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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그리고 TK, 현대사에 맞붙은 이니셜
"전두환이 다 잘했는데 김대중이 살려준 것 하나는 잘못했다"는 대구 풍설
 
숨인씨   기사입력  2005/04/23 [03:40]


역사적인 정치인에게 숨겨진 딸이 있었다는 뉴스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도 남을 터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DJ의 숨은 딸'에 관해서 수근거리는 목소리는 예상에 비해 그리 시끌벅적하지 않다.
 
사람들은 사실일 리가 없다고, SBS가 선정적인 보도를 했을 따름이라고 믿는 걸까. 

 
나는 소식을 듣고 그녀의 말이 진실인 쪽이 차라리 김대중에게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다(정작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도덕성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은 DJ와 그 모녀는 서로 어떤 짓을 했는가, 그리고 국정원의 공작이 존재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녀가 김대중의 딸이 맞다고 판명되면 소란스럽기야 하겠지만 어찌어찌 넘어갈 방법이야 있다. 그러나 아니라고 판명되면, 다수가 믿지 않는 가운데 결백을 증명하는 희한한 풍경이 연출될 소지가 높았다.
 
가령 ‘연예인 X파일’로 떠돈 소문들 중에는 사실도 있고 조작도 있었겠지만 어느 누가 그걸 분별하려고 했던가 말이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나랴’는 속담은 한국사회 여론의 장을 좌지우지하는 굵직한 법칙이기도 했다(이에 보태어 “신문(언론)에 났는데!”가 있다).


나는 영남 출신이다. 택리지에 나왔다던 ‘조선인재 영남반재, 영남인재 선산반재’라는 구절을 듣고 자라온 구미 사람이다. 이문열씨 같은 이가 내게 “당신 부모는 전라도 사람이지?”라고 물어도 소용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포항 분이고 내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선대 조상부터 친가와 외가 집안이 모두 경북에 살았다. 숙모나 이모부 같은 분들도 죄다 경북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부산경남 사람들의 의식과 성향은 몰라도 대구경북 사람들의 속내는 웬만큼 궤뚫고 있다고 자부한다.


글의 초반에 ‘DJ의 숨은 딸’ 이야기를 꺼낸 건 주변의 대구경북 사람들이 이 문제에 별로 무관심한 듯한 것이 신기해서다. 풀이 죽어서 구석 술자리에서나 뇌까리는지, 숨겨진 자녀에 대한 전설로는 대한민국 특등에 해당하는 박통의 명예를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다시 한번 ‘DJ와 TK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었다.


'97 대선, 게임의 결과  


1997년 12월 19일. 예비신입생으로서 진학할 고등학교에 갔다 오면서 레코드 가게에 들른 나는 귀를 의심케하는 주인 아저씨와 종업원 누나의 대화를 들었다. “김대중 선생(이 단어는 진지하게 쓰였다기보다 농담조로 들렸다)이 대통령됐지?” “(빙긋 웃으며) 그럼요.” “이제 대통령도 바뀌었겠다... 장사도 잘 되겠지.” 아니, 여기 경북 구미 아냐?


잠시 후 버스에 오르며 나는 ‘여기가 경북 구미임’을 확인했다. 버스는 패잔병들이 타고 있는 트럭 같았다. 그러면서 분노와 실망보다는 감정을 추스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결코 잘못 본 것이 아니다.”:좀 더 시간을 두고 고향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한 뒤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대구경북인들이 권력에서 멀어지고 있다며 우려한 것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유력인사들의 반란에도 불구하고 대구경북인들은 정주영이 아닌 김영삼을 택했지만 결과는 처참한 것이었다.
 
90%까지 지지율을 끌어올린 개혁 드라이브, 구체적으로 사정 정국 속에서 박태준과 박철언 등의 TK 민정계 인사들이 ‘문민의 칼’에 제압당하는 광경에 대구경북 여론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무렵 예산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둥 역정을 냈고 자꾸 대형사고가 터지는 건 “영샘이가 덕이 없어서 그렇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그 흐름은 95년 지방선거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는데 신한국당은 대구를 무소속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해 연말 노태우와 전두환이 옥살이를 하게 되자 TK는 펄펄 끓는 솥이나 다름 없었다. 사방팔방에서 “인자는 자민련의 세상이 온데이”라는 주술이 정감록의 예언마냥 들려 왔다. 그리고, 정말로, 이듬해 총선에서, 대구는 “자민련의 세상”이 되다시피했다. 하지만 자민련은 ‘전라도당’ 국민회의와 밀월에 들어가며 TK의 신망을 잃었다.


그러다 터진 한보 사건과 IMF 사태는 TK에게 양날의 칼이었다. 지역의 무수한 노동자들이 모진 풍파를 맞이하게 되었지만, TK는 박정희의 망령을 되살리는 동시에 김영삼의 목을 베고 민정계에게 신한국당의 주도권을 쥐어줬다.
 
