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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가 수놓은 '자유의 무늬'
인터뷰·『한국일보』 편집위원 고종석ba.info/test.html'>
 
박민영   기사입력  2003/01/02 [18:57]
{IMAGE1_RIGHT}어떤 이는 기자, 소설가, 에세이스트이며 국어학자인 고종석의 글을 두고 '그의 문장은 완벽한 예술품'이라고까지 극찬했다. 언어를 정교하고 섬세하게 사용하는 이와 대화를 하는 것은 평범하고 소심한 이에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고종석은 자신이 결코 완벽주의자가 아니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는 "받는 임금만큼만 일하자는 주의"로 기자의 긴장감을 무너뜨렸다. 다른 비판적 지식인과는 달리 타인과의 논쟁에 잘 임하지 않는 이유가 겸손하기 때문인지 냉소적이기 때문인지 양자택일하라는 기자의 질문에, 사실은 겸손하기 때문이지만 그렇게 말하면 겸손하지 않은 인상을 주기 때문에 냉소적이라서 그런다고 즐겁게 답했다. 인터뷰는 12월 7일 광화문의 어느 찻집과 식당에서 있었다.

『자유의 무늬』라는 제목으로 최근에 나온 칼럼집의 한 글에서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사람이 마지못해 투표"하는 건 불공정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하셨는데, 투표율이 높을수록 더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는 통념과는 좀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떤 사람이나 정당을 지지한다고 할 때 혹은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변하기를 바란다고 할 때, 그 지지나 희망의 강도가 있겠지요. 이 사회가 이런 식이었으면 좋겠다는 10의 욕망을 가진 개인의 한 표가 1의 욕망을 가진 개인의 한 표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생각을 지닌 개인의 한 표로 상쇄되는 건 매우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즉, 사회의 운행이 어떻게 되든 무관심한 이들은 굳이 투표소에 갈 필요가 없다는 거지요. 오히려 공동체 전체의 의사를 왜곡하는 역할만 하게 되니까. 문제는 나름대로 또렷한 정치지형을 가진 이가 단지 게으름 때문에 기권하는 경우에 있는 거지요.

온건보수 정당과 온건진보 정당이 정치지형의 주류를 이루는 '정치의 정상화'를 바라는 게 고 위원님의 희망인데, 지방선거 직전엔 진보정당에 한 표를 던질 것을 권하셨고 최근엔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칼럼을 통해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계십니다. 현직 기자로서 자신의 정치적 주관을 드러내는 것을 신문사에서 부담스러워하거나 말리진 않던가요? (웃음)

신문사에서 부담스러워하지요. 하지만, 제가 신문기자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고 정치적 의사를 밝힐 권리가 있으니까 불공정한 왜곡을 수반하지 않는다면 말할 자유는 있겠지요.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예전에 이런 말을 했잖아요. '우리는 편파적이다. 하지만 편파성에 이르는 과정은 공정하다.' 유시민 씨도 칼럼니스트의 정치적 중립은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저도 거기에 동의합니다.

진중권 씨가 고 위원님을 '우리 나라에서 유일한 자유주의자'라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제가 보기에도 고 위원님은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유시민 씨와 성향이 비슷하신 것 같습니다. 사회민주주의적인 성향의 자유주의랄까……. 유시민 씨가 개혁국민정당을 만들어 뛰어다니는 모습을 어떻게 보십니까?

저도 노무현 후보 지지도가 이런저런 이유로 바닥을 쳤을 때, 실천할 수 없을 것 같아 포기하긴 했지만, 너무 안타까워서 유시민 씨처럼 나서서 정치라도 하고 싶었어요. 유시민 씨는 저보다 훨씬 더 순수하고 총명하고 실천적인 사람이니까 실행할 수 있고 저는 그럴 능력이 안 되지만,(웃음) 아무튼 심정만은 유시민 씨와 똑같았어요. 내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이러고 있구나 하는 자괴감도 좀 들었고요.

