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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 총리-정치 검찰'…제2의 용산 부르나
정운찬 '역시나', 검찰 선고공판 앞두고 중형…"문규현, '정치구형'에 충격"
 
이석주   기사입력  2009/10/23 [18:19]
"중앙정부는 (용산참사에) 책임이 없으므로 지자체와 조합 등이 나서야 한다"
"상황의 진전이 없으면 유족을 만날 필요가 없다"
"정부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유족과 범대위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발언과 문서 형태의 자료를 통해 드러나진 않았으나, 최소한 용산 범대위와 국무총리실, 일부 통신사 보도 등에 따르면, 정운찬 총리는 용산참사와 관련한 정부 책임론과 원만한 합의에 대해 최근 이같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워딩'으로 만 본다면, 지난 1월 참사 발생 이후 정부여당이 견지해온 입장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이지만, 문제는 정 총리가 지난 3일 남일당 건물을 방문해 '눈물'을 흘리며 원만한 해결을 약속한 이후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 속속 드러난 정운찬 '악어 눈물…"유족들 피눈물 흘려"

당초 정 총리는 인사청문회에서의 약속 대로 취임 닷새 만인 지난 3일 현장을 방문, "한 자연인으로서의 무한한 애통함과, 공직자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을 통감한다"며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 추석연휴 기간이었던 지난 3일 용산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을 방문한 정운찬 국무총리.     ©국무총리실

비록 중앙정부의 직접 해결과 검찰의 '3천페이지 수사기록' 공개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미온적 반응을 보인 것도 사실이나, 유족들이 실망감 속 일말의 기대를 갖게된 것은 당시까지만 해도 정 총리 '눈물'에 진정성이 담겨있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당시 용산 범대위가 "오늘 총리가 유가족을 조문하고 위로한 것에 대해 일단 긍정적인 태도로 생각한다. 앞으로 총리실과의 협의를 통해 참사 해결 및 장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희망과 향후 구체적 계획을 밝힌 것도 이같은 기대감 탓이었다.

하지만 보름 여가 지나면서 이러한 기대감엔 이상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정 총리가 유족들 면담 요구에 "상황에 진전이 없는 현시점에서 만나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다. 시간을 두고 다음에 만나는 게 좋겠다"고 한 발 물러선 듯한 태도를 보인 것.

여기에, 정 총리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서울시가 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정부 책임론에 부정적 입장을 밝히며 향후 지자체와 조합 등이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못박은 것이다.

특히 총리실 전언을 토대로 한 용산 범대위의 지난 21일 논평에 따르면, 심지어 정 총리는 전철연과 범대위 등 외부세력과의 대화를 더이상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으며, 심지어 다섯 유가족 사이에서도 대화의 우선순위를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3일 고인들의 영정 앞에서 흘렸던 정 총리의 눈물은 명백한 '악어의 눈물'로 규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자, 정부의 사과와 임시·임대 상가 보장, 수사기록 공개 등 유족들의 요구사항은 한낱 '들리지 않는 외침'으로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인국 신부는 23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정 총리를 비롯한 정부당국을 향해 "유족들의 피눈물을 나게 하는 소리"라며 "이런 날카로운 입술들이 얼마나 사람들 마음을 피나게 하는지 모르는 모양"이라고 분노했다.

■ 'MB 검찰'의 정치적 구형…"법이 아닌, 밥 때문에 내린 구형"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른바 용산 재판과 관련해서도 '유족들을 두 번 죽이는'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당장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있다", "후대에 진실이 밝혀지면 그 모욕과 부끄러움을 어찌 감당할텐가"는 등의 분노가 거세게 일고 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안상돈 부장검사)는 지난 21일 '용산참사' 당시 경찰관을 숨지거나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된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 이충연 위원장 등 농성자 9명에 대해 각각 징역 8∼5년을 구형했다.
 
