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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자신의 배신이 위기 자초했다"
민주당 분열은 신당의 권력투쟁, 후단협에 대한 평가달라야
우리당 등장 신지역주의 강화돼, 총선에서 열세 못면한다
 
이창은/김광선   기사입력  2003/11/11 [10:41]
'희망에서 절망으로', '감동의 역전드라마에서 충격의 배신드라마', 그리고 '이보다 더 나쁠순 없다'
 
이같은 평가는 출범 8개월된 노무현 정부의 성적표이다. 물론 지지자건 반대자건 평가는 다양할 수 있지만, 취임 8개월만에 당적을 이탈하고 국정수행에 대한 재신임을 제기했다면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일반국민 뿐만아니라 참여정부에 우호적인 네티즌들 조차 당황해 하고 있다. 한마디로 인터넷은 '카오스' 상태이다. 노무현식 정치개혁이 새로운 시대를 열기위한 '필연적인 과정'인지, 아니면 새로운 권력주체들의 권력투쟁인지에 대해 편을 갈라 논박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지자와 반대자 간의 피튀기는 혈전이 아닌, 바로 어제의 동지들 간에 무차별적인 살육전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만흠 교수와의 인터뷰는 이같은 혼란상에 대한 이해와 처방을 위해 마련된 자리이다. 인터뷰라기 보다는 정치학 강의에 가까울 정도로 현실정치에 대한 김 교수의 진단과 처방은 명쾌했고 유려했다. 그러나 김교수가 진단한 노무현 정치개혁의 총체적 위기는 '과거로부터의 단절'에 있다는 것이다. 미래 역시 그 '과거'에 대한 이해와 반성부터 출발해야 함을 역설했다.
 
보통의 정치학자들이 현실론을 들어 현재적 현상의 해석에만 급급하는 것과 달리, 한국정치를 전공한 김 교수의 분석과 처방에는 바람직한 이땅의 정치개혁까지 조망하고 있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면, 정치는 바로 그러한 '인간의 총체적 행위'이다. 김만흠 교수의 처방을 빌려 노무현 정부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지금의 난국을 이해하고 바람직한 정치문화를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이하는 김만흠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김만흠 가톨릭대학교 정치학 교수     ©대자보

▼ 많은 기대를 걸었던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지 8개월만에 재신임까지 몰리게 됐다.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노 정부 출범부터 현재까지 총체적으로 평가한다면
노무현 정부 집권과정 자체는 전세계 후발 민주국가 가운데 모범적인 모델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국제적으로 1980년대를 전후해 민주화를 이루었던 나라 중에서 안정적으로 민주화 과정을 겪고 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80년대 후반 민주화 과정 이후 군부정권을 퇴출시키면서 문민정부를 출범시켰고, 이후 정권교체도 이루었다. 여기에 노무현 정부의 집권으로 정권교체 뿐만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지향하는 세대교체도 이루었다. 또 그동안 지역구도의 악순환적 고리도 발전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8개월 동안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 아주 실망스럽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대통령은 그동안 자신이 내걸었던 기대를 대부분 저버렸다.
 

노대통령이 후보시절 가장 강조했던 것이 국민통합의 새로운 정치였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오히려 국민통합의 기회를 좋지 않은 쪽으로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국정운영방식에서 스스로 국민들에게 신뢰를 떨어드리게 한 것은 노무현 정부의 실추가 아닌가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정책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정책내용보다도 그런 정책에 이르게 되는 정책 결정과정이라든가, 국정운영 방식, 대통령의 리더십에서 문제가 가장 컸다고 본다.
 
신당은 권력투쟁을 위해 민주당을 분열시켰다
 
▼ 노무현 지지자들이 제일 안타까워하거나 당황스러워 하는 것은 그간 개혁적인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오히려 후퇴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지세력의 근간이랄 수 있는 민주당의 분열로 인해 국민통합의 역행과 개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고 볼 수 있는데, 민주당 분열은 어떻게 보는가

사람들은 개혁에 대한 실망 때문에 노무현 정부의 지지가 추락했다고 보기도 하지만, 노정부의 지지 추락은 근본적으로 민주당의 분열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본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은 당초에 민주당을 개조하려고 했지 분열을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새로운 방향 자체가 통합적인 방식이 아니라 분열적인 방식이었다. 당선직후 12월 23일인가. 그때 민주당 20여명이 "민주당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출발시키자"라고 했는데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곧바로 이어서 주변에서 "민주당이 깨져야 우리나라 정치발전이 이뤄진다. 민주당을 깨야만이 지역구도가 해체된다. 민주당 깨는 것이 당면 정치발전의 목표다"라고 나왔다. 그것도 민주당 내부에서가 아니라 주로 민주당에 관련이 없던 외부의 사람들이 그것을 들고 나왔다. 구체적으로 거명을 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만 그렇게 나오다 보니까 결국 민주당의 정체성 자체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신당론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소수 정권으로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는 소수 정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 아닌 권력 투쟁이었다.
 
▲김만흠저, 한국정치의 재인식    
©풀빛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세력들은 위기일 때 자연스럽게 통합을 주장하게 된다. 그리고 권력이 커졌을 때는 권력 다툼하다가 분열하는 양상이 자주 나타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권력의 중심이었을 뿐 아니라 사회변화를 주도하는 세력이 되었다. 반면에 한나라당은 스스로 자멸의 분위기에 싸여 있었다. 한나라당은 연거푸 두 번이나 대선에 실패했고, 당내에서는 "새로운 사회,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꼴이 됐다"고 하면서 당의 근본적 재편론이 대두되고 있는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에 비해서 15% 정도 뒤지고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결국 민주당은 집권세력에다가, 새로운 변화의 중심에 서 있었고, 객관적인 여론 조사에서도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다. 더불어 그동안 고질적이었던 지역구도의 굴레로부터도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신당추진세력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권력투쟁의 양상으로서 민주당을 분당시킨 것이다. 말로는 "개혁을 위해서, 위기극복을 위해서"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권력투쟁을 벌인 것이다.
 
신당추진은 논리적으로도 허술했다. 신당세력은 민주당이 영남권에 진입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전국정당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동안에 민주당 사람들은 개혁적이지 못해서 영남에 진출하지 못했나?"라는 아주 간단한 질문을 하나 던지게 된다. 대선 이전 민주당이 영남으로 진출하지 못한 것은 개혁성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역감정이었다.
 
