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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보다 더 중요한 것, 대안을 만들자
[각골명심의 길거리칼럼] '민주개혁' 자처세력들은 철저한 반성부터 하라
 
각골명심   기사입력  2007/11/24 [04:56]
BBK, 김경준, 에리카 킴, 이면계약서, 이명박, 단일화, 합당...연일 숨가뿌게 언론의 지면을 가득 채우는 대선굿판이 참으로 요란하기만 하다. 물론 국정의 최고 책임자를 선출한다는 점에서 후보검증의 한 과정으로서 굳이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여기엔 뭔가 중요한 본질이 쏙 빠져있는것 같다. 대선이 비리폭로나 진상규명을 위해 5년마다 주기적으로 치르는 국민주권행위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 바로 오늘날, 신자유주의에 골병든 우리 현실의 척박한 모순을 해결하려는 굳은 의지나 미래에 대한 생산적 논의 같은 '본질'이 빠져있는 것이다. 그저 고딕체로 휘황찬란한 후보들의 대선공약 몇줄 옮겨놓으면 그것으로서 언론의 도리를 다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한국언론은 더이상 '사회의 공기'가 아니라 '공해'일 뿐이다.

비정규직 모순을 지적하며 고공사다리 위에서, 철제탑에서 단식을 이어가다 끝내 탈진해 실려가는 이땅의 노동자들의 모습은 그저 한낱 싸구려 가쉽거리 조차도 되지 못한단 말인가....


외환위기 10년 이라는데...


▲ 한국사회의 교육비 변동 추계 ⓒ 통계청

11월21일은 97년 한국이 국가부도에 직면해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지 꼭 10년째 되는 날이다. 그러나 비록 '외환보유액 13배', '국민소득 2만달러', '주가 2000 포인트', '3천억불 수출달성'이라는 수치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한국사회, 그 중에서도 다수 서민의 보편적 삶은 이러한 수치가 의심될 정도로 그 명암이 짙기만 하다.

일본의 경제학자 '가도쿠라 다카시'는 "통계와 경제수치의 가장 큰 병폐는 언제든지 그 통계와 수치가 임의대로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내가 보기에 특히 이러한 임의조작의 병폐가 가장 빈번하고도 심각하게 일어나는 곳은 단연 한국의 정치분야가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이런 외피적 '성장과 발전'이라는 화려한 수치의 이면에는 '부동산가 사상최대', '사교육비 사상최대', '비정규직 사상최대', '상하위 소득격차 사상최대', 가계부채 사상최대'등등 사회 구성원 다수의 끝없는 추락과 희생 또한 심각하게 병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은 흔히 중산층이 투터운 '마름모 구조'의 사회를 가장 이상적 사회로 꼽는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IMF 사태를 기점으로 상위에서 하위로 갈수록 점차 층이 두터워지는 '피라밋 구조'로 변했다가 최근 들어서는 그 마저도 중간층이 점차 사라지고 단지 최상위 일부와 나머지 다수로 이분화된 극심한 양극화의 '오각형 구조'로 변해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빈곤의 대중화, 고착화가 너무도 급격히 진행되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어김없이 '신자유주의'라는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즉 한국사회의 위기는 IMF 관리체제 졸업 후 끝난게 아니라 단지 그것을 빌미로 새로이 시작된 신자유주의체제로 급격히 대체되어져 끊임없이 위기와 진통을 반복해온 지난 10년이었던 것이다.

경쟁과 효율, 자본의 가치를 최우선에 두는 신자유주의 체제는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생산성을 목표로 하기에 저임금과 노동 유연화를 필요조건화 하며 자본과 노동의 관계 또한 필연적으로 공생 아닌 예속의 관계로 전락시켰다.

그러므로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사회는 재계 일각의 주장대로 기업 체질은 보다 강화되었는지 모르나 각 개개인의 사회적 입지는 한층 취약해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선진국의 경우는 그나마 국가가 복지와 사회안전망으로 이와 같은 개인의 취약점을 어느정도 보완해 주기에 비교적 그 폐해가 적게 나타나지만 한국의 경우는 그야말로 아무 준비도 없이 IMF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요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아무 고민없이 시대의 조류라는 명목하에 이를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추종해온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과오가 무엇보다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꼭 명토박고 가지 않을 수 없다.

