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을 만나서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논의의 범위가 내가 종로구 가회동에 위치한 북촌학당에서 현재 진행중인 공부모임에까지 마침내 가닿게 되었다.
고대 로마제국의 역사가인 플루타르코스가 저술한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교재로 채택해 꾸려지고 있는 이 공부모임은 사실은 “놀면 뭐하냐?”는 상당히 잔망스러운 동기에서 출발하였다. 문제는 내가 예전에는 머리 굵은 어른들 대상의 공부모임은커녕 초등학생 상대로 과외지도 한 번 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과외를 받아본 경우 역시 단 한 차례도 없지만. 나는 책을 주제로 하는, 또는 배움을 화두로 하는 대화를 남들과 거의 하지 않아온 편이다. 허나 나의 잔망스러운 동기를 기특하게 여겨준 여러 선후배님들의 격려와 채근에 힘입어 가르침이라는, 내게는 이제껏 미증유의 영역이었던 신천지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냉정히 바라볼 때 결과는 신통치 않다. 무엇보다도 내가 공부모임을 이끌어본 경험이 전혀 없는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내 말발이 워낙 눌변인 탓에 수업이 끝날 때마다 뒤통수가 후끈거리곤 한다. 그런데 모임에 참여해본 분들의 평가가 뜻밖에도 괜찮았다. 그분들이 왜 호의적 반응을 보였는지 그 정확한 까닭은 솔직히 아직은 나도 모르겠다. 굳이 이유를 짐작해본다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고대사의 교과서처럼 통용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전 8권짜리의 완역판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통해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를 들여다보려고 한 시도가 굉장히 참신하게 다가온 듯하다. 더욱이 ‘생활정치’니, ‘소통과 공감’이니 하는 작은 얘기들이 대세로 득세하는 단소경박한 시대에 ‘영웅’이라는 중후장대한 화두를 역발상격으로 도발적으로 꺼내든 내 특유의 똘끼도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스포일러 삼아 핵심적 골자를 미리 공개하자면 플루타르크와 시오노 나나미의 본질적 차이는 한 인물을 조명하고 해부할 때 전자는 능력을, 후자는 매력을 판단의 준거로 선호한다는 데 있다. 그로 말미암아 플루타르코스가 로마사 제일의 준걸로 자리매김해놓은 카밀루스가 시오노 나나미로부터는 사실상 듣보잡 취급을 받고 만다. 카이사르에 대한 나나미의 몰입과 편애도 그러한 증거일 터이고. 영웅은 매우 휘발성이 강하면서도, 아주 위험한 테마다. 따라서 최근 우후죽순으로 속출하고 있는 인문학 학습 단체들이 주요한 잠재적 고객층(?)으로 겨냥하고 있는 중고등학생들을 모임에 원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양보하기 어려운 불변의 원칙으로 고수할 작정이다. 자아가 채 완벽히 무르익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영웅을 함부로 가르치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장난감총 대신 실탄이 잔뜩 장전된 진짜 총을 손에 쥐어주는 것과 같은 행동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는 무려 60명이 넘는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인물들이 쉴 새 없이 숨가쁘게 출연한다. 이들 대부분은 한 도시, 한 민족, 한 국가를 창건하거나 중흥시킨 공훈이 있거나, 아니면 결정적으로 몰락시키는 빌미와 원인을 제공한 인사들이다. 서양사의 원류를 직조한 범상치 않은 사내들의 족적을 세밀하게 추적해나가면서 현대에서도 적용 가능한 보편적 교훈과 지침을 얻는 데 최적의 통로로 구실할 수 있는 텍스트인 셈이다. 원래는 작년 가을에 격주로 시작한 모임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결혼 등 여러 가지 개인적 사정들을 핑계로 반년 넘게 개점휴업 상태로 방치해뒀다가 두 달 전쯤부터 매주 한 명의 인물을 다루는 방식으로 진행해오고 있다. 등장인물들 전부를 남김없이 소화하는 데에는 통틀어 1년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첫 한 해 동안 여덟 권 전체를 읽어갈 이들을 ‘플루타르크 1기생’으로 내심 감히 호명해두고 있다. 2기생들까지는 똑같이 공부하는 입장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내가 나름 남들을 가르치는 경지에 올라섰다고 자부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3년차, 곧 3기생부터일 게다. 만났던 분은 2기생 자격으로 공부모임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흔쾌히 피력했다. 꿈도, 영웅도 모두 사라진 소심하고 유약한 지금 시대에 어쩌면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웅적 행동들 가운데 하나는 영웅전을 독파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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