열린우리당의 지역주의 관점은 한나라당과 같다
▼ 노무현대통령이 집권하고, 초기에 당내 이른바 강경파들이 민주당의 체질을 바꾸고 개혁을 통해서 영남진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지역주의를 너무 만만히 본 것이 아닌가. 강준만 교수도 지적했듯이 그들은 지역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간과하고 너무 급진적으로 추진했던 측면이 있다고 본다. 과연 노대통령과 민주당 분당파들의 지역주의 인식의 한계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대부분의 국민과 정치인들이 지역주의를 비판하고 있고, 지역주의 문제에 대해서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문제의식이 아주 다르다. 모두가 지역주의를 극복하자고 하는데 무엇이 극복인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신당을 통해서 지역주의를 극복하자고 했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역주의 논리가 과연 타당한 것인가의 문제는 한번쯤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신당파의 지역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모두 동일하지 않았지만, 상당수가 옛날부터 'DJ가 없었으면 우리나라의 지역주의가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그런 흐름의 스타일이었다. 어떻게 본다면 그 논리는 지금의 한나라당이 가지고 있는 지역주의 논리와 똑같은 것이다. 마치 노사관계에서 "노조가 없으면 노사관계는 평온할 것이다", 또는 "성평등 운동에서 페미니스트 운동을 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남녀평등은 이뤄질 것"이라는 논리와 똑같은 것이다.
 
우리나라 지역주의 문제를 두 가지로 지적하고 싶다. 지역차별의 해소와 같이 보다 근본적으로는 더 지적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합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 문제를 본다면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최소주의적 정의론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김만흠 저, 전환시대의 국가체제와 정치개혁     ©한울아카데미
첫째, 선거는 갈등의 표출과정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갈등이 해소돼야 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지역주의는 그동안 선거를 통해 해소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이 증폭됐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둘째, 지역주의도 어찌됐든 국민의 의사의 표출이지만 그 결과로서 지역적 정당 독점체제로 가는 폐해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역주의 투표 자체를 나무랄 수 없다. 일부에서는 비합리적 행태라고 하는데, 감정적이든 무엇이든 국민의 의사이다. 문제는 각 지역별 합리적 선택이라 할 지라도 그 선택이 국가 전체 차원에서는 비합리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가지 관점에서 봤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첫째 문제는 상당히 해소됐다고 본다.

지역주의가 악순환 된 원인은 지역주의만을 동원해 선거를 치르면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나라당이 그랬다. 그동안 과거 민주당은 지역주의만을 가지고 승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역주의+ '를 하려고 했었다. 지역연합과 진보세력을 견인하려고 했다. 지역등권론의 관점에서 DJP연합을 추진했고, '젊은피 수혈' 등을 통해 진보세력을 견인한 것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영남이 호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수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 선거때만 되면 지역주의를 동원해 선거를 승리하려고 했다. 심지어 지난 16대 대선에서는 호남지역을 아예 포기하기도 했다. 그들은 호남을 포기해야만 유리하다고 판단했고, 실제로 그런 전략을 사용했다. 그런데 그 전략이 두 번다 실패하고 말았고, 이제는 한나라당도 지역주의만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경우는 주요 지지기반의 정당이 호남이고, 대통령은 영남 출신이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개혁 대 반개혁'이라든가 '보수 대 진보', 또는 '변화 대 수구'라는 새로운 틀로 될 가능성이 있었다고 본다. 결국 노무현 정부의 집권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지역주의의 악순환 구조의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
 
최근 들어 정치재편 이야기가 나오는데 재편의 일반적인 방식은 기존의 쟁점이 사라지고,  새로운 쟁점이 등장하면서 이루어진다. 정치재편이 정치세력구도의 재편이기도 하지만, 재편은 '정치쟁점' 자체가 변화하는 것을 수반한다. 그런데 분당과정을 거치면서 지역주의가 다시 중요한 쟁점으로 내면화 돼 가고 있다. 앞으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이미 지역주의가 호명되어 왔고, 심지어 거의 사라져 간다고 봤던 자민련의 경우도 당진부터 보령에 이르는 서해안벨트로 해서 상당히 분위기를 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상황이다.
 
노대통령, 지역주의와 정면으로 싸웠다고 볼 수 없다
▲김만흠저, 한국의 언론정치와 지식권력     ©당대
▼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가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운 분당 움직임이 사실은 지역주의를 더욱 고착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는가
현재까지는 그렇다고 본다. 역사라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의도한 대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연한 결과로서 나올 수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의도하지 않은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집권 이후 지난 8개월 노대통령과 신당 추진이 지역주의의 발전적 해소에 역행하는 길을 걸어왔다는 분명하다고 본다. 후보시절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장점이 지역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했고, 몸으로 실천했다는 부분이다. 내가 이 자리에서 그것이 과연 사실에 맞느냐라는 것을 따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건 누구한테나 도움이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노대통령은 집권이후에 지역주의에 정면으로 싸우는 방식을 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그렇지 않았다고 본다. 지역주의와 정면으로 싸웠다는 것은 뭘 이야기하는 것인가? 지역차별하는 세력과 지역패권주의자를 비판하면서, 지역차별을 받는자, 지역적 소수자의 편에 서 있는 것이다. 자기가 개인적으로는 불리하더라도 정의와 약자의 편에 섰을 때 지역주의에 정면으로 맞섰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노대통령의 경우 집권 이후의 대응방식은 뭐였느냐? 호남 고립의 지역주의 구도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지역패권의 구도를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에 순응하는 것이었다. 신당의 방식이 그런 것 아니었겠나.

 

▼ 신당이 지역주의를 타파한다는 명분아래 탈호남을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지역구도 강화를 초래하고 전체적으로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말인가
지역적 소수자 약자가 동의하는 지역주의 극복전략 제시한 적이 있는가?. 우선 노무현 정부 주변의 참모들 가운데 지역주의에 그동안 정면으로 도전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포진해 있는가? 그동안에 지역주의에 관해서 열심히 해왔던, 10년 이상씩 연구하고 운동해왔던 사람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자문을 구해본 적이 있는가? 겉에서 보기에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알다시피 노대통령 측근들의 지역주의에 대한 입장 자제가 호남 차별의 지역감정 논리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다.
 
열린우리당, 지역주의 타파에 역행
▼ 유시민 의원 같은 경우 노무현 대통령의 '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유시민 의원은 총선에서 '영호남 동시 의석 확보'가 전제돼야 신당을 창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찌보면 영남진출은 지역주의 타파의 상징적 측면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지금 정당체제가 다당제 구도가 돼 있는데, 당초에 신당이 지역독점 정당체제를 극복하려는 다당제 전략을 썼다면 지역주의 타파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당은 당초에 다당제를 전제로 하지 않았다. 단지 과거 민주당이 만들어 놓은 밥그릇을 빼앗겠다는 논리일 뿐이었다. 그래서 현재 열린우리당은 영남 진출보다도 기존의 민주당세력을 가지고 파이 나눠먹겠다는 구도로 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개혁을 표방하고 있지만 권력투쟁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신당은 개혁세력이 집결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동안 민주당은 반개혁 세력이었나? 정강정책에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이념적 차이가 없다.
 