아마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들 중엔 노무현 후보와 권영길 후보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이 제법 있을 텐데요. 노무현 지지자들은 민노당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싸잡아 비난하는 걸 못마땅해하고, 권영길 지지자들은 자신들에 대한 '한나라당 2중대'식의 폄하를 기분 나빠하는데, 양쪽 지지자들의 그런 갈등은 어쩔 수 없는 걸까요?

저는 대통령제하의 국가들이 대부분 갖고 있는 결선투표제를 우리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선투표를 통해 50퍼센트 이상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이 나오는 것도 의미가 있고, 아마 결선투표제가 있으면 노무현 지지자와 권영길 지지자들 사이의 갈등도 불필요해지겠지요. 전략적 투표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 소신대로 찍으면 되니까.

노무현을 지지하는 분으로서 진보 정당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랄까 그런 건 전혀 없으신가요? 이념을 떠나 보다 장기적인 진보의 씨앗을 뿌리는 이들의 노력에 대해.

결선투표제가 없는 현재의 대선 국면에서 저는 민노당에 미안하거나 안 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실 걱정이 돼요. 표를 너무 많이 가져갈까봐.(함께 웃음)  

고 위원님과 친분이 두터운 홍세화 선생의 경우, 그분과 이야길 나누다 보면 어쩌면 투표장에서 노무현을 찍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던데요.(웃음)

저도 이야기 듣다 그런 생각이 들데요.(함께 웃음) 그래도 권영길 후보 찍겠지요. 권영길 후보 지지를 공언하셨고, 민노당 그냥 당원도 아니고 '스타 당원'인데, 투표장에서 그만한 일관성은 보이시겠죠.(웃음)

고 위원님 에세이집 필자 소개란에 보면 "좋아하는 정치인은 노무현, 추미애"라고 되어 있습니다. 문성근 씨는 노무현을 지지하는 이유를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했는데, 고 위원님이 노무현을 좋아하는 이유를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하라면 뭐라고 표현하시겠습니까?

'시민적 양식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의 문화적 소수파를 대표한다' 정도로 해두겠습니다. '문화적 소수파'는 양적 소수파와 어긋날 수도 포개질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 사회에서 명문대 졸업생은 양적 소수파이면서 문화적 다수파이죠. 노동자는 양적 다수파이지만 문화적 소수파이고, 장애인이나 외국인 노동자는 양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소수파입니다. 즉, 제가 사용하는 '문화적 소수파'란 개념은 사회 통념과 관행의 질서 속에서 불이익을 받는 집단이란 뜻이죠. 만약, 특정 언론들이나 한나라당에서 주장하듯, 노무현 후보가 '좌파'라면, 그 좌파는 문화적으로는 소수파이지만(왜냐 하면 아직도 좌파라는 낙인은 통념과 관행에 매개되어 불이익을 낳으므로) 양적 다수파인 것은 확실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좌파'들이 노무현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IMAGE2_RIGHT}『월간 인물과 사상』 1월호를 손에 쥘 무렵이면 누구로든 차기 대통령은 확정되어 있을 텐데, 그때쯤 고 위원님 기분이 과연 어떨지 궁금하네요.(웃음)

제가 유시민 씨와 생각이 조금 다른 건, 이회창 후보가 집권한다고 해서 공안정국 수준으로 우리 사회가 크게 퇴행할 것 같진 않다는 거죠. 또, 노무현 후보가 집권한다고 해서 제가 생활하는 현실이 크게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요. 하지만, 공안정국보다 더 무서운 건 이런 것이지요. 아, 옳고 그름이란 현실 정치에서 아무 의미가 없구나, 이기는 건 역시 힘의 논리구나, 이런 사고가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 그리고 지역주의에 맞설 엄두를 내는 정치인이 나오지 못하는 것. 허무와 냉소가 마음속을 지배하는 것.

