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 후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5주기를 맞아 노 전 대통령과의 오래된 인연을 추억했다.
박 후보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는 그 분의 변호인이었다. ‘변호인’이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불렸던 ‘박상순’이 접니다”라며 노 전 대통령을 회고했다.
박 후보는 이어 “그림이 커지면 그림이 된다지요. 제 마음 속, 그림으로 남아 있는 사람, 고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썼다.
또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한결같이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 ‘사람사는 세상’이라 말씀하셨던 사람, 고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회고했다.
박 후보는 그러면서 “시민에게 진 빚, 열심히 발로 뛰면서 갚겠습니다. 시민에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의리시장이 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박 후보는 이같은 내용의 글과 함께 지난 2000년 6∼7월 노 전 대통령과 주고 받은 편지를 소개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 해 4·13총선 때 부산에 출마했다 낙선했다.
아래는 박 후보와 노 전 대통령이 주고 받은 편지이다. 이 서신은 2000년 6월 참여연대 기관지 '참여사회'에 실린 바 있다.
박 후보와 노 전 대통령이 주고받은 편지
노무현 의원님께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선거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저희들이 옆에서 낙선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견학해보니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지역감정의 회오리바람으로 낙선까지 하였으니 그 아픔이 오죽 크시겠어요?위로전화도 한 번 못 드렸습니다.
그런데 낙선 직후 위로하는 사람들에게 “농부가 어디 밭을 탓할 수 있겠느냐”며 낙선시킨 지역주민들에 대한 비난을 온몸으로 막았던 일은 감동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결과로는 노 의원님의 정치적 입지에 타격을 입었는데 이를 어떡하나요?앞으로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해 볼 생각인가요?저희들 같은 시민운동가들이 정치개혁과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잡지의 답변으로 부족하신 부분은 뵙고라도 경청하겠습니다.
2000년 6월 박원순 드림
박원순 변호사님께 안녕하셨습니까?이렇게 제 의견을 말씀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위로전화도 못했다고 자책하시지만 항상 변호사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은 저에게 많은 힘과 위로가 됩니다.
선거기간에 진행된 낙선운동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고 싶고, 선거 후일담도 나누고 싶지만 자리를 따로 마련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보내주신 내용에 대한 답변을 통해 저의 의견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총선의 낙선으로 인한 저의 정치적 입지의 타격을 걱정해 주셨고 이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를 물어오셨습니다. 이것에 대한 답변을 드리기 위해 먼저 되묻고 싶습니다.
변호사님은 정치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저는 정치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가 국민들이 안도하고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잘못 이해한 사람들이 입으로만 안도감을 주고 희망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안도감과 비전의 제시는 세치 혀의 말솜씨만으로는 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시대가 안고 있는 과제를 하나하나 풀어 가는 실천과 노력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입법활동, 행정의 감시가 중요하지만 정치인의 활동에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크고 작은 민원을 통한 제도의 개선, 문제제기와 정책의 제시, 대화와 토론, 그리고 여론의 조성과 개입 등 정치인의 일상적인 활동을 밖에 있지만 열심히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와 당에서 주는 역할에 충실하고 스스로 일을 만들면서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은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는 과제들이 수준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국민들의 인식 속에 희망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모습이지만 지역갈등의 문제와 말과 실천이 일치하지 않아서 생기는 불신풍조의 문제는 도대체 앞이 보이지 않는 과제로 저의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다.
동서화합을 위해 노력하면 불리하고, 자기의 논리에 충실하면 실패하는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올바른 모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계속 역설하고 주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올바른 것이라는 역설을 통해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일제시대 때부터 형성된 ‘올바른 주장과 행동은 결국 불이익을 가져온다’는 인식은 결국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또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다’라는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것은 기회주의적이고 대충대충 사는 삶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주기보다는 이로움을 주는 형국에까지 이르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열주의와 불신풍조에 정면으로 맞서서 성공한 사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사례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할 것입니다. 어려운 길이리라 생각됩니다. 계속 무모한 일만 생각한다고 탓하시지는 않을지 염려됩니다.
더위가 점점 다가옵니다. 몸 돌볼 여유도 없이 바쁘시겠지만 건강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임을 잊지 마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2000년 7월 노무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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