자민련이 DJ와 손잡은 마당에 TK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꼬장꼬장한 기 맘에 안든다"고 욕을 먹던 이회창이 김윤환의 후원을 받아 'TK의 영웅'으로 부상하는 꼴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정작 97년의 승부에서 할 말을 잃은 것은 결국 'TK정서'였다.

상실감도 상실감이었지만 TK가 감내해야 했던 더 큰 문제는 가치관의 혼돈이었다. 빨갱이, 거짓말쟁이, 절름발이 다리 병신, 상고 나온 놈, 김씨라고 사기치는 뿌리 없는 인간, 대통령병 환자. 이런 자가 대통령이 되었다니! ‘TK식 권선징악’의 법칙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김대중에게 호의적이겄거나 적대적이지 않았던 소수의 시민이 아주 짧은 기간동안이나마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레코드 가게에서 들은 대화는 그 신호탄이었다. 당연히, 그 분위기는 얼마 가지 않았지만.


잠시 조용하나 싶더니 김대중 정부 초기에 TK 사람들은 '카더라 통신'으로 사고를 친다. 대주주인 벨기에측이 결정한 OB 맥주의 이전을 두가지 이상의 근거도 대지 못한 채 '대중이의 작품'으로 몰고간 것이었다. 한가지 근거는 바로 '그럼 괜히 구미에서 전주로 옮겼겠느냐'는 반문이었다.


뭐 하나 물고 늘어질 건덕지가 없나 헤매다가 잘 됐다며 덤벼드는 패거리들의 장단에 맞춰 한나라당이 구미에 와서 김덕룡이 “영남 사람들 ‘니기미’하고 일어서면 무섭다!”며 기염을 토했고(전북 익산 사람들은 대체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건가), 집회를 열었던 공단운동장에서는 민주노총의 깃발도 휘날렸다(‘낮에는 노동조합 밤에는 한나라당’, ‘임금인상 때는 파업하고 선거할 때는 기호1번’?).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대구경북에서는 "김대중이 빈부격차를 벌리고 있다"는 짐짓 좌파적인 선동부터 "대구의 아무개 회사가 비리로 궁지에 몰린 건 호남정권의 작품이다"는 음모론이 횡행한다.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는...
 
이로써 ‘김대중 때리기’는 TK의 역사적 사명으로 완벽히 자리매김하나, 덜 떨어진 자들의 말로는 <아Q정전>에서 읽었듯 처참한 법. 박정희 기념관 국고보조나 밀라노 프로젝트 따위에 침묵하던 TK는 ‘남북정상회담’으로 제대로 한방 먹었다. 
 
나는 그즈음 이제는 좀 안 듣나 싶던 헛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전가의 보도이자 회심의 일격이었다. 40대 초반의 여 선생이 풀었던 사설은 이랬다:
 
“남북의 정상이라 카는 기 하나는 배가 산만해서 뒤뚱거리고 있고, 하나는 다리를 절룩거리고. 국제사회에 부끄럽다.” 그런데 이를 어째, “국제사회”의 유력 기구인 노벨위원회는 DJ에게 평화상을 수여한다.


'DJ 다리' 운운하는 자들은 누가 그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매번 잊는다. 그들이 일심단결로 대통령직에 앉힌 박정희의 작품이었다. 문제의 교통사고가 우연이었다고 해도 그 고문과 납치는 변명할 길이 없다. 
 
나는 가끔 지인들에게 “그놈들은 몇대 쳐맞아야 정신을 차린다”고 이야기한다. “몇대 쳐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는 다름아닌 TK 박통진리교도들의 신조를 그들에게 되돌려준다는 뜻이다. 급기야 나는 때려도 정신을 못 차릴 거라는 냉소로 난폭함을 억누른다.


그들은 박정희가 김대중을 핍박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들은 사실판단의 오류를 저지르는 게 아니다. 그들은 가치판단, 즉 “김대중은 뒈졌어야 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유시민 의원이 시사평론가 노릇을 하며 쓴 <‘97대선, 게임의 법칙>에는 “전두환이 다 잘했는데 김대중을 살려준 것 하나는 잘못했다”는 대구 사람들의 풍설을 전하고 있다.
 
내가 더 첨언하자면, 절대 이것은 과격한 소수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이성을 잃어 한 말이 아니다. 이는 일종의 ‘역사학적 합의’이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지지를 받는 대구경북의 ‘상식’이다.
 
