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막말'의 시대다. 이른바 '보수우익'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거리낌없이 발언하고 있다. 상식은 실종되고 패륜적인 발언도 공공연히 쏟아내며, 스스로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과거 같으면 신문이나 방송 한 귀퉁이에 나와 논란이 되면 '치고 빠지기'로 가능할 일이지만, 인터넷미디어 시대, 언제 어디서든 재생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막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빛바랜 군복이 아닌 최신형 군복을 빼입고 가스총으로 무장한 퇴역 군인이라는 사람들도 도심을 활보하고 있다.
그 중심에 전통적으로 조갑제, 김동길, 지만원씨 등이 있었지만, 최근 우익단체를 이끌고 있는 국민행동본부 서정갑 본부장, 세종연구소 송대성 소장, 그리고 송지헌 전 아나운서 등 새로운 인물들이 가세하고 있다. 과거 보수인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막말을 넘어 미디어를 활용하고 가스총을 쏘는 등 물리력을 행사하면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막말은 왜 쏟아져 나오나? 막말 과잉은 이명박 정권이 초래했다. 집권 2년차에 접어들어도 국민과 불통, 국정혼란을 자초하면서 각계 각층의 시정요구가 빗발친 것이다. 이미 대학교수를 중심으로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시민단체 뿐 아니라 종교계 문화계까지 확산중이다.
▲ 국민행동본부 서정갑 본부장은 지난 15일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에서 가스총을 발사했다. © CBS노컷뉴스 | |
'강부자', '고소영' 정권으로 불리는 이명박 정권의 구조적 한계는 각계 각층의 국정기조 시정요구를 받을 수도 시정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강남 땅부자와 보수신문 조중동 등 기득권을 대변하는 그들로서는 대다수 시민의 요구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막말을 쏟아내는 보수우익 인사들은 바로 이명박 정권과 시민들의 대치지점에 끼어들고 있다.
대학교수, 시민단체, 종교계와 문화계 등은 국민과의 소통을 외면하고 집회와 시위, 표현의 자유 등을 억압하는 등 기본권의 제한부터 남북문제가 대결구도 아닌 화해교류로 돌리라고 주장한다. 운하사업에 포장만 바꾼 4대강 사업보단 실질적인 민생경제에 주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절대 다수 국민의 요구와 배치되는 이명박식 독선과 독주를 비판한 것이다.
이같은 인식과 그 결과물인 시국선언에 대해 우익인사들의 대응은 분단과 냉전시대를 연상케 할만큼 시대착오적이다.
얼마전 한나라당 연찬회에 강사로 초청된 자리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문객들 가운데 소위 '꾼들'이 있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던 송대성 세종연구소장이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수들에게 "진짜 제대로 된 독재 맛을 못 봐서 그런 얘기를 한다"며 또 직격탄을 날렸다. 송대성 소장의 말투는 박정희 시대에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반공이데올로기와 한치도 다름이 없다. 당시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만 하면 나왔던 '빨갱이'론의 2009년 판에 불과할 뿐이다.
송지헌 KBS 전 아나운서도 한몫 거들고 나섰다. 송 전 아나운서는 15일 자신이 진행하는 인터넷포털 야후코리아의 중계 프로그램 '송지헌의 사람IN'에서 김문수 경기도 지사와 인터뷰를 하던 중 시국선언 인사들을 가리켜 "그분들은 국회의원이나 도지사가 안 됐으니까 그러신 거 아닌가"라며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송 전 아나운서는 1980년부터 KBS 아나운서로 활동하다 1991년 프리랜서를 선언한 뒤 KBS 아침마당, 생방송 심야토론을 진행했고 최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진행을 맡는 등 그래도 명사회자이기도 했다.
물론 공중파와 달리 개인이 하는 인터넷방송이니 발언이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한때 <생방송 심야토론>을 진행할 정도이면 객관성과 공정성을 필수적으로 생각했을텐데 일방적인 비하 밖에 없었다. 송 전 아나운서가 편파적인 입장을 드러낸 것은 한나라당 유력자인 김 도지사 앞에서 시류에 영합한 것인지 아니면 평소 소신인지 모르지만, 마이크를 잡아당겨 자신이 정치적 입장을 전파하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보수우익단체 집회에 단골연사인 조갑제씨는 15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애국단체총협의회, 국민행동본부(본부장 서정갑)등 우익단체들의 '북핵폐기, 반국가세력척결국민대회' 대회에서 "김대중은 간첩 잡는 국정원을 시켜 비자금을 북에 넘겨서 핵무기를 만들게 했다"며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북한을 위해 일했던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좌익 사냥을 하며 우리가 즐기고 있어야 할 이 때, 왜 우리가 이곳에 나와야 하는가"라며 "공권력을 앞장 세워 깽판 세력과 싸워야 할 우리가 이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은 우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고 있다"며 "언제까지 법치를 세우지도 못하고 김대중을 사법처리도 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나서서 이명박 탄핵 서명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갑제씨와 '절친'으로 알려진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은 집회가 끝나자 무술유단자로 구성된 애국기동단 30여명을 이끌고 오후 5시부터 약 1시간 동안 대한문 앞 노 전대통령 분향소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였다. 자원봉사자들이 고인의 49재까지 운영하겠다고 밝힌 시민분향소를 철거하겠다며 분향소를 지킨 자원봉사자는커녕 경찰의 제지에도 이들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경찰의 제지에 가스총을 발사하는 등 마치 백주의 활극을 벌인 이들은 경찰의 제지도 아랑곳 하지 않는 등 스스로 무법천지를 연출했다.
대분분 50-60대 해병대와 특전사 출신인 이들은 복장부터 무시무시 하다. 집단의 힘을 강조하듯이 군복을 입고 가스총을 찬 이들은 마치 50-60년대 서북청년단, 백골단 등 우익테러단체를 연상시키고 있다.
이들이 활개를 치는 것은 이른바 '좌파'의 발호도, 각계 각층의 시국선언 때문이 아니다.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면서 기득권을 대변하다 궁지에 몰려 해법을 못찾는 이명박 정부의 우왕좌왕이 사실은 이들의 활동여지를 넓혀주고 있다. 역설적으로 조갑제씨가 주장한 '이명박 탄핵 서명' 운운은 일견 이명박 정부의 궁색한 처지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지를 좁게 하는 것으로 건전한 보수우익의 등장과 목소리마저 가로막는 실정이다. 과거 보수우익에 의해 자행된 백색테러는 정통성이 취약한 정권이 깡패 등을 동원, 시민의 정당한 목소리를 물리력으로 탄압하면서 시작됐다. 정권의 부도덕과 무능을 원시적인 폭력으로 막고자 한 것이지만, 역사는 민중의 힘이 더 강함을 증명했다.
이명박 정권은 조중동 등 미디어를 장악하고 서울광장까지 봉쇄하고 인터넷에 재갈을 물리면서까지 비판적인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이도 모자라 보수우익의 백색테러를 눈감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작용이 가해질수록 반작용은 더욱 커지고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고 한다. 한 번은 희극으로, 다른 한 번은 비극으로... 지금 2009년 대한민국 한복판에 벌어지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백색테러를 방치할 경우 비극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이는 이명박 정권 뿐 아니라 건강한 보수우익에게도 비극이 될 것이다. 차라리 건전한 보수우익이 궐기라도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