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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가스사망', 근로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
[뉴스 이후] 최저임금 136만여 명이 비정규직, 고용보험등 대비책 시급
 
황정은   기사입력  2007/11/15 [19:48]
얼마전 회사 인근에 있는 편의점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갈증을 달래기 위해 냉장고에서 이온음료를 꺼내 든 순간, 귀를 번쩍이게 하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다. 편의점 고용주가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하는 소리였다.
 
"내가 물건 치우라고 몇번을 얘기했어"…"주류 상자 빨리 저쪽에 옮겨"
 
고압적이었다. 학생은 기계처럼 행동했다. 문득, 최근 발생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사망사건이 머리속을 스쳐갔다. 결과가 있다면 반드시 그에 따른 원인이 있다고 했다. '비정규직-최저임금-열악한 근무현실' 등이 머리속에 스펙트럼을 이뤘다.
 
지난달 14일 몇몇 공중파 방송을 통해 보도된 '고 전병문 학생 사망사건'. 서울 서초동 교대 세븐일레븐점에서 발전기를 잘못 설치하는 이유로 야간 아르바이트 근무중이던 대학생이 뇌사상태에 빠지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다.
 
사건의 전말을 알고 싶었다. 이와 함께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근로기준법의 적용조차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시간제 근로자들의 현실이 기자의 '본성'을 깨웠다. 전병문 씨의 부친과 사고가 발생한 세븐일레븐 측의 입장을 듣고 나서야 그 본성은 더욱 명확해 졌다.
 
"평생동안 불쌍한 내 아들 잊지 못할 것"
 
▲ 사고 직후 병원으로 후송된 전 씨의 모습. 전 씨는 이후 열흘 간 사투를 벌이다 지난달 26일 숨을 거뒀다.    ©MBC화면 캡쳐
지난 12일 기자는 고 전병문(26,상명대 재학)씨의 부친 전재수(55) 씨를 실업문제 관련 NGO단체인 '청년실업네트워킹센터' 회의실에서 만났다.
 
방송에서 단신으로 보도된 사건 소식을 듣고, 아들을 잃은 부모의 심정과 사건의 모든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아들이 죽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로 운을 뗀 전 씨는 "너무 착하고 부모 생각을 많이 했던 아이라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라며 "아마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어학연수 준비에 한참 바뻤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재수 씨에 따르면, 사망한 전병문 씨는 어학연수 비용을 마련키 위해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 간, 밤10시부터 오전10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세븐일레븐 교대점에서 근무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병문 씨는 이같은 일을 2개월 간 지속해온 상태였다.
 
이후 기자는 날짜와 시간대별 사건 과정의 내용이 궁금했다. 물론 전재수 씨에 따르면, 현재 서초경찰서가 이 사건을 조사중에 있다. 하지만 부친의 설명과 세븐일레븐 측과의 전화통화를 토대로 당시 전 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상황을 정리했다.
 
-10월13일 밤10시 편의점 출근 (이에 앞서 편의점건물은 '3시간 정전'이 예고 됐었음)
-정전에 대비해 편의점측은 발전기 설치기사를 부름

 (냉동고를 돌리기 위해 이미 본사에서는 발전기 한 대를 설치)
-(롯데기공) 설치기사 도착 후 발전기 설치
-야간근무를 하던 전씨는 편의점 창고에서 문을 잠근 채 취침(14일 오전 7시20분 경)
-14일 오전 10시40분 경, 후임 아르바이트생이 창고에서 쓰러진 채 의식을 잃은 전 씨 발견
-강남성모병원으로 옮겨진 뒤 '뇌사' 판정
-26일 저녁 7시 40분 사망, 29일 장례식
 
