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읽다 이란의 시위 현장에서 총격으로 숨진 어린 여성의 처참한 시신이 실린 사진에 눈이 가자 고개를 돌려버렸다. 먼 나라의 불쌍한 여성이라고 혀를 차려다가 문득 생각하니 낯설지 않은 모습에 치가 떨린다. 29년 전 광주에서는 중학생 소년과 임산부까지 이렇게 희생을 당했다. 인터넷 포털에서 해외뉴스로 분류된 이란 정부의 시위대 유혈 진압 기사에 대해 누리꾼들은 “이게 어떻게 해외뉴스냐?”라는 웃어넘길 수 만은 없는 댓글을 달았다.
이란 사태는 1980년 광주와만 겹쳐지는 게 아닐 것이다. 생존권을 요구하는 철거민들을 폭도로 몰아 특공대로 살인 진압하는 것도 모자라 망자의 가족들을 구속하는 나라, 전직 대통령을 핍박하여 벼랑에서 등 떠밀고 분향소를 때려 부수고 그것을 막는 조문객을 잡아가는 나라, 경찰이 시위대의 목과 머리를 방패로 가격하고 이란 여성처럼 나도 시위하다 공권력에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살벌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나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총만 쏘지 않았을 뿐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무력 진압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광주에서 시민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무참하게 죽어가고 있을 때 그것을 철저히 외면하고 쿠데타 세력이 의도적으로 흘린 유언비어에 혹하던 지역이 있었다. 경상도 사람들은 학살 정권을 지지하고 편듦으로써 신군부 세력이 자국민들을 살해하고도 버젓이 12년간 통치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군사 정권이 아무리 정당성이 없더라도 그들에게는 전라도의 ‘빨갱이’ ‘폭도’들보다는 나았다.
90년대 이후는 학살자의 후예들이 만든 정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호남에서 자신들보다 더한 몰표가 경쟁 정당에 쏟아진 것을 호남인에 대한 조롱과 야유를 합리화하는 구실로 삼은 사람들이었다. 파렴치하다는 것은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란 여성의 시신에 겹쳐지는 80년 광주의 비극은 당시 군부 쿠데타 세력이 이용하고 증폭시킨 반호남 정서와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호남의 상징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영남 출신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와 집권에 성공한 참여정부 이후에 잠깐 수면으로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던 반호남주의는 이 정부 들어 완벽하게 부활했다. 영남 지역의 명절날은 10년 전 디제이와 호남을 술 안주로 씹는데 열을 올리던 시절로 돌아갈 것이다.
▲ 지난해 5월18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제28주년 기념행사에서 한 소년이 80년 5월 광주 기획전시회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CBS노컷뉴스 | |
고·소·영 인사(人事)와, 낙동강에 집중하는 ‘4대강 정비 사업’(22조 2천억 중 9조8천억)을 통해 본색을 드러낸 영남패권주의 정당은, 자기 존립을 위해서라도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김 전 대통령의 비탄과 ‘독재’ 발언을 빌미로 ‘반DJ정서’를 불러와야 했다.
사실 참여정부 이후에도 영남의 반호남 정서는 한나라당이 ‘차때기’가 들통 난 후에도 굳건히 건재하도록 했고 10년 만에 기어코 정권을 탈환하게 한 동력이었다. 경상도의 호남에 대한 미움은 워낙 철저하고 뿌리 깊은 것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보편적인 상식과 윤리를 기꺼이 접어야 할 마음이 있어야 할지 모른다. 양식이 어느 정도 있겠거니 싶었던 사람의 입에서 누가 탄 노벨상은 로비의 대가일 뿐이라고 단칼에 재단하는 발언이 나올 때 어안이 벙벙해졌던 내가 순진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서라, 이 지역은 시민단체 사람들마저 반호남 정서에 물들어 있는 곳이다. 경남 지역의 호남 출신 모 여성단체 대표는 본인이 지역에서 왕따 대접을 받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경상도 태생의 여성계 인사들은 그녀의 출신지를 거론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놀지 말라고 한다.