열린우리당이 유일하게 지적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후단협 문제와 흔히들 지적하는 박상천, 정균환 의원 같은 지도부의 문제이다. 물론 정치라는 것이 대중적인 이미지이기 때문에 아마 박상천 정균환 의원 같은 경우 대중적인 이미지가 분명히 안 좋은 면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동안에 그들은 역사적으로 무슨 일을 했었는가? 흔히 비교를 하듯이 최근의 한나라당에서 재선 이상씩 아니면 초선 의원을 하다가 옮겨온 사람들에 비해 역사적으로 그들은 무엇을 했었는가? 신당파들은 부정부패를 이야기하는데, 그동안 그사람들이 부정부패와 무슨 연관이 돼 있는가? '왜 반개혁적인가?' 라고 생각해보면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지난 대선에서 후단협 문제도 마찬가지다. 후단협의 경우는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 분당과정에서 항상 반복적으로 거론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후단협에 대한 평가는 냉정히 해야
▲ 김만흠교수     ©대자보
노무현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세력에도 다양한 부류가 있었듯이, 후단협에서도 다양한 부류가 있었다. 그중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는 만년 여당만 해오면서 자신의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철새정치를 하는 부류이다. 그러나 후단협 중심세력 가운데는 오히려 정권 재창출을 위해 그동안 굉장히 골몰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은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에게 정권을 넘겨주지 않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가지고 골몰해 왔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오랫동안 골몰해 오던 가운데 단일화를 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였고, 여론조사도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노무현 후보를 끝까지 사수하고자 했던 세력의 경우에는 지더라도 정말 이 정통성을 살려야 한다 그런 입장도 있었지만, 반면에 정권에 대한 책임성이 없는 그런 부류도 있었다. 선거기간 노무현 후보의 주변에서 자신의 입지만을 구축하려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단일화가 되지 않고 노무현 후보가 그냥 당선돼 버렸다면 논의가 쉬웠을 것이다. 만약 그럴 경우 단일화 세력을 아낌없이 쳐버려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단일화가 됐다. 신당파 들은 노무현 후보 때문에 당선이 됐다고는 이야기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민주당세력과 단일화는 당선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은 새롭게 정부가 출범할 때 후단협 문제를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를 고민했어야 했는데, 집권이후 단일화 세력을 마치 적처럼 취급해 버렸다.
 
나는 후단협 세력에 대한 일방적인 매도는 온당치 않다고 본다. 최근 민주당의 분당 과정과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대조가 된다. 후보 단일화가 제기되었던 시기는 정권 재창출을 위기에 처해 있던 상황이었고, 반면에 신당 분당 논란은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여건이 아주 좋은 상황에서 제기되었다. 그리고 후보단일화는 오히려 세력의 외연을 넓히면서 집권에 성공하도록 기여했지만, 최근 분열의 과정은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둘다 통합을 표방했다. 그런데 국민통합정당을 표방하는 신당은 분당과 분열, 배제의 정치를 하고 있다.

결국 열린우리당은 위기를 자초하다보니 이사람 저 사람을 영입했고, 빠찡코 의원, 후단협 출신 가운데서도 별로 좋지 않은 부류가 오히려 신당에 다수 포진하고 있기도 하다.
 
▼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양당구조에서 민주당으로서는 한나라당에 비해 숫적으로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결국 개혁적인 외피를 씌우기 위해서 영남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민주당이 반개혁적이라고 폄하한 것은 나중에 분당과정에서 신당세력이 주장했던 것이다. 그때 국민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라든가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한나라당은 수구세력이고, 민주당을 개혁이라고 봤다.

집권이후 민주당을 개혁대상으로 몰아 부친 것은 신당론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고, 그들은 심지어 "민주당이 전국정당이 안되고 있는 것은 반개혁적이기 때문"이라고까지 주장했다. 하지만 신당이 구체적인 정책과 내용에 있어서 새로운 개혁성을 만들어 냈는가? 내가 보기에는 그들의 정책내용은 민주당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또하나 신당이 추가로 강조한 것이 상향식 공천이다. 지금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도 상향식 공천을 하겠다고 하고 있다. 물론 상향식 공천이 제대로 이루질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현실 조건상 새로 만들어진 정당은 상향식 공천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후보 단일화 과정과 신당을 비교할 때 추가적으로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후보단일화 때에는 정권재창출이라는 목적과 명분이 분명했다는 것이고, 신당은 분당과정에서 명분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이러한 일련의 변화가 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가?
노대통령은 정권이 위기에 처해 있는 이유에 대해 '언론환경'과 '거대 야당 횡포'를 지적하는데 실제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사실 노대통령은 지지세력을 버렸기 때문에 위기를 자초했다. 나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어느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노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진영 쪽에는 청와대 참모와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을 별로 지지하지 않았던 분이 노대통령을 지지하는 패널로 나왔고, 내가 앉은 쪽 패널에는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가 나왔다. 당시 나를 두고 어떤 사람이 어떻게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는 쪽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의아해 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스스로 지지자를 버렸기 때문에 나온 현상인 것이다. 노대통령이 정권위기가 거대야당의 횡포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분석을 잘못한 것이다. 야당과의 협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20% 또는 30%이건 간에 노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했던 그 세력에 호응했어야 했고, 아니면 후보시절의 기대와 약속은 다르더라도 그 내용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자들의 호응과 상관없는 태도로 일관했고 또 사실상 분당을 독려해 왔다고 본다.
 
노대통령리더십, 정상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워
▲ 김만흠교수     ©대자보
▼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당황스러워하는 것이 바로 그 문제인 것 같다. 그런데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보는가?
나는 노대통령의 그 동안 행보를 정상적으로 보기 어렵다. 교과서적으로 봤을 때 통치에는 두가지 방법을 쓰게 된다. 하나는 힘에 의존하는 것이고, 하나는 국민여론에 의지하는 것이다. 이른바 권위주의 시대에는 힘에 의존했었다. 노대통령을 탈권위주의 시대의 리더십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과거에 힘에 의존했던 것에 비해서 국민여론에 의존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런데 노대통령은 국민여론에도 호응하지 못하고 힘도 없는 상태이다. 정상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 그러나 정치학자가 노무현 대통령의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더욱 어려운 것이 아닌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은 다른 평가일 수도 있는데, 조금더 추가 설명을 하자면 이른바 노무현 대통령의 주변을 구성하고 있는 국민통합추진위원회(통추) 세력들이 그동안에 어떤 입지와 어떤 정치적인 발상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보면 될 것이다.
 