어느 글에서 '그러나, 늘 희망은 흐릿하고 불안은 또렷하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후보 단일화 이후 고 위원님의 정치적 희망은 좀더 또렷해졌나요?(웃음)

아니요. 여전히 불안해요.(웃음)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겐 노무현이 이길 게 확실하다고 말하고 다니죠. 후보 단일화 이전부터……. 저는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하겠다고 말했을 때 굉장히 짜증나고 답답했어요. 본인은 만약 지면 정몽준 후보를 지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수많은 노사모 사람들이나 개혁국민정당 사람들은 어떡하라는 거예요. 결과적으로는 노무현이 이겨서 다행이긴 하지만, 저는 그런 모험을 하는 노무현에게 경솔하다는 생각을 처음 했죠. 만약 정몽준 후보로 후보 단일화가 되었으면, 내키진 않지만 권영길 후보를 찍겠죠.

'내키진 않지만'이란 표현 때문에 인터뷰를 읽는 민노당 지지자들이 언짢을 수 있는데…….(웃음)

내키지 않는다는 건, '적극적으로 혹은 전폭적으로 지지하진 않지만'이란 뜻이죠.(웃음)

본래 영자신문사에서 기자일을 시작하셨는데, 이후 신문사를 몇 번 옮기셨고 중간에 공백 기간도 있었거든요. 왜 한 군데 오래 계시지 못하셨나요?(웃음)

『한겨레』를 그만 둔 건 1992년이죠. '저널리스트 인 유럽'이라는 언론인 연수 프로그램이 있어요. 전 세계에서 30명 정도 기자를 불러다가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인데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취재해서 기사를 쓰게 해요. 8개월간 그 연수에 참여한 뒤 제가 바람이 들었어요. 1993년 6월인가 돌아왔는데, 한국 생활을 접고 나가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이듬해 2월에 『한겨레』에 사표를 낸 뒤 프랑스로 갔습니다. 『한겨레』에 계약직으로 기사도 좀 쓰고 나중엔 『시사저널』 일도 좀 했고요. 그러다가 1997년 말인가 외환위기가 터졌잖아요. 환율변동이 심해지니 제가 버는 원고료로는 생활이 좀 어려웠어요. 또, 중1과 고1이 된 아이들이 있었는데 자기들 의사가 아니라 제가 좋아서 외국에 데리고 나갔잖아요. 그래서, 경제적인 이유, 아이들 문제 같은 것 때문에 생각 끝에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할 무렵 귀국을 했습니다. 돌아온 뒤 다시 직장을 구해야겠는데, 보통 신문사들이 경력 기자를 채용해도 3, 4년 정도 경력을 가진 기자를 뽑거든요. 저는 경력이 너무 길어서 안 되나 보다 하고 살다가, 1999년 10월인가 장명수 당시 사장님이 제안을 해서 『한국일보』에 들어가게 되었죠.  

고 위원님은 예전부터 우리말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최고의 문장가로 인정받고 계신데, 생각이나 관점의 차이를 떠나 문장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어떤 분들의 글과 문체가 특히 마음에 드시나요?

(잠시 생각하다) 소설가 최인훈 선생의 글이 굉장히 좋지요. 정과리 씨와는 『조선일보』 문제로 생각이 많이 다르긴 한데, 극단적인 번역 문투로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잘 만든 분이라고 생각해요. 시인 황지우 씨 글도 좋아하고요. 정과리, 황지우 같은 분들 글이 화장이 짙은 글이라면, 화장기가 없이 단아한 신영복 선생님 글도 아름답고요. 참, 진중권 씨 글도 제가 아주 좋아하니 포함시켜 주세요.(웃음) 근데, 제가 언급한 분들만 문장이 탁월한 건 물론 아닙니다. 제 독서 경험이 편벽되어 있으니까.(웃음)

고 위원님은 우리말에 대한 애정을 그간 글에서 많이 표현하셨는데, 외래어 사용에 대한 거부감이나 이런 쪽과는 다른 차원인 것 같더군요. 우리말다운 게 쉽게 말하면 어떤 겁니까? 질적으로 너무 높은 기준을 요구하시면 저 같은 사람은 부담되어서 글쓰기 어려운데…….(함께 웃음)

