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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바이러스'의 감동, 다시 울리다
[공연] <서울윈드앙상블>, <젤로스윈드오케스트라> 기념음악회
 
김영조   기사입력  2009/03/04 [13:47]
▲ 젤로소윈드오케스트라 공연 모습     © 김영조
 
고등학교 시절 국어선생님이 날 초대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댁에 가자 선생님은 턴테이블에 “베토벤 제5번 교향곡”을 올려놓은 채 주무셨고, 나는 꾸벅꾸벅 졸며 들었었다. 그 뒤 내겐 베토벤 5번은 지독한 매력으로 다가왔고, 30대 때는 이 5번 원판 5종을 놓고 비교해가며 듣던 때도 있었다.  
 
지난해 가을 우리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때문에 한때 행복했었다. 클래식에 한 번도 가까이하지 않았던 이들도 이순재가 불던 오보에가 어떻게 생겼고 그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았다. 그 뒤 우리 사회엔 베토벤 바이러스가 번져 클래식을 사랑하는 인구가 많이 늘었다는 기분 좋은 소식도 들렸다. 또 드라마는 아마추어도 음악을 할 수 있고, 그것은 또 다른 아름다움인 것을 보여주었다. 
 
그 베토벤 바이러스가 어젯밤(3월 3일)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도 퍼졌다. 봄밤에 매화 꽃잎이 꽃보라 일으키듯 베토벤 바이러스는 번져나간 것이다. 바로 <서울윈드앙상블(음악감독 서현석, 이하 서울)> 창단 35주년, <젤로소윈드오케스트라(회장 신일영, 이하 젤로소)> 15주년 기념음악회가 그것이다.
 
▲ 젤로소윈드오케스트라 중 트럼펫(뒷줄)과 호른(앞줄) 연주 모습     © 김영조
 
▲ 젤로소윈드오케스트라 중 풀륫 연주를 하는 모습     © 김영조
 
▲ 젤로소윈드오케스트라의 공연엔 각종 타악기가 등장하여 아름다움을 더해 주었다.     © 김영조

음악회는 먼저 젤로소가 F. CESARINI의 “COSSACK FOLK DANCE”, T. JONES의 “모히칸족의 최후”, D. SHAFFER의 “CELESTRIAL LEGEND"를 연주했다. 내가 아직 클래식에 정통하지 못한 것인가? 어찌 아마추어들의 연주에서 이런 훌륭한 소리가 나올 수 있는가?  
 
특히 “CELESTRIAL LEGEND" 연주에서는 처음에 환상적이던 소리가 어느새 화려한 느낌이 들더니 아름다운 목가적 마무리를 들려준다. 100여 명에 가까운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온 힘을 기울인 열정에 나는 감동한다. 이것이 바로 젤로소 곧 라틴어로 ”열정‘이라고 이름한 그들의 혼이란 말인가? 
 
이어서 서울이 G. GERSHWIN의 “랩소디인 블루” 등 4곡을 연주했다. 역시 전문 연주자들은 힘 있고 자신 있는 그리고 섬세한 소리를 들려준다. 조금은 조심스럽고 소극적인 젤로소의 연주와 그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아직 아마추어인 내게 들리는 차이는 거기서 끝이다. 아주 작은 차이일 뿐이라고 나는 외치고 싶었다.
 
▲ 서울윈드앙상블의 연주 모습     © 김영조
 
▲ 서울윈드앙상블과 협연하는 테너 정기준     © 김영조

서울은 테너 정기준과 김동진의 “목련화”, 푸치니의 “NESSUN DORMA”도 협연했다. 그런데 목련화는 어찌 서두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청중이 따라가기가 벅찰 만큼 빠른 호흡이다. 큰 성량, 고운 음색에 견주어 조금은 아쉽다.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뒤 이번엔 서울과 젤로소의 협연이다. 한국에서는 거의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다. 전문 연주자들과 순수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섞여 협연하는 것이다. 그동안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에서는 대중음악을 연주하기가 어려웠고, 클래식 음악가들이 크로스오버를 하면 비난을 받던 전례에 비추어보면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여기선 전문과 아마추어라는 둘 사이의 울타리가 걷혔다. 서울 단원들의 열린 마음가짐이 정말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단원들이 모두 앉은 뒤 두 단체의 악장들이 등장했다. 그런데 한국에선 손꼽히는 전문 연주자인 서울 신현각 악장이 젤로소의 아마추어 연주자 한희승 악장에게 악장 자리를 양보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 악장은 사양하다가 어쩔 수 없이 앉아 첫 곡을 연주했지만 두 번째 곡에서부턴 다시 신 악장에게 다시 자리를 넘겨주는 그들의 미덕이 정말 아름답다.   
 
▲ 젤로스윈드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김응두 상임지휘자     © 김영조

그렇게 그들은 하나가 되었고, 그렇게 음악은 하나가 되었다. 그러니 그 음악은 어디에 흠을 잡을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밖에 없을 터. 그들은 P. KLEINE SCHARRS(arr)의 “MAMMA MIA” 등 3곡을 연주했다. 웬만한 청중이면 최고의 인기 뮤지컬 “맘마미아”를 모를 리 없을 것이어선지 흥겨운 연주에 청중의 반응도 뜨겁다.  
 