그들은 분당과정에서 지역구도 정치의 문제와 책임소재를 아주 왜곡하는 구조로 만들었다고 본다. 현재 지역주의에 책임있는 집단이 민주당으로 낙인찍혀 있다. 말이 맞는 소리인가? 만일 다가오는 17대 총선에서 호남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많다면 이 유권자들을 지역주의자로 몰아부칠 것인가?

1년전에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켰던 평균 93%의 호남유권자들은 지역주의 세력이었나? 지역주의 세력이 아니라 지역주의 극복을 열망하는 호남 유권자의 성숙한 선택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들이 열린 우리당을 지지하지 않으면 지역주의자로 돌변하게 되는 것인가?  
 
인터넷 매체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인터넷 매체의 가장 장점은 그동안 자신의 생각을 표출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표출할 수 있는 마당을 제공한 것이라고 본다. 인터넷 매체가 그런 목소리를 담아내면서 소수의 새로운 목소리를 담아낸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도 지역주의에 대한 소수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있고, 인터넷도 그것을 담아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지역주의 문제에서 특히 호남 지역주의는 그동안 목소리 자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와 소외의식도 있었지만 지역주의가 거론되면 항상 마이너리티로 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특이한 경우가 강준만 교수의 경우일 것이다. 그래서 역시 호남지역주의는 인터넷 매체에서도 적극적으로 거론되지 않았다. 그런데 신당논란이 일면서 그때 비로소 '남프라이즈'나 '동프라이즈' 등의 집단이 나왔고, 최초로 공세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다. 내용은 차치하고 그렇게까지 나온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들을 구 시대의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세력으로 비판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외형적으로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목소리를 내었던 호남 지역주의에서 이처럼 공세적인 목소리까지도 나오게 되었는가, 그 책임을 반성해 보아야 한다.
 
노대통령, 국민통합에 주력했어야
▼ 결과적으로 신당이 추진됐고, 열린 우리당이 창당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은 당정분리를 내세우면서 관여하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점은 어떻게 보는가?
노대통령의 경우 진실함과 한편으로는 전술적인 측면이 애매하게 착종되고 있다고 본다. 노대통령은 새로운 정치개혁을 내년 총선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로 삼으면서도 스스로 정치로부터 멀어지겠다며 당정분리를 내세웠다. 그렇다면 노대통령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당정분리 말고 뭐가 있는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정치 개혁의 중심은 정당보다는 대통령과 대통령의 주변을 둘러싼 문제에 있다고 본다. 여당의 문제도 대통령과 관련된 문제이다. 언론의 정치 기사도 대통령과 관련되었을 때 주목을 받게 된다.

흔히들 민주당이 김대중 대통령 후반기에 실패했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민주당의 실패와 성공 여부를 따지자면 이렇게 볼 수 있다. 즉 김대중 대통령의 지지가 올라가면 민주당의 지지가 올라갔었고, 대통령 주변에 비리 문제가 지적되니까 민주당이 몰락했었다. 따라서 민주당은 하는 것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달리 말하면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정치의 중심은 대통령과 관련된 문제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당정분리를 말하면서 정치개혁을 주장한다면 대통령과 관련된 문제, 즉 국정운영 방식과 대통령이 주도하는 리더십에서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이 정치개혁에 바람직할 것인가?'라는 점을 고민했어야 했다. 결국 노대통령은 제도의 문제와 국가 통합의 문제에 주목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한 문제는 손떼고 있는 척 하면서 오히려 민주당을 분당의 국면으로 몰아갔다.
노대통령이 당정분리를 원칙으로 삼으면서 정당개혁을 시행하고자 했다면 당연히 지역독점의 정당체를 극복하는 정당체제의 변화를 견인하는 제도개편에 주력했어야 했다. 최근 거론되는 중대선거구제라든가 더 근본적으로는 정부형태라든가 이런 문제가 거론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이다.
 
정계개편은 그동안의 정치적 아젠다가 새로이 바뀌는 것이다. 만약 노대통령이 국정운영 방식과 제도에 대해 개혁을 추진했다면 현재 개혁이니 진보니 아니면 새로운 변화니, 세대 교체니 이런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을 것이다.
 
열린우리당, 호남 유권자들에게 '잔인한 선택'을 강요
 
▼ 최근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공방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로 승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열린 우리당이 그것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 더 웃기는 거다. 우리당이 주장하는 것은 한나라당의 지역에서 지지를 얻거나 개혁세력을 만들어 내겠다는 논리가 아니다. 우리당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협박에 가깝게 "이렇게 되면 어부지리로 한나라당이 승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우리당은 기껏 잘해봐야 민주당의 지위만 바꾸자는 것일 뿐이다.
 
민주당의 분당을 반대하는 것은 한나라당의 어부지리를 막기 위해서이다. 그러한 책임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당 사람들에게 분당을 하면 손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당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민주당이 분당되어도 다른 개혁세력들이 연합해 국민통합 정당을 만들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중 정당 수준에서 다른 개혁세력들이 어디에 있는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겠다. 개혁당 2명, 한나라당 탈당파 5명을 위해 민주당을 분당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호남 유권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정말 협박에 가까운 고립구도 속에서 호남을 압박하고 있다. 우리당사람들은 "호남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는 우리한테 올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호남유권자에게 '잔인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약에 신당이 민주당 밥그릇을 빼았겠다는 전략이 아니라 제3의 새로운 정당으로 태동했다면, 즉 유권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을 가능하게 하면서 정치개혁에 도움이 되는 구조를 만들 수도 됐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신진정당, 소수정당의 정치적 진입과 활동이 가능하도록 제도 개편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런데 신당은 제도개혁의 노력 이전에 민주당을 권력투쟁에서 먹겠다는 생각만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민주당의 분당은 지역주의 전략만으로 안되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던 한나라당을 안주하게끔 구출 해 준 셈이다. 다만 새로운 변수가 생긴 것이 최근의 대선자금의 문제가 생기면서 한나라당이 제2단계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역사와 마찬가지로 정치도 우연의 결과를 초래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가져올 수 도 있다는 점에서 물론 오는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다수당도 보장할 수만은 없다.
 
어찌되었든 최근 우리의 정치는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다. 이런 변화의 과정속에서 개혁세력이나 진보세력들이 신경써야 할 것은 변화의 시기에 힘의 역동성을 누구에게 실어줘야 하는가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기득권 세력에게 호응하는 구조가 되면 곤란한 것이다. 역사의 우연성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우리는 변화의 과정 속에서 약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약자의 편에 서있는 것이 중요하다. 과연 지금 개혁을 자임하는 세력들이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 돌아 볼 필요가 있다.
 