전재수 씨는 "아들은 일산화가스 중독으로 죽었다"고 못박은 뒤 "사전에 설치기사가 '발전기에 일산화탄소가 나오니 위험할 수 있다'라는 사실만 알려줬어도 이런 참변은 없었을것"며 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세븐일레븐 측의 '수수방관'적 태도를 비난, "이제껏 점주가 한 일은 쓰러진 아들을 병원까지 입원시켜 준 것 뿐"이라며 "심지어 세븐일레븐 측은 아들의 장례식장에도 나타났지 않았다. 내가 진짜로 화가 나는 것은 사과한마디 하지 않는 태도에 있다"라고 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전 씨는 현재 모 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하지만 아들 사망 이후 현재까지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2주 째 학교를 가지 못하고 있다. 죽은 아들의 자리가 너무 크다"며 "애 엄마는 평생 못잊을것 같은 심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상황"이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는 전형적인 프랜차이즈 기업…점포에 책임있어"
 
세븐일레븐 측의 입장이 궁금했다. 기사의 '균형'을 위해 찬반 의견을 듣기 위함도 있었지만, 현재 아르바이트 학생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노동 문제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병문 학생 사건과 관련한 국내 대표적 편의점의 입장을 듣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예상'대로 였다. 
 
▲현재 전병문 씨 사망사건과 관련, 세븐일레븐 측은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 것 같다"며 "모든 책임은 본사가 아닌, 점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세븐일레븐 홈페이지

회사 측 홍 모 부장은 지난 1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세븐일레븐은 프렌차이즈 회사다. 프랜차이즈는 본부의 노하우를 각 지역 점포 운영에 도움을 주는 방식"이라며 "현재 서초서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라고 애둘러 말했다.
 
사건의 진상을 조사 중인 현 상황에서 당사자들끼리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바람직 하지 못하지만, 현재의 프랜차이즈 경영 구조 상 본사는 이른바 '노하우'를 전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점포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도 남겼다. "우리가 잘못했을 수도 있고 피해자 잘못도 있을 수 있지만, 각자 자기 입장에 따라 규정이 달라진다"며 "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법원에 맡기면 된다"고 일축했다.
 
변치않는 열악한 '근로사각지대'…'제2의 전병문' 발생 방지해야
 
이처럼 전병문씨 사망 사건만 보더라도, 현재 시간제로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의 현실이 얼마나 열악하고, 심지어 생명까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알 수 있다. 문자그대로 '근로 사각지대'를 넘어 절벽 끝에 발을 걸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전 씨의 부친이 편의점 측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편의점 창고에서 싸늘하게 죽어간 전병문는 주 24시간-한달 96시간의 아르바이트 근무를 해왔음에도 근로기준법 상 고용주에게 의무사항으로 규정돼있는 고용보험에 조차 가입돼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3일 기자와 통화한 노동부 고용보험팀에 따르면, 현재 2007년 근로기준법 상근로자가 주 15시간-한달 60시간 이상을 근무하면 고용주에게 고용보험 가입의무가 적용된다. 이러한 규정은 지난 2003년 개정된 것이다. 이전 까지의 기준은 한달에 80시간 이상의 조건이었다.
 
▲현재 대부분의 아르바이트 학생들은 근로사각지대에 놓여져 있는 상황. 이들 대부분은 고용보험 적용도 받지 못한 채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노동부 워크넷

더욱이 이러한 상황은 최저임금 문제와도 연관돼있다. 현재 한달 여 남짓 남은 2007년을 기준으로 근로자가 받을 수 있는 최저임금은 시간당 3,480원 선. 전병문씨는 한달 급여 39만원으로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어섰지만, 대부분의 시간제, 특히 비정규 근로자들은 최저임금제도를 적용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06년 8월 통계청이 내놓은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결과에 따르면,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근로자는 전체노동자 중 9.4%에 달하는 144만여명인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중요한 점은 이들 중 94%이상인 136만여명이 비정규직 종사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도 편의점에서는 학비나 '용돈'을 벌기위한 학생들이 열심히 바코드를 찍고 있다. 이들중에는 고용계약서 작성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이들도 상당수일 터. 전병문 씨 사망 사건사건과 관련, 세븐일레븐을 향한 부모의 분통함이 생각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2의 전병문 사건' 발생이 우려되는 까닭이다.

추가) 서울중암지검은 사건의 중요성과 피해자의 불이익이 없도록 서초경찰서에 재조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현재 서초경찰서는 본 사건의 증거확보 및 진술서를 상세히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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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11/15 [19: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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