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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현란한 삼성그룹보호 초절정신공
'삼성, 한나라당에 152억 전달' 제목뽑아 피해자로 둔갑시켜
 
양문석   기사입력  2003/12/26 [10:34]

때늦은 감이 있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12월11일 한국 주요 신문들이 뽑아 낸 1면 헤드라인은 도둑놈과 장물아비를 숨겨주기에 여념이 없는 신문들의 '뻔뻔스러움'이 홀딱 벗은 채로 독자들에게 다가왔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않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날은 삼성이 채권책으로 위장해 한나라당에 152억원을 건네 준 '범죄행위'가 모든 언론의 1면을 장식한 날이었다.

대한매일과 동아일보, 삼성과 한나라당이 없다

한 때 '한경대'의 마지막 음절을 장식했던 대한매일은 <5-10위 그룹 계열사서도/昌캠프, 100억-200억 모금/檢, '2000억모금설'추적>이라고 1면 하단 제목을 뽑았다. 보시다시피 대한매일은 1면 제목에서 아예 '삼성'이라는 단어를 빼버렸다. 부제목에서도 '삼성'이라는 단어를 아예 없애버렸다. 그리고 4면에서도 <112억 주택채권 책으로 위장>이라는 헤드라인을 달면서 부제목으로 단 <검찰이 밝힌 삼성의 치밀한 자금제공 수법>에서 '삼성'을 단 한번 제목으로 언급한다. 독재시절 권언유착의 상징이었던 서울신문의 후신 대한매일이 2004년1월부터 다시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고쳐 단다. 새로운 '재벌-언론유착'의 신화를 쓸려나 두고 볼 일이다.

▲대한매일 12월 11일자 1면 기사, 5-10위 그룹 계열사서도/昌캠프, 100억-200억 모금/檢, 2000억모금설추적     ©대한매일

또한 동아일보도 가관이다. 이회창 버리기와 한나라당 보호하기를 주도했던 동아일보는 <삼성, 채권112억 전달/이후보측에 책처럼 제공...현금40억 따로 줘>로 1면 헤드라인을 뽑았다. 반면 한국일보는 <삼성, 채권112억 제공/한나라에 책 형태로...현금 40억 별도>로 제목을 붙였다.

동아일보가 '이후보측에'라고 명시한 것과 한국일보의 '한나라에'로 명시한 것의 차이는 크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검찰은 한나라당에 이 돈이 들어갔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둘째, 한 개인 차원이 아니라 정당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데 굳이 동아일보는 '이회창 개인'에 모든 책임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회창을 배제한 한나라당을 향한 애틋한 사랑(?)이 돋보인다. 역으로 묻고 싶다. 이회창 개인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면 구조화된 정치자금 관련 비리가 없어지나. 한 개인만 죽이면 정치개혁이 성취되나. 정치판의 심판이 아닌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동아일보가 솔직해 지면 좋겠다. '동아일보는 정치판의 심판이 아니라 선수입니다'고 한 번쯤 1면 톱으로 제목을 뽑았으면 좋겠다.

중앙일보, 수동태의 마술을 부리다

하지만 중앙일보가 더 문제다. 거칠고 투박하게 그리고 노골적으로 삼성과 한나라당 편들기를 하는 대한매일과 동아일보는 차라리 귀여운 편이다. 입만 열면 삼성과 관련 없다는 중앙일보는 어떻게 해서라도 '삼성'의 범죄행위를 숨겨주거나 희석시키려고 혈안이다.

언론학에서 보도제목과 관련해서 한때 가장 빈번하게 지적되었던 '수동태'와 '능동태'의 활용수법이 건재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줌으로써 중앙일보는 한국언론사에 또 다른 이정표(?)를 남긴다. 

중앙일보는 범죄행위주체를 삼성에서 한나라당으로 교묘하게 바꿔치기 했다. 다른 신문들이 <삼성, 112억 제공>이라고 제목을 달 때 중앙일보만 유일하게 <한나라, 삼성서 152억 받다>로 제목을 뽑았다. 심지어 조선일보까지 <삼성이 한나라에 준 돈은 152억원/채권112억 현찰 40억 전달>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채권과 현찰의 액수'가 큰 제목이고, '삼성이 한나라에 준 돈'은 소제목이다. 돈을 준 삼성보다는 삼성이 준 돈의 액수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래도 조선일보는 동아일보나 한국일보처럼 범죄행위주체를 삼성으로 명시한다.

반면에 중앙일보는 <한나라, 삼성서 152억 받다>로 제목을 뽑으면서, 범죄행위주체로 오히려 한나라당을 부각시킨다. 교묘하고 세련된 '삼성의 범죄행위 감싸기'이다.

▲중앙일보 12월 11일자 1면 기사, 한나라, 삼성서 152억 받다     ©중앙일보

<광주시민 200명 피살>과 <군대, 광주시민 200명 사살>을 비교해보자. 전자는 살인행위주체가 없이 살해대상만 등장한다. 후자는 살인행위주체로 '군대'를 명시한다. 수동태를 사용함으로써 살인행위주체를 숨겨주는 방식으로 뽑은 제목이 전자이면, 후자는 살인행위주체를 부각시켜 그들의 잔인한 살해행위를 분명히 드러내는 제목이다.

마찬가지로 불법적이고 부정적인 행위에서 주체를 드러내는지 아닌지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전달한다고 할 때, 중앙일보는 굳이 불법행위주체를 한나라당으로 규정함으로써 삼성이 피해자인양 착각하게 제목을 뽑은 것이다.

도둑놈과 장물아비

돈 준 쪽이나 돈 받은 쪽이나 매 한가지다. 자사의 노동자와 주주를 속이고 심지어 국민을 속여 마련한 불법 비자금. 이 비자금을 조성한 삼성 경영진은 '도둑놈'이다. 그리고 이 비자금은 '장물'이다. 그리고 이 장물을 챙긴 한나라당은 '장물아비'다. 한국의 몇몇 신문이 이들 도둑놈과 장물아비를 숨기겠다고 안달이다. 대한매일처럼 아예 도둑놈을 숨겨주거나 동아일보처럼 장물아비를 굳이 제목에서 빼 주는 행위, 그리고 더 교묘하고 세련되게 도둑놈을 피해자인양 장물아비만 부각시키는 제목으로 독자를 속이는 행위. 평소 그들이 정치개혁 경제개혁 운운하면서 보이던 그 근엄한 낯짝 뒤에는 이런 더럽고 추악한 말장난이 도사리고 있었다. 내년도 이들은 변하지 않겠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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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2/26 [10:3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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