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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의 개헌제의는 국민적 공감대 결여"
아사연, '헌법개정안,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 개헌 시기와 방향 논란
 
박철홍   기사입력  2007/02/21 [22:10]
지난 달 11일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이 부여한 헌법개정안 발의권을 행사하겠다는 개헌제안을 한 것에 대해 정치권의 반응은 냉담한 가운데, 개헌 발의에 대한 실현 가능성 여부와 찬반 여부를 떠나서 개헌논의가 사회 내에서 공론화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일부 학계에서 제기됐다.  

아시아사회과학연구원(이하 아사연, 원장 이장희)은 21일 오후 2시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 지하 2층에서 '헌법개정안,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학술시민포럼을 개최했다.
 
▲ 아시아사회과학연구원은 21일 오후 대한상공회의소 '헌법개정안,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학술시민포럼을 개최했다.     © 박철홍

아사연은 "헌법학, 한국정치 발전, 시민사회 발전의 입장에서 개헌 제안을 찬반의 헌법학자, 정치학자, 시민사회의 전문가를 모시고 객관적 학술토론을 통해 재조명해 볼 때"라며 "일반 국민의 폭 넓은 의견을 수렴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고자 이번 학술토론회를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종철 연세대 법대교수는 '개헌론의 의의와 한계'라는 주제발표에서 "현재의 정치현실과 여론에 따라 개헌발의가 부결된다고 하더라도 개헌론에 대한 공론화 시도는 앞으로 다시 전개될 수도 있는 개헌론의 불씨를 살려두는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현실 정치세력이나 시민사회의 자기책임성을 확인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며 "개헌논의구조 자체를 무시하거나 주요과제로 설정해내지 못하고 있는 주요 언론이나 잠재적 대선후보를 포함한 각 정파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 연세대 법대 김종철 교수     © 박철홍
김 교수는 "노 대통령의 개헌론은 개헌이 갖는 복합적 의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충분히 얻고 있지 못하다"며 "시간적 제약을 강조함으로써 향후 2차적 개헌논의의 졸속성을 초래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조급하더라도 사회적 합의과정을 충실히 거쳐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일정과는 상관없이 국회내에 헌법조사연구회를 설치하며 헌법계몽운동과 같은 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며 "입헌민주주의 강화와 국정효율성의 제고를 위해 필요한 권력구조의 개혁은 전면개헌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또 그는 "현재의 정치문화에서 4년 연임제는 대통령 2차 임기시의 레임덕 현상을 피할 수 없고, 오히려 선거주기의 단축에 의한 피해만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레임덕 문제는 재정집행권과 인사권, 정보에 대한 우선적 접근권 등을 토대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 해결돼야 하고, 바로 이러한 리더십이 대통령제 성패의 관건이지 임기가 절대적 요소일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이에 앞서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개헌의 적기는 언제인가'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일각에서 대통령의 임기 말 개헌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합리적 근거를 갖지 못하는 감정적 비판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일단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며 개헌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국민이 판단해야 하고, 정치권에서는 국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 고려대 법대 장영수 교수     © 박철홍
장 교수는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론과 관련, 이는 대통령이 예정대로 개헌안을 발의한다면 개헌 발의자가 개헌의 직접적 수혜자가 되지 않는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즉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통령의 4년제 중임제 개헌은 헌법 제128조 제2항에 따라 노 대통령에게 적용되지 않아서 수혜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개헌정국이 형성되는 것 자체가 노 대통령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장 교수의 주장.
 
그는 "노 대통령의 '원 포인트 개헌' 주장이 장점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며 "우리나라처럼 국민투표까지 거쳐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경우에는 헌법개정을 여러 차례 한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보더라도 비용과 시간을 매우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개헌이 필요한 사항을 충분히 검토한 뒤, 한꺼번에 개헌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이장희 아시아사회과학연구원장의 사회로 지정토론이 열렸다. 이 날 토론에서는 노대통령의 개헌제안을 둘러싸고 토론자들은 팽팽한 찬반 양론을 펼쳤다.
 
"5년 단임대통령제, 심판권 없는 비정상적 대통령제"
 
4년 연임제 개헌의 수혜자가 대통령이 아닌 국민이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올해가 최적기라는 것이 개헌에 찬성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은 "개헌의 정략적 실체와 정파별 유·불리의 기준이 불투명하며 개헌과 현실정치는 각각 별도의 정치트랙"이라며 "한국헌법사에서 대통령 권력은 오랫동안 국민의 통제 밖에 있었거나 오히려 대통령이 국민을 통제했고, 현행 5년 단임제 대통령제는 국민에게 선출권만 있을 뿐이지 심판권이 없는 비정상적인 대통령제"라고 밝혔다.
 
