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순의 문학과 여성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개혁신문에 사표 던지고 떠난 어떤 기자
[정문순 칼럼] 초심 잃은 구성원 비판하며 떠난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
 
정문순   기사입력  2010/03/18 [21:46]
1999년 지역민이 주주가 되어 창간한 경남 마산의 <경남도민일보>는 굳이 서울 일간지에 빗대자면 <한겨레>와 비슷한 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신문의 간판과도 같은 한 기자가 최근 ‘초심’을 잃은 신문사 구성원들을 비판하며 사표를 내고 떠났다. 

지역민조차 지역신문에 관심이 없는 현실에서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는 지역신문 문제의 해법을 잘 아는 드문 전문가로 손꼽히고 있다.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 『토호세력의 뿌리』 등을 저술한 그의 전문 분야는 ‘기자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경남지역 역사 발굴가로서 지역신문만큼이나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지역 역사의 정당한 위상을 찾는 일에도 삶을 걸어온 사람이다. 

글쓰는 사람으로서 보기에 그의 글은 문제의식은 선명하고 문체는 간결하면서도 막힘 없이 시원시원하다. 엘리트 의식이 느껴지지 않고 투박함이 느껴질 정도로 질박한 그의 글은 미사여구를 배제하고 거침 없이 내달리지만, 역사가로서 신문기자로서 열정과 감수성을 감추지 못한다. 미처 발굴되지 못한 보도연맹 학살 현장을 찾아간 자리에서 발밑의 흙을 들추면 유골이 보일 것 같았다고 표현한 문장은 젊은 날 문학을 꿈꾸었다고 한 고백답게 문학적이기도 하지만, 은폐된 역사의 실체에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열정과 안타까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을 주었다. 

▲ 경남도민의 뜻을 모아 만든 독립개혁신문 경남도민일보 인터넷판.     © 경남도민일보

경남 지역 보도연맹 학살 사건 발굴, 캄보디아 거주 위안부 출신 훈 할머니 사연 발굴, 친일 인사 이은상과 조두남 기념 사업 반대 등의 지역 현대사 운동, 그리고 계도지 폐지, 도청, 시청 기자실 폐쇄, 촌지 거부, 편집권 독립 등의 신문개혁 운동 등 그의 주요 활동들은 대부분 재직했던 경남매일신문과 경남도민일보라는 공간과 개인 블로그에서 펼쳐졌다. 특히 경남도민일보의 창간 주역으로서 자본과 권력의 소유를 떠난 언론사에서 “신 나게” 원 없이 취재 활동을 하고 기사를 썼다고 했다. 

그런 그가 경남도민일보 서형수 대표이사 사장으로부터 편집국장에 임명된 후 기자들의 임명동의 투표에서 몇 표 차이로 부결되었다. 그 직후 신문사를 미련 없이 떠났다. 신문사의 얼굴이라고 대우받는 처지로서 편집국장을 차지하지 못한 서운함 때문이었을까? 

경남도민일보의 사시는 ‘약한 자의 힘’이다. 언론사 사시로서 이만큼 급진적인 것은 본 적이 없는 듯하다. 만약 ‘정의의 힘’이니 ‘민주주의의 힘’이니 하는 '착해빠진' 슬로건을 내걸었다면 아무런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신문사가 그동안 기득권과 강자에 전혀 연연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수년 전에는 경영진이 경영난을 빌미로 개혁적 색채를 탈각하고 편집권에 간섭하려던 일이 있었다. 그때는 경영진만 문제가 있나보다 생각했다. 최근에는 한겨레 사장 출신의 사장의 영입으로 무산되었지만, 지역의 토호를 사장으로 영입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한다. 경영진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김주완 전 기자의 말에 따르면.

그는 사표 이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신문사 구성원들이 자본 영입과 자기 안위에 함몰되어 있다고 질타했다. 특히 신문사의 ‘초심’을 외면하는 구성원들을 ‘좀비’라고까지 표현했다. 독립언론의 창간 주역이라는 자부심이 무색해질 만큼 위기의식과 실망이 목까지 차오를 즈음에 편집국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신문사 내부 사정을 모르는 나로서는 좀비가 얼마나 암약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며, 오직 신문기사만 보고 판단할 뿐이다. 경남도민일보가  지역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여론을 수렴하고 의제를 설정할 역량이나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는 나로서는 김주완 씨의 말을 근거 없다고 치부하기 힘들다. 

마산, 창원, 진해 3개 행정구역 통합이 각 시의회에서 결정돼버리자 경남도민일보는 지역민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면서도 민주적 절차 없는 통합을 반대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행정구역 통합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는 기사를 잔뜩 쏟아냄으로써 기사 ‘장사’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였다. 
 
세수와 자원이 한정된 현실에서 행정구역 통합을 통한 거대 도시의 탄생은 지역간 불균형의 굴곡을 더 깊게 할 것이라는 판단은 조금만 생각해도 나올 수 있는 결론이다. 행정구역 통합에 편승하는 경남도민일보의 태도는 남이 헐벗더라도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서, 지역신문의 고질인 지역이기주의와도 통한다. 부산에서 조선일보보다 구독자 수가 많다는 부산일보의 경우 독자 확보의 비결은 오로지 지역민의 이기심을 자극하는 데 있다. 가치 판단의 기준을 옳고 그름이 아니라 오직 지역에 유리한가 아닌가에 두는 태도는, ‘약한 자의 힘’과 정면 배치됨은 말할 필요가 없다. 

돈도, 권력도, 정계 진출도 따라붙지 않는 지역신문 기자의 삶을 자랑스럽게 택했다고 한 언론인이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기 위해 떠나는 걸 보면서, 자본과 서울 패권이라는 독점이 심화되는 와중에서 초심을 잃지 않고 버텨내기 힘든 지역신문의 현실을 절감하게 된다. 현 정부 들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지역신문의 환경을 되새기게 해주는 일 같아 씁쓸하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0/03/18 [21:46]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시민 2010/03/20 [10:58] 수정 | 삭제
  • 경상도 마산분들로부터 경남노민일보가 도민들이 직접 만드는 신문이란 말을 오래 전에 들었다. 그 신문사가 잘 되길 바라고 있었는데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안타깝다. 깨끗한 사람들이 만드는 깨끗한 신문이 잘 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