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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보다 돈을 택하겠다" 제리 브룩하이머
[인물과 사상의 눈] '상업영화의 천재', '장사치 마인드'의 CSI 제작자
 
최을영   기사입력  2006/11/06 [20:12]
미국 CBS에서 2000년부터 방영되고 있는 범죄수사 드라마 <CSI : Crime Scene Investigation>가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01년 8월부터 영화전문 케이블방송 OCN에서 방영을 시작한 <CSI 라스베가스>에 이어 <CSI 마이애미> <CSI 뉴욕> 등 오리지널 시리즈와 스핀 오프(spin-off) 시리즈가 모두 국내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남녀를 불문하고 20∼30대를 중심으로 한 CSI 마니아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동호회도 인터넷상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CSI>의 인기에 힘입어 OCN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24시간 동안 CSI 시리즈만을 방영하도록 한 전무후무한 편성을 했다. 'CSI DAY'라 일컬어진 24시간 방송은 '과연 될까?'란 우려를 잠재우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케이블방송의 평균 시청률은 0.3∼0.4% 정도인데, 'CSI DAY'의 시청률은 평균 0.6∼0.7%를 기록했고, 프라임 타임 때는 2.5%를 기록하기도 했다.

CSI DAY를 기획한 OCN의 하나영 PD는 "OCN에서 <CSI>는 모든 것이라 할 만큼, 우리가 방송한 해외시리즈에서 이 정도 인기를 얻은 작품은 없다. 지금 일주일 시청률을 보면 <CSI> 시리즈가 시청률 10위안에 절반을 차지한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CSI>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고 할까?"라고 말한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까지 불리는 <CSI> 시리즈는 '미스터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할리우드의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의 손에서 태어났다. <탑건> <더록> <아마겟돈> <코요테 어글리>, 그리고 최근에 개봉한 <캐러비안의 해적 : 망자의 함>에 이르기까지 그가 제작한 영화들은 대다수가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그 덕분에 그는 "상업영화의 천재"라는 별칭을 얻었다. 또 일각에서는 '그가 걸어온 길 자체가 블록버스터의 역사'라고 칭한다. 

제리 브룩하이머는 철저히 상업성에 기댄 작품을 제작하며 상업적인 영화를 만드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는 영화제작을 운송업에 빗댄다. "우리는 운송업에 종사하고 있다. 우리는 한 극장에서 다른 극장으로 관객들을 이동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는 그의 발언은 그가 가진 '장사치 마인드'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가 가진 '장사치 마인드'는 물론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아무리 작은 영화라도 매번 심적 부담을 느낀다. 관객이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만큼 그 값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지울 수가 없다"는 그의 말에서는 좋은 물건을 내다 팔려는 장사치로서의 진정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제리 브룩하이머는 1945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처음부터 그가 영화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광고계에서 먼저 두각을 나타냈다. 아리조나대학 심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패러디 한 폰티악 광고로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23살에 뉴욕의 광고회사에 들어가 광고제작자로 성장한다.

1972년 어드벤처 영화 <카우보이 벤>의 보조제작자로 영화제작의 길에 들어선 그는 <아메리칸 지골로>(1980)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영화제작자로서의 입지를 다진다. <아메리칸 지골로>는 변방에 머물던 제리 브룩하이머가 할리우드의 주류 영화계로 진입할 수 있는 발판 이 되었다.

