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혜의 영화나들이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천재감독 이만희 전작전, <휴일> 38년만에 상영
영상자료원에서 '영화천재' 이만희 감독의 미개봉작 포함 22편 방영
 
임순혜   기사입력  2006/05/13 [14:56]
신성일 주연 <휴일> 상영 뒤 당시 스태프들, 관객과 대화 

한국영상자료원 고전영화관에서 5월 12일부터 5월 30일까지(19일간) '고(故) 이만희 감독 전작전 : 영화천재 이만희'가 열린다. '고(故) 이만희 감독 전작전'에서는 이만희 감독이 만든 영화 총 51편중에서 <휴일>, <귀로>, <돌아오지 않는 해병>, <삼포 가는 길> 등 22편을 상영한다.

지난해 가을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이만희 감독 회고전에서 영화 10편을 상영한 바 있는데, 이번 전작전에서는 그보다 많은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된다.

▲ '고(故) 이만희 감독 전작전 : 영화천재 이만희'의 포스터     © 임순혜
5월 12일 오후 6시 열린 개막식에서 이효인 영상자료원장은 "당대에는 주류가 아니었을 수도 있고 한 명의 비운의 감독에 불과했는지도 모르나, 동시대를 같이 살았던 많은 원로 영화인들께서는 기꺼이 그를 애정 어린 목소리로 그가 아주 특별한 감독이었다고 말해주기에, 그 이만희를 기꺼이 '영화천재'라고 부르고자 한다"며 "이만희와 한국영화사를 다른 시각으로 다시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수용 감독은 "이만희 감독은 천재라는 말을 아주 싫어했다. 이만희 감독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전작전을 축하했다.

이만희 감독의 셋째 딸인 배우 이혜영 씨도 "아버지의 전작전을 열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작전을 계기로 아버지를 재평가하고 한국영화사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만희 감독을 재발견하는 기회

'전작전' 개막작으로는 1968년에 제작했으나 영화가 어두운 내용이라고 문화공보부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 당시에 개봉을 못하고,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던 신성일, 전지연 주연의 <휴일>이 38년 만에 상영되었다.

개막작 <휴일>은 늦은 겨울날, 가난한 두 연인의 어느 휴일 하루를 그린 영화다. 커피 마실 돈이 없어 마른 나뭇잎과 먼지가 흩날리는 공원 벤치에서 만난 허욱과 지연, 가정을 꾸릴 여유가 없는 허욱은 임신한 지연의 수술비를 구하러 친구들을 만나나 거절당한다.

▲ 개막식에서 감사의 뜻을 전하는 이만희 감독 딸 이혜영.     © 임순혜
한 친구의 집에 들린 허욱은 친구가 목욕하는 사이 돈을 훔친다. 훔친 돈으로 지연이 수술을 받는 동안 허욱은 술을 마시고 헤매다 한 여인을 만나게 되고, 병원으로 돌아온 그에게 기다리는 건 지연의 죽음이다.

허욱이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어두운 밤 그녀와의 행복했던 한때를 회상하며 거리를 내달리는 마지막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휴일>은 흑백 필름으로 가난한 두 연인의 휴일 하루를 매우 실감나게 그려 가난하고 암울했던 그 시절의 풍경을 재현해 낸 영화다. 황량한 늦은 겨울날의 바람과 먼지는 두 연인의 암울하고 절망적인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절제된 대사와 음악, 그리고 배경 등 매우 감각적인 영상을 보여준다.

다음은 영화 <휴일>을 상영한 뒤, 시나리오를 썼던 백결 씨와 이석기 촬영감독이 관객과 나눈 대화다.
 
검열 심해 당시엔 <휴일> 개봉 못 해

- 보신 소감은?

백결 : 38년 만에 다시 보았다. 이만희 감독이 재발견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석기 : 38년 전에 1:1 화면 비율로 찍은 필름이다. 상영 조건과 맞지 않아 화면이 불안하고 거북한 느낌을 받았는데, 원래는 안정된 화면이었다.

- 미장센이 탁월한데, 이만희 감독은 미리 콘티 작업을 하였나?

이석기 : 철저히 콘티 작업을 했다. 이만희 감독 작업은 특이하다. 믿을 수 있는 감독에게는 맡기고 나중에 감정에 따라 잘랐다. 콘티는 자신이 직접 철저하게 했다. 움직임 자체를 세밀하게 콘티하여 스태프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장소 헌팅도 대단히 중요시했다. 움직임을 직접 해 보았다. 사전에 콘티를 스태프에게 주고 현장에서 배우를 움직이게 하였다. '고개를 몇 번 돌려라'하는 부분까지 자세히 콘티를 썼다. 능력 있는 배우에게는 현장에서 창작을 하게 했다.

▲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만희 감독, 신성일 주연의 <휴일>.     © 임순혜
 
- 마지막 장면, "이발소에서 머리나 깎겠다"는 장면은 당시 검열을 의식해서였나?