TK의 노동자들이, 자영업자들이, 지식인들이 얼마나 이 상식을 수호할 의무로 받아들이는는 모르겠으나, 나는 십대 중반부터 10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 ‘상식’에 도전하면서 -십년지기들과의 대화를 빼면- 나나 상대나 단 한 번도 핏대를 세우지 않고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김대중이 국가원수에 맞먹는 정치적 무게를 가진 것은 7대 대통령 선거라고 규정하는 편이 타당할 것 같다. 당시에 초등학생이었던 어머니는 TV에 김대중이 나오면 종종 옛 이야기들을 들려주신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될 만치 인기가 좋은 건 알 수가 없었지. 어른들은 맨날 김대중 욕하고, 애들도 선거 벽보 찢고 다녔다. 대통령은 박정희 하나였고 박정희가 죽었다는 건 충격이었지. 이북으로 치면 김일성이하고 안 똑같앴나." '87년에 한번 김대중을 찍어 줄라 카니까 주변에서 "대중이가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를 치더라." 이 정도면 가히 TK의 독기를 짐작할 만하다. 그리도 저주했는데 죽기는커녕 대통령까지 해먹고 아직까지 살아 있어! 
 

속죄양이 된 난신적자
 
고종석 씨의 혜안에 포착된 것처럼 영호남의 지역대결은 문화적 측면과 정치적 측면이 중첩돼 있다. 나는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한다. 나는 경상도 사투리에서 간간히 발견되는 고루한 멘탈리티도 거북하지만 전라도 사투리는 아무리 들어도 귀에 편하게 와닿지 않음을. 그리고 표현이 서툴거나 없어도 겉으로 속을 투시하기에 충분한 경상도 사람과는 달리 뭔가 감추는 구석이 있는 듯한 전라도 사람의 언행(전부 그렇지는 않았지만 그런 경향을 감지되기는 했었다)이 석연찮았음을. 다시 말해 전라도 사람에게서 느낀 문화적 이물스러움을 극복하지 못했음을.


그렇다면 외지인을 처음부터 수상쩍게 응시하는 이 나라 이 사회에서 영남인들이 호남인들에게(호남인들이 영남인들에게) 가진 편견이 얼마나 강한지는 굳이 추측할 필요도 없겠다.
 
더구나 대구경북인들은 자기네가 신라의 주인이었으며 고려와 조선의 주축이었고 선비의 후손인 데다가 대도시 대구도 끼고 있으며 박정희를 길러냈다는 자부심에 가득차 있었다. 반면 김대중은 호남에서 자라나 가방끈도 짧은 주제에 전라도 사투리로 뛰어난 연설을 하고 다녔다. 그런 김대중이 사상이 의심스러운 주제에 박정희의 권력에까지 도전했으니 대구경북에서 그는 ‘난신적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영남 출신인 사이버 칼럼니스트 김동렬씨가 ‘서프라이즈’에 게재한 글에서 나는 “안동 양반, 의성 사람, 군위 것들, 영천 상놈”이라는 재밌는 어구를 발견했다.
 
대구경북인들끼리의 이질감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사투리도 지역별로 크게 다르며(내가 사는 구미도 사투리 종류가 두개로 분류된다는 풍문을 들은 적이 있다), 다른 지역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서로서로 우월감에서 열등감을 표출하는 데 열정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하물며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의 차이는 어련할까.
 
그러나 아무리 성마른 인간이라도 싸움에 지치지 않는 자는 드문 법이다. 분열과 대립을 흥정과 담합으로 매듭짓자는 공감대는 마침내 확산되고, 이때 르네 지라르가 표현한 '속죄양'이 창조된다.
 
한 부락에서 흔히 기묘하고 고독한 인간 하나가 돌팔매를 맞거나 마을의 평화를 위해 처녀가 괴물에게 바쳐지듯 속죄양은 공동체 내부에서 설정될 수도 있지만, 교통 통신의 발달로 인해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골드스타인처럼 외부자가 속죄양으로 지목받기 쉬워졌다. 소백산맥 너머의 김대중과 호남인은 영남 공동체의 평화와 결속을 위한 속죄양이었다.


김대중이 100 중에 51을 얻는 데 실패했다는 것도 영남인들의 공격 욕구를 부추겼을 것이다. 지역구도는 (메틀 밴드인 ‘블랙홀’의 제목을 빌자면) ‘1대4의 갈등’이었다. 서울에서 그가 적이 지지를 얻어도 영남은 “김대중이 찍는 서울내기들은 상경한 전라도놈들이라 카더라”는 마타도어로 방어할 수가 있었다.
 
강남을 비롯한 수도권 일부지역이나 충청강원의 ‘DJ혐오’도 끈질기진 못했을망정 정도가 크게 덜하진 않았다. 그리하여 김대중은 대한민국 전체의 속죄양이 되었다.
 
너거는 남이다.


과연 TK는 DJ에게 이겼는가. 개발독재의 추한 진면이 드러나는 정도와 비례해 DJ 햇볕정책의 역사적 의의는 뚜렷해질 것 같다. 반면 논리가 안되어 힘으로 밀어붙이던 TK는 이제 힘마저 상실했고, 말수를 줄이고(이것은 탄핵 직후 20%도 넘지 못한 한나라당 지지율이 개표 결과 35%가 된 비결이다) 귀를 틀어막기나 한다.
 
