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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적 추모열기, 이명박 정권이 자초했다
[하재근 칼럼] 노무현 핍박은 자해극, 서울광장 메움으로써 분노 표현
 
하재근   기사입력  2009/05/31 [03:48]
노무현 핍박은 바보같은 짓
 
영결식은 대단했다. 시청 앞 광장에서 광화문 네거리까지 사람들이 가득했다. 비판세력들이 얼마나 고대했던 장면인가. 반대로 이명박 정부 측에서 가장 피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이런 장면이었다.
 
서울광장의 상징성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 공간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곳이고 민의를 대변하는 성지다.
 
때문에 국민들이 정동길로 들어가 추모제를 여는 것은 용납해도 서울광장으로의 진출만은 절대로 막았던 것이다. 서울광장에 국민들이 꽉 들어찬 광경. 이것의 정치적 상징성은 엄청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비판세력 입장에선 그곳에 국민들이 모여야 했다. 그것도 조직화된 대오가 아닌 중구난방의 일반 서민들이. 그래야 정치적인 파괴력이 생기니까.
 
움직이지  않았던 국민들
 
하지만 국민은 요지부동. 우리 국민들의 엉덩이는 무거웠다. 어떤 일이 있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참사가 일어나도, 미디어법 사태가 터지고 예능PD들까지 제작거부에 돌입하는 비상상황이 발생해도 국민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촛불집회를 국민과 분리된 소수만의 난동이라고 몰아붙이는 데 성공했다. 반대 측은 국민이 광장으로 나오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당해왔다.
 
비판세력은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대단히 상징적인 시기인 6월에 기대를 걸어왔다. 이때 다시 국민이 광장으로 나와주길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 실현을 장담할 수 없었다. 거대한 바위처럼 잠들어버린 국민이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생각지도 않았던 폭탄 
 
어떤 강력한 계기가 필요했다. 냉담해진 국민의 가슴에 다시금 불을 지를 충격적인 계기. 하지만 도대체 그런 계기가 무엇이란 말인가? 누구도 여기에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비극이다. 이것은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치나 정책에 전혀 관심도 없고, 통속드라마나 보시던 내 어머니까지 정치뉴스를 보게 한 충격이었다. 비극의 날 시내를 다니다 길바닥에서 일반 서민들이 노무현 전대통령을 언급하는 것을 들은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     ©대자보
이 비극적 핵폭탄은 이 땅에 정치를 강림케 했다. 아마도 이명박 정부가 극력 피하려 했던 사태였다. 또 그것은 국민을 움직일 만한 계기로도 충분했다. 이명박 정부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이명박 정부가 계기를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가 노 전대통령을 상식 이상으로 몰아붙이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주위 사람들을 다 들쑤시고 모든 의혹을 생중계로 국민에게 살포했다. 무엇이 혐의이고 무엇이 사실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루머 단속에 전력을 기울이던 정부가 악성 루머를 퍼뜨리는 데 앞장 선 꼴이다. 그것은 국민의 가슴에 공분을 쌓았다.
 
그것은 또 노 전대통령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이 되었을 것이다. 그 가족에겐 가정파탄에 버금가는 비극이기도 했다. 노 전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들에겐 멸문지화이기도 했다. 그렇게 정적을 철저히 부수는 동안 이명박 정부는 행복했을까?
 
하지만 너무 몰아붙였다. 상대를 철저히 파멸로 몰아가겠다는 의도만이 느껴졌다. 파멸당한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치인이 정치적으로 사형당했을 때, 동지들이 전멸했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이명박 정부는 정적을 벼랑으로 몰아붙였고 정적은 결국 벼랑으로 떨어졌다. 그것은 전대통령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충격이 되어 정국을 강타했다. 벼랑에까지 몰아붙인 이명박 정부의 의도와 달리 정적은 그것으로 인해 오히려 살아났다. 그리고 결국 국민이 움직였다. 이명박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정부는 냉정을 되찾으라
 
비판세력은 지리멸렬 그 자체였다. 정치적 구심, 국민에게 어필할 만한 정치적 상징이 없었다. 구심이 없는 집단을 오합지졸이라 한다. 비판세력은 오합지졸 그 자체라 할 만했다.
 
이명박 정부의 노무현 핍박은 반대세력의 정치적 구심을 만들어준 효과를 낳았다.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일반국민의 지지도는 무척 낮았던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런 노 전대통령을 정적으로 삼아 핍박하다가, 도리어 그를 국민의 이상으로 격상시켜준 것이다.
 
일년 내내 그렇게도 촛불집회를 탄압하고, 원천봉쇄로 일관하더니 결국 서울광장을 다시 국민이 메우는 부메랑까지 스스로 맞았다. 비극이 터진 후에도 이명박 정부의 대응은 황당하기만 했다. 조문행렬을 압박하고, 광장을 폐쇄하고, 잠재적 폭도로 모욕하면서 국민의 울화를 부추긴 것이다. 결국 국민은 서울광장을 메움으로서 그 분노를 표현했다.
 
정적들에게 이익을 헌납하고, 자신들이 가장 피하려 했던 사태를 자초함으로서 치명적인 불이익을 스스로 당하는 황당한 상황.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어이없는 집단이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불안하다는 얘기다. 자파의 이익조차 이렇게 챙기지 못하는데, 국가의 이익은 챙길 수 있을까?
 
영결식에 다녀온 기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하나같이 이명박 정부의 지나친 강공이 이런 사태를 초래했다는 의견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그런 상황이다. 판단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외골수 정신으로 국가는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까? 앞으로 또 어떤 오판으로 사태를 악화시킬까? 우리 정부의 감정상태가 지나치게 고조된 것은 아닌가?
 
너무나 불안하다. 정부는 폭도들 탓을 하기 전에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성찰해야 할 때다. 편협하고 맹목적인 밀어붙이기는 정부 자신의 이익에도, 국가의 이익에도 해가 된다. 정부의 입장에서 노무현 핍박은 바보같은 자해극이었다.
 

*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며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는 http://ooljiana.tistory.com, 저서에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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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5/31 [03: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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