잠재력마저 바닥이라면...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의 총력은 곧 그 사람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한 국가의 경제가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는 성장력은 바로 향후 그 국가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 해도 그리 큰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익히 알려진대로 현재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4%를 간신히 넘어서는 수준으로 IMF 이후 지속되어온 저성장의 악순환 속에서나마 유지되어온 약4.5~5%의 실질성장률 마저 밑돌고 있는 형편이다. 이는 생각보다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즉 한마디로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사회는 현재보다도 미래의 발전가능성이 더 없다는 얘기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흔히 저출산과 고령화가 우리 사회의 잠재성장력을 까먹는 주요인 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몰라도 나는 이와 같은 견해에 전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그 보다 더 핵심적인 문제는 바로 살인적인 '청년실업의 문제'에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최근 통계를 잠깐 살펴보자. 올해 전체 4년제 졸업생의 취업률은 채 절반에도 못미치는 48.7%에 불과하고 대체로 매년 3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됨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0-2006년 사이의 청년일자리 수는 오히려 53만개가 줄었다는 통계가 있다.

이렇게 매년 태반이 넘는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펼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한채 미처 취업도 해보기 전에 실업의 고통부터 겪어야 하는 사회가 과연 어떻게 높은 잠재성장력을 가질 수 있으며 감히 어떤 밝은 미래를 섣불리 예단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진보학자들이라는데...

언론보도에 따르면 백낙청, 김호기, 서동만 교수 등 진보개혁성향 학자 27인(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 27)이 정동영-문국현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며 일곱가지 의제를 포함한 성명을 발표했다고 한다.

보았다. 말인 즉슨 그럴듯 하고 다 옳다. 하지만 말이다. 이건 아니지 않는가. 적어도 한국사회의 진보와 개혁을 진지하게 고민해온 진보개혁성향의 학자들 이라면 말이다.

왜냐하면 마치 2002 대선 과제들을 재탕, 삼탕해 놓은 것 같은 의제들을 새삼스럽게 들고 나와서는 민주개혁세력임으로 수구세력에 정권넘어가지 않게 밀어줘야 한다는 식의 정권들러리 짓을 한다는 것은 과정은 쏙뺀 진영주의에 입각한, 가히 시대적 부끄러움에 비굴하기까지 한 짓 아닌가 말이다.

학자적 양심에 묻는다. 과연 대통합신당(구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에 정책적 차이점이 있기는 했었나? 혹은 위와 같은 아젠다로 무장했다는 민주개혁 세력은 지난 10년 과연 사회개혁에 성공 했나? 즉 부정부패 청산하고 중소기업 살리고 비정규직 해소했으며 교육혁신과 사회양극화 해소는 물론 사회적 대타협과 평화공존체제를 이뤄냈는가, 아니면 오히려 그 사태를 불러온 장본인들은 아니었는가 말이다.

옛말에 병주고 약주지는 말라고 했다. 민주개혁을 자처하는 정치세력으로서는 아직도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겠지만, 최근 몇년간 흘러온 민심의 추이는 매우 선명하다. 극단적으로 말해, 이땅의 어떤 정치세력 보다도 자칭 '민주개혁'을 자임하는 정치세력만은 더이상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것을 굳이 성명서라도 발표해야 알아듣겠는가.

시대가 흔들리면 호랑이 없는 골에 여우들만 활개친다고 했다. 지금 한국사회가 꼭 그런 형국이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상황에 새로운 호랑이(대안)를 세우기는 커녕 죽은 호랑이 가죽을 들고와서 여우 몰아내자고 호들갑 떠는 것이야말로 심한 '자가당착'에 '언발에 오줌누자'는 것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나는 믿는다. 진정 이땅의 진보와 개혁을 바라는 학자적 양심을 가졌다면 말이다. 적어도 이 신자유주의로 과무장한 자유주의세력(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을 넘어선 대안 정도는 내놓아야 하는것 아니던가. 아니 굳이 대안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것과 결연히 맞서는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마땅한것 아니던가 말이다.

나는 이 27인의 개혁성향을 가졌다는 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나 농민들이 자신들의 마지막 생존을 걸고 투쟁할때 그 흔한 성명서 한쪼가리라도 어디에 발표했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하였다. 그러니 이런 시대적 양심마저도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라.

