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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마다 ‘표준’마다 제각각인 ‘한국’과 ‘한글’ 장단음
[진단] 최한룡의 한국어학 연구, 울고 싶도록 서글픈 한국어학의 현실
 
강상헌   기사입력  2013/10/09 [11:32]
[한:국 한: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우리나라 한국을 [한:국]으로, 나라말 한글은 [한:글]로 각각 ‘한’자를 길게 즉 장음으로 발음하라고 표시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의 기준과 콘텐츠를 주로 담는 포털 네이버도, 버금가는 영향력의 포털 다음의 국어사전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두산동아나 금성출판사의 사전 역시 같다.
 
[한:국 한글] 이와 대조적으로 동아와 함께 사전류 출판의 양대산맥인 민중서림의 사전들은 이를 각각 [한:국] [한글]로 표시했다. 한글의 ‘한’은 짧게 읽는다는 것이다. YBM 사전도 민중서림의 표시와 같다. 특이한 것은 동아에서 나온 사전임에도 연세한국어사전(연세대 언어정보개발연구원 편)은 동아의 다른 사전들과 달리 [한:국] [한글]로 표시했다.

[한국 한글] ㈜동화사의 정선대국어사전과 삼성서관의 사전은 두 단어 모두 [한국] [한글]로 ‘한’자를 짧게 즉 단음으로 표시했다.

[발음사전] 소리에 관한 좀 더 전문적인 사전이라 할 ‘발음사전’의 경우도 표시내용이 엇갈린다. 표준한국어발음사전(이규행 이규항 김상준 공저)은 [한:국] [한:글]로 국립국어원의 표시와 같다. 그러나 같은 제목의 책 표준한국어발음사전(전영우 저)은 [한:국] [한글]이다.

이 책들은 학자나 교수, 방송사 아나운서 등 ‘전문가’들이 지었거나 감수한 것으로, 현재 서점에서 팔리고 있다. 오래되어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는 (발음)사전들도 이렇게 내용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다. 연구자들이나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알려진 ‘비밀’이다. 시험문제로 출제해서는 안 되는 민감한 주제라는 귓속말도 오래 됐다고들 한다.

[한국]이냐 [한:국]이냐, [한글]이냐 [한:글]이냐?

나라이름 한(韓). 이 글자는 중국어의 옛 성조 평상거입(平上去入) 4성(聲) 중 평성으로, 우리 한자어에서는 짧게 읽었다. 평성(平聲)과 입성(入聲)은 짧게, 상성(上聲)과 거성(去聲)은 길게 읽는 것이 한자를 처음 깨치는 아동들이 익혀야 할 큰 원칙 중 하나였다. 이 4성은 현대 중국어의 4성과는 같지 않기 때문에 간혹 혼동하는 이들이 있다. 

전광진 교수(성균관대) 등 한자교육 전문가들은 ‘동북아시아 속 우리 겨레의 오랜 역사에서 자연스럽게 쌓인 언어규칙’이라고 4성과 한자어 장단의 관계를 설명한다. 50여 년 전까지 학교 서당 등에서 한자를 배운 이들에게 이는 상식이다. 학교교육에서 한자가 자취를 감추면서 한자어를 읽는 기본이 흔들리고 있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전 교수 말고도 많다. 

‘우리말연구가’ 최한룡 선생은 이렇듯 명확한 한자어 읽기의 원칙을 우리 사회가 잊어가면서 우리말 장단음 문제가 아이들 말마따나 ‘귀신이나 알 수 있는 암호’가 됐다고 씁쓸해 한다. 웬만한 한자사전이면 다 나와 있는 장단음 구분법을 이해할 수 없게 된 까닭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국어 한자 등 담당 선생님들마저도 상황이 한가지라면 이는 참 심각하다.

나라와 나라말 이름의 소릿값 지키지 못한 언어 현실

▲ 사전이 틀리면 나라 말글이 어긋난다. 사전마다 제시하는 바가 다르다면 그 이유를 각각 설명해야 책임 있는 자세다. 이 색다른 제목의 책이 한글날에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 미디어오늘 이치열 기자
최한룡 선생에 따르면, ‘한국’ 발음의 장단음 혼선은 좀 황당하다. 특이한 제목의 그의 저서 ‘울고 싶도록 서글픈 한국어학의 현실’(도서출판 신정사 간)에는 일제 이후 우리 말글을 다룬 사전과 연구서 등에서 나타나는 장단음의 문제 즉 음장(音長)의 값에 관한 이론과 실제가 다뤄진다.

