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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보’도 없는 새정치민주연합, 정당 맞나?
[진단] 자신들의 정체성도 당론도 못만드는 정당은 실패할 수 밖에 없어
 
공희준   기사입력  2014/11/25 [14:30]

프라우다, 인민일보, 노동신문. 정치와 시사에 대해 나름 안목과 지식을 쌓았다고 자부하는 이들이라면 이 세 개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 것이다. 순서대로 나열해 설명하자면 구소련과 중국, 그리고 북한의 집권당들이 발행했거나 발행하는 기관지들이다. 비록 집권 가능성과는 거리가 멀기는 해도 일본 공산당 역시 아카하타(赤旗)라는 제호를 지닌 신문을 오래전부터 펴내오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인 새누리당도 중앙위원회 명의로 ‘새누리비전’이라는 온라인 당보를 만들고는 있다. 문제는 논조와 관점에 대한 찬반은 둘째 치고 편집과 디자인 등 그 성의와 수준의 조악함이 한마디로 가관이라는 점이다. 밤만 되면 강남역 근처의 인도 위를 나뒹굴곤 하는 안마방들의 울긋불긋한 광고전단지조차 새누리비전보다는 훨씬 나아보일 지경이다. 한국의 정당정치가 얼마나 후진적 단계에 머물고 있는지를 명색이 집권 여당이 만들어내는 당보의 현주소만 대충 살펴도 단박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 새누리당은 엉망진창일지언정 당보라도 있기는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민주당으로 호칭하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특별히 당보라고 할 만한 존재를 찾아내기가 어렵다. 설날과 추석 같은 명절 연휴를 즈음해, 또는 정국에 긴급한 현안이 발생했을 때에 야당 지도부가 서울역이나 광화문광장 같은 장소로 급히 총출동해 시민들에게 호외 당보를 나눠줬다는 소식이 간간이 전해지기는 하는데, 당보를 배포했다는 뉴스는 보도가 되어도 당보에 실린 주장과 내용이 무게 있게 다뤄진 사례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별다른 영향력도, 커다란 영양가도 없는 당보들 들고서 국민들에게 달려간 까닭에서다.


우리나라에서는 당보로 말미암아 세상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당시는 영혼 맑은 열혈 청년이었던 김지하 시인이 1970년 5월에 월간 사상계를 통해 발표했던 박정희 정권의 폐부와 치부를 사정없이 찌르고 거침없이 까발리는 장편 담시 ‘오적(五賊)’이 같은 해 6월에 신민당 당보인 민주전선에도 실리면서 대규모 필화사건이 빚어졌던 것이다. 이때 경찰과 중앙정보부가 합동으로 압수해간 당보의 수량이 무려 10만 부였다고 한다. 한 부, 한 부가 박정희 정권에게는 비수이자 벼락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통쾌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 야당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변변한 당보조차도 내지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린 요인으로는 여러 가지 사정이 개입했으리라. 인터넷 혁명을 뒤이은 모바일 혁명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친 결과로 SNS(사회관계망서비스)로 대표되는 1인 미디어 시대가 활짝 열린 지금, 굳이 귀찮게 당보를 만들 필요가 있을지 회의적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당보 없는 정당”이 등장하게 된 1차적 사유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홈페이지까지 기왕에 개설해놓은 마당에. 하지만 환경과 세태의 변화가 당보가 사라진 진정한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제대로 된 당보가 자취를 감춘 근본 원인은 ‘당론’이 없는 엽기적 정치풍토에서 비롯된 탓이다.


나라에는 국론이 없어야 옳기 마련이다. 왜냐면 정상적인 현대적 민주국가는 본디 다른 견해와 다양한 사상을 가진 국민들로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우리는 한국적인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한국인이 된 것은 아니다. 단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인연만으로 한국인이 된 것이다. 따라서 ‘국론통일’이라는 구호는 권위주의적 독재정권이 국민들의 반대와 이견을 금압하는 수단으로 늘 악용돼왔다.


