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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노동자에게 가한 언론의 채찍을 고발한다
[언론비평] 언론의 눈에 그들은 짐승이자 흑인노예, 조선노무자일 뿐
 
양문석   기사입력  2006/07/26 [14:38]
포스코 점거농성보도 비판
 
조중동이 거품 물고 포스코를 공격한다. 점입가경, 자가발전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들의 눈은 오로지 깨지고 흩어진 현장과 말쑥한 사무직의 투덜거림에 맞춰져 있다. 헝클어진 머리칼에 새까맣게 탄 얼굴, 뼈에 거죽을 입힌 듯 마른 체구, 그들의 눈가에 맺혀 있는 이슬과 절망하는 표정에 대해서는 무관심이다.
 
짐승이 사람에게 대 들고, 짐승이 난장판을 벌였는데 이를 욕하지 않을쏘냐...뭐 이런 태도다. 링컨을 읽으면서 노예도 사람임을 배웠다. 미국에서 수입한 TV대하드라마 '뿌리'를 보면서 흑인의 삶, 노예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 지를 배웠다. 링컨을 읽은 사람, '뿌리'라는 미국드라마를 본 사람, 이들이 현재 70년대와 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이고, 포스코점거사태를 취재해서 기사로 알린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노가다. 한국인들이 언제든지 직장에서 잘리고 사업에 실패하면 생각하는 직업. 심지어 젊은 청춘들이 사랑에 실패하고 절망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도 고려하는 직업. 학창시절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직업도 노가다다.
 
월북작가 이기영선생이 쓴 소설 <두만강>에서 묘사하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조선노무자 학대. 월급 받아야 쌀 한 말도 살 수 없는 저임금,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살인적인 노동. 그로부터 거의 100년이 지난 21세기. 그 시절의 노가다들처럼 오늘의 노가다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는가.
 
죽지 않을 만큼의 임금으로 극히 소모적인 육체노동의 현장으로 내몰린 한국, 한국인. 그들은 '전력을 다해 바둥대는 전쟁 같은 노동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흑인처럼 조선노동자들처럼 살 수 없어, 21세기에 21세기의 노동자처럼 살기 위해 떨쳐 일어났다. 그런데 이들의 삶, 언제든지 우리들도 그 직업을 고려할 수 있는 노가다를 짐승처럼 묘사했고, 폭도처럼 공격했다.   
 
▲ 동아일보는 포항건설노조의 포스코 점거를 지역경제 등을 내세우며 도덕성을 흠집냈다.     © 동아일보 7월 21일자 pdf
 
조중동이야 그렇다 치자. 언제 그들이 노동자를 인간으로 대우한 적이 있는가? 언제 노가다를 사람으로 본 적이 있겠는가? 하지만 무료 보편적 방송이라는 지상파의 보도태도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아무리 노가다라지만 이들도 한국 국민인 바에야 지상파의 실제 주인이기 때문이다.  
 
△경찰이 포스코 점거를 주도한 노조원 60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경찰은 주동자 사법처리, 가담 노조원 2천명에 대해서도 형평성 차원에서 벌금△9일간 점거 농성이 지나간 포스코 본사에서는 대대적인 청소 시작△의자 집기 사무용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를 만큼 흩어져 있어 청소에 어려움△이번 점거로 2천억 원의 피해가 예상,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 방침
 
한 방송사의 7월22일 대한민국 지상파 방송뉴스의 내용이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나온 꼭지란 달랑 하나. △대량 구속에 대한 민주노총 반발. 포스코 일용직 건설 노동자의 요구안은 없다. △토요일 유급휴부, △시공참여자 제도 폐지, △임금 15%인상, △하루 8시간 노동 등 최소한의 요구 조건과 그것이 가지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여전히 언급이 없다. 하지만 뒤이어진 보도에 충격을 받는다. △부동산 동향, 특히 판교 중대형 분양이 가격이 높고 규제가 많아 실수요자들의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리포트가 이어진다.
 
어려움. 검거농성 이후 포스코 본사 청소하기 데 어려움을 보도한다. 판교 중대형 분양에서 규제가 많아 실수요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뉴스 꼭지로 채택한다.
 
생존권,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두고 처절한 점거농성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한국의 노가다, 짐승이지 않음을 흑인노예이지 않음을 증명하고자 고민하고 행동해서 포스코와 한국정부에 '사람답게, 최소한 사람처럼 살 게 해 달라'는 간절한 피맺힌 '애원'을 하는 그들의 삶을 끝내 외면하거나 짐승에게 흑인노예에게 조선노동자에게 채찍을 휘둘렀던 '그들'처럼. 2006년 7월 하순, 한국의 신문과 방송들이 저질렀던 범죄로 기록하고자 한다.

* 글쓴이는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입니다.
언론학 박사이며,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과
대자보 논설위원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 : http://yms7227.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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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7/26 [14:3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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