백결 : 원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있었다. 프롤로그에서는 한강에서 투신한 시체를 건지고, 죽은 사람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에필로그는 부패한 신성일의 얼굴을 세 친구가 못 알아보고 가마니를 덮는 장면이다. 당시 시나리오 검열이 있어 문공부에서 못 만들게 했다. 그래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양보해서 찍었다.

마지막 장면의 "이발소에서 머리나 깎겠다"는 독백장면은 원래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문공부에서는 머리를 깎아 군대로 보내라고 하였다. 상징과 은유가 압축된 영화로 당시 개봉을 못했다. 작년에 처음으로 영상자료원에서 공개한 작품이다.

한국영화에 영화 고유의 언어를 찾게 한 감독

- 동대문, 대한극장, 남산 시립도서관, 청계천 복계현장 등 영화의 공간이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이석기 : 천재란 말이 있듯이 이만희 감독은 대단했다. 특히 작가, 촬영, 조명, 음악 감독을 대동하고 다녔다. 전 스태프들이 작품에 파묻혔다. 어떤 색깔로 찍을 것인가? 항상 만나 토론하였다. 교회당은 서울역 뒤에 있는 교회다. 격하게 찍자고 의논했다. 그래서 카메라, 음악도 불안하다. 스태프들 같이 살았다. 한마디로 이만희 감독은 영화에 미친 사람 같았다.

-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찍었다가 포기하였나? 컬러가 보급된 시기였는데, 흑백으로 찍은 이유는?

백결 : 시나리오상 가장 거슬리는 부분이었는데, 제작자가 문공부에 로비를 하였다. 검열에서 지적되어 촬영 전에 양보했다.

이석기 : 이만희 감독은 컬러시대에 흑백을 찍은 사람이다. 시네마스코프가 한창인 시기였는데, 스탠더드 흑백으로 가자고 했다. 제작자는 시네마스코프를 요구하였는데 감독이 흑백으로 찍었다.

-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들어갔으면 더 감동적이었을 것 같다. 지금은 너무 풍요한데, 가난한 사람들의 사랑하는 모습이 감동적인데?

백결 : 한국영화는 이만희 감독 이전과 이후가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만희 감독 이전에는 영화 고유의 언어를 찾기보다 문학의 지배를 받거나 연극을 빌려왔다. 이만희 감독에 이르러서 비로소 영화 고유의 언어를 찾게 되었다.

▲ 한국영화사상 걸작으로 꼽히는 <만추>, 그러나 필름이 유실되어 없다.     © 임순혜
- 주인공이 대사 없이 걸어가는 장면이 많은데, <귀로>의 문정숙도 그랬다. 어떻게 감독과 조율하였나?

백결 : 이만희 감독은 가능하면 철저히 영화 대사를 줄이자고 했다. 연출자가 영화 대사를 따라가면 감독의 이미지를 연출하기가 물리적으로 어렵다. 이만희 감독은 말의 내용보다 말이 없는 영상을 대단히 중요시했다. 대사 없는 장면에 상당히 주목했기 때문에 자세히 써주길 원해 열심히 썼다. <만추>에서도 우동집 앞 장면에 대사가 없다. 대사를 절제하는 것이 기본 약속이었다.

- <휴일>과 <귀로> 모두 우울하고 패배적인 정서인데, 당시 현실에서 어떻게 이런 작품을 구상하였나?

백결 : <휴일>의 가난한 연인들은 내 주변에 몇 트럭 있었다. 너무나 많은 가난한 연인들이 있었다. 추워서 다방에 들어갔는데 커피 값이 없어 아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실제 시대의 정서를 영화에 옮겨오고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영화엔 천재였지만 가족에겐 고통

- 우울한 음악의 과잉을 느낄 수 있는데?

백결 : 이만희 감독의 영화에서 옥에 티가 음악이다. 전정근 음악 감독에게 음악을 모두 맡겼다. 음악이 좀 안 맞는 부분은 모든 것을 맡기는 이만희 감독의 성격이 묻어있다고 생각한다. 당시는 후시 녹음을 했다.

- 급격하게 줌인, 줌아웃 하는 부분이 눈에 띄는데?

이석기 : 당시는 손으로 줌인, 줌아웃을 했다. 바람 때문에 손이 움직여 빨리 줌인, 줌아웃 할 수밖에 없었다.

- 이만희 감독의 작업 특징은?

백결 : 이만희 감독은 현장, 집, 구분과 한계가 없었다. 영화작가로서는 천재적이었으나 가족들은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같이 있는 여자들은 힘들고 견디지 못했다.

-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은?

백결 : 천재적인 감독이었으나 말년에 불운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제 재발견되어 한국영화사에서 재평가받기를 바란다.
글쓴이는 '미디어운동가'로 현재 미디어기독연대 대표, 언론개혁시민연대 감사,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공동대표/ 운영위원장, '5.18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특별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 심의위원을 지냈으며, 영화와 미디어 평론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05/13 [14:56]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