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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일의 대장정, 경인방송 희망조합에 거는 기대
[논단] 고난과 절망 극복한 희망조합원에게 박수를, 그러나 초심지켜야
 
양문석   기사입력  2006/05/03 [09:33]
180여명의 희망조합 조합원. 암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조합원이 있다. 전세 값 떼이고 거리로 나 앉은 조합원도 있다. 광고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고난의 행군을 아직도 펼치는 조합원이 있다. 희망조합의 희망 찾기 이벤트에서 크래인에 앉아 선글라스 쓰고 카메라와 함께 눈물 흘린 조합원도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등산하며 인생을 고련(苦鍊)한 이도 있다. 첫돌의 적은 부조금이나마 받아 생계비를 조달한 이도 있다.

크고 작은 '잘하자는 방법론'이 달라 어쩔 수 없이 대오에서 이탈한 적도 있는 40대 중반의 노총각도 있고, 그 아픔을 검도(劍道)로 달래는 이도 있다. 다른 방송사에서 중계하며 '그래도 떠날 수 없는, 그래도 내년 5월에는' 하고 다짐하며 희망조합의 000입니다며 오프닝 코멘트를 중계 서두에 꺼내며 되뇌이던  40대 노총각도 있다.

차라리 노총각은 그래도 낫다. 줄줄이 딸린 아이들에게 아빠는 오늘을 밑천으로 삼아 내년 5월에는 당당히 역사의 한 장을 쓸 수 있으리라며 소주 한 잔으로 마음 다스리는 가장도 있다. 외주제작을 하며 방송4사로부터 차디찬 괄시의 시선을 견뎌낸 자들도 있다.

강철대오를 이끌던, 그래서 놀 때는 푸지게 놀고 싸울 때는 '초개'같은 전투력을 보이던 키 좀 크고 카리스마 넘치던 선배도 있다. 한 번씩 후배들의 나약함에 틱틱거리듯 자극하다가  오해도 받지만.

그 가운데 온갖 구설수에 오르면서도 오직 하나 조합원들이 잘되면...하며 온갖 풍상(風霜)을 외로이 독야청청(獨也靑靑)하며 희망조합의 조타수 역을 자임한 키 큰 자들도 있다. 오늘도 신께 희망조합을 위해 묵묵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벽마다 기도하는 그들. 그들이 있었다.

이렇게 기나 긴 480일의 대장정은 그렇게 끝났다. 희망조합. 아직도 360일의 희망 찾기를 남겨두고 360여일을 또 다시 견뎌야 할 그들. 그들이 자랑스럽다. 그들이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은 고난이었을망정 치욕은 아니었다. 자랑찬 역사였다.

하지만 480일의 대장정은 끝났을지라도 남은 365일의 행군은 계속될 것이다. 그들에게 '희망'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실현되지 않은 현실을 그들은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희망조합! 당신들! 당신들은 최소한 지금까지는 아름다웠다. 앞으로도 아름다움을 간직해야 한다. 논공행상. 우습고 가당찮은 말이다. 생활고에 찌들어 동료 동지들에게 화살을 겨눌 수 없다. 그들은 가장이었고, 그들은 생생하고 절박한 현실을 살아냈다. 그들은 십일조는 받치지 못했을지라도 퇴직금은 내놓았다. 그들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보루를 내놓았다. 그렇게 함께 했음으로 당신들은 형제요 자매요 그리고 동지다.

당신들은 바닥의 삶을 경험했고, 그 경험은 프로그램으로 토해야 한다. 뭘 만들까? 어떻게 만들까? 얼마나 생생한 현장을 담을까? 이렇게 만들어진 영상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전달할까? 어떻게 경영을 안정시키며 제작파트를 지원할까? 뚝뚝 떨어지는 혈흔을 어떻게 그래픽으로 영상자료로 형상화할까? 그 자료들을 어떻게 관리하며 보존할까? 첨단의 전산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까?

이것이 공익적 민영방송의 정신이다. 이미 사업계획서에 언급했듯이, 소유와 경영의 분리, 경영과 편성의 분리, 더 이상 지역민으로부터 '망해도 망했음을 모를 정도'의 외면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지역민에 의한 지역민을 위한 지역민의'의 방송사를 만들겠다고 했으면 이를 지켜야 한다.

▲언론학 박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이지만, 언론개혁을 위해서라면 전투적 글쓰기도 마다하지 않는 양문석 전문위원     ©대자보
수많은 인천 경기지역의 활동가들이 엄청난 시간을 쪼개며 왜 함께 하려했는지를 돌이켜 되새겨야 한다. 당신들의 운명을 당신들이 결정했듯이, 지역민이 해 준만큼 지역민들에게 되돌려줄 수 있는 결정을 지금부터 당신들이 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지금까지 당신들이 자랑스러웠듯이, 당신들이 아름다웠듯이, 앞으로도 당신들이 자랑스러울 것이고 아름다울 것이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480일의 경험으로 365일을 넘고, 365일의 고민으로 3650일을 채워야 할 것이다. 샴페인을 터뜨릴 때는 적어도 아니다.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조여 맬 때로다.

* 글쓴이는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입니다.
언론학 박사이며,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과
대자보 논설위원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 : http://yms7227.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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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5/03 [09:3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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