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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의 성장거부론(?), 레닌이 통탄할 일
[논평] 민노당 이용대 정책위 의장의 글,‘성장이데올로기에 대해’를 읽고
 
홍헌호   기사입력  2007/11/27 [11:50]
레닌이 그의 저서에서 자주 인용하는 서양 속담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것이다.
 
Don't throw out the baby with the bath water. (목욕물을 버린다고 욕조의 아이까지 버리지는 마라)
 
물론 역사는 승자의 편이라고 하니까 오늘날 일반인들에게 레닌의 저서들은 권위를 가지기 어렵겠지만 민주노동당 당원들이라면 당연히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 등에 대해 냉철한 분석과 평가들을 스스로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역사만큼 위대한 스승은 없기 때문이다.
 
레닌이 저 속담을 자주 인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강조하고 싶어했던 것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논리학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형식논리학을 배척하지 아니하고 이것 위에서 발전된 것’이듯이,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또한 부르조아적 민주주의의 장점을 배척하지 아니하고 그 위에서 발전하는 것’이며 ‘사회주의 경제체제 또한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의 장점을 배척하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물론 레닌은 자본주의를 뒤엎고 사회주의체제를 이루고자 하였던 혁명가이자 정치가였기 때문에 그의 발언이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혁명의 성공 이후 1920년대에 러시아에서의 사회주의 경제체제로의 급전환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그가 신경제정책(NEP)이란 이름으로 지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여러 요소를 부분적이고 제한적이나마 수용하려 노력하였다는 것은 널리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들은 그의 조기사망과 스탈린 독재체제의 출현으로 무산되고 말았지만 그가 10여년 정도라도 더 장수했더라면 러시아 역사와 세계사회주의 역사가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는 가정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가 1920년대 중반 이후 등소평과 유사한 길을 갔을지 아니면 초기에는 등소평과 유사한 길을 가다가 극좌로 돌변한 모택동의 길을 갔을지 자못 궁금할 따름이다.
 
민주노동당 이용대 정책위 의장은 민주노동당 기관지라는 <진보정치> 346호(2007.11.05~11.11)에서 ‘성장이데올로기에 대해’라는 글을 통해 성장론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 나는 그의 글이 담고 있는 성장론 비판들이 매우 부적절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민주노동당이 비판해야 할 대상은 ‘불균형 성장 전략’이지 ‘성장론 일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의장은 “왕년의 군사독재정권들은 경제성장을 통해 파시즘 통치를 정당화할 근거를 만들고자 했다”해서 성장에 부정적이라 하는데 민주노동당이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군사정부가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그들의 ‘과도한 불균형성장 전략’이지 ‘성장 일반’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미FTA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미FTA 전략이 ‘과도한 불균형성장 전략’이기 때문에 비판받는 것이지 성장을 추구하기 때문에 비판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한미FTA에 반대하는 것은 보수적인 경제관료들이 1996년 급진적인 대내외 유통업개방을 단행하여 서민경제를 박살내고도 또 그 짓을 반복하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선진국에 비해 국민부담율이 매우 낮고 사회적 안전망이 미흡한 나라에서 취해야 할 올바른 개방전략은 점진적이고 선별적인 개방전략이어야 한다. 그런데 보수적인 경제관료들이 이런 특수한 조건들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선진국처럼 개방하려 하니까 개방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의장은 또 같은 글에서 “비정규직이 급속히 늘어나고 일자리 불안, 생존불안이 지배하는 오늘의 경제현실은 거듭된 성장의 결과물이다.”라고 하는데 이 말도 틀린 말이다. ‘과도한 불균형성장 전략’이 문제이지 ‘성장 일반’이 원흉은 아닌 것이다.
 
그는 또 “5년간 지속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노동소득분배율’과 성장의 ‘고용유발효과’는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더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성장의 고용유발효과는 어느 나라나 줄어든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인데 하나는 산업구조의 고도화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성장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물가상승으로 화폐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고용유발효과를 표시하는 것이 고용계수인데 ‘고용계수는 10억의 총수요가 어느 정도 고용유지에 기여하느냐를 나타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건설업 총수요가 150조원인데 180만명의 취업자를 유지하고 있다면 취업계수는 (150조원/180만명)x10=8.33명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해마다 건설업은 성장하고 물가는 오르므로 150조라는 분모는 커지는 반면 분자는 크게 변하지 않으므로 취업계수나 고용계수는 해마다 작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고용계수의 크기만 키우려 한다면 우리경제는 성장을 멈추고 물가도 제로에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산업구조 고도화도 열심히 막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 중에서 그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안은 무엇인가. 성장을 멈추는 게 우리의 대안인가.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멈추는게 우리의 대안인가. 고용사정이 어렵다고 이렇게 자기 무덤을 파자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결국 고용문제는 일차적으로 우수한 교육시스템이 창출하는 높은 생산성을 기반으로 국내외 시장을 확대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고품질 상품과 서비스로 해외시장 개척하고 국내시장 지켜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한미FTA에 반대하느냐. FTA를 하더라도 해외시장 개척의 순기능보다 국내시장 파괴의 역기능이 더 크다면 FTA의 속도는 조절되어야 하는 것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개방의 속도조절론과 관련하여 1996년 유통업의 국내외 개방에 대하여 한번 더 언급해 보면 1996년에 국내외 대기업에 유통업을 전부 다 개방할 것이 아니라 10인 이하 규모에만 진출이 가능하도록 한다든지 20인 이하 규모에만 허용한다든지 그리고 체인점 확장 규모도 제한한다든지 했다고 해보자. 정부가 그렇게 점진적이고 선별적인 개방을 했더라면 중소상인들도 혁신의 시간과 여력을 가지고 스스로 시장 내부에서 구조조정되면서 경쟁력을 키워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1996년의 무제한적이고 급진적인 유통업 대내외 개방은 영국의 잔인한 인클로저운동처럼 우리나라 중소상인들을 추풍낙엽처럼 시궁창으로 던져 버렸다.
 
아마도 1996년에 민주노동당이 있었더라도 민주노동당은 ‘유통업 국내외 개방’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현명한 진보라면 ‘점진적이고 선별적이고 제한적인 개방’을 대안으로 내놓았을 것이다.
 
성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성장 일반’을 거부해 버리면 민주노동당은 영원히 5~10% 이상의 지지율을 얻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치명적인 오류이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민주노동당이 비판해야 할 주요 대상은 ‘물불 안 가리고 불균형 성장전략에 올인하려는 보수적인 경제관료들’이지 ‘성장과 혁신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는 이 두 가지 개념을 분명히 명확하게 구분짓고 출발해야 할 것이다. 기초개념은 주춧돌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모든 학문의 어머니라는 철학이 ‘개념의 명확성, 언어의 명확성’을 생명으로 하는 것이다. 사고의 출발점이 되는 개념이 명확하고 충실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개념의 명확성, 언어의 명확성’은 모든 사고의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 필자는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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