▼ 인터넷이나 기존언론에서 현재 민주당의 이미지를 반개혁적, 지역적인 이미지로 덧씌웠다고 본다. 그렇다면 향후 민주당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앞으로 이러한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고 보는가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호남의 지역적인 결집력은 동기는 많이 줄었다고 본다. 김대중의 집권을 거치면서 사실상 지역적 결집의 동기가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그러나 16대 대선에서 다시 다른 형태로 지역적 집중력이 표출되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호남 유권자의 선택의 폭을 다양화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신당은 이러한 흐름을 끊고 다시 지역주의로 돌아가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민주당은 더욱 호남중심의 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의 진로에서 관건은 새로운 사회변화의 흐름과 요구를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느냐에 있다. 그것은 차기 총선에서의 성패와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그 동안 민주당은 우리나라 정치에서 적어도 거대정당 수준에서 본다면 개혁적이고 진보정당이었다. 물론 민주노동당의 수준에서 보면 상대적인 측면이 있겠지만 그래도 민주당은 다른 정당에 비해 개혁적이고 진보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민주당이 시대적인 변화의 흐름에 스스로가 적응하지 않으면 자칫 수구적인 정당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수구'의 의미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새로운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새로운 변화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또 과거의 자원만 가지고 그것을 써먹으려고 하는 것은 곧 수구정당이 되는 것이라고 본다. 소수세력의 수구화는 몰락의 출발이다. 민주당은 분당과 개혁논란 과정에서 자신들의 반대파가 지적했던 부분들을 다른 정당보다 먼저 수용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17대 총선에서 일정한 의석을 차지하더라도 그동안의 진보적인 역사를 오히려 수구의 역사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해 주고 싶다.
 
노대통령, 중심을 잘못 잡고 있어
 
▼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영남에 진출하기 위해 보수층에 어필하는 정책을 많이 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는 NEIS 문제나, 새만금 문제에서도 볼 수 있다. 또 과거에 '노동자의 친구'를 자처했던 노대통령이 '노동 귀족'을 언급하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는 영남 세력에 어필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비판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보수세력의 눈치를 봤다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수세력에 어필했다면 그들로부터 지지를 얻었어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초반부터 해왔던 대북관계, 대미관계, 파병문제 등에서 보수세력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하는데, 그 결과로서 보수세력으로부터 지지를 얻었나? 지지를 얻은 것이 없다. 오히려 중심을 잘못 잡았음에 더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왜 중심을 못 잡았나? 내가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짐작차원에서 본다면, 대통령은 야당 국회의원 시기와 장관으로 있던 시기에 비해 엄청난 정보를 얻게 된다. 과거의 자신이 가졌던 정보는 그야말로 '코끼리 다리 만지기'와 같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니까 현실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변화되면서 다른 일반여론을 아주 우습게 보는 것이다. 자신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주장을 제시하면 "저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시각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청와대에 들어가게 되면 독선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고 본다. 이것은 누구든지 그럴 가능성이 있고 지난 DJ 정부에서도 나타났다고 본다.
 
여론구조와 관련해서 노무현 정부의 불행이 하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에서의 비판적인 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노무현을 반대하는 세력만 있지, 이른바 노사모 등을 포함한 세력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이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올인'하는 세력만 있을 뿐이다. 무엇을 하든 노대통령이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합리화 시킬려고 하는 논리만 있는 것이지 오히려 지지를 확대하기 위해서 "이것을 고쳐야 한다"라는 비판이 없다.
 
현재 노무현 정부가 안정적인 지지를 구하고 있다면 합리화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더 이상 갈 수 없을 정도로 극소수화된 지지를 얻고 있다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뭔가 기존의 잘못된 것을 반성해야 하고, 이탈한 지지층으로부터 새로운 호응을 얻어야 한다. 노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은 노대통령이 반성해야 될 부분을 지적해야 한다. 그런데 특히 인터넷, 모 정치웹진은 100% 당파성만을 가지고 노대통령 합리화시키고 비판적 주장을 공박하기만 할 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비판적인 조언은 거의 없다.
 
집권 대통령만 있지 집권 세력은 없어
▲본지 기자와 인터뷰 중인 김만흠교수     ©대자보
'광신도'라는 용어까지 만들게 핬던 열성적인 DJ 지지세력들 가운데서도 DJ 비판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내 경우 DJ정권을 지지하는 쪽이었지만, 집권 기간 비판하는 글을 더 많아 썼다. 여담이지만 그당시 "집권 대통령만 있지, 집권 세력은 없다"라는 개념을 썼던 것도 나였다. DJ 대통령 때만 하다라도 적극적인 지지자 그룹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지지그룹에서는 노대통령을 비판하고 지적하는 글이 극히 부족하다 못해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대통령은 정권의 위기를 조중동 때문이라고 하고 심지어는 상당히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비판도 지지자들은 '조중동 논리'에 빠져 있다고 역비판을 가한다.
그점에서 노대통령은 언론환경에 대한 부분을 다르게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여전히 우리나라에서의 조중동은 언론시장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언론구조는 과거에 비해서 훨씬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일상 대중들한테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TV 매체는 어떤가? 지난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심지어는 친정부 편향이라는 비판까지 언급되고 있지 않은가. 인터넷 매체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터넷 언론은 개혁적인 세력을 주도하고 있지 않는가. 따라서 조중동에서 보도하는 것도 과거만큼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지난번 2000년 언론사 세무조사를 계기로 나왔던 언론개혁 논란에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나는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그때 이후로 한번쯤은 메이저 신문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게 됐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조선일보에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다"라고 말했지만 최근에는 조선일보에서 보도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은 한번쯤 되돌아 볼 수 있는 조건이 됐다. 과거에 비해서 언론 환경은 굉장히 좋아진 것이다.
 
어느 세력이 소외되고 있는가를 따지자면 (이점에 대해서는 균형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민주당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오프라인이건 온라인이건 극소수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국지역주의 구조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호남 지역주의는 언론구조에서도 마이너리티이다. 따라서 호남 지역주의의 배경과 현실을 적극적으로 설파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도 강준만 교수, 그리고 조금 성격은 다르지만 다르지만 황태연 교수 정도였을 것이다. 강준만 교수는 다른 개혁적인 요소와 안티조선운동을 통해 외연을 조금 확장한 측면이 있지만, 황태연 교수의 경우 지역주의에 대해 조금 공격적으로 나오니까 반대세력에 의해 오히려 포위되는 측면도 초래하게 된 것 같다. 이것이 바로 패권의 논리다. 이제껏 학계든 정치권이든 언론이던지 간에 호남 지역주의 문제를 이야기하면 마이너리티가 돼 버리고 말았다. 곧 주류세력에 끼어들기가 힘들었다고 본다.
 
