 댈 것인가. 그리고 파병할 명분도 미흡할뿐더러 이라크의 전 지역이 파병군대에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결정은 시쳇말로 '졸라 개념 없는' 짓이다. 최근 오무전기 직원이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을 받아 두명이 사망하고 두명이 부상을 당한 사실은 이것은 증명한다.

전쟁은 자비가 없다. 승리와 패배라는 단어는 전쟁에서 쓰일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전쟁은 승리와 패배를 뛰어넘어 모든 이들에게 고통과 상처를 준다. 육체적인 고통은 말한 것도 없고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가야 하는 영혼의 상처는 인간을 황폐화시킨다. 한국 정부의 이라크 파병은 베트남 파병처럼 무의미하다. 30년이라는 시간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가 박정희시대를 다시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박정희군대와 노무현군대

방현석의 소설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창비, 2003년)에는 네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데, 앞의 두편은 베트남전쟁을 다룬 소설이고, 뒤의 [겨우살이]는 전교조, [겨울 미포만]은 노동현장을 다룬 소설이다. 앞의 두편 중 [존재의 형식]에서는 레지투이가 '반레'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말한다.

베트남전쟁에서 만난 동료인 반레는 시를 쓰고 싶은 시인 지망생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한 시인의 삶를 멈추게 했다. 결국 살아남은 레지투이는 죽은 이의 삶을 대신 살게 된다. 그가 살아갈 수 있는 형식은 반레였고, 반레여야만 했다.

레지투이의 반레에 대한 사랑은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실천문학사, 2002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이 소설의 저자를 자신이 아닌 반레라고 했다. 레지투이가 베트남전쟁에서 잃은 동료들은 295명이다. 입대 동기 3백명 가운데 5명만이 살아남았다.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의 제목에서 '그대'는 반레일 수 있고, 입대 동기 295명일 수 있고, 전쟁으로 죽은 모든 사람들일 수 있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베트남에 있는 조선소 안에서 한국과 베트남 사람들의 대립을 통해 30여 년간 마음속에 응어리진 불신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전쟁을 겪은 베트남 사람들의 상처였다. 그들에게 '박정희군대'는 "찢어죽일" 대상이었고, 그들이 살아 있는 한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박정희군대는 "피 한방울 섞은 역사가 없는" 베트남 사람들을 미국을 대신해서 무참히 죽였다. 전쟁은 가혹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죄책감을 짊어져야만 했다.

▲이라크전쟁 모습  
한국은 월남파병으로 얻은 것이 있지만, 잃은 것도 있었다. 얻은 것은 미국이 쥐여준 달러였고, 잃은 것은 인간 본연의 그 무엇이었다. 지금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그것은 전쟁에 대한 책임이자, 베트남 사람들에게 진 빚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우리는 그 빚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은 랍스터를 먹기 위해 손에 상처를 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보인다. 당시 한국은 박정희의 개발독재라는 좌우명(?)과 미국의 명령에 눈 하나 껌벅하지 못하는 동맹국(?)이었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는 전쟁의 '차꼬'를 차고 있다. 전쟁은 한시적인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물려줘야만 하는 '역사적인 치욕'이다.

2004년 봄이면 베트남에 '박정희군대'가 파병되었듯이, 이라크에도 '노무현군대'가 파병될 것이다. 30여 년 전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 한국은 전쟁의 책임과 이라크 사람들에게 빚을 지게 될 것이다. 그때 후손들은 과거의 사람들에게 무어라고 말할까. 명분과 실리를 위해 전쟁에 참가했다고 할까? 그 대답은 지금 베트남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우리는 표제작 [랍스터를 먹는 시간]에 등장하는 어느 노인의 말을 지금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기억해야 한다.

"따이한들은 불쌍했지 않은가. 독립성이 있고 부자인 나라라면 미국이 쥐여준 총을 들고 이 먼 나라까지 왜 왔겠나. 우리도 불쌍했지만 따이한들은 우리보다 더 불쌍했던 셈이지. 우리야 제 땅을 지키고 살려니까 어쩔 수 없이 죽고 싸우고 했지만 아무 관계도 없는 남의 나라에 와서 죽고 다친 따이한들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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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2/30 [10:0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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