박 대학원장은 5년 단임대통령제의 부작용으로 ▲권력누수와 국가정책의 단절 ▲국민심판의 부재와 책임정치의 실종 ▲지역주의적 정치형태와의 결합과 정책적 당정치의 실종 등을 거론했다.
 
또 그는 "현재까지 나온 개헌반대 논리로는 호헌론 이외에 차기정권의 몫, 대통령의 국정전념론, 개헌비용 과다론 등이 있는데, 이중 차기정권의 몫이라는 주장은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기가 하면 로맨스'라는 논리로서 가장 억지가 심한 반론"이라며 "개헌추진과 관련해 발의권자인 대통령의 노력이 최대관건이며 헌법개정권력자인 국민이 공감하는 간결한 개헌논리와 공론화 공간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박철홍

김수진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은 5년단임제 하에서 통치의 효율성이 극도로 떨어진다는 것을 아마 개헌이 필요한 가장 중요로 이유로 보는 듯하고, 이에 따라 대통령의 임기를 국회의원의 임기와 일치시킴으로써 소위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의 가증성을 줄여보자는 취지인 듯"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제 하에서 4년중임제가 5년단임제보다는 통치의 효율성, 책임성을 더욱 강화시켜주고, 또 통치의 민주성 역시 그다지 약화되지 않는데 동의한다면 이러한 개헌에 반대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개헌제의, 국민적 공감대 결여"
 
이 날 포럼에서 노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론'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20년 만에 한번 돌아오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동시선거를 위한 절호의 기회라는 개헌시기를 비판했다.
 
김성수 한양대 법대 교수는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 개정된 현행 헌법이 20여년 동안 장수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당시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에 대한 국민의 여망이 반영된 결과"라며 "국민의 헌법적 의지와 에너지가 결집된 헌법개정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이뤄지지 못하는 개헌논의는 사상누각이고,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삶의 문제를 개선시키지 못하는 개혁은 결코 성공한 예를 찾아볼 수 없다"며 노 대통령의 개헌제의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다.
 
김 교수는 "개헌은 국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이기 때문에 헌법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더라도 헌법을 바꿔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장기간 공론화 과정과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며 "개헌의 방향과 내용에 대한 논의는 차기 정권의 출범과 동시에 중요한 국정의 개혁과제로 설정되는 것이 필요하고, 그 논의의 주체는 국회를 중심으로 시민사회와 정치권, 학계 등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합의체 형태가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 아시아사회과학연구원은 21일 오후 대한상공회의소 '헌법개정안,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학술시민포럼을 개최했다.     © 박철홍

임지봉 서강대 법대 교수는 "5년 단임제는 5년 동안 대통령이 재선에 신경 쓸 필요없이 소신껏 국정을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제도라는 면에서도 장점이 있다"며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동시선거를 통해 국정수행의 효율성을 명분으로 대통령 권력에 대한 견제약화를 도모하려는 이번 원 포인트 개헌은 대통령제의 핵심인 '대통령 권력의 견제'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으로 철회돼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 밖에도 4년 연임제 개헌 제안에 대한 신중론도 제기됐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 헌정사상 9번의 개헌 가운데 대부분이 대통령의 권력구조와 임기에 관한 것으로서 정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임의적이며 즉흥적으로 처리되어 왔던 것을 상기한다"며 "대통령 임기말기에 개헌논쟁으로 국가의 주요 과제가 소홀히 취급되어서는 안되며 개헌 문제는 새로운 정권의 주요 과제로 미루어두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날 포럼에는 이관희 경찰대 교수(전 한국헌법학회장), 문규석 아사연 선임 연구위원, 이장희 아사연 원장(한국외대 대외부총장), 홍승직 아사연 이사장(대한민국 학술원 부회장), 성낙인 서울대 법대학장(한국공법학회 회장), 김성수 한양대 법대 교수, 김수진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양승함 연세대 정외과 교수, 임지봉 서강대 법학과 교수,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한편, 원포인트 개헌안이 다음달 6일 국무회의 상정될 예정이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구성된 '헌법개정 추진지원단'은 다음달 6일 개헌안을 의결한 후,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이에 따라 이번 대선과 총선은 현행대로 각각 2007년 12월과 2008년 4월 치르되, 차기 국회의원 임기를 차기 대통령 임기에 맞춰 3개월 정도 단축하는 방안이 집중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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