같은 한(韓)자가 들어가는 단어인데도 한글학회 사전의 내용은 [한:민족(韓民族)] [한:족(韓族)]과 [한시(韓詩)] [한옥(韓屋)]처럼 그 소릿값이 다르다. 

크라운국어사전(은광사) 뉴에이지새국어사전(교학사)은 [한국]인데, 이숭녕 남광우 이기문 이응백 이을한 신기철 신용철 최학근 김민수 어효선 등 학자들이 편저 또는 감수자로 표시된 사전들은 [한:국]이다.

한국어(韓國語) 발음기호도 제각각이다. [한:국-어:](한글학회) [한국-어](이희승 편저 민중서림) [한:국-어](금성출판사) [한:구거](KBS편저 어문각/한국정신문화연구원 남광우 등 공저 한국어표준발음사전) 등으로 같은 단어를 각각 달리 발음하도록 지침을 제시하고 있는 이런 사례도 이런 혼선의 일부분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혼선이 거의 대부분의 한자어들에서 지적된다는 점이다. 한자어로 만들어진 국어 낱말의 장단음을 판별하는 기준이나 원리가 어떤 사전이나 연구자에게서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도 그가 ‘한국어학의 현실’에 던지는 쓰디쓴 질문이다. 

한자어 장단음에 관련해 ‘한국어학’이 학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무겁지만 상식 차원의 문제제기인 것이다. 

한국 韓과 한글 한의 발음 달라야 할 이유 없다

‘한 핏줄, 큰 민족’이라는 한겨레, 추석 한가위, 대전 이름 한밭 등은 [한겨레 한가위 한밭]으로 ‘한’을 짧게 읽는다. [한가득] [한숨]도 단음이다. 크다, 하나다, 한가운데다 따위 뜻의 접두사 ‘한’이 이 말들의 핵심이다. 으레 ‘자랑스런’이란 말이 앞에 붙는 우리 한글의 ‘한’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한:글]이 옳지 않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의 논리다.

‘한’은 우리나라의 이름으로 ‘조선(朝鮮)’과 함께 까마득한 고대사에 이미 등장했다. 우리 조상은 제 이름을 ‘한’이라고 했다. 마한 변한 진한의 삼한이 그 중 일부다. 또 고조선 때 ‘한’은 나라 우두머리인 군장(왕)의 명칭이었다. 천관우 이을호 이병도 선생 등 고대사 학자들의 기록이다. 고려 조선 등 왕조에서도 ‘한’은 우리의 이름이었다. 현재는 ‘대한민국’이다.

소리 ‘한’이 韓이라는 글자를 얻는다. 고조선 때 왕의 뜻 글자 汗(한)도 그 중 하나다. ‘한’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부르던, 남들도 그렇게 부르던 상황에서 그 소리와 뜻에 어울리는 문자를 얻게 된 것이다. 전남대 김태완 교수(중국어 음성학)는 “원래 말(이름)이 있었고, 그 말을 표현하는 글자(그림)가 짝이 됐다. 말과 문자가 생긴 순서다.”라고 설명한다.

나라 이름 ‘한(韓)’으로, 접두사 ‘한’으로 이렇게 이 말은 우리와 함께 오래 살아왔다. 우리 한겨레는 큰 나라 한국도, 큰 글 한글도 이뤘다. 한국의 ‘한(韓)’과 한글의 ‘한’은 한 뿌리에서 나온 말로, 결국 같은 말일 개연성(蓋然性)이 크다. 한자(漢字) 한강(漢江) 등으로 일상에서 자주 보는 한(漢)자는 4성 중 거성이어서 길게, [한:자] [한:강]으로 읽는다.

그 韓과 함께 ‘한’의 소리를 표기하기 위한 한(汗)이나 그 뿌리인 간(干)자 또한 평상거입 4성의 평성이다. 우리나라 이름 ‘한’이나 우리글 한글의 ‘한’이나 음성학적으로 또 어원의 측면에서 같은, 짧게 읽는 글자라는 것이 [한국] [한글]로 두 낱말의 ‘한’을 짧게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설명이다.

