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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과 침묵의 카르텔, '선택의 왜곡'
[책동네] 한겨레 편집기자 박경만이 밝히는 <조작의 폭력>과 신문읽기
 
황진태   기사입력  2006/06/30 [23:19]
오늘날의 신문독해법은 얼마나 변했을까
 
“신문이란 거짓말의 다른 이름이다. 신문에서 설령 부분적인 진실이 있다 하더라도 그게 거짓말보다 더 왜곡됐을 가능성이 많다.”
 
필자가 어렸을 때부터 익힌 ‘신문 독해법의 제 1조’는 위와 같다. 소련 시대의 신문이란 당국의 선전 기관이었으며, 거기에서 보도된 것은 ‘사실’이라기보다 ‘당국에서 주입하고자 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의 신문들이 전했던 “전두환 파쇼 도당의 악행까지도-오늘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악행록’이 진실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음에도-왠지 믿기가 힘들었다."(박노자, ‘러버트 피스크, 혹은 이 시대의 언관’, <아웃사이더>19호, 72쪽)
 
박노자의 다음과 같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신문에 대한 자기검열경험이 미디어가 모세혈관처럼 뻗어진 현대사회에서는 그저 지나간 씁쓸한 추억의 한 장면일까. 
 
▲불량신문의 여론조작을 실증적으로 파헤친 박경만 한겨레 편집기자의 역서, <조작의 폭력>     © 개마고원, 2005
이번에 서평으로 다루고자 한 책은 <조작의 폭력>(박경만, 개마고원, 2005)이다. 기자의 게으름에 그간 미루고 미루다가 얼마 전에 일어났던 <시사저널>의 삼성맨이었던 금창태 사장이 삼성관련 기사에 대한 지면통제 압력을 넣고, 이윤삼 편집국장이 사표를 쓴 <시사저널> 사태로 인하여 서평을 쓰게 되었다.
 
<시사저널>사태, ‘선택의 왜곡’의 이중효과
 
신문의 왜곡을 두 갈래로 나누어보면 먼저 내용의 왜곡 그리고 이번에 주목해야 할 어떤 기사를 넣느냐 빼느냐에 따른 선택의 왜곡으로 나눌 수 있는데 오늘날 신문매체들의 왜곡수법은 독자들이 인식하기 힘든 ‘선택의 왜곡’을 애용(?)하고 있다.
 
<시사저널>사태는 이 선택의 왜곡의 이중효과를 보여주었다. 먼저 삼성관련기사에 대한 삼성출신 사장의 강권으로 인한 기사를 싣지 못한 선택의 왜곡, 그리고 신문법에 대해서는 일제히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보도한 것과는 달리 이번 <시사저널> 사태 또한 매체의 존재의식을 묻고 있는 중요한 화두임에도 불구하고 보수매체는 물론이고 일부 진보진영에서도 보도를 싹 빼놓았다는 사실에서 동종업자 종사자들의 헌재보다 무서워하는 광고주에 대한 눈치보기로 인한 선택의 왜곡이 중첩되었다. 이거 참으로 골 때리는 일이다.  
 
본 책은 저자의 머리말처럼 “여론시장의 의제를 주도하는 <조선일보>가 어떻게 나올까 하는 것은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최근 들어 신문들이 가판을 폐지하면서 ‘남의 신문 따라하기’가 줄었지만, 그렇다고 왜곡과 조작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여전히 자신들의 입맛대로 진실을 왜곡하는 언론의 조작 수법을 살펴보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며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또 이 일은 신문의 제작 메커니즘을 누구보다 잘 아는 편집기자가 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고 말했듯이 20년 가까이 <한겨레>에서 편집기자를 담당한 저자만큼 선택의 왜곡이라는 마술(편집)을 잘 알고 있는 이가 어디 있을까. 저자는 본서에서 수도이전, 뉴라이트, 국가보안법 등등 수두룩한 사회현안을 다룬 신문기사들을 가지고 이 마술의 이면을 까발리고 있다. 
 
우선 <시사저널> 사태와 관련하여 좀 더 상술 해보자. 박경만은 ‘신문의 의미생산’은 다음의 세 가지 조건들이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으로 어우러져 결정된다고 한다.
 
첫째, 사건이나 이슈 자체가 폭발적 뉴스가치를 지니고 있는 경우이다.
둘째, 언론사 내부의 정치적 입장이 개입된다.
셋째, 정치권력과 시민단체, 독자, 광고주 등 언론사 외부의 압력이 작용한다.