두 시간 반의 공연이 끝나고 청중들은 앙코르를 외쳐대지만 시간이 너무 늦은 탓인지 아쉽게도 앙코르는 없었다. 중간 휴식 시간이 끝난 뒤 서울 서현석 음악감독이 몇 사람에게 공로패를 주는 시간을 가졌는데 청중을 위해서 그 시간을 아껴 앙코르를 선물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비교적 클래식에 전문 소양을 갖추지 못한 청중들이 많다는 것을 고려하여 선곡을 좀 더 대중적인 것으로 했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 2층에서 본 젤로스윈드오케스트 연주 모습     © 김영조

서현석 음악감독은 리허설 때 젤로소를 지휘한 뒤 청중석에 앉아 듣고 있던 서울 단원들에게 “ 잘하지?”라며 웃었다. 전문가들에게 이 아마추어의 연주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린 것이다. 아니 지휘할만하다는 흐뭇함이 아니었을까? 그는 공로패를 주기 직전 “젤로소 연주자들이 생활 속에 작은 짬을 내 투자했지만 정말 훌륭한 연주를 한다.”라고 칭찬했다.
 
우리는 한여름밤이 아닌 한 봄밤에 베토벤 바이러스의 공격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마추어도 이렇게 잘할 수가 있음을 젤로소는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좋은 취미가 사람을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함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밤 청중들은 그들에게 끝없는 손뼉을 쳐주는 것을 나는 목격했다. 


삶을 환상적으로 꾸며주는 젤로소윈드오케스트라
[대담] <젤로소윈드오케스트라> 신일영 회장
 
- <젤로소윈드오케스트라>라는 이름은 어떤 뜻이고, 어떤 단체인가?
 
“‘젤로소’는 라틴어로 ‘열정’이란 뜻이다. 각양각색의 음악에 빠진 아마추어들이 열정 하나만 가지고 모이고 연주한다는 것이다. ‘윈드’는 그야말로 바람이다. 젤로소는 타악기가 같이하는 관악오케스트라다. 목관의 클라리넷, 바순부터 금관의 호른, 튜바까지 관악기는 모두 있다.  
 
우리는 정말 남녀노소가 없다.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있는가 하면 66살의 어르신까지 있으며, 가정주부에서 학생, 의사, 엔지니어, 건설현장 근무자, 그리고 대학교수까지 모두 <젤로소윈드오케스트라>의 구성원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작은 짬을 내 연습하고 공연해 전문가들이 보면 오합지졸로 볼지 몰라도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귀중한 보배이다. 단원들은 자신의 삶을 정말 보람있게 꾸미고 있다.”  
 
▲ 대담을 하는 젤로소윈드오케스트라 신일영 회장     © 김영조
- 어떻게 결성했나?

 
“우리의 모체는 <서울윈드앙상블>이다. <서울윈드앙상블> 서현석 음악감독님이 15년 전 주위에서 돕고 응원하는 애호가들을 그저 음악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로만 두지 말고, 스스로 연주할 수 있게 해보자는 뜻에서 결성했다. 그래서 그들이 직접 국민에게 좋은 음악을 알리도록 하자는 뜻이었다.”
 
- 아마추어들로 15년을 끌어오고 연주를 한다는 자체가 큰 모험이었을 텐데…
 
“물론 쉽지는 않았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갈등도 많았다. 하지만, 순전히 전문 연주자 단체에 견주면 우리에겐 경영마인드가 있고, 청중동원의 힘을 가졌기에 어쩌면 그게 큰 주춧돌이 되었을 것이다. 음악은 경영+청중동원+소리가 어우러져야 성공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먼저 가지고 있었지 않은가? 나머지는 모두가 힘을 합쳐 열심히 하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그는 이야기 중에 일본은 1만 개의 아마추어 연주단체가 있으며, 서양 선진국들은 마을마다 주민 오케스트라가 있다며, 우리도 그렇게 발전해야만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 주중에는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은 오전에 교회 다녀온 뒤 오후 내내 젤로소에 투자하면 식구들의 불만은 없는가?(그는 치과병원을 운영중이다,)
 
“물론 식구들과 지내는 시간이 없어 처음엔 좋아하지 않았다. 또 연주하면 시끄럽다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식구의 지인들에게 연주를 해주기도 하고, 공연 때 연주하는 모습을 본 뒤 주위에서 부러워한다며 좋아한다. 이젠 온 식구가 음악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없다.”(웃음) 
 
- 앞으로 젤로소의 계획은
 
“젤로소의 발전을 위해선 국내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중국, 일본, 대만 등과 교환 연주도 하고, 축제도 열 계획이다. 또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 죽음 100돌 기념음악회도 가져볼 생각이며, 아마추어 연주가 활성화된 유럽의 음악 축제에도 참여하겠다. 또 자선단체와 함께하는 공연도 꾸준히 할 것이다. 현재도 해마다 장애인들이 있는 <은평의 마을>에 자비로 공연해주고 있다.”
 
그는 대담을 마무리하면서 “나이가 들어 하는 일 없이 무료하게 지내는 어르신들이 많다. 그래서 치매도 늘어나고 우울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처럼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산다면 이제 노년의 삶도 환한 모습으로 장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에 대한 모범답안이다.”라며 자신감에 찬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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