▼ 그렇지만 일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는 세력만 있지 '올인'하는 세력은 거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만약에 조중동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비판과 찬성의 비율을 9:1로 보도한다고 해서 방어하는 논리가 0:10으로 가야 하는가? 조중동에서 9:1로 나오면 적어도 반대편은 5:5라든가 6:4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조중동이 9:1로 나와야 하는데 방어하는 논리는 0:10으로 가야한다고 이야기를 하면 그것은 공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지금 인터넷 싸움구조가 그렇게 돼가고 있다. 전혀 공론의 여지가 없다. 자기 논리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노대통령, 호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오만
 
  오보로 판명됐지만 최근 김경재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광주 기자간담회에서 "나 이뻐서 찍었다기 보다는 이회창 총재가 싫어서 찍었다"라는 발언을 했다고 밝혔다. 김경재 의원이 그같이 말했던 것을 두고 오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나 이뻐서 찍었다기 보다는 이회창 총재가 싫어서 찍었다"라는 말에 이어서 "우리나라에서 나만큼 비호남 출신 중에서 호남 문제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했다고 한 점이다.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이야기인가? 상대방 때려놓고 나서 나만큼 너를 잘 아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는 소리와 뭐가 다른가? 내가 보기에는 노무현 대통령은 호남 지역주의에 대해서 이른바 한나라당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다만 성향이 다를 뿐인 것이다. 약자의 편에 서서 정면으로 싸웠다면, 약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되어야지, 약자에게 내말 들으라고 오만하게 해서는 안된다.
 
'탈호남'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호남 사람들이 지역주의 측면에서 방어적이고 소극적이라는 이야기는 '탈호남' 이라는 주장을 호남 사람들이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호남 내부에서의 탈호남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탈호남을 하라고 말하는 것도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자민련 의원이 충청도에 가서 "탈충청해라" 또는 한나라당이 영남에 가서 "탈영남을 해라"고 하면 그 지역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나. 그런데 호남사람들은 민주당이 "탈호남을 하겠다"고 하는데 받아들이고 있다. 더구나 한나라당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탈호남을 하라고 주장하는 것도 받아들일 정도이다.
 
▼ 최근 열린우리당이 정치개혁을 아젠다로 들고 나오면서 '상향식 공천제도'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변화가 정치권의 지각변동을 초래한다고 볼 수 있나
추상적인 용어로서 정치개혁은 누구나 말한다. 최근 각 정당마다 상향식 공천을 주장하고 있는데 과연 상향식 공천을 한다고 개혁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현재 각당은 내용에서 다 똑같은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개혁의 초점은 상향식 공천이 아니라 그 정당이 얼마나 새로운 사회의 흐름을 수용할 수 있느냐, 또는 그 정당이 힘을 받으면서 그것과 맞물린 시민사회세력의 어느 부분이 얼마나 힘을 받을 것인가에 방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 정치는 분명 정당의 재편 시기를 맞고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정당 민주주의가 실제로 본격적으로 제도화 된 것은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시작됐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는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의 문제가 중심이 돼 있었고 김대중 정부 중반부터 대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또하나의 중심인 정당의 민주화가 제기 됐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새천년민주당을 만들었는데 실패하면서 정당의 민주화를 못 만들고 DJ 정당이 된 것이다. 그 이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가운데 노무현 후보가 대선 후보까지 되고 민주당은 변화의 과정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민주당은 이미 개혁과 변화의 과정에 있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대선과정에서 나타난 지도부의 재편 문제가 당면한 새로운 과제로 남아 있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지도부 재편과 제도개혁 이라는 점을 강조했다면 비교적 정당정치 발전이 순조롭게 이뤄졌을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 차제를 부정하는 노대통령 주변세력들에 의해 제기되고 그것이 정당개혁의 과제이자 목표처럼 되었다. 서두에서 이야기했지만 한나라당은 정말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었고, 국민 대다수가 그동안 볼모로 잡혀 있었던 지역주의 문제에서 해방되고 있었고, 거기다가 새로운 젊은 세력들의 흐름도 나타나고 있었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망친 것이다.
 
결국 노대통령이 만약 다당제 구조의 가능성이라든가 정부 권력구조 개편 또는 제도개혁 등에 집중 했다면 국민통합도 이뤄내고 자연스럽게 이슈의 변화에 따른 정계개편의 가능성도 컸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출범으로 형성된 현행 다당제는 과도기적인 것이다. 아마 17대 총선을 거치면서 어떤 형태로든 어느쪽이 재편되거나 재결합되는 양상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정치개혁, 원내정당과 정당의 지방분권화가 관건
 
▼ 그렇다면 정당형태나 제도개혁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가
우선 대선자금과 관련해서 지금 가고 있는 정당개혁의 방향으로만 가면 정치개혁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하나는 분권화를 지향하고 있고, 하나는 원내정당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치자금은 전부 어디로 갔었나? 중앙당으로 갔다. 원내 정당으로 가면 이제 중앙당으로 돈을 줄 필요가 없다. 자금의 상당부분은 입법예산으로 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 분권화를 주장하고 있는데, 정당 분권화를 말하지 않고 있다. 웃기는 이야기인데, 정치분권화를 주장한다면 정당 분권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원내 정당으로 가고 한편으로는 분권화로 가야 하는 것이다.
 
분권화로 가는 방식중에 하나는 정치자금의 지원을 중앙에서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치단체에서 지원을 해야 한다. 원외 중앙당 구조를 축소 또는 폐지하면서 원내정당으로 가야 한다는 처방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원내정당으로 가면 정치자금은 입법예산으로 공식적으로 지원되니까 비리에 대한 부분이 줄어들고 또 자연스럽게 선거공영제로 흡수된다. 선거공영제는 정당과 무소속, 신진과 현역의 차별적인 환경이 해소되는 방향으로 확대 개선되어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정당이 자체적으로 비리의 여지가 큰 그런 정치자금 부분도 아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과연 이번 회기내에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정당체제와 관련해 다당제도 수용하는 제도의 개편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젊은 세력들이 변화의 흐름을 단순히 '진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진보'의 개념도 과거와는 다른 기준에서의 진보라고 본다. 현재 민노당 등의 진보세력은 산업화 시대의 기준에서 진보이기 때문에 과거의 기준에서의 진보이다. 그런 진보세력도 필요하지만 새로운 젊은 세력들의 새로운 역동성과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진보의 틀도 필요하다. 그렇게 위해서는 소수정당도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소수정당이 살아 남기 힘들다. 대통령제 내에서는 게임구도 자체가 1등이 다 먹어버리는 구조이고, 2등도 사실상 살아남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형태의 모순구조, 대통령제 개편 검토 필요
 
▲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 김만흠교수     ©대자보
대통령제 아래에서 공존과 협력, 상생을 이야기 하는데 말로서는 다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책임총리제도 과도기적으로 주장하는 것일 뿐 현행 대통령제는 '공존분권체제'하고 맞기가 힘들다고 본다. 결국 현행 대통령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근본적으로 현행 정부형태는 제도적인 '정합성(整合性)'을 상실하고 있다.
 
