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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에서 'Easy Man'으로
확연히 드러난 노무현의 본색, 희망은 있는가?
 
강정구   기사입력  2003/05/22 [09:22]
노대통령은 "한국을 떠나면서 걱정과 희망을 함께 가지고 왔는데 이제 희망만 갖고 한국에 가게 됐다"고 했다. 과연 그런가? 착각도 유분수다. 그가 가지고 온 것일랑 희망이 아니라 분노와 허탈이었고 또 그에 대한 절망과 배신감뿐이다.

왜냐면 그가 미국 가서 한 일이라곤 더욱 고조된 한반도 전쟁위기이고, 더 굴욕적인 자발적 대미 노예주의이며, 함께 가야할 북녘을 민족공조는커녕 미국과 합작하여 표적화하는 反민족이었다. 또 그는 한반도를 동북아중심국 이기보다는 미국의 세계전략의 충실한 하수인 역으로 위상 지었고, 주한미군을 철군시키기보다는 동북아 지역군용으로 영구주둔 시키고, 한국군을 미사일방어체제 등으로 '현대화'시켜 한반도와 동북아에 군사긴장과 전쟁위기를 몰고와 민족통일 행로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이라크전 한국군파병 당시 강의 시간에 학생들은 ‘이제 노무현의 본색이 드러났다’고 분노할 때 나는 개인으로서 노무현과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의 행위선택은 구조적 제약성 때문에 달라질 수 있다고 그를 옹호했다. 북핵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국익을 위해서라는 그의 강변을 비록 수용은 못하지만 고충은 이해를 해야한다고 그를 감쌌다. 그러나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이 시점에서는 학생들이 역시 옳았고 선생인 내가 노무현에 대해 오판을 해도 크게 오판을 했다고 학생들에게 사과를 해야겠다.

자발적 노예주의로 치달은 노무현의 굴종외교

먼저 한국의 기성 주류 못지 않게 ‘자발적 노예주의’성을 여지없이 드러낸 그의 미국에서의 엽기적 행보와 어이없는 굴종외교를 간략히 보자.

첫째,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무엇보다 한반도 전쟁위기를 말끔히 해소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미국의 대북한 전쟁획책에 절대불가라는 우리의 목소리를 분명히 천명하고 선언하는 자리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경우에는 추가적인 조치의 검토가 이뤄지게 될 것이라는데 유의(한다)“로 사실상 미국의 한반도전쟁을 묵인 동조한 셈이 되었다. 더 나아가 그는 P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지도자들은 미국이 이라크전쟁에서 보여준 군사적 능력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미 공격위협 북핵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서 "한국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평화적 해결이 여의치 않을 때는 미국과 협의해 다음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그는 미국과 함께 전쟁을 주도한다는 가공스럽고 위험천만한 정책을 피력한 셈이다. 이러고도 그는 부시로부터 수사적인 평화해결을 공동선언에서 합의 받았다고 정상회담의 성공 운운하고 있다. 부시라는 자는 입만 열면 평화적 해결을 먼저 떠들어대고 말미에는 반드시 전쟁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본심을 내비치는 인간임을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한반도 전쟁을 위한 시간 벌기와 명분 쌓기를 착착 진행시키고 있는 전쟁 미치광이 부시는 이를 기반으로 일본과 러시아 중국을 옥죄면서 서서히 전쟁이라는 최후의 선택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미 연달아 예정된 미국의 일본, 중국, 러시아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이 마각을 드러낼 것이다. 이제 우리 민족의 생명권은 공멸의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위험을 어느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지난 2월 13일 한국노총을 방문한 당선자로서 노무현의 발언에서 명백해진다.