국민이 보수화 됐다는데..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하라고 했다. 한나라당과 그 대선후보의 독주을 놓고, 일각의 지적처럼 정말 2007 대한민국 국민은 집단적으로 보수화 되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다. 사실은 민주개혁세력이 지난 10년 기득권에 안주해 급격히 보수화된 결과가 오늘을 초해한 것이다. 보라. 여전히 제1당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최대 정치세력인 대통합신당(구 열린우리당)과 제1 야당인 한나라당이 국회의석의 거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정치판의 현실이 모든 사실을 반증해 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결론을 맺겠다. IMF 환란이 김영삼 정부가 한국사회에 던져넣은 시한폭탄이었다면 노무현 정부의 FTA 대망론은 자칫 한국사회의 공멸을 초래할 수도 있는 대재앙의 핵폭탄이다. 그럼에도 진보학자든 보수학자든 향후 5년의 한국사회를 결정지을 대선을 앞에 놓고도, 아무도 여기에 대해서는 더이상 말이 없다. 이지경 이라면 가장 신자유주의로 철저히 무장된 한나라당이 꾸준히 대세론을 이어가는 이 '이율배반적 현상'이야말로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톱아보자. 반한나라연대는 애초부터 단지 정권연장을 위한 공학정치에서 나온 민주개혁세력의 철저한 자기기만의 술수였기에 출발부터 이미 그 실패를 담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어떤 특정 정당을 반대하기 위해 무조건 뭉치자는 세력들에게 과연 어떤 국민이 미래를 송두리째 걸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위 '민주개혁'을 자처하는 정치세력들은 이 '일장춘몽'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진정 자신들의 실패와 실정에 대해 철저한 반성과 속죄의 념을 가지고 있다면 모두 총선불출마 선언이라도 하고나서 진정성을 말하든 단일화를 호소하든 해야 되는 것 아니던가.

모순된 현실을 그저 막연한 기대로 비틀어놓는 희망은 결코 진정한 희망이 될 수 없다. 진정한 진보개혁세력 이라면, 결코 소수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끝내 절망과 폐허가 지나간 뒤 다가올 재건의 꿈을 향해 오늘도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를 것이다. 너와나, 우리들의 간절한 희망, 신자유주의를 향한 저항과 대안의 노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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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11/24 [04:5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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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일규 2007/11/24 [17:36] 수정 | 삭제
  • 룰루랄라님과 보수에 대한 관점에서 약간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살아보면 말을 조금만 해봐도 정치적 이념이 상당히 드러납니다. 저는 흔히 이른바 '극좌'가 되더군요. 그런데 민노당으로 가면 '극우'가 됩니다. (중도 좌파다보니) 국민의 보수화는 둘째치고 괴리감마저 많이 느끼게 됩니다.

    국민의 보수화. 100%는 아니더라도 80%는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언론이라거나... 여러 보수학자들, 보수 정치인들 때문에 국민들은 그게 맞다고 간 게 보수의 길이었습니다.

    물론 룰루랄라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게 있습니다.
    과거속에서도 대안을 찾을 수 있다.. 100% 공감합니다.
    여러가지 지금의 문제들.. 공부를 하다보면 그 대안은 신자유주의가 들어오기 이전의 제도로 돌려놓으면 되는 것도 상당수 있습니다.(대안이 아니라 정답이겠지요) 물론 진보를 못잡아먹어 안달난 사람들은 그걸 보수라고 잡아땔지 모르겠지만...^^
  • 룰루랄라 2007/11/24 [13:25] 수정 | 삭제
  • 단지 지금은 무언가 한국이 정체되어 있는 현상인것같습니다.
    아마 세계적으로 보아도 그런것같습니다.
    음악은 더이상 새로운 가락이 잡히지 않아 뮤지션들은 고민하게 되고
    대중들은 표절이 아닐까 싶은 음악만을 듣게 되고.
    이런 반복되는 것에 대한 것이 꼭 부정적이라고만 볼수 없고.
    무언가 변화해야 한다는것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똑같은 정치,똑같은 음악 속에서 이제는 돌파구를 찾을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인것 같습니다.
    꼭 새로운 것만이 대안이 아니고, 과거속에서도 대안을 찾는것도
    좋을것같아요.
  • 오용석 2007/11/24 [11:57] 수정 | 삭제
  • 각골명심님의 살아 숨 쉬는 글, 잘 읽었습니다. 계속 건필 부탁합니다.
    자칭 진보개혁론자들, 앎이 적어서도 뇌세포의 용량이 적어서도 아니고, 지금 그들의 머리 속을 채운, 바로 쓸데 없는 지식들로 인해, 사람들의 일상적 삶의 모습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아직도 뿌옇게 보이는 듯싶습니다. 그들도 몇 차례 뇌세포의 '조각모음'을 거치고나면 뒤늦게나마 일부는 나아질 거로 봅니다.
    역사라는 이름의 산 정상에 오르는 일입니다. 지금은 오르기 위해 내려가는 과정이 아닌가 상당히 조심스럽게 진단해봅니다. 자주 뵙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