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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사표(死票) 대장정'에 동참하며
신자유주의자들 득세 더 이상 방관 안돼, 진보 정치인 더 공부해야
 
홍정표   기사입력  2010/05/13 [21:27]
마르크스·아담스미스 '다시 보기' 붐

달도 차면 기울 듯이 그동안 온갖 먹구름을 드리우고 갖은 행패를 일삼던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하는 징후가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2007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세계 금융공황 사태에 즈음하여 뜻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신자유주의의 무한질주에 편승하지 않고 있다. 시장을 인간의 목적에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단지 시장을 위한 도구로 전락케 한 신자유주의의 악마적 속성을 직시하고 때늦은 감이 있지만, 그런 괴물을 제때 제어하지 못한 잘못을 반성하려는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일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골수 신자유주의자들을 제외한 사람들에게 때 아닌 ‘마르크스 다시 조명하기’가 붐을 이루고 있고, ‘아담 스미스 바로 이해하기’ 또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올 2월 <대자보>에 연재된 오용석 박사의 인민경제학 시리즈 ‘아담 스미스의 인민경제학’은 아담 스미스를 시조로 모시며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던 신자유주의자들의 사기 행각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명문 중의 명문이다.

오 박사가 지적했듯 아담 스미스가 지지했던 시장은 반칙과 불공정이 판을 치는 부도덕하고 타락한 신자유주의 시장이 아니고 정의가 토대를 이루고 공감과 자기애가 어우러진 공정한 시장이었다.

아담 스미스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가난하고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절대로 번영을 누리거나 행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바로 88만원 세대가 넘쳐나는 우리의 현실을 질타한 그런 명구가 아니겠는가.  

오류 불구 자본주의 모순 과학적 분석

마르크스는 또 어떠했는가. 마르크스의 난해하고 심오한 학설을 전부 이해하기란 그를 연구하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역부족이지만 억압받고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향한 따뜻한 박애감을 느낄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사람들의 편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큰 상품을 지속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동력 착취나 원가 절감을 통한 과당 경쟁을 할 수밖에 없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합리적 예측이 불가한 수요에 관계없이 무한정한 공급을 해야 하고 그로 인한 공황은 주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갈파했다.

2007년 금융공황의 원인으로 파생금융상품이 꼽히는데, 바로 이 상품이 마르크스가 말한 오직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대표적 상품일 게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의 99%에 가까운 지면을 자본주의 비판에 할애했고 자본주의를 대신할 새로운 체제 건설은 극히 짧은 분량만 서술하였다.

20세기 후반 들어 패망한 구소련을 비롯한 일련의 공산국가들이 마르크스가 목적한 체제를 온전하게 수용했는 지는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으나, 이들 국가들이 마르크스 이론의 핵심인 사유재산 철폐를 실천하는 등 외형상 동화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의 오류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그러함에도 마르크스는 오늘날 운용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가장 과학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그 오류는 충분히 상쇄될 수 있을 것이다. 창의성 있는 후진들이 그 오류를 보완하면서 아담 스미스가 목적한 가장 모범적인 자본주의의 현실화에 박차를 가하여야 할 것이다.

세계적 '반신자유주의' 흐름 역행하는 대한민국

바로 이런 거대한 흐름이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을 몰아내기 위해서 전세계적으로 요동치고 있는데, 우리의 정치권이나 경제계나 혹은 이른바 주류 경제학계는 아직도 신자유주의의 망령에서 못 벗어나고 오히려 역행하는 반동적인 행태를 일삼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수출경쟁력이 어쩌니 하면서 오직 재벌들의 독과점을 옹호하고 정당한 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 일테면 금산분리 같은 최소한의 자위조치조차 제거하라고 아우성치며 실제로 그렇게 되고 말았다.

신자유주의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미국조차 금융기관의 국가적 통제를 본격 가동하고 있는 터에 우리는 거꾸로 멀쩡한 국책은행을 민영화시키고 말았다. 투자 촉진과 시장 활성화를 명목으로 부자들의 법인세를 감경시켜 주었지만, 정작 그런 목적은 흔적도 없고 부자들의 배만 더 불리어지고 서민들의 세부담은 오히려 증가하였다.  