그 동안의 우리 정치현실을 보면 여당은 대통령을 무조건 옹호했다. 최근에는 무조건 옹호하면 안되니까 말로는 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옹호한다고 말한다. 야당은 견제한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여야당에 생산적인 정치를 주문하지만 이런 제도적인 위치에서 의회의 생산적 역할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정치라는 것이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여야 정치구도는 철저하게 세력 싸움의 구도일 수밖에 없다. 즉 선거때는 어쩔수 없이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고 끌어내리고 싸울 수밖에 없지만, 선거가 아닌 시기에는 정치는 안정적인 시대가 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선거 때가 아닌 시기에도 상대방 죽이기를 하는 정쟁의 정치가 지속되고 있다. 
 
결국 현행 대통령제로 인해 정치는 정쟁의 구조로 가는 것이라고 본다. 대통령제의 장단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내각제의 전형적인 형태는 있지만 대통령제의 전형적인 모델은 없다. 미국식 대통령제가 있고 한국식 대통령제만 있을 뿐이지 대통령제의 전용은 없다. 제도적으로 미국식 대통령제는 특이하게 생긴 경우이고, 거기다가 정당이 완전히 분권화 돼있다. 사실 여당, 야당 개념은 정당이 책임지는 내각제에서 쓰이는 용어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여당, 야당도 가능하고 대통령제도 유지하고 있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대통령제는 당연히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최근에 중대선거구제가 갑자기 부상하고 있다. 중대선거구제가 어찌보면 정략적인 측면도 있겠고, 다당제적인 측면도 있는데 중대선거구제가 한국적 상황에서 어떤 측면에서 이뤄져야 하는가
우선 우리가 정치권의 제도개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정략적이냐 그렇지 않느냐"를 흔히들 지적을 하는데 당연히 제도개편은 정략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느 나라에서든 제도개편이 추상적인 개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다만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맞물린 명분이 얼마나 타당한가라는 관점에서 비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정당체제가 과도기적이라 할지라도 다당제 구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대선거구제가 채택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민주당도 그렇고 열린우리당도 그럴 것이다.
 
▼ 한나라당의 경우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할 것이라고 보는가
한나라당의 경우에는 중간에 계산을 잘못해서 왔다갔다 하는 것 같은데, 지금의 추세로 보자면 한나라당은 중대선거구제로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단순한 수학으로 보더라도 한나라당은 절반가량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데 다당제가 되면 절반을 차지할 가능성도 아주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몇 개 지역 같은 경우에 한 당에서 두 후보가 나와서 둘다 당선될 가능성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다.
 
상향식 공천제도, 정치개혁의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제도라는 것이 하나만 가지고 독립적으로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중대선거구제와 관련해서 비례대표는 강화되야 한다고 본다. 비례대표는 정당정치가 정치과정에 중심이 된다는 것과 맞물려 있다. 왜냐하면 비례대표는 정당을 보고 투표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재 정당정치 중심이 아니다 대통령중심제이다. 현행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정당정치가 활성화되기는 한계가 있다. 한국의 대통령 중심제에서 정당은 대통령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지 정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정당중심의 정치로 가려 한다면 현행 대통령제는 바뀌어야 한다.

실제로도 내각제로 국가가 운영되지 않는 나라에서 정당명부제가 시행된 나라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참고로 하고 있는 독일이라든가 일본도 마찬가지다. 정당에 책임성이 있어야 정당명부제가 시행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지방자치에서도 획기적인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행정의 분권으로만 돼 있다. 정치가 중앙에 참여하기 위한 제도적인 메카니즘이 없다. 지금 보면 지방자치체들이 중앙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없다. 단지 협의회만 구성할 뿐이다. 대신 지방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을 국회의원을 통할 수밖에 없다. 원래 국회의원은 지역의 대표가 아니고 국민의 대표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에게 무어라고 비판을 하느냐 의정활동에는 참여하지 않고 지역구에만 관심이 있다 비판한다. 결국 정치의 지방분권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공간대표를 할 수 있는 구조가 되야 하는 것이다. 나온 김에 한마디 더하면 우리나라 최고의 판결을 한다는 헌법재판소에서 그런 사실을 모르고 '인구등가성' 관련 위헌 판결을 냈다. 선거구별로 유권자 인구 격차가 3.7:1의 비율을 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을 한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 의회 구조를 가지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양원제도 있고 상원제도 있다 또한 지방분권제도 있다. 또 연방체제이다. 곧 공간대표가 있는 경우에 따로 하원의 경우 인구등가성을 강조한 것인데 이와는 환경이 다른 우리나라에 그대로 원용한 잘못된 판결이었다.
 
결국 특정한 제도를 가지고 그것이 옳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최대 관건이 되야 하는 것은 대통령제의 변화일 것이다. 뿐만아니라 다당제 구조로 가는 것이 정치개혁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곧 정당의 민주화는 정당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정당 체제 민주화가 가장 우선적인 과제인 것이다. 민주화되지 않은 정당은 퇴출되는 구조가 되야 한다. 독점체제의 해체가 필요하다. 내가 '정치시장의 유연화'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노동시장이 유연화'라는 개념 못지 않게 정치시장도 유연화 되야 한다. 역시 그 초점도 대통령제의 변화가 전제돼야 하는 것이다.
 
공천 방식에서도 반드시 상향식 공천을 해야 하느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정당의 조건에 맞게 하면 된다. 어떤 당은 바로 영입할 수 도 있고 또 중앙심사도 할 수 있고 또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그 방식이 국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면 그 방식을 택하는 것이고, 그 정당이 지지를 받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정당 내부 선출방식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정당체제의 민주화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 의원내각제가 거론되고 있지만, 국민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 의원내각제가 개헌론이 주로 독재정권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내각제 개헌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도 있다. 그러나 그런 관점은 이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흔히 제도가 무엇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데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의 제도는 권위주의 시대의 제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제도는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현재 여러 가지 어려운 국면에 놓여있다. 특히 이라크 파병문제는 그의 집권에 있어서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가

이미 정부에서는 파병에 대한 문제를 결정한 것으로 보이고 있지 않나? 이라크 내부의 사정이라든가 국제정세가 파병을 하지 않아도 조금 견딜 만큼 유리한 국면으로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안이 결정돼 버려서 정부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초반에 여지를 두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었다면,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는데 이미 양국간에는 이라크 파병을 구체화시키는 시기로 가버린 것 같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이 충분히 동의하는 수준에서 이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 대국민 사과 담화문 발표해야
 
