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노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역사적 임무
[데스크칼럼] 재신임, 파병거부로 정면 돌파해야
 
이창은   기사입력  2003/10/11 [15:45]

작년 12월 19일 노무현 후보가 16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모 방송국에서 지나가는 시민을 향해 소감을 물었다. 어느 주부에게 소감을 묻자, 주저하던 주부는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만'이라며 흥분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전혀 의외의 인물인 '바보' 노무현은 예상을 깨고 기적같은 드라마를 연출하며 온갖 악조건을 극복하고 끝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데 그 감격이 여운이 사라질 취임 7개월 여 만에 노대통령은 그를 지지하고 찍어준 국민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노대통령은 10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측근비리와 국민불신에 대해 '재신임'을 물을 것이라는 대국민 선언을 발표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측근의 비리에 대한 책임과 그동안 축적된 국민들의 불신에 대한 '재신임'을 들었다. 다만 재신임의 방법은 공론을 통해 시기와 방법을 마련할 것이며, 이번 결정이 회피용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적어도 총선 전후까지는 재신임을 받을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끝없는 재신임 논란, 누가 책임지나

현직 대통령이 야당의 공세가 아닌 자진해서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은 국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고령으로 대통령에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직시 `나는 감기들 권리도 없다'는 말을 할  정도로 "국정에 대해 무한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재신임 발언은 충격을 넘어 국정혼란 등 막연한 공포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노대통령을 지지했든 안했든,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책임자인데 스스로 '신임'여부를 묻겠다는 것에 대해 국민은 혼란을 넘어 불안을 느끼고 있다.

노대통령은 절차적 민주주의에 의해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다. 따라서 소수의 지지율이든 다수의 지지율이든 당선 이후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치를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제도적 법적 절차에 의해 가결이든 부결이든 상황에 따라 임무를 수행해 나가야 한다. 따라서 본인 스스로 국정수행을 지속할 수 없는 무능력을 보여 탄핵 또는 하야하든지, 심할 경우 쿠데타 같은 비상상황이 발생하지 않은 한 본인의 임무수행 능력이나 역할에 대해 '신임'여부를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아가 이번의 '재신임'이 어떤 형태로든 진행이 되면 매번 국가정책의 대소사마다 '신임'여부를 물어야 하는 전례가 생겨 국정마비 현상을 불러 올 수 있는 위험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노대통령이 이번 재신임 여부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책임하며 즉흥적인 발상이라 할 수 있다.

국정은 '무한책임', 도박이 아니다

노대통령은 어제 발언의 여파로 국정공백 논란을 수습하고 국무위원, 비서실의 일괄사표를 반려하면서  "재신임 과정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지난 몇 달동안의 국정 혼란보다 더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생각치 않는다"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장관이 국회에서 쫒겨나고 도저히 알지도 못할 이유로 감사원장 동의가 부결되는 이런 상황은 국정이 안정됐다 할 수 있습니까"라고 국회에 대한 강한 불만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같은 변명은 궁색하다. 참여정부, 아니 노대통령은 후보시절도 아닌 88년 국회의원에 등장하면서부터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과 기득권세력인 한나라당으로부터 끊임없는 정치공세를 받았다. 취임 이후에는 밀월기간도 없이 노대통령의 야심적이고 이상적인 정치개혁은 조중동에 의해 왜곡되고, 한나라당에 의해 찢겨졌다. 조중동과 한나라당, 이른바 '보수반동복합체'의 공세는 치열해 졌고, 참여정부의 개혁피로도는 나날이 늘어났다. 어떤 면에서는 참여정부와 노대통령이 자초한 면도 있지만, 한나라-조중동의 공격은 우리 사회의 개혁과 진보, 수구와 보수라는 세력의 충돌로서 필연적이었던 것이지 참여정부라고 해서 예외가 될 것은 아니었다.

문제의 핵심은 노무현 대통령 본인에게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신뢰 속에 탄생한 참여정부는 취임 이후 기대에 어긋나기 시작했다. 아니 노무현 자신이 변했다는 평가가 더 많았다. 노무현 지지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과연 저 노무현이 우리가 찍은 노무현인가"라는 탄식과 충격은 심각할 정도이다.

무엇보다 참여정부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개혁'의 후퇴와 민주당 분당 사태로 나타난 지지세력의 분열과 대립은 참여정부의 근본을 뿌리부터 흔들리게 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명분과 실리, 그리고 도덕적인 측면에서 아무 이득이 없는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이 아닌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마지막 남은 지지세력마저 등을 돌리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파병거부만이 살길이다

▲파병반대 집회 모습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대통령직을 걸고 '재신임'을 물을 정도면 '목숨을 걸고' 파병거부를 해야 할 것이다. 파병거부를 통해 '바보 노무현'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지지세력을 재결집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민주당 분당사태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한 입장에서 지지세력 간의 연대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노대통령이 '사즉생(死卽生)'의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이 나라의 운명은 냉전수구세력이자 보수반동복합체에게 넘어가게 된다. 이후에 벌어질 사태는 그야말로 한반도의 재앙일뿐 아니라, 동북아를 넘어 세계적인 재난이 될 것이다. 이제라도 노대통령은 '한번 죽지 두 번 죽는 우'를 범해선 안될 것이다. 

참여정부가 어떻게 탄생했는가? 한국 헌정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통해 등장한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으로 남북의 긴장보다는 교류협력을, IMF 상황을 IT강국으로 극복하면서 역대 어느 정부보다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여 바통을 이어주었다. 참여정부 또한 5년의 집권 기간동안 내실을 다지고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국운을 상승시켜 수구기득권세력이 아닌 민주화의 법통을 이어갈 정부에게 바통을 이어줄 릴레이 주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참여정부의 역사적 임무인 것이다.

새삼 위대한 정치지도자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 편집국장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3/10/11 [15:45]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