이 낙오한 TK를 진보진영이나 개혁세력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  TK의 지역주의는 세가지의 결합물이다. 첫번째는 '우리 사람'을 챙기는 연고주의다. 두번째는 패권주의다("김윤환을 살리다가 대중이 이로운 짓하느니 타향인인 이회창을 돕겠다").  셋째, 수구이념이다.
 
(* 한나라당의 당내 갈등도 이와 연관지을 수 있다. 영남권과 수도권의 대립은 연고주의의 충돌이다. 무리를 해도 분당은 불가능하니 한나라당의 신주류로 올라서려는 투쟁을 벌이겠다는 심보는 ‘패권주의’에 기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영남을 지키려면 “보수색”을 강화해야 한다는 부류는 ‘수구이념’을 좇은 셈이다.)


열린우리당은 영천에 민정당 출신 인사를 공천하여 두가지를 얻었다. 하나는 승산이고 하나는 개혁의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난이다.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전국정당으로서 단기간에 TK에 교두보를 마련하고자 한다면 개혁의 원칙 따위는 내팽개치는 게 맞다. 반대로 개혁세력으로서의 진정성을 높이려 한다면 지는 싸움을 피할 수 없다.
 
열린우리당이든 민주노동당이든 제 정신이라면 TK를 포기하라. 대신에 TK의 '반골'들을 안고 가야 한다. TK가 다른 지방보다 비교적 인구도 많고 땅도 넒다는 점은 호남보다 여론의 분화가 용이하다는 걸 방증한다.
 
실제로 TK의 최근 투표행태는 '몰표'라고 일축하기는 힘들었다. TK의 반골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기성세대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다가 그들의 전근대적 태도와 등지게 된 자생적 반골이 있고, 대학 진학 등의 이유로 고향을 떠나 수도권 등지에 살면서 TK정서를 반성하게 된 반골 유학파가 있다(필자는 두 부류 모두에 속한다). 그리고 소수이지만 서민이 먹고 사는 데에는 뭔가 다른 정치적 자세가 요구된다고 깨달은 계층계급적 반골이 있다. 이 반골들에게 지역내 소수자로서 활동할 에너지 그리고 다른 지역과의 연대할 기회를 주는 중장기적 기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고향과 고향 사람을 힐난하는 필자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그럼에도 TK의 반골들은 소리쳐야 할 것이다. TK스러운 것들, 너거는 남이다!
 
추신: 95년 민주당 분당 때 중학생이라 잘은 모르지만 도의에도 어긋나고 역사에도 불행한 사태라며 DJ를 맹비난하고 다녔던 내가, 고등학생이라 자세히는 알 수 없어도 김대중이 신자유주의에 투항한 것은 확실하다고 큰소리쳤던 내가, 졸지에 김대중을 조금도 비판하지 않는 글을 쓰게 되었다. TK 지역주의에 이 영광을 돌린다.
  
* 글쓴이는 경북 구미시 시의회 의원(무소속)입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 최연소(27세) 기초의원에 당선돼 현재 시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2002년 <대자보> 필진으로 참여한 이래 다년간 정치칼럼 등을 연재해 왔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대자보> 독자들과 만납니다.
기초의원으로서 풀뿌리 정치 현장에서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블로그 : http://kimsoom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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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4/23 [03:4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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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몬향기 2011/03/01 [15:55] 수정 | 삭제
  • 내가 김대중 딸인데,
    왜 이렇게 시끄럽소?
    김대중 딸 별 보잘 것 없으니 아껴둔 필붓으로 TK나 까시오.
    벗겨도 벗겨도 또 까지는 양파같으니 재밌기도 할 것이요.
  • zzz 2005/04/26 [05:51] 수정 | 삭제
  • 역사를 잘 아는 편은 아닙니다만..그리고 조선시대 얘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만...
    [조선시대에서 함경도 지역과 영남 지역은 양대 비주류..]
    이 부분은 큰 오류가 있어 보입니다.영남과 서북지역을 동렬선상에 놓다니요..
    영남이 비주류였다는 건 순전히 집권층 내에서의 비주류 얘기인 줄 아는데요.요즘에 비유하자면 (열린우리당/한나라당 비주류...) 이런 식으로요.노론과 남인의 권력투쟁에서 남인이 밀렸단 얘기 아닙니까?
    반면에 서북지역은 홍경래의 난도 있었고 유교적 지배체제에 대한 반발로 기독교가 급속히 퍼진 걸로 아는데요.
  • 기억하다 2005/04/26 [00:16] 수정 | 삭제
  • 뭐 하나 물고 늘어질 건덕지가 없나 헤매다가 잘 됐다며 덤벼드는 패거리들의 장단에 맞춰 한나라당이 구미에 와서 김덕룡이 “영남 사람들 ‘니기미’하고 일어서면 무섭다!”며 기염을 토했고(전북 익산 사람들은 대체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건가), 집회를 열었던 공단운동장에서는 민주노총의 깃발도 휘날렸다(‘낮에는 노동조합 밤에는 한나라당’, ‘임금인상 때는 파업하고 선거할 때는 기호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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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쓴 이는 착각하고 있는 듯.