“언론이 미국과 다르다고 하는데 안 다르면 결과적으로 전쟁을 감수하자는 것이냐. 막상 전쟁이 나면 국군에 대한 지휘권도 한국 대통령이 갖고 있지 않다. 다른 것은 달라야 한다. 다른 것을 조율해 전쟁 위기를 막아야 한다...왜 퍼주고 싶겠느냐. 퍼주기가 아니다. 더 이상 퍼주더라도 투자를 해야 한다. 미래 동북아 시대는 남북 문제 해결 없이는 안 된다. 살자고 하는 것이고, 미래와 희망을 만들자는 것이다. 미국이 이래저래 말하면 어렵겠지만 한국민이 확고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다 죽는 것보다는 어려운 게 낫다. 한국 경제에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굳은 결심을 해야 한다."

이 전쟁위기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노쇠한 김대중 대통령이 너무나 크게 보이는 것은 나만의 연민일까? 작년 12월 30일 국무회의에서 김 대통령은 미국의 북한선박 나포라는 해적행위에 이어 ‘맞춤형 봉쇄정책’이라는 전쟁 수순에 대해서 단호하게 전쟁 절대불가를 외쳤다. 새파란 부시에게서 '이 양반(this man)'이라는 수모를 당했지만 전쟁은 안 된다고 김 전대통령은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이 ‘바보’ 노무현은 전쟁불가에 대해 입도 한번 벙긋하지도 못한 채 부시에게서 ‘말 잘 듣는 고분고분한 어린애’(easy man)라는 '부추김'에 흥분까지 해서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공산국가에 대해 냉전시대에도 억압과 고립화가 성공한 일이 없다... 관계가 경색되면 될수록 햇볕정책은 유효하다...우리는 이북과 전쟁할 수가 없으며 이북과 다시 냉전체제나 극단적인 대립으로 갈 수 없다. 평화적으로 대화를 통해 모든 것을 풀어야 한다. 우리는 한반도 문제를 우방들과 긴밀히 협조하고 이북 핵을 단호히 반대하되 어디까지나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서, 인내심을 갖고 노력해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어나가 국민을 재난 속으로 끌고 가지 않고, 후손들에게 불행을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까지 배반을 자행하는 한심하고 어떤 의미에서 불쌍하기 그지없는 그의 변신에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를 맡길 수는 없다. 위로부터의 전쟁막기에 기대할 수 없다면 민족의 파국을 막기 위해 광화문 촛불시위와 같은 밑으로부터의 전쟁막기에 우리가 매진하는 것이야말로 절대절명의 과제이다. 여기에 나는 노사모가 앞장설 것이라고 확신한다.

둘째, 한반도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의 전쟁획책에 대한 통제력과 더불어 민족공조를 취해 미국이 개입할 여지를 최소화시켜서 민족자주 행로를 개척해야 한다. 여기에는 당사국으로서 남한의 주도적 역할이 전제되어야 한다. 98년 금창리핵위기와 99년 미사일위기 때 김대중 정권이 페리프로세스와 베를린 합의를 이끌어 내어 전쟁위기를 해소했던 것이나 정경분리정책을 끝까지 취해 남북협력과 화해를 진척시킨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공동선언은 "남북교류와 협력을 북한 핵문제의 전개상황을 보아가며 추진해" 나가는 핵․경협연계론을 합의함으로써 민족공조를 통한 전쟁위기 해소와 통일기반 조성을 봉쇄해 버렸다. 남한 주도를 아예 포기한 채 그는 미국의 위험천만한 봉쇄구도에 자발적 예속주의로 푸들 강아지 꼬리를 흔들어 댄 셈이다.

더 나아가 그는 원초적인 대북 적대를 노골화했다. "미국이 53년 전 (한국전쟁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북한 체제 하에서) 정치범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코리아 소사이이어티 주최 만찬에서 막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 미국이 이 땅에 점령군으로 오지 않았다면 우리의 분단도 전쟁도 없었을 것이라는 현대사 입문조차도 모르는가 보다. PBS와의 인터뷰에서는 점점 더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나는 북한이 믿을만한 파트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 정권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북한은 낡은 체제를 고집하고 있으며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북한 주민들의 이익에 맞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과 요구는 국제사회로부터 받아들여질 수 없다"


