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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의학'의 이름으로 진실을 해부한다
[두부독감 20] 이윤성의 『법의학의 세계』
 
두부   기사입력  2003/12/02 [10:39]

두 벌 주검

1988년 서울올림픽 100미터에서 우승한 벤 존슨은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올림픽위원회가 금지한 약물은 200가지가 넘는데, 존슨은 그 중 하나의 약물을 복용해 도핑테스트에서 발각된 것이다.

1991년 대학생 강경대 군은 시위 도중 전경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했다. 명백히 '공권력이 저지른 살인'이었다. 그런데 그의 주검을 부검해야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를 놓고 정부측과 대책위원회측은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가족과 대책위원회 측은 분명히 목격자가 있고 검찰을 믿을 수 없는데다가 강경대 군을 '두 번' 죽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검안과 CT촬영만 한 후 사망원인이 밝혀졌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강경대 군의 사망 원인을 "뇌에 손상을 받아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혈심낭"이었다고 한다.)

1995년 6월 여자와 한 살 된 딸이 피살된 사건이 일어났다. 용의자로 지목된 자는 남편인 치과의사였다. 이 사건에서는 사망시간이 최대의 쟁점이었다.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그들이 사망한 건지 아니면 그 후 사망한 것인지는 남편의 범인 여부에 큰 변수로 작용한 것이다. 결국 치과의사는 8년의 재판을 받고 2003년 2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 좌측부터 벤존슨, 강경대 군, 치과의사  

위의 세 가지 사건은 법의학이 왜 중요한지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3년 2월 대구에서 일어난 지하철 방화사건에서도 신원확인을 위해 DNA감식이 활용되었다.) 일반적으로 법의학이라 하면 시체를 검사하는 '법의병리학'만 생각하기 쉬운데, 법의학에는 여러 분야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법의병리학', '법의독물학(독극물 검출)', '법의유전학(혈액이나 정액 따위로 신원확인)', '법치의학(치흔 감정이나 치아로 개인 식별)', '법인류학(백골을 검사하여 개인 식별)', '감식학(범죄수사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검사)' 등이 있다고 한다. 또한 저자는 법의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법의학은 법률의 시행과 적용에 관련된 의학적 또는 과학적 사상을 연구하고 이를 적용하거나 감정하는 의학의 한 분야이고, 궁극적으로는 인권을 옹호하고 공중의 건강과 안전을 증진하여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의학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법의학이라는 분야는 생소하면서 낯설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가 "법의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법의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아지고 그 역할 또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위의 강경대 군 사건에서도 부검이 이루어지지 않아 사망원인인 혈심낭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완벽하게 의학적으로 설명이 되질 않는다. 더군다나 "두 벌 주검"이라는 우리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검을 또다시 죽이는 행위를 꺼리는 문화적인 관습도 한몫을 했다.

법의학, 사건을 해결하다.

비행기 사고가 발생했다고 하자. 이 비행기는 심하게 폭파되어 탑승한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할 길이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탑승객 명단을 보고 모든 사망자들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법은 사망자의 주검 일부를 보지 않고는 사망을 선고하거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이 때 법의학자들은 비행기 잔해물에서 주검이 일부분을 채취해서 사망자의 치료 경력과 기록, 치과 기록, 신체 특성을 바탕으로 끝까지 신원을 확인한다. 사망자는 그 동안에 "실종자"로 처리된다.

이처럼 법의학은 모든 사건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법'이자, '의학'이다. 또한 의학적으로 어떠한 원인이 생겨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밝혀낸다. 일례로 다쳐서 사망했다면, 출혈을 많이 했는지, 장기를 손상시켰는지, 감염을 시켰는지 등 의학적으로 원인과 결과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이다.

이 책(이윤성, 『법의학의 세계』, 살림, 2003년)은 생소하기만 한 '법의학'을 100쪽도 되지 않는 불량 안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쉽게 설명하고 있다. (책값 또한 커피값도 되지 않는 3300원이다. 그러나 분량과 가격에 비해 그 내용은 두껍고 비싸다.) 1975년 '장준하 선생 사망 사건', 1987년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1989년에 발견된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스 2세의 유골', 1994년 '지존파 사건' 등이 등장한다. 이 중에서도 법의학의 혜택을 받은 사건들은 의학적으로 설명이 완전하게 구현되었으나, 그 반대는 아직까지 미완으로 남았다.

법의학이 의학 본연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고,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응용의학이라는 저자의 말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특히 "법의학을 전문과목"으로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새겨들을 만하다. 이것은 또한 죽은 사람에 대한 사회적인 예의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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