    그 때 '니기미' 하면서 진짜 니기미 개조카튼 개소리를 주절댄 개십새끼는 김덕룡이 아니고 정창화라는 놈임.

    하긴 김덕룡이나 정창화나 김호길이나 이규택이나 이기택이나 이회창이나 강삼재나 박근혜나 정형근이나 김용갑이나 안택수나...그 개새끼가 그 개새끼이다만.

    (여기에 든 이름들은 김대중 정권 당시 지역감정을 극렬하고 야비하게 선동하던 놈들 중에서 생각나는대로 든 이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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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화 그 쓰레기 새끼가 '니기미' 거리면서 지역감정을 선동해댔던 그 당시의 기사)


    비난의식 지역감정 발언 자제/구미집회 이모저모
    한겨레 1999-02-01

    31일 오후 경북 구미공단 대운동장에서 열린 한나라당의 '김대중 정권 국정파탄과 부당빅딜 규탄대회'는 쌀쌀한 날씨에도 당원과 시민, 대우전자.엘지반도체 근로자 등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띤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이회창 총재 등 연사들이 대기업 빅딜을 비난하는 연설을 할 때마다 종이태극기를 흔들며 '이회창'을 연호했다....한나라당은 이날 '지역감정 조장'이란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신 구미를 비롯한 대구경북지역 경제의 어려움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면서 경제정책의 부당성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다.
    한나라당은 특히 이 지역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임을 겨냥해 지역경제 문제를 박 전 대통령과 연결시키는 모습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맏딸인 박근혜 부총재는 규탄사에서 "오늘 아침 저를 낳아주고 아버지를 길러주신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마음이 무거웠다"며 "아버지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구미공단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것은 정부의 부당한 빅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정창화 의원(경북 의성)은 "경상도 사람은 마지막 순간 행동하기 전에 'XXX'라고 한다"며 "현 정권은 이런 말이 나오기 전에 각성하라"고 욕설을 늘어놓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대우전자와 엘지반도체 근로자들은 이날 노조 차원에서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상당수가 개별적으로 참석했다. 대우전자 노조원이라는 김경택(40)씨는 "정치적으로 오해를 살 수 있어 개인적으로 참석하기로 했다"며 "일요일이어서 노조원 대부분이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원들은 이날 행사장 곳곳에 서명대를 만들어 놓고 시민들로부터 빅딜 반대 서명을 받았으며, 빅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유인물을 돌렸다.
    ...민주노총 구미지역협의회와 구미시 농민회 등 4개 지역단체는 구미집회를 반대하는 성명을 내고 "한나라당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노동자들의 투쟁을 악용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구미경제살리기 비상대책위도 성명에서 "장외집회는 불안한 구미시민들의 정서를 더욱 자극할 것"이라며 불참 이유를 밝혔다. 구미/안재승 기자