저는 단지 최소한 한국어의 통사 규칙, 문법에 어긋나지 않는 문장이면 좋겠다는 거지요. 그것만 충족되면, 번역 문투든 외래어가 섞이든 문체가 어떠하든 간에 다 열어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말들까지 포함해서……. 그러니까 어떤 스타일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비문이 아니어야 한다는 거지요. 기자나 대학교수가 쓴 글을 봐도 요즘은 주어와 서술어가 일치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기본이 안 된 문장이 많거든요. 예컨대, 강준만 선생의 글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양반이 비문은 안 쓰거든요. 그분이 특별히 스타일리스트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글이 속도감이 있고 더러는 선동적이기도 하고. 선동적이라는 게 나쁜 의미에서가 아니라 때로는 이성이나 논리가 아닌 감성에 호소하기도 한다는 건데, 그게 그 양반 글이 가진 힘이겠죠.

정확한 우리말을 쓰려면 더 나아가 아름다운 문장을 쓰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글쎄요,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겠죠. 좋은 문장은 마음속에 갈무리해 두고, 짬나는 대로 정확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쓰려고 애써보아야겠죠. 제가 '국어사랑'이라는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모국어에 밀착하는 지름길은 좋은 모국어 문장을 외우는 것 같아요. 저는 중등학교 국어교육도 독서교육을 그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독서교육의 한 부분은 '낡은' 암송교육을 포함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서정주의 시 <푸르른 날>의 주제에 대해 한 시간 동안 떠들 수 있는 사람보다는 이 시를 외우고 있는 사람이 모국어에 더 밀착한다고 믿거든요. 또,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말본』을 읽으며 저는 참 많이 배웠는데, 학생들이 그런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내가 국어 선생이라면'이라는 제목의 칼럼에 보면, 일 주일에 한번씩 아이들에게 독후감을 쓰게 하고 그 독후감으로 시험을 대신하겠다고 하신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추천하겠다고 하신 책들 중 제가 읽은 게 별로 없어서 무안하긴 했습니다만.(웃음) 만약, 고 위원님이 국어 선생님이 되셨다면, 입시의 영향에서 초연하게 가르치고 계실까요?(웃음)

입시에 별로 얽매이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아주 튀는 전교조 선생님이 됐을 것 같아요.(웃음)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지 못하는 몽상가로 찍힐 수도 있겠고, 아이들의 성적을 제 주관에 따라 매기는 불공정한 교사로 욕먹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래서, 지금 교사가 아닌 게 다행이죠.(함께 웃음)

대학생과 고3인 아들이 있으신데, 과외나 학원 수강 같은 사교육을 시키신 적은 없으신가요?

제가 그런 능력이 있어도 안 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경제적인 이유로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던 건데……. 제가 프랑스에 살 때는 그쪽이 공립학교이니 아이들 학비가 전혀 안 들었지요. 제 무능력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민망하긴 한데, 한국에 와서는 귀국한 뒤 1년 반 정도를 월세로 살았어요. 원고료로 집세 내기도 바빠서 아이들 과외니 학원이니 하는 건 전혀 신경 쓰지 못했어요. 그런데, 저희 아이들도 아버지가 돈을 적게 버니까 봐주겠다 이런 게 아니라, 공부에 뜻이 있는 아이들이 아니어서 학원 다니면서 악착같이 공부할 마음이 없었어요.(웃음) 작은 아이는 학교 자율학습도 갑갑해서 안 하고 싶은데, 자기가 이야기하면 선생님이 허락을 안 해주니까 엄마한테 졸랐나 봐요. 그래서, 요즘은 정규수업만 받고 오지요. 아파트 옆동에 제 누이가 사는데 그 집에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 조카들이 있어요. 초등학생인데도 이것저것 많이 배우던데 저는 옆에서 지켜보며, 행복할까 싶어요.

비슷한 주제의 글을 쓸 때 이전에 쓴 문장을 더 이상 '베껴' 쓰지 못하는 게 세 명의 독자 때문이라고 하셨지요. 고 위원님의 글을 빠짐없이 체크할 강준만 교수와 어느 열성 독자, 그리고 아들의 글을 빼놓지 않고 스크랩하는 아버지. 고 위원님 글을 일일이 스크랩하시는 것 보면 아버지의 자식 사랑이 남다르신 것 같네요.