반면에 정당은 이념과 노선을 함께하는 인물들이 정권 획득을 목적으로 임의적으로 조직한 자율적 결사체이다. 고로 통일되고 균질한 국론이 없는 것이 오히려 민주주의의 이상에 가까울 국가와는 달리 정당에는 당원들의 폭넓은 여론과 평균적 인식에 바탕을 둔 확고하고 일치된 당론이 있어야 마땅하다. 동시에 당론은 현직 대통령이 군림하고 있는 청와대가 사실상 전일적으로 통제․관리하는 여당보다는, 당원들 간의 활발한 토론과 지지자들의 허심탄회한 의견 개진이 이뤄져야 당의 활력과 건강성을 제고할 수 있는 야당에게 더욱더 요구된다고 하겠다.


당보는 바로 당론을 담는 그릇이다. 그런데 야당에는 10년 넘게 당론이라고 일컬을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아왔다. 당대표도, 소속 국회의원들도, 당원들도 자기의 홈페이지나 SNS에서 제각기 떠드는 데 열중해왔을 뿐이다. 귀청을 찢을 듯한 소음과 뭐가 뭔지 종잡기 어려운 웅성거림은 있어도, 명징하게 알아들을 합리적 메시지와 차분하게 경청할 만한 책임 있는 음성은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당론의 다른 표현이기도 한 정체성의 확립을 지상과제로 여겨왔다. 때로는 결과(형식)가 원인(본질)을 역으로 규정하기도 하는 법이다. 보통의 경우에는 결집된 당론의 산물이 당보라면, 현재의 새정치연합에게는 당보가 본격적 당론을 형성해나갈 출발점 구실을 해줄 수도 있다. 친노로 알려진 세력은 한겨레신문이나 오마이뉴스를 활용해 목소리를 높이고, 비노와 반노로 분류되는 정치인들은 문제투성이의 종편에 출연해 목청을 돋우는 제살 깎아먹기식 자해행위를 하루빨리 멈추라는 뜻이다. 번듯한 당의 독자적 매체를 만들어 그 안에서 서로 치고 박기 바란다.


얼마 전에 새정치민주연합 서울특별시당에서 시당 차원의 당보를 창간하였다. 야당은 매일 인터넷만 한다는 일반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진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불식시키려는 시도였는지 잉크 냄새 풀풀 풍기는 전통적인 아날로그 형태의 종이당보였다. 우연한 기회에 그 제작 작업에 관여(觀與)하게 되었다. 기획 과정에서 이런저런 조언을 제공은 했으되, 내가 오랫동안 견지하고 표명해온 소신과 입장을 지면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일절 기울이지 않았으므로 참관과 참여의 중간 수준으로 관계한 셈이다. 1면에 공개․게재된 최신 여론조사 결과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직면한 위기의 깊음과, 그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된 위기의식의 심각함을 가감 없이 웅변해주었다.


야당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이야기들은 지겨울 만큼 숱하게 나와 있는 터다. 문제는 구체적 실천의지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되살아나려면 이제껏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한 기상천외하고 절묘한 전략과 카드를 동원해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욕심을 당장 버려야 한다. 깔끔하고 당당하게 패배할 각오를 단단히 다져야 기사회생할 수가 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오롯이 자기 자신만을 믿고 의지하라는 의미다. 오영식 의원의 당보 인터뷰의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갈음하련다.


“새정치민주연합에는 문재인 의원과 안철수 의원, 그리고 박원순 시장과 같은 국민의 신망이 두터운 강력한 대권주자들이 여럿 있습니다. 당의 구성원들 모두가 지금부터 착실하게 체질을 강화하고, 쇄신에 주력한다면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21세기경제학연구소(www.taeri.org) 11월호 소식지에 올린 글임.

글쓴이는 시사평론가, <이수만 평전>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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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11/25 [14:3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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