▲ 검찰은 용산참사 선거공판을 일주일 앞두고 이충연 위원장 등에게 중형을 구형했다.     ©CBS노컷뉴스 (자료사진)

'3천페이지 수사기록'이라는 핵심 증거를 제외한 채 중형을 내린 것이며, 특히 현재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화재원인'과 '경찰책임론' 등에 대해선 "농성자들의 화염병 때문이다", "정당한 공권력 행사였다"는 등 자신들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당장 정치권에선 '정치검찰'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무리한 진압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잃은 피의자들, 밤마다 눈물로 그 끔찍한 광경을 상상해야하는 이들에게 가혹한 형량을 구형했다"며 "이명박 정권은 권력자들에는 관대하고, 힘없는 서민에게는 가혹하다"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 백성균 부대변인은 특히 정운찬 총리를 직접 겨냥, "유가족들 앞에서 흘린 눈물을 우리 국민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라며 "정부는 재판 결과를 두고 '용산 참사' 해결 문제를 결코 흥정하려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력 경고했다.

김인국 신부도 "한마디로 법에 따른 구형이 아니라 밥 때문에 내린 구형이다. 법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밥줄을 쥐고 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의 용산 참사는 전두환 정권의 광주 학살과 똑 같은 문제"라고 날선 비판을 가했다.

이와 함께 "(용산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정권의 정당성이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을 현재의 권부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검찰도 그런 대통령의 안색을 살펴가면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구형을 내린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 "'의식불명' 문규현 신부, 검찰 구형에 충격"…사제단, 시국기도회 개최

특히 김 신부는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을 벌이다 22일 새벽 5시 경 의식을 잃고 후송된 문규현 신부와 관련, 검찰의 21일 구형이 결정적 역할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앞서 문 신부는 오전 5시45분 께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으며, 곧바로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문 신부는 지난 12일 부터 용산참사 해결을 촉구하며 전종훈, 나승구 신부와 함께 단식농성과 기도를 진행해 왔다.

김 신부는 "(올 초) 오체 투지 중간에 벌어진 용산 참사 때문에 극도로 상심하셨다. 그래도 안간힘으로 버텨왔는데 엊그제(21일) 검찰이 철거민들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 씌우는 중형을 구형하는 것을 보고 결정적으로 충격을 받으셨던 모양"이라고 전했다.
 
▲ 문규현 신부     © 여의도 성모병원

용산 범대위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현재 의식불명 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며, 특히 심장이 2번 멈추는 등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대위는 의료진의 전언을 토대로 "맥박과 체온이 서서히 상승하고 있고 신체에 다른 이상 징후가 보이지는 않고 있다"면서도, "10분이 넘게 심장이 멈추어 있었기 때문에 문규현 신부님이 깨어 난 후에야 정확한 뇌 손상 정도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은 이날 "철거민들은 화염 속에 죽어가고,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풀기 위해 헌신하는 분들이 다시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현실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양심이 있다면 해결의 단초라도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자신이 서울시장 시절 시작한 뉴타운으로 인해 재개발 광풍이 일어났고, 강경진압의 대명사 격인 인물을 책임자로 앉혀서 이런 참사가 일어났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이 대통령이 철거민의 죽음에 대해 일말의 가책이라도 느끼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정운찬 총리의 '악어 눈물'과 검찰의 '정치 구형', 이로 인한 일련의 상황이 문규현 신부의 의식 불명까지 이어진 가운데, 범대위와 종교계 등이 정부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고 다음주 선고공판에서의 올바른 판결을 촉구키 위해 촛불을 들 계획이다.

범대위와 시민단체, 민주노총 등은 24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범국민 추모제'를 열 예정이다. 이날 추모제는, 이에 앞서 같은 장소에서 열릴 예정인 '비정규 노동열사 합동추모제' 이후 진행돼 다수의 노동자들도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도 오는 11월 2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대규모 시국기도회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시국기도회는 용산 참사 직후였던 지난 2월 3일 이후, 같은 현안을 갖고 열리는 두번째 기도회다.

김인국 신부는 "그 날은(11월2일) 교회 전례력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면서 기도하는 위령의 날"이라며 "죽은 사람들과 장차 무참히 죽게 되어있는 생명들을 위해 기도할 생각이다. 특히 용산 희생자들, 그리고 4대강에서 죽어갈 뭍 생명 들을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자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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