<대자보>의 오용석 박사가 지적했듯, 노동자 서민들의 보편적 이익을 특수계층의 집단 이기주의라 몰아붙이고 탐욕스런 재벌들의 특수이익을 국가 이익으로 환치시키며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재벌 토건족들과 투기꾼들을 배불리기 위해서 3년간 30조원을 퍼부으면서 우리 국토를 만신창이로 할퀴고갈 4대강 사업을 뉴딜정책에 비유하면서 위대한 경제학자 케인즈를 욕되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제는 항상 그렇듯 우리들이다. <삼성을 생각한다> 저자인 김용철 변호사가 얼마전 진보신당이 마련한 토론회에서 “자기 집값 떨어질까봐 걱정하면 항상 이런 식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는데 참 의미적절한 말이다.

사표 되더라도 '제대로 된 진보' 위해 투표장 가자

그런데 나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신자유주의자들의 득세를 더 이상 방관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재산은 지금 갖고 있는 내 소유의 동산과 부동산뿐만 아니라 우리가 숨쉬고 누려야 할 자연환경과 우리 아이들을 적정한 가격으로 교육시킬 수 있는 터전, 88만원만 줘도 생활에 지장이 없을 만큼의 사회안전판이다.

이번 선거는 그런 의미에서 ‘사표(死票)대장정’(사표일 가능성이 높지만 기꺼이 투표장에 가서 제대로 된 진보 후보에게 표를 주는 대장정)의 힘찬 발걸음에 동참하길 간곡히 권유하는 바이다.

그리고 말로만 진보개혁을 부르짖는 대다수 정치인들에게 아무리 바빠도 <대자보>에 들러 오용석 박사의 글을 좀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자본주의가 무엇이고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 뭘 제대로 알아야 진보 정치인이라고 내세워도 내세울 게 아닌가.

진보를 표방한다는 이들이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점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알고도 행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더 큰 죄이다.
삼성문제의 다른 관점. 재벌의 지배구조나 삼성의 불법성부각은
이미 많은 전문가 분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기에
최근 노골적인 권력의 시녀로 맹약중인 검찰의 부패사안을 공박하는데
적은 힘이나마 보탤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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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5/13 [21:2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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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택 2010/05/14 [00:08] 수정 | 삭제
  • 반MB란 토씨가 붙어있으나 민노당이 한미FTA세력과 서울시장선거연대를 한다 합니다. 누구 혹은 무엇을 반대한다는 공통을 추구하고자 연대를 한다고는 하나 민노당 스스로 민주당과 다름이 없다는 자기고백입니다. 안될 줄 알면서도, 내 표가 사표가 됨을 알면서도 10년을 보고 사표의 무덤을 쌓고자 하는 분들에게 찬물을 뒤집어 씨우는군요. 결국 진보당보다는 민주당이라는 소리가 대단히 실망스럽습니다. 거기에 더해 ㅈ;닌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서울시장후보였던 강금실 선대본 경력까지 보듬으며 민노당 비례 순위를 부여 받아 국회에 입성한 이정희의원이 민주당과의 연대에 적극적 역할을 하고 있음은 유전적 혈통은 별수없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이제 후보 윤곽이 구체화되어 서울의 한명숙 후보, 충남의 안희정 후보, 강원의 이광재 후보, 부산의 김정길 후보, 경남의 김두관 후보 등 노무현의 직계들은 물론 기타 등등 후보들이 노무현정신의 추구를 말하고 있습니다.

    민노당과 민주당의 합작 하나만으로도 비극 이것만 거기에 더해 친노후보들이 진보의 이름을 참칭하고 국민들 또한 그렇게 인식하며 그들의 실력과 행태가 대한민국의 진보들의 실력과 행태라는 등식이 상식으로 통용이 되고 있으니 이제 그 대가를 몸과 마음의 상처라는 세월로 치르지 않고는 어찌 해볼 수 없는 비극입니다.

    원유가 바다를 오염 시켰으니이제 10년은 족히 감당하여야 할 한 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