나는 이 말들이 전쟁 미치광이와 ‘악의 축’ 이후 한국을 방문해 도라산에서 북한을 향해 내뱉은 부시의 발언인 줄 착각했다. 한국 대통령의 말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가 2월 13일 한국노총에서 한 말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불과 3개월 사이에 이렇게 표변할 수 있는지 완전히 사기 당한 느낌이다. “왜 퍼주고 싶겠느냐. 퍼주기가 아니다. 더 이상 퍼주더라도 투자를 해야 한다. 미래 동북아 시대는 남북 문제 해결 없이는 안 된다. 살자고 하는 것이고, 미래와 희망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는 정작 해야 할 “미국에도 말할 것은 말해야 한다'에서 `북한에게 말할 것은 말해야 한다'는 것으로 갑자기 표적을 바꾼 것이다. 그 자신의 말대로 불과 3개월 사이에 이렇게 표변한다면 우리는 일말의 희망도 노 정권에 걸 수 없다. 기대도 희망도 줄 수 없는 대통령이 진정 대통령으로 자격이 있는 것인가? 굳이 후세의 역사가들이 그를 평가할 필요도 없이 지금 현시점에서도 그에 대한 민족사적 평가는 결말이 난 것이나 진배없다.

셋째, 그가 공약한 '주권국가로서의 체면과 위엄'을 살리면서 대등하고 상호존중의 한미관계를 정립하는 과제는 완전히 내 팽개친 채 예속적인 한미관계를 자발적으로 더욱 고착․심화시키고 영구화시켜 미국이 획책하는 신냉전구도의 앞잡이 역을 자임하고 있다.

어느 인수위 관계자는 "측근들 대다수는 국내외 정치적 문제 때문에 대단히 조심스러워 하고 있지만 당선자는 그렇지 않다"며 "나쁜 것은 나쁘다, 틀린 것은 틀리다고 말한다는 게 당선자의 생각이며 대미관계에 관한 한 당선자가 가장 강경파"라고 말했다. 당선 직후 터져 나온 미국의 대북 '맞춤형 봉쇄전략'에 대해 그는 "적절한 방법인지 회의적"이라며 "절차나 내용에서 한국의 의견을 최우선적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김대통령의 절대불가에 동참한 바 있다.

이러했던 그가 지난 예속적 한미관계의 표본인 한미상호방위조약, 한미소파, 전시작전통제권 등의 개정과 환수 등 군사적 자주권 문제는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한반도 불씨의 근원인 주한미군 철군, 냉전체제 해체, 평화협정의 체결 등은 아예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반면 “한반도 및 아태지역에서의 미군의 강력한 전진 주둔” “기술력을 활용하여 양국 군을 변혁시키고 새로이 대두하고 있는 위협에 대한 대처 능력을 제고”하고 “한.미 동맹을 현대화”하기로 했다. 특히 주한미군과 한국군을 동북아지역군 역할로 개편과 재배치하고 미사일방어체제로 현대화하는 것 등은 주한미군의 영구주둔을 허용하고 동북아 군비경쟁과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 한반도의 자주, 평화, 통일 행로를 가로막을 것이다.

허물어진 ‘동북아 평화번영 중심국’이라는 노무현의 미래상

넷째, 이로써 노정권은 민족통일도 또 그가 시정목표로 제시한 ‘동북아 평화번영의 중심국’이라는 한반도 미래상도 전적으로 포기했다. 동북아 평화번영 중심국은 미국의 단순한 지지선언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없이는 동해선과 경의선 연결, 이의 연장선상인 시베리아 횡단철도, 시베리아 개발, 동북아 경제협력체 형성, 이들을 바탕으로 한 동북아 평화협력체 등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 그 자신이 "모든 상황을 감안하면, 남북한이 단일 정치공체 또는 경제공동체가 될 가능성이 매우 작다고 본다"(워싱턴타임스 회견)라고 함으로써 그는 아예 한반도 통일도 동북아 평화번영 구상도 모두 포기한 셈이다. 이러고도 동북아 중심국이라는 그의 목표에 미국이 지지했다고 자랑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다.