남다른 정도는 아니고요.(잠시 침묵하다) 사실은 제가 저희 부모님이랑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아요.(눈시울이 붉어지며) 제가 살아오며 실망을 많이 끼쳐드려서 그런 것도 있고요. 저희 큰 아이가 폐가 안 좋아서 집에서 담배를 못 피우니까 같은 동에 사는 아버지댁에 가서 담배를 피기도 하고, 자주 들러 인사는 드리는데……. 좀 어색해요, 아버지 대하는 게.

안티조선 성향의 젊은 네티즌들 중엔 '우리편이지만 온건하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이'를 답답해한다고 할까 못마땅해하는 이들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좀 지난 이야깁니다만, 고 위원님도 네티즌 일부에게서 '회색주의자' 비슷한 이미지로 욕을 먹은 것 같은데, 기분이 어떠셨나요? (웃음)

제가 회색주의자인 건 맞는데,(웃음) 아무튼 욕먹으면 기분이야 안 좋죠.(함께 웃음) 약간 억울한 면이 있기도 했고요. 조중동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으면 웃어넘길 수 있는데, 리버럴한 젊은이들에게 욕을 먹으면 친구한테 한 대 맞은 것 같아서 기분이 무겁죠.

예전에 김정란 시인이 <조선일보를 위한 문학>이란 글에서 일부 출판사나 작가가 『조선일보』와 유착되는 현상을 비판했을 때, 고 위원님이 그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힌 적이 있지요. 그때, 김정란 시인이 『단행본 인물과 사상』을 통해 반박했는데, 이후 고 위원님이 재반론이 없었습니다. 김정란 시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신 건가요, 아니면 이견이 여전함에도 반론을 접어두신 겁니까?

후자입니다. 생각이 다르지만, 논리적으로 될 문제가 아니라고 보아서 반론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김정란 선생님이 조선일보 이데올로기와 그 작가들을 등치시킨 건 적절하지 않다고 저는 지금도 생각합니다. 어떤 패거리주의의 차원에서 비판한다면 모를까…….

강준만 교수가 『문학권력』이라든지 『한국 문학의 위선과 기만』 같은 책을 통해 문단의 특정 부면을 비판했는데, 비문학도가 문단을 거론하는 것 자체를 가소롭게 보는 문인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강준만 선생이 무슨 문학 이야기를 한 게 아니라 문화사회학적인 측면에서 문단의 행태를 거론한 건데 조금도 이상할 게 없지요. 또한, 특정 텍스트만이 아닌 해당 인물의 거의 모든 글을 충분히 읽고 이해한 뒤 비평에 임하므로 강준만 선생의 비판에는 대체로 문제가 없는 것 같아요.

강준만 교수의 인물비평 중 동의하기 어려웠던 경우를 든다면요.

좀 있긴 한데 이야기 안 하렵니다.(기자가 계속 부추기자) 글쎄요, 제가 강 교수님만큼 세상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 그런지, 욕하고 비판한 경우는 거의 전적으로 동의했고요.(웃음) 그분이 키워주고 호의적으로 다룬 몇몇 사람들에 대해선 좀 아니다 싶더군요.(예를 들어 달라고 하자) 에이, 그만 합시다. (웃음)

일전에 '『조선일보』는 동아, 한국, 경향 같은 정상적인 보수 언론이 아니다'고 언급하셨는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이에 명확한 구분을 지었던 생각에는 요즘도 변함이 없으신지요.

『동아일보』는 『조선일보』와 이제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서얼단상』이란 책을 내면서 사실은 맨 뒤에 이런 취지의 말을 덧붙였어요. '이 책을 써오면서 내 생각이 바뀐 건 거의 없는데 딱 하나 있다. 예전에 나는 『동아일보』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동아일보』와 싸우기 싫어서가 아니라 페이지 수 때문에 그 글을 빼면 안 되겠냐고 해서 빠져서 나가긴 했습니다만. 아무튼 『동아일보』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김대중 정부하에서 『동아일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조선일보』를 따라잡을 수 있었을 텐데, 『조선일보』를 흉내내면서 1등이 되려고 하니 추월할 수가 없지요. 나쁜 쪽으론 『조선일보』가 제일인데…….