    한나라 구미집회 안팎;'빅딜몸살' 공단근로자 대거몰려
    조선일보 1999-02-01

    야 "경상도 문전옥답 다 망쳐";지역경제 파탄시킨 실정 집중 성토;여, "지역주의 선동 벗어나라"◈31일 경북 구미공단 운동장에서 열린 한나라당의 「김대중 정권의 국정파탄 및 부당빅딜 규탄대회」는 머리에 띠를 두른 당원과 공단근로자 등 1만5천명이 몰려 열띤 분위기였다.
    이곳 출신 김윤환(김윤환) 의원과 구미 시민단체의 집회 반대로 참석자는 줄었지만、 빅딜 대상인 대우전자와 lg반도체 근로자들은 「시위복」 차림으로 참가、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당측은 소형 태극기를 나눠주어 대회장에 태극기 물결을 연출했다.
    대회장 주변엔 포장마차가 몰리는 등、 대선 유세장을 방불케 했다.
    가장 큰 박수는 박근혜(박근혜) 부총재에게 쏟아졌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정성들여 키워놓은 구미가 왜 부당한 빅딜로 신음하게 됐느냐』고 말하자 집회는 절정에 달했다.
    정창화(정창화) 의원은 『구미경제는 경상도 사람들의 쌈지를 채워주던 문전옥답이었다』며 『lg반도체와 대우전자 없는 구미경제는 앙꼬없는 찐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경상도에서 부당하고 섭섭한 일이 있을 때 내뱉는 말이 「니기미」인데、 정부는 경상도 사람이 「니기미」하고 일어나기 전에 각성하라』고 분위기를 돋웠고、 이때문에 다른 의원들도 사투리를 많이 섞어 연설했다.
    이회창(이회창) 총재 등 지도부는 「정치 검찰 파문」과 「국가정보원 정치사찰」 여권의 야당파괴 및 정계개편 추진 등을 집중 성토했다.
    이 총재는 『검찰의 정치도구화와 안기부 정치사찰은 나라의 붕괴 조짐을 알리는 신호』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권은 대화를 하자면서 다른 한편으론 야당의원을 대규모로 빼가 정계개편을 시도하고 있다』며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이 제2건국운동으로 새 정치세력을 모으는 것은 자신이 임기를 마친후에도 dj정신이 향후 수십년간 한국을 지배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김덕룡(김덕룡) 부총재는 『현정권이 검찰을 권력의 하수인으로 만들려 하고 있어 심재륜 대구고검장이 들고 일어났다』며 『이는 항명(항명)이 아니라 검찰을 국민의 검찰로 똑바로 세우려는 양심의 목소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lg전자 구미공장은 비메모리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춰놓고 있는데도 현대반도체에 통합시키려 하고 있다』며 『정권과 특정기업에 의한 빅딜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박관용(박관용)부총재는 『충청도와 전라도간 지역연대로 정권을 잡아놓고 이제는 전라도와 tk가 연합해 지역정당을 만든다고 한다』고 비난했고、 이어 『광주의 ob공장은 돌아가고 구미의 ob공장은 문을 닫았다.
    광주의 아시아자동차는 돌아가지만 부산의 삼성자동차는 문을 닫게 됐다』(서훈.서훈의원)、 『소주는 참소주를、 맥주는 ob라거를 마셨지만、 지금은 ob맥주가 망해 ob라거를 마실수 없게됐다』(박헌기.박헌기의원)는 말도 거침없이 쏟아졌다.
    대회에 앞서 이회창 총재는 박근혜 부총재 등과 함께 구미시 상모리의 박 전대통령 생가를 찾아 헌화했다.
    박 부총재의 손을 잡고 『구미 경제 좀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 구미=이종원.jwlee@chosun.com/이하원기자.may2@chosun.com >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31일 열린 한나라당 구미집회를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경제회생을 방해하는 「선동집회」로 규정、 강력 규탄하면서 추가 장외집회의 중단을 거듭 촉구했다.
    양당은 연쇄 논평을 발표、 한나라당 이회창(이회창) 총재를 집중 성토했다.
    정동영(정동영) 대변인은 『빅딜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것인데、 이를 저지하다니…、 경제를 다시 죽이자는 거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당내에서조차 반대하는 장외 선동집회를 이 총재와 소수 강경파들이 주도하는 숨은 이유는 방탄국회를 통해 소속 의원들의 부패비리 혐의를 감싸는 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궁지를 모면해 보려는 철저한 당략』이라고 비난했다.
    한화갑(한화갑) 총무는 『한나라당의 빅딜 반대는 자신들이 망친 경제살리기를 중단하라는 얘기』라고 비난했고、 정균환(정균환) 사무총장도 『한나라당이 정리해고된 사람들을 선동에 이용하는 것은 경제회생의 발목을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야당이 빅딜 대상기업이 있는 지역만을 골라다니며 노동자들을 선동하는 것은 자신들이 망쳐놓은 경제를 살려보려는 현 정부의 피나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자민련도 심양섭(심양섭) 부대변인 논평을 통해 『야당의 구미집회 강행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는 지역주의 환각에서 하루빨리 깨어나라』고 말했다.
    < 최병묵기자.bmchoi@chosun.com >




  • 김수민 2005/04/25 [20:17] 수정 | 삭제
  • 대구경북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대구경북의 의식에 비추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것은 단기간에 바뀌지 않는다. 문화혁명이나 크메르루즈 같은
    공포가 없는 한 말이다.
    솔직히 말해 대구경북은 분리독립시키거나 일본에 확 줘버려도
    시원찮은 곳이다. 그러나 내가 그런 주장까지 나가지 않는 것은
    그렇게 되면 대구경북 내의 양심적인 사람들이 받을 탄압이 몹시
    커진다는 것이다.
    나는 대구경북을 포섭하는 게 아니라 통제하는 길을 찾을 뿐이다.
  • 김수민` 2005/04/25 [19:59] 수정 | 삭제
  •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되던 당시 나는 경북고에서 학생들이 노태우가 식수한 나무를 뽑아버려야겠다고 난리라는 얘기를 주로 들었지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되어서 TK의 정서가 자민련으로 갔다는 건 듣다 듣다 처음들어본다.]

    >>>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되던 당시에 젊은층에서 규탄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학생은 학생이지 어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욱 더 주목해야 할 것은 TK에서 전두환 노태우를 싫어하는
    사람도 박정희에게는 그러한 판단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전두환 노태우는 박정희라는 원조를 대신해서
    돌팔매를 맞는 희생양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언제 글에서 전두환 노태우 구속 때문에 TK 정서가
    자민련으로 갔다, 고 단정했다. 이미 그 이전부터 기미가 있었다.
    일례로 95년 대구 시장선거에서 신한국당의 조해녕은
    무소속의 문희갑, 이해봉이나 자민련의 이의익한테 처절하게 밀린다.