21세기 초입에 한반도의 미래 위상을 정립시킬 과제를 짊어지고 노정권은 출범했다. 그러나 그와 그 정권에게 우리의 절박한 과제인 한반도 전쟁위기 해소나 21세기의 장기적 전망인 통일과 동북아평화번영국가 등의 미래상은 완전히 허물어지고 말았다.

밑으로부터의 전쟁막기와 평화통일 행로의 모색

이제 우리는 한반도의 절박한 과제인 전쟁막기, 평화정착, 통일기반 조성 등을 노정권에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오직 우리 민중들이 스스로 개척해 밑으로부터 창출하는 길밖에 없다. 이에 대한 장기적 구상을 제안해 희망의 불씨를 지펴보자.

우리들 대부분은 잘 모르고 있지만 탈냉전과 평화통일의 시대라는 90년 대 이후 이곳 한반도는 무려 여덟 번의 전쟁위기를 겪었다. 1991-92년 120일 전투시나리오와 이종구 국방장관의 ‘엔테베 작전’ 언급 등으로 나타난 제2의 한국전쟁위기, 1994년 6월 ‘한 두 시간’만 늦었더라도 전쟁이 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던 영변 핵위기, 엉터리 미국의 인공위성 사진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단정짓고 모의 핵푹탄 BDU-38로 핵전쟁 실전연습까지 벌렸던 98-99년 금창리 핵위기, 98년 여름 대포동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발발한 미사일위기, 휴전이후 최초의 정규군에 의한 무력충돌이라는 99년의 1차 서해교전, 2002년 부시의 ‘악의 축’전쟁위협, 2002년 2차 서해교전, 2003년 임박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쟁위기 등이다.

이 가운데 미국이 전쟁을 주도한 것은 서해교전을 제외한 여섯 번으로 미국 주도의 한반도전쟁위기 주도율은 6/8이다. 그러나 남과 북의 전쟁위기 주도율은 각기 1/8이다. 이 놀라운 사실은 북한이 전쟁위기를 주도한다는 이제까지의 통설인 북한 전쟁위협론은 전적으로 허구임을 말해준다. 오히려 한반도 전쟁위기를 불러오는 주범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과 그 물적 토대인 주한미군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 같이 북한 전쟁위협론이 허구이고 미국 전쟁위협론이 진실이란 것은 평화협정이나 불가침조약에 대한 북미간의 공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북한은 지난 70년대부터 지금까지 끈질기게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해 왔다. 그렇지만 미국은 전쟁을 제도적으로 막는 장치인 평화협정 체결을 계속 거절해 왔다. 더구나 최근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북한의 요구인 불가침조약마저도 계속 거절하고 있으며 핵태세 보고서(NPR), '악의 축', 부시 독트린, 작전계획 5027-02 등에서 대북 핵선제공격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에 의하면 탈냉전기인 90년대 이후 한반도 전쟁위협은 북한으로부터가 아니라 바로 미국 및 주한미군으로부터 온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이런데도 우리는 허구적인 '북한 겨냥 미국의존 남한단독 안보체제'에 눈이 멀어 진짜 전쟁위협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어 있었던 셈이다. 전쟁주범에게 우리의 생명권을 맡겨 우리의 생명권이 경각에 걸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는 마치 도둑놈에 곶간 열쇠를 맡겨 놓은 꼴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까지 북한을 겨냥하면서 미국에 의존했던 기존의 안보체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그리고 더 이상 북한겨냥이 아니라 미국을 겨냥한 새로운 평화보장체제를 구축해 이 땅에 미국이 일으키려는 끔찍한 전쟁비극의 씨앗을 완전히 없애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하고 절박한 결론이다. 이 새로운 '미국겨냥 민족․동북아협력 민족평화 보장체제'를 위해서는 한편으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공조 최우선주의 폐기를 추진하고 다른 한편으로 민족공조 우선주의와 동북아 협력안보체제 등으로 매진해 나가야 한다. 이 길만이 우리의 고귀한 생명권을 보장해주고 한반도 통일의 길을 여는 살길이고 희망이다.