『조선일보』에는 『조선일보』의 논조 때문에 마음 고생할 기자가 거의 없어 보입니다만, 『동아일보』에는 분명 힘들어 하고 자괴감을 느낄 기자들이 있을 것 같거든요. 사주나 고위 편집간부의 입장 앞에 기자들이 본래 그렇게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가요? 신문사의 편집구조라는 게.

모든 신문사가 다 그렇진 않은데 족벌신문들은 아무래도……. 『동아일보』에 마음 고생하는 기자들이 많을 텐데, 자꾸 나오잖아요. 못 견디고. 저는 김병관 씨가 정말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게 이런 거예요. 예컨대, 친일 문제만 하더라도 사실 김성수 씨 친일과 방응모 씨 친일을 같은 차원에서 볼 건 아니거든요. 작년인가 친일명단이 발표되었을 때 거기 두 사주가 같이 들어가서 비판을 받고 논란이 되었는데, 제가 『동아일보』 경영자라면 이랬을 것 같아요. '인촌이 친일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공도 많지 않으냐, 공과를 함께 비교해서 국민적인 평가를 해달라.' 이렇게 직접적으로 풀어버렸을 것 같아요. 그런데 바보같이 진짜 친일을 한 방응모와 한편이 되어 친일 문제를 부정하거나 맞서니 어리석지요. 방응모와 김성수 개인을 비교해본다면 차이가 크거든요. 그런데, 『동아일보』의 잘못된 대응 때문에 두 사람이 똑같아진 면이 있어요. 강도의 죄가 있는 사람이 죄값을 치르고 홀가분한 삶을 택하기보다는 스스로 살인강도의 죄가 있는 사람과 한편이 되기로 한 격이랄까. 『동아일보』 보면 정말 안타까워요.(웃음)

이메일을 사용하는 법을 뒤늦게 배우신 뒤, 아주 지적이고 유머 감각 있는 애인이 생겼다고 자랑하신 적이 있지요. 그 '애인'과는 여전히 연락이 되시는지, 그 글이 나간 뒤 사모님한테 혼나진 않으셨는지 궁금하네요.(웃음)

(한참 웃다) '저 남자가 진짜 심각한 사이라면 공개적인 글에서 얘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저희 집사람한테 있거든요. 그래서,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그 심리를 이용하여 글을 쓴 게 아니냐고 묻자) 제가 원래 남자보다 여자를 좋아해요.(웃음) 연락 주고받고 같이 술 한잔씩 하는 친구들 중에 여자들이 많거든요. 집사람도 이상하게 생각 안 하고요.(웃음)

5년 후엔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제 이미지 나빠져서 안 되는데…….(웃음) 대충만 이야기할 테니, 잘 정리해 주세요. 저는 빨리 회사에 사표 내서 출근 안 하는 게 꿈이에요. 지금 고3인 아이가 조금만 더 크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어요.(웃음) 영화 보고 산책하고 낮잠도 자고 또 집사람과 여행도 다니고 그렇게 살고 싶어요. 생활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원고를 써서 돈을 벌면 꽉 매인 시간에 출퇴근 안 해도 되죠. 퇴직하고 나면 소설도 다시 써보고 싶고요. 박형은 가끔 밤새워 술 마실 때도 있나요? 제가 술을 참 좋아하는데, 언제 한번 부를게요.

<약 력>

대학에서 법학과 언어학을 전공한 뒤, 『영자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등에서 경제, 문화, 국제뉴스를 담당했다.
소설집 『제망매』, 에세이집 『코드 훔치기』, 『자유의 무늬』, 『서얼단상』 등이 있으며, 현재 『한국일보』 편집위원으로 일일 칼럼을 쓰고 있다.

* 정리: 박민영 / 사진: 노순택
* 본문은 월간 [인물과 사상] http://inmul.co.kr 1월호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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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1/02 [18:5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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