    이거 하나 분명히 하자. 대구경북에서 전두환 노태우를 욕한 건
    광주학살 때문이 아니라 비자금사건 때문이었다. 고로 전두환보다
    노태우가 더 욕을 먹었고 박정희는 무사태평했다.

    당신은 신문방송만 보지 말고 길거리나 식당 등지에서, 택시를 타면서,
    여론을 귀동냥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당신이 김동렬 글의 제목을 보고 적은 이따위 정서는 지역마다 다 있다. 내가 충북에서 꽤 오래동안 살때도 옥천놈은 어떻고, 영동놈은 어떻고, 보은놈은 또 어떻고 따위의 정서가 있었고 서울바닥에서도 강남, 강북을 나눈다.]

    >>> '글쎄' 당신의 독해력이 굉장히 의심스럽다. 당신은 글을 코로 읽나?
    내가 적은 저 문단은 TK 지역주의의 분화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TK 안에서의 적지 않은 정서차이가 어떻게 김대중과 호남인이라는
    속죄양을 통해 무마되는 과정에서 든 한 예일 뿐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지적할 것은 경상도 사람이 모두 그런 건 아니고
    나 역시 지역성이나 나아가 국민성이라는 개념을 싫어하긴 하지만
    경상도 사람들에게서 잘 나타나는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 편 나눌 때 그다지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TK 지역이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지역이었다는 걸
    내가 모를 것 같나. 이문열이 아부지를 보라고?
    박정희의 형, 박상희는 어떻고.

    그런 것만 부각시키는 건 단순히 TK가 공포와 피해의식으로
    수구반동화되었다는 거짓말을 낳게 한다. 웃기는 얘기다.
    임지현의 대중독재론에 적잖은 오류가 있겠지만 적어도 그런 이야기는
    당신과 같은 논자들 때문에 안티테제로서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20세기 초중반, 외세와 분단을 거치면서 사회주의는 일종의
    선진사상으로 인식되었다. 강경한 성격의 TK 지식인들한테 굉장히
    어울리는 게 좌익이념이었던 것이다.
    호남 같은 경우 일제시대부터의 암태도에서 벌어진 운동에서 짐작하듯
    농민들이나 하층계급이 진보적인 의식을 가졌다면
    영남의 진보세력은 몰락한 양반, 즉 '잔반'계급이 많았던 것이다.

    이들은, 첫째, 엘리트의식이 있었고, 둘째, 집안의 몰락을 통해 조금 다른 관점을 얻었으며, 셋째, 나라의 패망과 불행에 따라 선구적인 의식을 갖게 되었던 특성이 있다.

    그러나 그랬던 역사를 추억하는 것은 TK에게 의미가 없다.
    당신도 역사 공부를 조금이라도 했으면 알겠지만
    몽양계보였던 사람이 5.16에 참여하기도 하고
    진보당 출신 인사가 민정당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고 김소진 씨의 단편소설 에 등장하는 한 인물은
    정권실세인 아버지가 한때 혁신계에 몸담은 걸 구도
    일종의 틈새공략으로 정의내리기도 한다.

    물론 TK의 과거 진보세력들 가운데에는 여러 부류가 있었겠고
    옥석이 뒤섞여 있었겠지만 그들 중 가운데 얼마나 오늘날에도 과연
    진보성을 유지하였을까.

    기억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당신의 증조부나 조부가 좌익을 지지했을
    확률이 7,80%다. 미군정 여론조사 결과다"라고 해봐야 아무도 안 믿는다.
    TK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믿지 않는다.
    이게 단순히 겁을 줘서 그렇게 된 건가.
    조상들이 독립운동할 때 모두가 지지하고 도와주고 기대했을까.
    그때도 "저놈 저거 공부 열심히 하더니 공명심에 빠져서 쯧쯧"했던
    사람은 없었을까.

    TK가 가진 진보성이 알량했는지 진지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누구도 그런 역사를 되새기려고 하지 않으며,
    TK의 수구성은 젊은 학생들한테도 유전되고 있다.
    (되풀이 말하지만, 전두환 노태우를 쥑이뿐다고 떠들었던 놈들이
    과연 박정희에 대해 같은 자세를 유지할까, 고민하길 바란다.)

    '글쎄'란 아이디의 당신은 대구경북의 말살된 진보성을 복원하자고 한다.
    복원은 깨지고 훼손된 걸 손질해서 되돌리는 것이다.
    폭격 맞은 초가집이 복원으로 다시 세운다? 어울리는 표현인가?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설사 TK에 복원할 진보성이 남아 있었더라도
    그것은 오래 전에 권력욕과 기회주의에 보수로 변질되고 말거나
    계층계급의식을 잃고 민족주의에 자족하고 말았다.