덧붙여 희망적인 한미관계 정립도 모색해 보자. 지난 50여 년 동안 자발적 대미 노예주의가 되어버린 우리의 주류신문과 정치세력들은 한미관계에 조그만 틈이 벌어지면 마치 천지개벽이 일어난 듯 야단법석을 뜬다. 민족독립을 외친 3.1절을 기념하는 자리에 미국의 성조기를 앞세운 시청 앞의 노예주의자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잘못된 과거의 한미관계를 바로 잡는 과정은 응당 과도기적 진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를 새로운 변화를 위한 필연 과정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마치 병이나 혼란기로 과장하는 것은 기득권자나 외세순응주의자들의 일관된 논리였다.

이 땅에 미군이 주둔하여 신식민지적 예속 하에 놓인 지가 도대체 얼마나 되었나? 그것은 일본식민지 전 기간의 두 배에 가깝다. 또 분열된 후삼국시대의 두 배를 넘는다. 이렇게 오랜 동안 미국의 예속 하에 있으면서 우리는 자발적 노예주의에 빠졌단 말인가?

무려 58년 동안 한미공조를 금과옥조처럼 떠 받쳐 온 결과가 미국의 한반도 전쟁위협이었고 통일 가로막기였다. 이렇다면 이제는 이러한 한미공조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통일시대에 걸 맞는 민족공조 우선주의와 한미 공조 보조주의로 근본적인 탈바꿈을 해야 한다.

멀고도 험난한 민족사의 책무와 당위적 역사행로를 향하여

{IMAGE2_RIGHT}작년 7월 이후 북한의 전향적 개혁개방, 동해선 연결, 북․일 수교협상, 철의 실크로드와 시베리아개발 구상 등을 계기로 남북한과 동북아에서 동북아 협력체의 태동이라는 큰 지각변화를 예고했었다. 미국의 일방주의가 지배하는 동북아에서 벗어나 탈미의 동북아 협력체제의 서막일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총체적 구도 속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올바른 위상을 가지고 그 진전이 기대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지각변동 속에서 노무현 정권이 동북아 평화번영 중심국가를 그 국정의 좌표로 설정한 것은 올바른 역사지향이었다.

이러한 동북아 지각변동과 평화번영국가의 구현은 21세기 동북아 세력균형자와 평화조정자로서의 새로운 한반도의 위상과 결합되어 한반도 시대를 개막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규모에서 남과 북은 세계 10-11위권에 진입하고 있어 우리 한반도는 더 이상 조선말과 같은 허약한 위치는 아니다. 우리 한반도가 일본과 밀착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또 중국과 밀착하면 일본이나 러시아가 불안해 할 정도로 역량이 증진되었다. 그래서 한반도는 중립적 위치에서 동북아의 세력균형추나 평화조정자로서 역할을 함으로써 그 위상을 정립할 수 있다. 지정학적 위치를 오히려 잘 활용함으로써 동북아 평화와 경제 협력체의 조정자나 매개자로서 우리의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긍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우리의 미래사를 개척해야 할 것이다.

이제 이를 위해서 노정권의 자발성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해졌다. 바로 광화문 촛불을 더 많이 또 더 높이 치켜들음으로써 우리 민중의 힘으로 미국과 노 정권을 압박하고 강제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비록 그 길이 험난하고 멀지라도 또 갖가지 시련에 직면할지라도, 그 길은 우리에게 부과된 민족사적 책무이고 이성의 구현으로서 역사가 요구하는 당위적 역사행로이다! (03년 5월 18일)

* 사진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 필자는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입니다.
* 본문은 <통일연대> 홈페이지 게재용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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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5/22 [09:2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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