 
박경만은 “이 가운데 언론사주의 정치적 입장이나 이해관계는 지면의 정체성을 좌우할 정도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이는 <시사저널> 사태에서 이윤삼 편집국장이 사표를 쓴 이유와 동일하다. 즉, “사건을 취재하고 기사를 쓰거나 편집하는 기자들의 관점과 판단은 편집국장을 정점으로 한 편집국 의사결정기구의 프레이밍을 벗어나기 어려운데, 편집국장과 편집국 주요 간부들에 대한 인사권을 사주가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267쪽)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몸담고 있는 <한겨레>에 대한 비판
 
또한 기자가 서두에서 지적한 선택의 왜곡의 이중효과를 발휘한 동종업계의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침묵시키게한 즉, 그들 입에 물린 납덩어리인 광고주의 입김에 대해서도 박경만은 <한겨레>를 예로 들어 비판하고 있는 점도 인상 깊다.
 
가령 현대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기사에서 “정 사장의 계열사 지분을 나타내는 그래픽이 잇달아 수정되거나 삭제되었고 정몽구 회장이 언급된 제목이 삭제되었다.” “2005년 6월 11일치 <한겨레> 사회면 머리로 실린 「기름유출 GS칼텍스 회장에 환경의 날 ’무궁화장‘ 훈장」기사가 야근 때 축소되었고, 본문의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 ‘GS칼텍스 대표이사’로 바뀌었다.”는 등 <한겨레> 내부에서 공개하기 꺼릴만한 내용들을 밝히고 있다.
 
사실 기자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박경만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한겨레>에 대한 비판에 있었다. 더불어 대선편파보도에 대한 한겨레의 보도태도에 대한 비판부분도 꼭 읽어보시라. 그런데 이러한 <한겨레>의 자사 비판은 기자가 지난번 <교수신문>에 기고했던 ‘옴부즈맨 칼럼이란 전문가 범죄는 밖에서 깨야한다’에서 지적했듯이 보수매체가 자사에 대한 옴부즈맨 칼럼이 정론지를 표방한 겉치레에 불과한 반면에 <한겨레>는  시민편집인 홍세화의 냉혹한 자사 비판 칼럼을 읽는다면 박경만의 이러한 내부비판도 <한겨레> 내부의 회사 분위기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겹쳐읽기가 중요하다
 
처음에 본 서평을 쓸 마음을 먹었을 때는 언론고시생들에게 추천하는 형식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스위스에게 패배하기 전까지 대추리 사태, 한미 FTA, KTX 여승무원 등등의 중요한 사회적 현안들이 붉은 빛깔에 파묻힌 ‘선택의 왜곡’ 사례를 보면서 이 책은 신문을 볼 줄 아는 사람, 모두에게 추천해야 할 듯싶다.
 
신문읽기의 보다 큰 진전을 바라는 독자들에게는 한국사례에 비춘 관련서적으로 손석춘의 <신문읽기의 혁명>, <신문편집의 철학>과 박경만의 책에서도 일부 다루었지만 경제신문 관련 왜곡에 보다 상세히 알고 싶다면 제정임의 <경제뉴스의 두 얼굴>을 추천한다.
 
덧붙여 해외사례로는 근간인 노엄 촘스키, 에드워드 허먼의 <여론조작: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을 추천하고 싶지만 이 책의 두터운 분량에 부담이 간다면 <여론조작>에서 촘스키가 중점적으로 짚었던 ‘동의 제조’(manufacturing consent)를 마찬가지로 다룬 <환상을 만드는 언론, 노엄 촘스키, 황의방 옮김, 두레, 2004)이 얄팍하지만 미디어가 만드는 동의의 제조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한다면 대학생들이 토익, 토플에만 매달려 ABCD를 할 게 아니라 노엄 촘스키 외에 진보적인 학자들의 칼럼이 실리는 Z매거진(http://zmag.org)과 같은 사이트도 즐겨찾기에 추가해서 영어단어 어휘도 늘리고 비판적 사고도 살찌웠으면 바람이 간절하다.
 
참! 이 서평을 쓴 동기를 깜박했다. <시사저널> 회사 측은 그동안 몇안되는 읽을 만한 시사주간지였던 <시사저널>의 명성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빠른 시일안에 금창태 사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편집권 독립 보장과 이윤삼 편집국장을 복귀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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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6/30 [23:1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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