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 정말 복지국가는 없나?
정말 복지국가는 없나? 내가 많은 이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사실 한국만큼 반공냉전이데올로기가 강한 국가에서 던지는 것조차 위험스러웠던 시절이 있었고 민주화된 지금이라고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의 문제제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정말 반공주의자들의 말처럼 정말 복지국가는 없는가.
나는 복지국가를 논하는 지난 첫 글(사민주의 노동시장정책 핵심은 '참여')에서 자본주의 황금시대 이후 위기 속에서 단행된 재편과정은 국가들마다 달랐고 이는 이해관계자들의 '참여'수준에 따라 재편과정과 결과가 확연히 달랐다고 말했다. 여기서 이른바 주주자본주의 등으로 사회하층의 삶이 피폐해진 영미권 국가들의 공통점은 '노동없는 민주주의'와 '정당없는 민주주의'였고 한국 역시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내 논리였다. 영미권 국가 중 가장 좋은 경제지표를 보여주고 있는 아일랜드는 영미권 국가와는 달리 북유럽 사민주의 복지국가들처럼 노사정이 ‘사회적 코포라티즘’체제를 구축했다.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들 역시 위기를 맞았지만 위기 속에서 복지의 효율성을 높이는 개혁을 통해 복지국가체제로서의 공고화를 다졌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복지국가체제로서의 공고화를 했기에 2006년 총선에서 중도우파연합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사민주의 복지국가 체제를 유지할 것임을 선언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번 글에서는 복지국가의 유형을 짚어보고 신자유주의자들이 복지국가 비판에서 주장했던 反복지 이론에 대한 비판을 해보고자 한다.
2. 복지국가는 多종류다
복지국가를 말하는 데 있어 나는 ‘어떤’ 복지국가인가를 살펴야 된다고 말한다. 그만큼 복지국가는 여러 종류로 나눠지고 이들의 특성은 뚜렷이 드러난다. 복지국가를 분류하는 데 있어 여러 기준이 있지만 나는 대표적으로 에스핑-안데르센의 복지국가 분류를 살펴보고자 한다.
에스핑-안데르센은 복지국가 분류 기준으로 탈상품화1)와 사회재계층화2)를 꼽는데 그는 자유주의 체제와 보수주의 체제, 사민주의 체제로 분류한다. 자유주의 체제에는 영미권 국가들이 해당되며 호주, 캐나다, 일본, 스위스, 미국, 영국이 대표적이다. 보수주의 체제는 유럽대륙 국가들로 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대표적이다. 사민주의 체제에는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으로 북유럽 국가들이 이에 해당된다.
자유주의 체제 복지국가들은 시장경제를 숭상하는 국가들로 사적복지가 발달되어 있어 복지의 탈상품화 정도가 지극히 낮고 개인과 가족에 책임을 많이 맡겨 나머지 부분만 국가가 부담하는 잔여적 복지의 형태를 띤다. 보수주의 체제는 사적복지의 수준이 낮고 국가복지 중심이며 현금중심의 복지다3). 사민주의 체제는 보편주의에 입각해 탈상품화 정도가 높고 사회재계층화 정도도 높다. 이들은 전통적인 welfare보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통한 일자리 제공을 추구해 workfare적인 성격을 띤다.4)
3. 복지국가는 없다? - 세계화와 反복지 이론
신자유주의자들의 反복지이론은 ‘복지국가 위기론’과 민영화(복지다원주의), 성장제일(지상)주의, 주주자본주의로 구성된다.