▼ 이제 겨우 집권 8개월이다. 마치 5년동안 이뤄져야 할 일이 한꺼번에 발생한 것 같다. 노무현 정부는 앞으로 어떻게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보는가
우연인지 모르겠는데 최근 몇가지 노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과거보다는 포용력이 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본다. 물론 더 이상 갈곳이 없는 국면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조금은 여유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대선자금과 관련해서 재신임 문제는 대통령에게 있어서 그동안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다. 대통령이 제안한 국민투표가 위헌요소도 있지만 지지세력은 여론조사를 통해서 지지가 심지어 60%까지 나온다고 굉장히 자족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식의 시각은 바꿔야 한다고 본다. 집권 8개월 밖에 안됐는데 국정혼란을 감수하고라도 "대통령은 그만두어야 한다"라는 국민들이 40%가 된다는 것을 대통령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 뿐만아니라 그 주변세력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노대통령은 이 시점에서 재신임 문제를 철회하고, 이것을 "책임을 통감하며 국민의 뜻을 받아들인다"라는 담화를 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은 노대통령이 밀리는 것이 아니라 반성을 통해 대통령이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재신임 선언은 바람직한 전략이었다고 보지 않는다. 노대통령 지지세력들 중에는 여러 어려운 국면을 한방에 날릴 수 있는 기회라고 평가하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물론 '어텐션 효과(Attention Effect)'로 일시적인 주목을 끄는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재신임 선언으로 이미 대통령에 대한 열망을 떨어뜨렸다고 본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이 4년에 걸쳐 국정운영을 하는 동안 언제라도 재신임을 제기할 수 있는 불안한 정권으로 보게 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노대통령 집권초기에 '주류세력' 논란이 있었다. 많은 이들은 주류세력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했었는데, 주류세력 논란은 이미 김대중 정부때부터 있어왔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새로운 차원에서 변화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물론 바뀐다고 해도 확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혁명이 일어난다고 하더라고 사실 그 사회의 주도세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결국 "얼마나 새로운 세력이 힘을 가질수 있느냐"라는 문제, '새로운 다수(New Majority)'를 창출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다수를 무시하면서 소수가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를 기반으로 하는 세력이 새로운 다수를 형성해 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노대통령 등장의 의미를 줬던 것은 그동안 소수였던 세력이 중심이 돼서 '새로운 다수'를 형성할 형성해, 새로운 사회 흐름을 견인할 수 있고 그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였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아직 다수도 되지 않은 소수를 외면했다는 점에서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다.
 
▼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잘못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자신을 지지했던 세력을 무시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배신'했다고 하기도 한다. 도덕적으로도, 정치전략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 천정배 의원이 이광재 전 청와대 상황실장에 대해 비판을 했듯이 최근 참모진에 대한 문제도 야기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문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근본적으로는 대통령이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물론 참모진도 중요하다. 참모진의 구성은 실질적인 정책과 보좌 능력이라는 점에서 보아야 하겠지만, 국민적 이미지와 네트워크 차원에서 중요하다. 때문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참모구성을 할 때 내부의 자기 주변세력들을 그대로 데리고 갔다. 그러면서 국민적 이미지에는 편협한 집단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정치에서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는 과정에서도 본인의 실제와 상관없이 대중적인 열망이 이미지를 만들었고 선거승리를 가져 오지 않았는가. 노정부의 국정 운용 팀이 선거 때 노무현 진용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떤 면에서는 민주당과 공유했던 선거시 진용보다도 더 협애화 되었다. 물론 정권은 자신들의 비젼을 공유하는 이른바 '코드'가 구심점이 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국가의 운용은 더 큰 인식과 네트워크, 그리고 창구를 필요로 한다. 인수위를 구성할때도 사적인 측근과 선거때 참여했던 자문위원 교수들 중심으로 구성됐고, 그 이후에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통합과 네트워크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 볼 수 있다.
 
▼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다. 열린 우리당이 내년에 얼마나 만큼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그럴 이야기를 할 입장은 아니다. 열린우리당은 제1당이 될 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비교적 호의적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은 50석도 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박하게 평가하는 이들은 원내 교섭단체도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선거구제 개편이 되지 않고 현행 선거구제로 선거를 치른다고 했을때, 각 지역별로 구체화 시켜서 예상해 본다면 원내 교섭단체도 이룰 수 없을 거라는 예측도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 열린 우리당의 자신들의 구도대로 선거의 쟁점을 여야 대립구도로 만들어 낼 수 있을 지, 그리고 대선 자금 비리 정국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주장처럼 다수 의석을 차지하기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


[인터뷰 후기]

3시간 여에 걸친 인터뷰가 끝났을 때 지친 것은 기자들이었다. 김만흠 교수는 여전히 더 할말이 많은 듯 보였다. 일정상 인터뷰를 접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 술자리까지 이어지면서 '취중진담'이거나 '쾌도난담'식의 인터뷰가 계속 진행됐을 것이다.
 

김만흠 교수는 인터뷰 동안 과거시제로 발언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그동안' 이라며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과거 행적에 대해 날선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민주당 분열과, '탈호남', 후단협 평가에 대해서는 학자적 입장에서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결론은 노무현식 정치개혁이 일반인은 물론 정치학자들까지도 선뜻 이해가 안가는 예측불허이며, 판단의 근거라고 할 데이터 조차 없다는 것이다. 특히 김만흠 교수는 일부 신당세력이 민주당의 개조가 아닌 분당을 하면서 '반개혁'이라고 규정하는 것과 호남을 '지역주의'로 모는 것에 대해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무엇보다 반개혁 지역주의라고 매도하면 참여정부 성립의 근거 뿐만 아니라 명분마저 잃게 하는 우를 범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점에 대한 성찰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김만흠 교수의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가 비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김만흠 교수가 가장 안타까워 하는 것은 소수였던 세력이 중심이 돼서 '뉴 머저리티'를 형성한 것이었는데, 이제 그 개혁세력마저 분열되어 양분됐다는 점이다. 어쩌면 가장 모범적인 정부의 등장으로 인해 구시대 정치를 일거에 혁파하고 새로운 정치문화를 형성할 천부적 기회를 스스로 외면한 것에 대한 실망이 분노로 변한 것이 아닐까?
 
오랫동안 현대 한국정치와 지역주의 연구에 천착해온 정치학 교수에게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전망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답은 '노 코멘트'였다.
 
출범 8개월을 맞은 노무현 정부의 성적표는 바로 여기에서 증명될 것이다.
진행 = 이창은 편집국장, 정리 = 김광선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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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1/11 [10:4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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