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치르고 나면 늘 몸이 무겁다.
전 부치랴, 밤 치랴 온종일 허리 두들기며 제사상을 장만하고 나면 며칠이 지나도록 들러붙은 피로가 가시지 않는다.
피곤함 부추기는 정치담론 명절이야 없어도 그만이고 일상에 빨리 복귀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정도인데, 이때는 으레 몸의 피곤함을 더 부채질하는 것들이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이, 여자들이 고된 몸을 무릅쓰고 만들어낸 음식을 들며 안주로 풀어놓는 정치 담론을 접해야 할 때가 그렇다.
'경상도'는 행정구역상으로 바른 이름은 아니지만 이곳 사람들은 교과서적이고 서울 중심적인 어감을 깔고 있는 '영남'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경상도'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 지역은 한국의 가파른 정치지형도를 한눈에 알게 할 뿐 아니라, 만약 정치심리학이라는 것이 있다면 인간 심리, 특히 가해자들의 심리를 연구해보기에 매우 적절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은 두 사람만 모여도 정치인 욕한다는 말답게, 명절날 귀한 손님인 일가친척들이 술상에 모여 앉아 어느 집 자식의 혼사나 취직 이야기를 나누다 어김없이 빠지는 코스는 정치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이들이 입을 달구며 나눈 '정치적 발언'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들이 주고받은 화제에는 당시 집권자에 대해 차마 귀에 담아두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원색적인 비아냥과 모함, 냉소가 빠지는 법이 없었다.
색깔 입히기와 인신공격은 기본이었다.
심지어 박정희 정권의 탄압을 받아 생긴 그의 신체적 약점마저 힐난당하기 일쑤였다.
일가가 모이는 명절은 이들이 평소에 타지인들에게는 다 드러내지 못했던 속내를 마음껏 풀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무릇 '비판'에는 이유가 있지만 '비난'에는 아무런 타당한 이유나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김 전 대통령을 향한 모든 미움과 증오의 이유는 오로지 그가 호남 출신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경상도 사람들에게 호남 차별 의식은 일상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나타난다.
나 자신도 어릴 때 밥상머리에서부터 호남인을 조심하도록 학습 받아야 했다.
IMF 구제금융 시절 경상도 사람들 중에는 이 지역의 공장들이 모조리 호남으로 넘어갔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말을 진실이라고 믿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호남을 차별한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며, 설령 인정하더라도 그것에 불가피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경상도인의 못 말릴 전라도 혐오증은, 대통령이 바뀌고 특히 같은 지역 출신의 대통령이 집권함에 따라 기세가 한풀 꺾이기는 했다.
물론 지금의 경제 불황조차 전임 집권자 탓으로 돌리는 못 말리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 전임 집권자와 호남인에 대한 뭇매질은 어느새 뜬금없는 박정희 찬양으로 대체돼버렸다.
끊임없는 지역 이기주의 따지고 보면 호남 배척과 박정희 숭배는 뿌리가 같다.
박정희를 비롯한 경상도 출신 독재자들이 호남이라는 적을 만듦으로써 권력 기반을 다졌듯이, 경상도 사람들도 정권의 호남 차별과 편중된 지역개발을 통해 단물을 맛보았다.
박정희로 상징되는 독재 권력과, 경상도 사람들에게 호남은 적으로 있어야 할 타자다.
광주를 총칼로 유린하고 정권을 탈취한 자들을 지지했고 그 후신인 한나라당에 여전히 몰표를 던지고 있는 경상도 사람들에게 가해자로서 자성과 성찰은 너무 멀리에 있다.
이들의 욕망은 지역민의 비위를 맞춤으로써 경상도 패권을 되찾을 욕심만 부리는 한나라당에 의해 정치적으로 다시 이용되고 있다.
그 결과 박정희 찬양가는, 가장 먼저 고속도로가 뚫리고 공단이 개발되는 혜택을 누렸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경상도 사람들만 부르는 게 아니며, 민주주의고 뭐고 국민들이 정신 바짝 차리도록 아직은 독재가 필요하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들을 경상도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닌 세상이 돼버렸다.
경상도의 정치적 지역색이 한국의 정치 지형을 좌우하는 것, 경남도민에게 대단한 불명예이다.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
http://www.dominilbo.co.kr) 10월 11일자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