그 발판을 바탕으로 1980년대 제리 브룩하이머는 승승장구한다. <캣 피플>(1982), <플래시 댄스>(1983), <비버리힐스 캅>(1983), <탑 건>(1986) 등 1980년대 할리우드를 수놓았던 상업영화가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80년대 제리 브룩하이머가 그리고 이 영화들로 무명에 가까웠던 리처드 기어나 에디 머피, 톰 크루즈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제리 브룩하이머는 그 중에서도 톰 크루즈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2006년 8월 23일 톰 크루즈가 14년 동안 함께 일했던 파라마운트 영화사로부터 퇴출당하자 "파라마운트 영화사와의 관계가 끝났더라도 아직까지 톰 크루즈는 세계 최고의 스타"라고 말한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제리 브룩하이머의 성공 뒤에는 동료 제작자 돈 심슨이 있었다. <플래시 댄스> 제작 때 만났던 이들은 의기투합해 80년대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를 제작한다. 그러나 돈 심슨은 곧 제리 브룩하이머에게 장애물이 된다. 그가 약물에 빠져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한 영화 중 제대로 된 작품은 <폭풍의 질주>(1990) 단 하나에 불과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제리 브룩하이머는 독자적인 길을 걷기로 한다. 그렇게 제작한 작품이 <나쁜 녀석들>(1995)이었고, 제리 브룩하이머는 이 영화를 계기로 재기에 성공한다. 이후 <크림슨 타이드>(1995), <더 록>(1996), <콘 에어>(1997), <아마겟돈>(1998),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1998) 등 그는 일련의 상업영화를 꾸준히 내놓았다. 이 영화들은 하나같이 흥행에 성공했고, 유망주에 불과하던 윌 스미스와 니콜라스 케이지를 세계적인 액션배우로 탈바꿈시킨다. CF감독 출신인 마이클 베이가 <나쁜 녀석들>과 <더 록> 등의 영화로 감각 있는 영화감독으로 탄생한다. 후에 마이클 베이는 제리 브룩하이머와 가장 많은 작품을 하게 된 감독이 된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그는 <식스티 세컨즈>(2000), <코요테 어글리>(2000), <블랙 호크 다운>(2001), <진주만>(2001), <배드 컴퍼니>(2002), <캐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2003), <킹 아더>(2004), <네셔널 트래져>(2004), <캐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2006) 등의 영화를 제작한다.

이 중 <배드 컴퍼니>만 흥행에 실패했을 뿐 거의 모든 영화가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킹 아더>는 미국 내에서는 부진했지만 해외시장에서 성공해 흥행 수익을 올렸고 <캐러비안의 해적 : 망자의 함>은 세계적으로 총수익 1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는 <타이타닉>과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익이었다. 제리 브룩하이머는 2007년에는 저우룬파를 캐스팅해 <캐러비안의 해적 : 세상의 끝>을 개봉시킬 계획이다.

영화제작과는 별도로 제리 브룩하이머는 TV드라마 제작에 나섰다. 2000년 CBS에서 <CSI 라스베가스>를 방영하기 시작했고, 이 시리즈가 성공하자 2002년에는 <CSI 마이애미> 시리즈를, 그리고 <CSI 뉴욕> 등 스핀 오프 시리즈를 연달아 제작한다. 범죄현장 수사요원들의 이야기인 <CSI 라스베가스>를 제작할 때 제리 브룩하이머가 중점을 둔 것은 '새로움'이었다. 그는 과학수사라는 소재를 사용한 것에 대해 "사람들은 우리가 보여주는 특이하고 다른 것에 흥분한다. 나는 TV에서 오랫동안 보인 적 없는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CSI> 첫 시리즈의 배경을 라스베가스로 잡은 것은 라스베가스란 도시의 특성 때문이었다. 제리 브룩하이머는 "라스베가스뿐만 아니라 디트로이트, 시카고 같은 도시에도 범죄는 존재한다"면서 "우리는 실종, 살인, 카지노 안팎의 여러 사건들과 일반 가정에서 일어나는 사건까지 오직 라스베가스에서 일어나는 사건만을 다룬다"고 밝혀 욕망의 도시 라스베가스의 특성 때문에 <CSI>의 첫 시리즈 배경을 라스베가스로 잡은 이유를 간접적으로 밝혔다. 제리 브룩하이머의 새로움에 대한 욕망은 시리즈의 성공으로 다가왔다. 2006년 8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CSI 마이애미>는 가장 많은 나라에서 시청하는 프로그램으로 꼽혔고, 같은 조사에서 <CSI 라스베가스>는 6위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CSI>의 인기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과학수사라는 참신한 소재를 들 수 있다. <CSI>에는 갖가지 최신 장비가 등장하고, 부검 장면이나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실험을 하는 장면 등 시청자들이 보지 못했던 소재를 친절한 설명과 함께 곁들여 보여준다.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에 상응하는 해결책을 제시해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시청자의 몰입을 유도한다.