먼저 복지국가위기론부터 살펴본다면, 크게 두 가지 논리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 번째로 그들이 내세우는 사회적 덤핑5)은 비교우위와 낮은 임금이다. 자본유치를 위해 벌어지는 국가간 경쟁이 과열될수록 ‘사회적 덤핑’으로 수렴돼 국가복지가 축소되고 재편될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투자 철회, FDI가 임금이나 세금에 따라 되는 것도 아니며 아직도 FDI가 고임금, 고세금 국가에서 이뤄진다(고세훈 2007)6). 두 번째로 이들이 주장하는 “바닥으로의 질주” 역시 사회적 덤핑과 비슷한 개념으로 국가간의 경쟁적 규제의 완화로 국가 복지가 바닥 수준으로 내려간다는 논리이나 스웨덴7)의 사례만 보더라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래 스웨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외국자본이 들어와도 스웨덴 경제시스템에 적응해야 한다. 스웨덴에 투자한 외구갖본 100개 가운데 99R0는 스웨덴 국내환경에 맞추고 있다. 스웨덴 기업이든 미국 기업이든 노동조건 등 제반조건은 똑같다. 특별한 구분은 두지 않는다. 일부 외국 투자자들은 스웨덴의 노조와 관계설정에 성공하지 못해 고용부문에서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고용 문제든 노동자의 안전 문제든 세금 문제이든 간에 스웨덴은 기본적으로 외국자본에 대한 특혜나 예외적용을 용납하지 않는다.”8) - 비에른 폰 시도브 국회의장
복지다원주의는 복지체계의 민영화로 칭해지기도 하는데 신자유주의자들의 반복지 담론에 해당된다. 복지다원주의는 복지공급의 다원화를 주장하며 구체적인 방법으로 ‘민영화’를 주장한다. 민간보험을 장려함으로써 복지에 있어서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개인과 시장의 비중과 역할의 확대를 통해 탈상품화와 사회재계층화 효과를 줄이고 수혜자의 자산능력에 따라 좌우하게 만들어 노동 내부 분화와 시장 논리의 강화를 불러온다. 나는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 철학을 복지다원주의로 평가하는데 국민건강보험 당연제 지정 완화를 핵심으로 한 건보 민영화(의료산업화), 물 민영화(물산업육성법)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성장제일주의 역시 반복지 담론에 해당된다. 대표적인 논리가 ‘적하이론9)’인데 고물이론으로 불리기도 한다(이하 ‘고물이론’). 고물이론은 고도성장의 과실은 시간이 지나면 저소득층에게도 내려간다는 것으로 나는 IMF 이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맞는 논리라고 평가하나 세계화 이후(우리나라에선 IMF 이후) 성장과실이 일부 고소득층에게만 돌아가는 ‘적상’현상이 나타났다고 본다10). 빈곤율 지표로만 보아도 우리나라는 IMF 직전인 90년대 중반까지 줄어들다가 IMF의 요구로 신자유주의 개혁을 거친 후 빈곤율은 높아졌다. 96년 6.8%였으나 00년 10.6%로 껑충 뛰었다.11)
요즘 유행하는 주주자본주의 역시 반복지 담론의 대표적인 사례다. 주주자본주의는 기존의 경영방식(이윤 극대화)이 아닌 실적 위주 방식을 취한다. 전폭적인 연봉제 도입을 통해 노동자는 궁핍해지고 해고되어도 CEO는 ‘억’소리 듣는 일이 당연한 듯 이뤄지며 주주가 회사의 주인이란 관점으로 주주에 대해서는 고배당으로 일관되고 이해관계자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12). 결국 주주가치를 중시한 경영 방식은 이해관계자들의 시장에서 탈락한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한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담 수준의 증가로 이어진다(고세훈 2007).
뿐만 아니라 1주 1표의 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부합하지도 않는다. 김용기는 상법상으로 1주1표주의를 표기한 곳은 러시아와 한국뿐이라 말한다. 즉,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주주자본주의가 ‘대세’란 말은 맞지 않다13).
4. 결론 : 정말 복지국가는 없나?
서론에서 “정말 복지국가는 없나?”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서론과 본론에서 나는 세계에 ‘복지국가’는 많다고 말했다. 서론과 본론에서 복지국가가 아직 살아있는지 살펴봤을 때 아직도 유효한 체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 특히 사민주의 복지국가(넓게는 유럽 대륙형 복지국가까지)가 좋은 경제지표로서나 민주주의적인 측면에서나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가장 좋은 ‘길’이라 볼 수 있다. 박상훈은 사민주의체제처럼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 보다 많이 자본주의 원리를 제어될 수 있게 되면 계층적 불평등의 축소와 인민주권 내용의 강화를 가져온다고 평가했다.
한국에선 정말 복지국가가 불가능한가.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복지국가란 기본적으로 ‘정치’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피폐해진 민심의 사회적 불안을 없애기 위해 정치적으로 복지국가체계가 만들어졌고 사민주의 복지국가는 여권인 사민당을 기반으로 되었기에 정당이 없으면 더 이상 사민주의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정당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를 통해 ‘복지국가’의 길을 열었다. 한국의 미래를 ‘복지국가’에 거는 이들에게 주어진 문제는 또다시 ‘정당 없는 민주주의’다.