여러 사전에서 [한:국] [한:글]로 ‘한’이 장음이 된 까닭을 설명한 내용을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연세한국어사전의 경우 ‘일러두기’에 ‘... 심리적 장음과 더불어 일부 단어에 한해서 장단음에 변화가 있음...’이라는 대목이 있어 주목된다. ‘심리적 장음’이라는 용어는, 상식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애매하다. 물론 언어학의 공식 용어도 아니다.

근대 현대의 역사에서 상처 입은 우리 말글

남광우(1920∼1997년) 등의 일부 연구서는 근대 특히 임진왜란 이후 우리 말글의 한자어 발음에 변화가 생겼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혼선이 커졌기 때문에 현재 시중에서 실제로 쓰이는 말(그 변화와 혼선으로 생긴 결과물)을 표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장단음의 혼란도 그 결과물의 하나라는 것이다.

근대와 현대사에서 우리말글에 (불가피한) 변화와 혼선이 있었으면, 이를 평가하고 전통과 원칙을 시대상에 맞게 적용해 바로 잡는 것이 학계와 사회, 나라의 역할일 것이다. 기왕 버린 말글이니 상처 맺힌 그대로 표준을 삼자고 하는 것은 당당한 태도는 아니다. 다만 우리 시민사회와 학계가 이런 주장의 의미를 놓치고 있어 혼란이 더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말글의 나라가 정한 기준 중에는 표준발음법이란 것이 있다. 이 ‘표준’은 우리 말글의 ‘대단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한자어의 발음, 특히 음장의 값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장단음이 학교 교사와 학생들에게 ‘암호’라고 불리는 까닭을 풀 수 있는 단서다. 이런 표준 업무를 맡은 나라의 기구는 국립국어원이다.

장단음, 의미변별의 결정적 요인이며 한국어의 혼백이다 

우리 말글에서 장단음은 뜻을 매기는 수단, 의미를 구별하는 요소다. 영어에서 강세(악센트)의 위치에 따라 낱말의 뜻이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말에서는 음의 길고 짧음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낱말이 많다. 

긴 [말:]은 언어이고 짧은 [말]은 동물[마(馬)]다. [눈:]은 ‘대기 중의 수증기가 찬 기운을 만나 얼어서 땅 위로 떨어지는 얼음의 결정체’(네이버 사전)이고 [눈]은 세상을 맑게 보는 당신과 친구들 얼굴의 아름다운 눈[안(眼)]이다. 소리는 같은데 글자가 다른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들의 경우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더 쉬울 터다. 한자어는 더 그렇다. 

의미 변별의 수단이자 기준이라는 것은, 이 장단음의 요소가 우리 말글의 기개(氣槪)이자 골격을 이루는 중요한 척도라는 뜻이다. 잊어서도 잃어서도 결코 안 되는 우리의 혼백(魂魄)으로, 선조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것처럼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존엄한 문화 중 하나인 것이다. 

한글날에 톺아본 ‘한국’과 ‘한글’의 소릿값 등에 관한 걱정은 현대 우리 말글 한국어가 당면한 큰 숙제의 서론 중 하나다.

<우리말연구가 최한룡 선생 인터뷰>
“어찌 국어사전이 틀릴 수가 있나요? 길을 막고 물어 봅시다.”


88세 노령(老齡)의 평안함과 인자함 속에서도 눈매 매섭다. ‘울고 싶도록 서글픈 한국어학의 현실’이란 책을 펴내는 등 퇴임 후 ‘제2의 인생’을 노기(怒氣) 섞인 열정으로 일관되게 살아온 특별한 인사다.
 
