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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의 30억 소송, 진짜 목적은?
청와대 참모들 단속용인가, 언론의 '패거리문화' 견제용인가
 
윤익한   기사입력  2003/08/18 [12:00]

▲ "언론을 어떻게 할까" 고민중인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
노무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법정에 설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8월 13일 자신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한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과 조선·중앙·동아·한국일보 등 4개 언론사를 상대로 3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정가와 언론계에 파문이 일고 있다. 현직대통령이 국회의원과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노 대통령의 이번 소송 배경에는 최근 청와대가 `비방 의도가 명백하다'고 판단되는 언론보도에 대해 언론중재위의 중재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법정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힌바 있어, 청와대가 이를 실행에 옮긴 첫 번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은 이에 대해 13일 브리핑에서 "해당 일부 언론이 장수천 사업 등과 관련해 근거없는 사실을 제기하고 이를 보도했기 때문"이라면서 "소송비용과 인지대 등은 노 대통령이 개인비용으로 부담하게 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법무법인 덕수를 통해 낸 소장에서 "김문수 의원이 수개월동안 근거없고, 사실과 전혀 다른 허위 내용의 명예훼손 행위를 계속하고 해당 언론사들은 이렇다 할 사실확인도 거치지 않은 채 김 의원의 신빙성없는 주장을 일방적으로 보도해 명예에 큰 손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또 노 대통령은 조선·중앙·동아·한국일보가 자신의 재산형성 및 부동산 의혹과 관련해 보도한 내용에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김문수 의원을 상대로 10억 원, 언론사는 각각 5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노 대통령의 사상 초유의 소송건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계는 부쩍 긴장하는 모습이다.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 관계였던 대통령과 일부 언론 사이의 관계가 이젠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즉각 노 대통령 주변 비리 의혹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 요구안을 관철시키겠다고 나섬으로써 야당의 공세수위도 점점 높아질 전망이다. 한나라당 박진 대변인은 논평에서 "대통령이 각종 의혹에 대해서 해명, 진실을 고백하지는 않고 오히려 이를 제기한 야당 의원과 언론을 상대로 제소하는 등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야당탄압'과 '언론탄압'이라며 맞불을 놓았다.

또 소송당사자인 김문수 의원은 "지난 대선 때 민주당에 의해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고발돼 어려움을 겪었기에 피해를 보고 명예를 훼손당한 측은 나"라면서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사건인데도 다시 민사소송을 내는 것은 적반하장이며 도를 넘는 야당탄압"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무책임한 정치인의 발언과 언론보도에 대한 조치'라는 입장과 함께 "대통령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은 사실을 근거로 한 발언과 이에 대한 공인으로서의 책임을 묻고자 한 것"이라는 논평을 덧붙였다.

반응이 거세자 노 대통령은 "지금 언론과의 관계를 정상적인 것으로 가져가자는 수준이지 언론개혁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면서 소송취하 의사가 전혀 없음을 내비쳤다.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소송을 취하하는 순간 언론과 타협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있기 때문 아니겠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정토론회에서 언론관을 밝히고 있는 노대통령     ©청와대홈페이지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이 지난 2일 국정토론회에서 일부 언론을 상대로 한 발언과 이번 소송을 통해 얻고자 한 것은 자신의 언론관을 명확히 밝힘으로써 청와대 참모들로 하여금 일종의 결의를 다지게 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2일 대통령 발언 이후 "기자들과 밥도 먹지 말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일부 참모들의 반응이 청와대에서 흘러나왔다는 점을 볼 때, 대통령의 발언이 청와대 안에서도 전달이 안 되고 있거나 기본적으로 참모들의 대 언론 인식이 미흡하다는 판단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이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까지 낸 시점에서 언론과의 적대적 관계설정이 불가피하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이런 의도와는 달리, 4개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소송을 과연 끝까지 끌고 갈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17일 윤태영 대변인이 소송을 노 대통령 퇴임 이후로 연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 대목은 이같은 우려를 이미 드러낸 결과로 보인다. 한 원로 언론인은 이에 대해 한 개 언론사를 상대로 싸워도 쉽지 않을 판에 4개 언론사와 전면전을 선포한 것은 대통령이 서툴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울러 노 대통령이 언론과의 소송을 끌고 가기 어려운 이유로 언론에 이른바 '건수'가 많이 걸려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 '양실장 향응파문'에서 노 대통령의 '언론탓'과는 달리 결과적으로 양 실장이 향응을 제공받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청와대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은 점이나, 386음모설 등 청와대 주변 인사들에 대해 갖가지 설이 난무할 때마다 청와대가 이와 관련한 언론의 보도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등의 이유 때문이다.

또 권노갑 파문이나 현대비자금 사건 등 DJ정부 때 벌어졌던 사건들이 속속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오르면서 노 대통령이 이러한 악재속에서 언론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 결국 정국수행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으로 나오고 있다.

한편 노 대통령의 대 언론과의 전쟁국면에 대해 각계에서 찬반론이 팽팽히 부딪치고 있어 당분간 논란은 확대재생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찬성측 입장은 노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는 것이 옳은 것이냐는 지적과 어떠한 경우에도 현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조중동이 잘 봐줄리 없다는 경험론적 인식이 짙게 배어있다.

반대로 부정적인 측면은 대통령이 언론사를 상대로 한 소송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언론탄압의 의도라면서 현직 대통령이 포함된 소송이 과연 공정하게 치뤄질 수 있겠냐는 반응이다.

이러한 입장 차이와는 달리 대다수의 신문들은 한결같이 '언론장악의도'와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반대의사를 명확히 했다. 얼마전 인터넷국정신문을 창간하겠다고 청와대가 밝히자 전 언론들이 사설 등을 통해 맹비난을 했던 이래로 최근 노 대통령의 언론관에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점도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엿보인다. 이같은 언론의 합창단식 보도배경에는 언론사간의 '동업자정신'과 '패거리문화'가 팽배해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직 대통령의 사상 초유의 법정 진술이 이뤄질 것인가의 화제는 대통령 스스로 소송을 퇴임이후로 미룰 가능성을 내보임으로써 한풀꺽인 분위기다. 그러나 이로인해 대통령의 일부 언론을 향한 적대적 인식이 강하게 드러났고 그럼으로써 언론사의 보도가 신중해질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어 이번 소송은 단지 시범케이스의 성격이었다는 포석이 깔린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 청와대 참모들의 조직개편과 맞물려 대통령의 언론관에 더욱 잘 들어맞는 인사들이 기용될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어, 대통령이 그 방향타를 선보인 것이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무엇보다 언론의 정권을 향한 무차별식 공격과 '아니면 말고'식 언론보도가 매일 수 백 만부씩 거리에 뿌려지는 위험성을 대통령이 전면에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그 판단은 이제 국민들 손으로 넘겨진 셈이 됐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건강한 권언관계는 요원해지고 양측의 정략적 고려에 따라 국민들이 볼모로 잡혀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어 이번 소송건은 결국 제로섬 게임으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미디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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