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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차기총리로 극우 ‘이시하라’ 1위에
고이즈미는 3위로 밀려,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에 일본 극우성향 강해져
 
취재부   기사입력  2005/04/25 [12:18]
일본의 대표적 극우 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아래 설명)도쿄 도지사가  총리에 적합한 인물 1위에 올랐다.
 
2위 역시 대표적인 극우 정치가인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가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뽑혔다.
 
이런 사실은 일본내 보수세력의 입장을 대변해 온 <요미우리신문>이 일본 성인남녀 1832명을 대상으로 지난 9~10일 실시해 24일자로 보도한 ‘전후 60년에 관한 여론조사’에 의해 밝혀졌다.
 
‘총리에 적합한 정치가’를 꼽는 항목에서 이시하라 지사가 31%로 1위를 차지했고 아베 간사장 대리가 29%로 2위였다.
 
특히 이시하라 지사와 아베 간사장 대리는 지난해 같은 조사에 비해서 지지율이 각각 4%, 6%포인트 올랐다.
 
이 조사에서 현직 수상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16%로 3위에 머물렀다.
 
전후 수십년간 연정등 정치술을 발휘해 집권해 온 자민당에 대해서 ‘일본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응답이 76%를 차지했다.
 
일본인들이 현재 자국의 정치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조직으로는 1위가 관료(38%)였고, 2위가 미국(26%), 3위가 총리(23%)로 나타났다.
 
1970년 같은 조사에선 자민당이 48%로 압도적 1위였고, 2위는 재계(27%), 3위가 관료(6%)였다.
 
관료가 1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 요미우리신문은 “정치인들이 정책결정과정에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관료들에게 휘둘리고 있음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음을 반영한다”고 해석했다.
 
‘전후 일본발전의 공로자’라는 항목에선 중ㆍ일 국교정상화를 실현한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가 18.9%로 1위를 차지했고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가 15.9%로 2위였다.
 
고이즈미 현 총리는 2.1%로 8위를 차지했으며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한 후 일본점령군 최고사령관이었던 더글라스 맥아더가 10위에 올랐다.
 
이번 조사에서는 뇌물사건으로 추문을 일으킨 보수정객인 다나카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공로자 중 수위로 꼽았을 뿐아니라 금권정치의 '원인제공자'인 자민당을 국가발전에 기여한 세력으로 지목했다는 점에서 일본 국민의 보수화와 우경화가 단순한 일부정치인들의 망언에 머물지 않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일본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비관적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55%로 낙관적 견해(41%)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시하라 신타로 (1932~  )
 
'태양족'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소설가로도 유명한 일본의 정치가로 '망언 제조기', '일본우익의 마스코트'로 불릴 만큼 악명이 높은 극우정치가다.
 
1932년 9월 30일,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는 효고현(兵庫縣) 고베시(神戶市)에서 태어났다.
 
해운회사의 사원이었던 아버지사 상함 후 어려워진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 공인회계사, 영화감독등을 지망하다가 포기한 후 쓴처녀작 <회색 교실(灰色の敎室)>을 쓴다.
 
이 소설이 당시 '문학계'의 동인잡지비평 코너에 '주목할 만한 신인'으로 절찬을 받는다.
 
이후  <태양의 계절(太陽の季節)>로 1955년 제1회 '문학계신인상'을 수상하고 다음 해 제34회 아구타가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는다.
 
23살 대학생 작가가 일본 문단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구타가와상을 거머줬다는 사실과 과격한 성 묘사가 찬반양론을 불러 일으키며 '태양족'이라는 젊은이들을 등장시킨 외에 '신타로 스타일'이라는 헤어스타일이 유행하기까지 했다.
 
정치가서 그의 삶은 참의원과 중의원 선거에 출마해 잇따라 당선되고 난 후 1976년에 44살이라는 나이로 후쿠다 내각의 환경청장관에 취임하고 55살에 다케시다 내각의 운수대신을 역임한다.
 
그러나 근속 25주년을 기록한 해에  "국가로서의 명확한 의사표시를 할 수 조차 없으니 일본은 거세당한 환관에 불과하다"라는 은퇴발언으로 자신의 극우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시하라는 1999년 무소속으로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며 정치에 복귀한다.
 
이후 이시하라는 국내문제에서는 중앙정부의 반발에 맞서며 도쿄의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카지노를 건설하고 미군이 사용하고 있는 도쿄내 휴양시설의 환수에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는 독자성을 보였고 국제문제에 있어서는 '아시아 지역의 맹주로서의 일본'을 꿈꾸는 우파의 돌격대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당시 '삼국인의 소요가 있을 우려가 있으니 자위대는 대비해야 한다'고 말해 '삼국인파동'(식민지 지배를 전제로 중국인과 한국인을 경멸해 부르는 말)을 일으켰다.
 
공식석상에서 중국을 '지나(차이나를 낮춰 부르는 말)'로 불러 외교적 마찰을 불러오기도 했다.
 
일본인에 대해서도 고령자들에게 "생식능력이 없으면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등 노인이나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을 계속해 왔다.
 
그의 망언은 고도로 계산된 것이며 반드시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항상 주목이 되고 있다.
 
특히 여론의 동향을 세밀히 살피면서 포퓰리즘에 영합하는 발언을 하는 그는 오히려 자신의 발언이 국제적으로 비판 대상에 오르는 것을 기대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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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4/25 [12:1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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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친이반 2005/04/25 [18:50] 수정 | 삭제
  • 원자탄 또 맞겠구나