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순의 문학과 여성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열린당의 몰락, 진보정당 재정비 계기 삼아야
[정문순 칼럼] 진보정당은 어리석음과 기만의 정치와 확실히 선 그어야
 
정문순   기사입력  2006/06/07 [15:19]
가끔 택시를 탈 때면 운전기사한테서 장황한 정치 연설을 들어야 할 때가 있다. 기사도 기사 나름인지라 나이가 젊은 층은 생각을 좀 하고 사는 것 같은데 반해, 유신 통치를 통과해온 중년층 이상은 대개 죽은 독재자에 대한 그리움을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으로 풀려는 경향이 있다.
 
실업이 늘고 살림이 펴지지 않는 것도 이들한테는 김대중 정부 이후 비영남 집권세력이 호남과 북한에 물자를 마구 퍼주고 있어서 그렇단다. 전라도 차별에 힘입어 수십 년 동안 경제 개발의 열매를 독차지했던 경상도 사람들의 수준이라는 게 이렇다.

선거 때마다 이 지역 사람들은 70%가 넘는 지지를 유신의 후예인 한나라당에 몰아줌으로써 반호남 정서를 악착같이 다져왔다. 이번만큼은 한나라당에 무더기 표를 몰아준 대열에 호남을 빼고는 전국이 모두 가세했으니 우습게도 경상도의 정치적 후안무치함이 상당 부분 가려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남권의 반호남 정서는 한나라당의 승승장구에 힘입어 본 모습이 은폐된 채 더욱 활개를 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유례없는 승리를 거둔 사실을 반세기 동안 집권한 세력의 저력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드물다.

한나라당의 힘은 오로지 개혁세력을 자처하는 집권세력의 인기 없음에서 나온다.

못 말리는 경상도 정서

수구세력의 부패에 질린 유권자들이 나라를 경영해보라고 맡겨놓았더니 10년도 못 가 밑천을 다 날린 집권당으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성은 아직 미흡하다.

열린우리당은 스스로에게 '무능한 남편'이라는 비유를 갖다 붙이며 자조하는 듯하지만, '무능'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건 집권 경험의 일천함이라는 외부 환경에 책임을 돌리려는 자기합리화이다. 50여년 동안 집권한 세력에 비하면 경험이 없으니 봐달라는 어리광마저 묻어난다.

그것도 모자라 선거 기간 중 바닥을 기던 지지율이 막판에 박근혜 대표의 피습으로 더 떨어질 것 같자 싹쓸이만은 막아달라며 유권자들에게 염치도 체면도 내던지고 읍소하는 건, 이들이 집권세력으로서 최소한의 자격이라도 있는가 하는 회의마저 들 정도로 딱해 보였다.

한나라당에게 싹쓸이로 표를 몰아주는 것이 열린우리당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보다 얼마나 더 나쁜지 유권자들이 알지 못하는 한 그런 호소는 먹혀들지 않는다.

집권당이 무력할수록 한나라당이 지지자를 끌어들이는 데 손 쓸 일은 적어진다. 개혁을 표방한 세력이 하는 일마다 죽을 쑤는 건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낙관에서 멀어지게 하고 과거로 회귀하는 움직임을 낳게 할 수 있다. 있지도 않은 반듯한 과거를 가공해내는 건 보수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습성에 속한다.

과거를 기만하는 세력들

이들은 유권자들에게 자신들이 영화를 누렸던 독재정권 시대를 미래의 청사진으로 제시하는 데 웬만큼 성공했다. 그건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빠르게 변하는 세상 흐름에 적응하기 힘든 유권자들 덕분에 가능했다.

세상의 변화가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이 완만했던 옛날의 삶에 더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그 시절이 독재 치하였던 건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주자들로서 각각 박정희의 정치적 딸과 아들쯤 되는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기대고 있는 밑천은 개혁세력의 무력함과 불확실한 미래가 낳은 대중의 퇴행적 정서밖에는 없다.

머저리 같은 집권당 때문에 민주노동당이 동반 추락한 것은 안타깝다. 진보정당이 무기력한 개혁집단으로 낙인찍힌 열린우리당과 비슷한 이미지로 묻혀 가는 건 망하는 지름길일 수 있다.

열린우리당의 몰락이 진보정당에게 자칭 개혁세력과 선을 긋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면, 거짓된 과거로 대중을 기만하는 정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하여 크게 비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보정당내의 역량 정비가 필수적이다. 민주노동당은, 광역자치단체장 후보가 복지예산 1조원 책정을 공약으로 내거는 등 실현가능성 없는 정책을 남발한 데 대해 반성이 필요하다. 모래 위에 집 짓는 만용을 삼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http://www.dominilbo.co.kr) 6월 6일자에도 실렸습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06/07 [15:19]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보스코프스키 2006/06/08 [10:07] 수정 | 삭제
  • 그래서 선거제도니 투표제도니가 혁파되어야 하는 이유겠지요... 즉 보수반동 내지는 위선이윤지상그룹에게 최저의 표를 주도록 하는 장치 말 입니다..^^
  • 사람과 사람 2006/06/08 [07:13] 수정 | 삭제
  • '노무현은 박정희보다 더 큰 죄인이다.'
    박정희는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빵을 던져주며 민주화를 추동할 동력을 부양했다.
    노무현은 기왕의 민주화를 사장시키며 보수광풍의 원인을 제공했다.
    노무현의 실정은 노무현 시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후의 우리 사회에 보수반동의 활로를 개척해줬다는 점에서
    우리 현대사의 큰 비극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