거기에 갖가지 특수효과로 무장한 사실적인 화면, 어딘가 결핍을 안고 사는 수사관들의 인간적인 면모, 퍼즐풀기처럼 진행되는 이야기 구성, 각각의 도시 특성에 맞춰진 범죄현장, 탄탄한 연기력의 중견 연기자 캐스팅 등이 또 다른 인기요인으로 가세한다.

<CSI> 외에 제리 브룩하이머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제작한다. 일반인들이 2명씩 팀을 이뤄 세계를 여행하며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고, 최종 우승자에게는 100만 달러가 주어지는 <어메이징 레이스>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회 연속 에미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어메이징 레이스>가 에미상을 받긴 했지만 사실 제리 브룩하이머는 상복이 없는 편이다. 일례로 리들리 스콧과 함께 만든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이 아카데미 감독상을 비롯해 4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2개의 상을 탔지만 제작자가 상을 받는 작품상 부문에는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이를 두고 현지 언론은 1985년 11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지만 오직 감독상 부분에서만 후보에 지명되지 않았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컬러 퍼플> 이후 '최대의 상업영화 왕따 사건'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스필버그가 지속적으로 진지한 영화를 만들며 아카데미상을 노린 반면 제리 브룩하이머는 그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블랙 호크 다운> 이후에도 오락영화 제작에 몰두한다. "나는 오스카 트로피보다 돈을 택하겠다"고 말하는 제리 브룩하이머는 상에 상관없이 철저히 재미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영화를 위해서라면 재촬영도 마다하지 않는다. <코요테 어글리>는 10대 초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관객 시사회 이후 관객이 더 많이 보길 원하던 바텐더들이 춤추는 장면을 재촬영했다. 그리고 두 번째 관객 시사회 후에는 원작에는 없던 주인공의 성공 장면을 집어넣어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그의 영화관과 통한다. 그는 스스로의 영화적 특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낭만이 있어야 되고, 어드벤처가 있어야 되고, 정의를 위해 싸워 이기는 영웅에 대한 스토리가 내가 영화를 만드는 기준이다."

낭만과 어드벤처,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영웅에 대한 스토리는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한 영화에는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 거대한 소행성과의 충돌 직전에 지구를 구하는 <아마겟돈>이 그랬고, <더 록>이 그랬으며, <진주만>이 그랬다.

영화평론가 이지훈은 이러한 제리 브룩하이머의 영화 세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한다.

"그가 제작한 영화들의 시발점은 항상 무슨 일을 해도 불안한 신출내기들이다. …… 그러나 얄밉게도 제리 브룩하이머는 결코 이들에게 세상을 구원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잠시 후, 영화의 진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대개 속세의 삶으로부터 은퇴했던 베테랑이거나 백전노장들이다. …… 그리고 바로 그들이 인류를 구원하고, 잠시 추락할 위기에 처했던 세상의 순리를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그러나 그는 영웅주의와 지나친 폭력성을 영화에서 구현한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또 지나치게 상업성을 강조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어찌됐든 제리 브룩하이머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할리우드의 영향력 있는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기 TV 시리즈물까지 제작해 제작자로서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2003년 할리우드의 영향력 있는 인사 1위로 꼽혔으며, 2004년에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히기도 했다. 
 
* 본문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06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이며, 출판사의 허락하에 전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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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1/06 [20:1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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