울고 싶도록 서글퍼 길이라도 막고 물어보고 싶군요. 사전은 ‘말글의 법원’이고, 나라의 표준사전은 ‘대법원’아닌가요?” 최한룡 선생은 아직 노여움을 다 떨치지 못했다. 공분(公憤)이다, 일이 남았다는 것이다.한국어 발음체계를 분선 제시한 최한룡 선생     © 미디어오늘 이치열 기자
우리 국어의 한자어 낱말 장단음에 ‘너무 잘못이라고 생각되는 점들이 많아’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안됐다는 내용이 책 속 곳곳에 절실하다. ‘농부철학자’ 윤구병 씨가 최근 한겨레신문에 쓴 글에서 그의 일과 생각에 관해 언급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더 젊어서부터 한자음 장단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느꼈지만 먹고 사는 일 때문에 더 생각을 하지 못했지요. 56세 때 월급쟁이 생활을 그만두고 시작하게 된 일입니다. 기본 지식이나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의학(韓醫學)을 공부하고 그 분야 일을 하셨던 형님의 영향이었는지 한자에 비교적 익숙해 그런 관심이 생겼던 것 같네요.”

한자의 지식이나 소양이 없이 우리 말글을 바르게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막상 ‘이런 공부’를 시작해보니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양주동 감수 국어사전을 구해보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장단음의 실제와 너무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생각이 최소한 ‘망발’은 아니라는 점을 확신했다. 그러나 유명한 학자가 관련된 사전마저 이렇다는 큰 충격이 최 선생을 부추겼다. 대화가 진행되면서 이 부분에 관한 그의 감수성이 특별한 것으로 느껴졌다. 절대음감(絶對音感)이라고나 할까.

한국어 음운론(音韻論)과 한자어 발음의 이해에 필수적인 중국어 성운학에 관한 그의 공부의 크기는 상상을 넘는 수준으로 생각된다. 관련 부문의 일본 서적 독서에서 우러난 지식의 전개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일제와 전쟁, 근대화의 격랑(激浪)을 겪은 ‘천부적 감수성을 지닌 최한룡’이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을 것인가?

큰 여성잡지만한 사륙배판(257×182mm) 1,300여 쪽의 책이다. 깜짝 놀랄 만큼 다양한 관련 자료들을 자신의 주장을 펴는데 활용하고 있다. 한자가 많고 고대부터 만들어져온 성운(聲韻)과 같은 음운학 자료가 많이 인용되고 있다.

언론인의 시각과도 비슷한 각도로 현상을 톺아본다. 한문이나 일본어 등의 사례도 많고, 서양 학자들의 이론도 드물지 않다. 만만한 책은 아니다. 그러나 관련 학문을 공부하는 이라면 그의 이런 주장을 피하지 말아야 정정당당한 연구자일 것이다. 그를 만나고 그 책을 여러 차례 정독한 필자의 생각이다.

“기왕의 ‘선배 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며 이를 학풍 또는 학파라고 여기고 단단한 성(城)을 짓는 버릇이 우리 학계의 암적(癌的) 폐습인 것 같습니다. 특히 국어학은 이를 평가할 국제적인 잣대도 없는데다 언론이나 비평의 기능도 미미해 몇몇 연구자들의 아성에 우리 언어 바탕의 지성이 좌지우지 되는 경향이 있지요.”

‘울고 싶도록 ...’의 이유다. 걱정도 많다. 대입시험 공무원시험 한자검정시험 등에 낱말의 장단을 묻는 문항이 있는데, 정답에 이의가 있는 수험생이 원리를 챙겨 이를 따지는 소송이라도 걸면 우리 말글의 체면이 스르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도 그 중 하나다. 그의 저서와 이런 걱정은 현재 한 언론사와 교육회사, 연구자들의 모임에 의해 면밀하게 검증되고 있다.

이 과정에 꼼꼼하게 참여하고 있는 최한룡 선생은 자신의 주장의 ‘상대편’인 ‘선배 학자’들과 그 이론을 따르는 연구자들이 “부디 상식적으로, 또 학문적으로 체계를 갖춘 반론을 들어 줄 것을 부탁한다.”고 했다. 말이 되는 상대와 맞서고 싶다는 얘기다.

우리 말글의 흐름을 바로잡는 것이 착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며, 여생(餘生)의 ‘작은 의미’일 것이라는 재야(在野) 노 연구가의 눈빛이 가리키는 바다. 무릇, 잘못이 있다면 따져서 바루는 것이 이치다.
언론인 / 시민의 자연 발행인, 한자탑어학원(www.hanjatop.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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