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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패션의 선구자'프리다 칼로'
영화 <프리다> 이색 패션쇼와 함게 시사회 열어
 
김기영   기사입력  2003/11/19 [14:49]

▲멕시코 패션쇼     ©김기영

지난 17일 영화 <프리다>가 일반 시사회를 통해 이색 패션쇼 시사회를 보여주었다. 동덕여자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학생들의 졸업작품을 영화 <프리다>의 일반시사회에 초대하여 '영화'와 '패션'을 함께 보여준 것. 올해 5월 동덕여대 의상디자인학과 졸업 작품 패션쇼에서 공개되었던 이 의상들은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20세기 초현실주의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이는 '화가'이기도 했지만 대중의 주목을 받았던 프리다 칼로의 스타일리쉬한 패션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몸을 사랑하며  '장애'를 극복했던 그녀에 대해 관객들이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한 이벤트였다.

사실 패션계에서는 훨씬 이전부터 마돈나가 추앙한 이 멕시코 여류 화가를 주목하고 있었다.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그녀에게 영감을 받았을 정도로 프리다 칼로의 패션은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전설적인 '스타일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녀는 거의 매일 '피에스타'(라틴 문화의 축제)에 가는 듯한 복장만을 고집했다. 멕시코의 전통 의상 '테후아나'를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화려하게 입는 데 굉장한 재주가 있었는데, 밑단에 흰 목면 러플이 너울거리는 벨벳 스커트, 프릴 앞치마와 자수가 화려하게 장식된 블라우스를 즐겨 입었다. 게다가 롱스커트 안에 입은 페티코드에는 멕시코의 음란한 속어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걸을 때마다 절거덕절거덕 소리가 날 정도로 크고 요란한 장신구들을 유난히 사랑했다. 심지어 특별한 자리에는 다이아몬드로 장미가 새겨진 금니를 끼기도 했다고. 말하자면 그녀는 형편없어서 아름다운, '키치(Kitch) 패션'의 선구자였다. 오죽하면 1938년 자신의 전시회를 위해 칼로가 뉴욕을 방문했을 때 한 무리의 인파가 그녀를 뒤를 따르며 이렇게 물었을까? "그런데 서커스는 어디에서 열리죠?"

▲멕시코 패션쇼     ©김기영

프리다 칼로가 소위 이렇게 '튀는'의상을 고집한데에는 그녀만의 이유가 있다. 여섯살 때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가 불구가 되고, 18살 때 버스 안의 쇠 난간이 복부 왼쪽을 뚫고 질을 관통하는 끔찍한 교통사고까지 당했지만,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야 직성이 풀릴만큼 자기애가 강했던 그녀는, 상처받은 자신의 몸을 저주하거나 숨기지 않고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몸을 표현했다. 그 대상이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왕성한 성적 욕구의 포로로 만들 만큼 프리다 칼로는 관능적이었다.

졸업작품전 때 선보였던 총 10벌 가량의 의상들은 다년간 국내외 패션쇼 경험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는 간호섭 교수의 지도 아래 제작된 것으로, 대학생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작품성이 뛰어나다. 이미 구스타프 클림트 아트웨어 패션쇼를 기획했던 경험이 있는 패션디렉터 간호섭 교수는 예술과 전통 그리고 새로운 것을 접목하는 시도로 항상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번 이벤트는 5월에 진행했던 패션쇼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당시 진행했던 동덕여대 학생들과 간호섭 교수 및 이가자 헤어샵의 후원으로 준비되었다.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와 더불어 멕시코 전통의 멋과 프리다 칼로의 스타일이 조화를 이루는 환상적인 패션쇼를 감상하는 두 배의 기쁨을 느끼게 됐다. 프리다 칼로의 불꽃 같은 인생을 담은 영화 <프리다>는 오는 11월 2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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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1/19 [14:4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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