뒷 강물은 앞 강물을 밀어내니, 젊은 세대는 설마 다르겠지 생각해도 오산이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무지한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편견을 훨씬 더 흡수하기 좋은 상태에 있다. 승객만 보면 정치 평론을 하고 싶어 안달인 장년의 택시기사부터 호남 출신과 만난 적도 없을 것 같은 새파란 20대까지, 사리분별을 포기한 중년의 교수부터 그나마 사리분별을 조금은 할 것 같은 젊은 교사까지 호남 차별에 관한 한 경상도 사람들은 모두가 한마음이다.
경상도의 호남 적대 감정은 제 정신 가지고는 못 들어줄 것들이지만 그 표현들이 날 것 그대로 공적매체를 타는 일은 매우 드물다. 신군부 집권 2기인 노태우 정부 시절 선거철에 아무리 굽신거려도 표가 나오지 않자 집권 세력의 입에서 나온, “호남 사람들 뜨거운 맛을 봐야 한다.”고 한 발언이나, 디제이의 재임 시절 마산에 지역구를 두었던 한나라당 의원 김호일이 디제이의 신체적 약점을 대중 앞에서 원색적으로 비아냥댄 것을 제외하고는 노골적인 호남 적대적 언사가 공적으로 구사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한나라당 정치인이나 조중동의 교묘한 언어를 통해 선보일 뿐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 동아일보가 대구, 부산의 추석 경기가 망했다고 특필한, 기사를 위장한 영남 자극은 디제이의 집권 후 자기 지역의 공장들을 호남으로 빼돌리는 바람에 경상도는 망해도 전라도에서는 지나가는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입에 물고 다닌다는 말을 퍼뜨렸던 영남 사람들의 거친 언어와 표현만 다를 뿐이다.
‘일해공원’ 명칭을 밀어붙이며 자신의 뜻이 아니라 ‘군민의 뜻’임을 내세운 합천 시장의 발언은, 전두환을 훌륭한 지도자라고 확신한다는 어느 경북 출신 젊은 교사의 ‘소신’을 순화한 표현이었다.
노동조합을 사회악으로 보는 내 친척은 자기 회사의 노조 활동이 활발한 것을 회사에 전라도 출신이 많은 것과 연관시킨다. 그에게 노조는 전라도 ××들이 하는 것이다. 기계에 기름칠하며 청춘을 보낸 이 노동자의 노조=전라도 출신 등식은, 노동운동을 친북용공으로 몰고, 디제이의 최근 발언에 흥분하며 햇볕정책에 ‘친북’의 뭇매질을 가하는 산발적인 방식으로 사회운동(빨갱이)과 전라도 사람들 사이의 연결 고리를 은근히 암시하는 현 정권의 태도를 솔직하게 대변해주고 있다. 집권세력과 수구신문들이 물고 늘어지는 디제이는 결코 정치인 개인이 아니라 호남인 전체를 아우른다.
몇몇 극우 인사들과 솔직한 경상도 사람들이 표현하는 전라도=빨갱이 등식을 접하면 이를 지역 차별 정서라 이름 붙이기도 과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호남을 ‘한국의 아우슈비츠’로 만드는 벌거벗은 호남 증오일 뿐이다. 특정 지역을 상종 못할 적대 집단으로 색깔을 칠해놓지 않으면 자신들이 다 해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지역의 사람들이 있는 한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호남 증오에 사로잡힌 경상도 패권주의자들이 있는 한 이명박 정부는 지지율이 창피스러운 수준에 이를지라도 동요하지 않는다. 경상도 정권을 잃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 덕분에 지지율 0을 기록하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 2000년대 이후 한국 지식인들의 사회분석은 대부분 틀렸다. 이들이 지난 해 촛불 정국을 설명하기 위해 부랴부랴 외국 이론을 갖다 붙이기 바빴던 것은 현장을 외면한 백면서생들이었기 때문이다. 경상도에서 얼마나 살벌한 말들이 나오는지 현장에서 직접 들어보지 않는다면 영남패권주의나 호남차별주의의 실상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호남차별이 여름철 모기떼처럼 기승을 부리는 것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위험신호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제대로 보지 않고 지역감정이나 지역갈등이라는 말로 호도하며 안일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