[참고 문헌]
정이환. 「현대노동시장의 정치사회학」. 서울: 후마니타스, 2007. 고세훈. 「복지한국, 미래는 있는가」. 서울: 후마니타스, 2007. 조영철. 「금융세계화와 한국 경제의 진로」. 서울: 후마니타스, 2007. 안일규.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두 개의 다른 방법.” 「대자보」2008. 01. 29. 안일규. “사민주의 노동시장정책의 핵심은 '참여'.” 「대자보」2008. 05. 30. 안일규. “이명박, 정동영, 문국현 공통점은 '성장지상주의'.” 「대자보」2007. 11. 13. 이정우. “한국경제 제3의 길은 가능한가?” 「프레시안」2007. 10. 04. 김하영. “사회복지가 곧 경쟁력이다.”「프레시안」2007. 09. 04. 조계완. “스웨덴은 끊임없이 합의한다.” 「한겨레21」2006. 04. 21. 박상훈. “1단계 민주화의 종결.” 박상훈. “민주화 20년, 한국 민주주의의 방향 전환이 필요한 이유.”
[각주]
1)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는 인간이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사회재계층화는 불평등 구조의 교정을 통한 상대적 박탈감 해소와 관련된 개념이다. 3) 이정우는 사회보험을 통해 복지국가를 운영하는 유럽대륙형(보수주의체제)에 대해서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돈을 내서 자기가 타가는 식이기 때문에 돈 많이 버는 사람은 보험료를 많이 내고, 많이 타가는 식이라 재분배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정이환은 사회 계급 및 지위가 복지에도 그대로 이어져 사회복지의 재분배 기능이 매우 약하다고 평가한다(정이환 2007). 4) 김대중 정부 등 한국정부의 복지방향도 일자리복지(workfare)였는데 북유럽 사민국가들의 workfare와는 다르다. DJ 정부의 workfare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고세훈(2007)을 참조. 5) 사회적 덤핑은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 있어 비용상 비교 우위를 갖기 위해 더욱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생산을 수행하고 낮은 임금을 감수하는 상황을 가리킨다(고세훈 2007.42). 6) 미국 다국적 기업은 1천 6백만 명의 네덜란드에 인구 8억의 아프리카 전체보다 7배나 높은 직접투자를 한다. 7) 스웨덴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은 2700개로 전 세계 다국적 기업의 6~7% 가량이 스웨덴에 본사를 두고 있다. 8) “스페인은 끊임없이 합의한다.” 「한겨레21」2006. 04. 21. 9) 정부가 투자 증대를 통해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를 먼저 늘려 주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감은 물론, 이것이 결국 국가의 경기를 총체적으로 자극해 경제 발전과 국민복지가 향상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고세훈 2007). 10) 평소 내가 주장했던 ‘타 선진국보다 높은 경제성장률이 서민과 중산층에 가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김기원 방송대 경영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는 고도 성장의 과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저소득층에게까지 전파되는 이른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효과’가 나타났지만 지금은 세계화와 정보화 진전 등으로 성장의 과실이 일부 고소득 계층에게만 돌아가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성장에 치우친 공약만을 내세우면 집권 후에도 ‘양적 성장론’에만 치우칠 수밖에 없게 되고, 성장의 과실이 대기업과 고소득층에게만 돌아가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한다. 안일규. “이명박, 정동영, 문국현 공통점은 '성장지상주의'.” 「대자보」2007. 11. 13. 주주자본주의의 관행과 금융자본 중심의 지대 추구가 만연되면서 새로운 부와 부가가치의 창출은 적하되기보다 적상되기 싶다(고세훈 2007). 11) 이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균등한 분배가 성장을 촉진시킨다”는 논리가 나오고 있다. 분배가 인적 자원의 질을 향상시킴으로써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고 총 유효수요의 규모를 늘림으로써 투자, 고용, 성장에 오히려 기여했다는(고세훈 2007) 논리인데 나는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들이 대표적인 사례로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이 원동력이라 본다. 12) 이런 아이러니한 일은 몇 중소기업들이 주주들에게 배당을 위해서 은행에 대출받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기도 하다. 13) 장하준은 일부 진보진영의 소액주주운동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소액주주 강화는 1원 1표 시장논리이며 재벌 문제가 단순히 소액주주와 대주주에 대한 대항의 힘을 키우는 것으로 규정되었다고 비판한다. 소액주주 운동론자들이 주장하는 기업 의사결정의 민주화에는 이해당사자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방식을 논해야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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