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학자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을 ‘혁신을 통한 창조적 파괴’라고 정의했다. 슘페터의 경구는 자본주의의 기술적 측면에 치우쳐 해석돼 왔으나 20세기 이후 세 번의 대공황을 겪은 지금 혁신은 자본주의의 생산방식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자들로부터 과다한 재정지출을 일으키는 이론의 토대를 세워 74년 공황을 유도했다고 공격 받았던 케인즈에 대한 재조명 작업도 활발하다.
잘 알다시피 케인즈는1950년대부터 1070년대까지 서구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장본인이다. 마르크스의 깊고 넓은 역사적 고찰에 대해 무지해서 자본론을 형편없이 재미없는 책이라고 폄하했지만 그는 분명 위기의 자본주의를 구출한 주역이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미국이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해서 쏟아 부은 막대한 군비를 보충하기 위해 OPEC을 배후 조종하여 석유난을 일으켜 공황을 유도한 책임에는 애 써 눈을 돌리고, 과다한 복지재정 지출이 공황의 원인이라고 매도하면서 오직 강자들과 부자들을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만연되도록 전 세계의 경제 패러다임을 변경시켰다.
지난 8일 민주당의 정동영 의원이 이런 신자유주의에 대해 무지했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의 과거 정치 행적을 반성한 점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얼마전 <대자보>에 기고한 글 중에 정치인들이 <대자보>에 들러 오용석 박사의 인민경제학을 읽으라고 권유했던 나로서는 더욱 고무적이었다.
과거 정치 행적에 대한 반성은 새로운 활동을 시작함에 있어 필수적인 첫 관문이다. 정 의원은 용기 있게 그 첫 관문의 통과의례를 거쳤으니 이제는 자신의 발언에 대한 책임을 다하여 행동으로 보여줄 차례이다.
정 의원은 이제 이명박 정권이 추진한 부자들의 감세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부자들에 대한 감세는 정 의원이 앞으로 전념코자 하는 보편적 복지와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모순적 관계임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친서민 정책을 주창하면서 공공요금을 인상시키고, 보편적 복지를 추진할 재원이 모자란다고 엄살을 부리면서 막대한 비용의 토목공사를 강행하려는 자가당착을 목격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골수에 박힌 이런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정동영 의원은 앞으로 더욱 험난한 여정을 거칠 것이다. 그런 시련에 변절치 말고 자신이 발언한 내용에 책임을 지는, 문자 그대로 '신뢰의 정치인' 정동영의 탄생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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