  • 글쎄 2005/04/25 [17:49] 수정 | 삭제
  • 난 이상하게도 당신과 비슷한 연배이고 집안이 올 경상도인데도 당신이 적은 말들이 매우 생경하다.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되던 당시 나는 경북고에서 학생들이 노태우가 식수한 나무를 뽑아버려야겠다고 난리라는 얘기를 주로 들었지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되어서 TK의 정서가 자민련으로 갔다는 건 듣다 듣다 처음들어본다. TK정서가 이반된 것은 당시 대구지하철 사고 당시 거듭되는 대형사고에 정신없던 YS정부가 대구지하철사고를 축소, 은폐하려 했던대서 비롯되었다고 보는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게다가 당신이 김동렬 글의 제목을 보고 적은 이따위 정서는 지역마다 다 있다. 내가 충북에서 꽤 오래동안 살때도 옥천놈은 어떻고, 영동놈은 어떻고, 보은놈은 또 어떻고 따위의 정서가 있었고 서울바닥에서도 강남, 강북을 나눈다.

    "더구나 대구경북인들은 자기네가 신라의 주인이었으며 고려와 조선의 주축이었고 선비의 후손인 데다가 대도시 대구도 끼고 있으며 박정희를 길러냈다는 자부심에 가득차 있었다." 이건 또 어디서 나온 말인지 모르겠다. 대체 근대 이전의 일을 들먹이는 것도 왜 그런지 의문이지만 조선시대에서 함경도 지역과 영남 지역은 양대 비주류였음은 역사책을 한 5분만 들여다보면 나온다.

    한마디로 당신은 꽤 객관적이고 잘아는 척하고 이 지역 출신이라 이 지역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만큼 지역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도 가득차있다.

    TK지역정서, 분명 문제가 많다. 당신이 적은 말 중에서 동감하는 부분도 매우 많았다.

    하지만 난 당신이 그렇게 핏대올리는 TK의 문제점을 다른 시각에서 분석하는 편이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TK지역은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지역이었다. 진보당 조봉암의 가장 큰 텃밭이었고 대구는 조선반도의 모스크바라고 불릴 정도로 마르크시즘에 경도되어 있었다.(이문열이 아부지 봐라) 아직도 10월 폭동으로 불리고 있는 역사상 가장 큰 민란이라는 10월 인민항쟁도 대구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비극이기도 했다. 10월 인민항쟁은 4.3 항쟁 못지 않게 잔인하게 탄압되었고 6.25 당시 양민학살은 타지역보다 3배나 많았다고 한다. 진보성은 철저하게 말살되었다. 4.19의 시작을 알리는 2.28은 어디서 시작됐나? 대구아닌가? 60년대 학생운동의 중심이었던 김중태는 의성출신이었고 인혁당 사건에서도 주로 TK세력이 중심이었다. 난 대구 경북의 바로 이런 진보성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말살된 진보성과 극심한 빨갱이 컴플렉스. 한마디로 이 지역의 기성세대의 삶은 이문열의 삶과 매우 유사했다. 다른 지역보다도 더.

    당신은 대구경북의 치부를 밝혀내고 비난하면서 대구경북을 변화시키려 한다. 난 거기에 대해 회의적이다.대구경북의 말살된 진보성을 복원해서 계승하는 것만이 TK의 진보를 위해서도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매우 많은 선결과제들이 있겠지만
  • 눌이꾼 2005/04/25 [00:43] 수정 | 삭제
  • 누가 글을 쓰고 다른 누가 댓글을 달면
    좀 논리를 대라.. 논리를..
    나이가 많은가 보지? 그래봐야 두자리잖아.
  • 뭐랄까.. 2005/04/24 [19:10] 수정 | 삭제
  • 그리고 나름대로의 시각도 갖추려 한 것 같은데..
    (비꼬는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는 것임)
    여전히 지역주의적 편견의 앙금이
    남아있는 느낌을 받는건 왜일까..

    그럼에도 열린 혹은 객관적 진보적 시각을
    자처함으로 인해
    그 편견의 앙금이 묻혀가거나 정당화될
    위험성도 다분히 엿보인다는 것..

    어쨌거나 잘 읽었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시니
    좀 더 깊고 꾸준한 공부 있으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본인이 깨뜨렸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지역주의 프레임이나 사고의 틀을
    다시한번 점검해보시길 바랍니다

    님의 글을 읽는 독자들은
    영남(진보적이든 수구적이든) 사람보다는
    비영남인이 당연히 많을 터이고
    나름대로 진보적이고 건강하게 살려는
    지식인들이 많을 터,
    그들이 기준이 되야지
    혹여나
    님이 영남인임에도
    그 시각에 함몰되지 않았다거나
    나아가 깨였다거나 하는 생각으로
    자족하지 않기를...


  • 호민관 2005/04/24 [09:21] 수정 | 삭제
  • 나이를 들먹여 죄송합니다만
    글재주도 사실을 보는 정확한 눈도 있군요

    좋은 언론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 놀란사람 2005/04/24 [05:01] 수정 | 삭제
  • 그리고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